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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공간이 된 문화

Attractive Play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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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Culture
Becomes Space

 

공간의 된 문화

 

팬데믹의 종식으로 주춤했던 오프라인 소비가 반등하기 시작했다. 독특한 콘셉트의 팝업 스토어 열풍은 여전히 식을 줄 모르고, 눈에 띄는 콘셉트를 겸비한 브랜드와 공간 또한 늘어가고 있다. 바야흐로 콘셉트의 향연이라고 불러도 좋을 현재의 공간들은 앞으로 어떻게 바뀌게 될까. 특유의 해체주의 정신과 문화적 지지대로 전례 없는 공간과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힌트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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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시장의 반등, 앞으로의 미래는

팬데믹은 우리의 생활 양식뿐 아니라 소비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팬데믹이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전 세계 모바일 이커머스 판매액은 약 25% 증가했으며, 2022년 미국의 소매 전자상거래 시장은 1조 달러(1,300조 원가량) 규모를 넘어섰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패션 분야였다.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은 편집숍 형태의 플랫폼들이 급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한 페이지에서 만나는 방식은 취향에 맞는 브랜드를 찾는 여정을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나아가 편집숍만의 할인 혜택과 기획전, 컬래버레이션으로 내놓은 한정판 모델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유도해 이탈을 막는 데 일조한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엔데믹 선포로 온라인 불패의 판도도 모호해졌다. 여전히 성장 중이지만, 대한민국 또한 이커머스 성장세에 둔화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반면 오프라인 소비는 증대되는 추세. 편리한 접근성을 강점으로 경쟁하던 온라인 편집숍들은 오프라인 진출을 고민하고 있고, 오프라인 매장들은 대형 온라인 플랫폼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오프라인 편집숍은 과연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까. 2004년에 론칭해 오프라인 편집숍 영역에서 고유한 궤적을 그려가고 있는 도버 스트리트 마켓(Dover Street Market)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려 한다.


 

편집숍에 이식된 해체주의 정신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꼼데가르송의 디렉터 레이 가와쿠보와 그의 남편인 아드리안 조프가 만든 편집숍이다. 꼼데가르송은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패션계의 전설적인 브랜드로, 요지 야마모토, 이세이 미야케와 더불어 일본의 3대 디자이너 컬렉션으로 일컬어진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정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레이 가와쿠보라는 인물을 경유해야 한다. 그는 남성성, 몸, 전통, 효율성 등 기존의 관습과 미감에 저항하는 디자인을 선보이며 1980년대 유럽 패션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 유럽에서는 몸에 꼭 맞도록 잘 재단된 옷이나 디자인을 미(美)라고 여겨왔는데, 레이 가와쿠보는 실루엣을 드러내지 않는 루즈한 핏과 무채색 옷으로 그들의 미의식을 해체한다. 관습을 해체함으로써 그에 저항하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 레이 가와쿠보의 디자인 언어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 또한 레이 가와쿠보의 정신을 계승한 형태를 취한다. 이들은 시작부터 일반적인 편집숍과 다른 길을 걷는다. 남성복과 여성복을 구분하지 않았으며, 양극단에 위치해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럭셔리와 스트리트 브랜드를 한 곳에 두었다. 이들의 편집 미학은 ‘아름다운 혼돈(Beautiful Chaos)’이라 불리며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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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허무는 아름다운 혼돈의 미학

레이 가와쿠보는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유일한 레퍼런스로 지금은 사라진 런던의 켄싱턴 마켓(Kensington Market)을 꼽는다. 1967년 개업한 이곳은 3층 규모의 시장으로, 개업 이후 영국 서브컬처 문화를 보듬어온 전설적인 장소였다. 1960년대부터 폐업할 때까지 이곳은 히피, 보헤미안, 펑크, 메탈, 레이브, 고스 등의 하위문화를 영위하는 이들의 집합소였다. 세계적인 밴드로 칭송받는 퀸(Queen)의 드러머였던 로저 테일러는 퀸이 결성되기 전, 켄싱턴 마켓에서 프레디 머큐리와 노점을 운영했었다고. 관습과 주류를 거부하는 이들이 모였던, 문화적 멜팅팟이었던 셈이다. 또한 켄싱턴 마켓의 재림을 꿈꾸듯, 다양한 장르의 패션과 문화를 한데 모으고 있다.
보통의 편집숍이 비교적 뚜렷한 장르적 경계와 구분에서 잉태된다면, 이들은 패션을 중심으로 전방위적인 확장을 꾀한다.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은 물론이고, 신진 디자이너와 독립 디자이너의 패션까지 만나볼 수 있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의 DNA는 특히 신진 디자이너 섹션에서 빛을 발하는데, ‘LVMH Prize’에 이름을 올린 자크뮈스(Jaquemus), 마린 세르(Marine Serre) 등 미래의 거목이 될 디자이너들을 알아보고 소개하는 것도 이들이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다양성은 브랜드를 넘어 매장에서도 여실히 느껴진다. 레이 가와쿠보는 매장을 구체화할 때 건축가가 아니라 세트 디자이너 여러 명과 함께한다고 밝혔을만큼 창의성 넘치는 공간 구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새로움, 예술성, 창조성을 모토로 VMD부터 다양한 섹션 조닝에 이르기까지 공간의 모든 결과물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빚어낸다. 이렇게 구성된 공간은 6개월에 한 번씩 테마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탈피하고 있다.

단순한 편집숍을 넘어 문화의 멜팅팟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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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칭 후 20년이 흐른 지금,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6개국에서 7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꼼데가르송의 영향력과 더불어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 브랜드와 좋은 관계를 맺어왔고, 이는 도버 스트리트 마켓만의 특별한 협업으로 이어져 다른 편집숍들과 차별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컬래버레이션 중에서도 이들의 정수를 여실히 드러내는 협업은 2021년, 스카이 하이 팜(Sky High Farm)과의 협업이다. 주류와 관습에 저항하며 전위적인 작품을 만들기로 유명한 댄 콜런(Dan Colen)이 이끄는 스카이 하이 팜은 미국 내 식량 불균형 문제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 단체다. 팬데믹 시기, 안전한 식량을 지역사회에 제공하기 위한 펀드 모금 때문에 도버 스트리트 마켓과 접선했고, 이는 슈프림, 어웨이크 뉴욕 등 미국 내 기라성 같은 스트리트 브랜드들과의 협업으로 이어졌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아트와 패션이 힘을 모은 것이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특정한 결로 브랜드들을 편집하는 편집숍의 시대,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하나의 뚜렷한 콘셉트를 밀어붙이기보다 문화의 멜팅팟이 되기를 자처함으로써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팝업 매장이 여전히 강세지만, 도버 스트리트 마켓처럼 문화를 기반으로 차이와 경계를 허무는 브랜드와 숍이 많아지길 바란다.


 

눈여겨볼 도버 스트리트 마켓 지점들

도버 스트리트 마켓
긴자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두 번째 지점. 긴자는 레이 가와쿠보의 고향이다. 명품 거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곳은 1층부터 6층까지는 스토어, 7층은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카페 로즈 베이커리(Rose Bakery)가 위치해 있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
로스앤젤레스

도버 스트리트 마켓 런던의 무드를 계승해 기획된 지점. 레이 가와쿠보는 무질서함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을 연출하고자 했고, 매장 내에는 패션 아이템 뿐 아니라 현대 미술 작품들이 진열돼 있어 하나의 갤러리 같은 느낌을 준다.

도버 스트리트
퍼퓸 마켓

파리에 위치한 도버 스트리트 퍼퓸 마켓은 꼼데가르송이 전개하는 향수 라인인 ‘꼼데가르송 퍼퓸(Comme Des Garcons Parfums)’을 비롯해 국내에는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은 향·피부 테마의 브랜드들을 엄선해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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