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O.SIGHT

Essay

그곳에 가면 문득

Attractive Playground

To Get The
Creative Energy

그곳에 가면 문득 이미지

그곳에 가면 문득

 

광고계는 늘 ‘크리에이티브’ 해야 하는 곳이다. 오피스에서 격무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관성에 따라 일하다가 창의력과는 멀어진 자신을 마주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럴 때 장소를 바꾸는 건 문제 해결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된다. 이노시안이 최근에 경험한 공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인지, 그곳에서 어떤 크리에이티브한 에너지를 얻었는지 물어보았다.


 

절 사용법

최우준
카피라이터 | INNOCEAN

중학교 때였을까. 새벽 5시, 어머니가 나를 깨웠다. 전날 밤 모자간의 갈등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차에 태웠고, 말없이 운전하셨다. 도착한 곳은 집에서 멀지 않은 절. 어머니는 혼자 법당으로 가셨다. 나는 차에 있었다. 어머니가 건네주신 따듯한 코코아를 손에 꼭 쥔 채. 어머니가 법당에서 어떤 기도를 하실지 생각하며 어머니를 기다렸던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 즈음 나는 괜찮아졌다.

 

그 기억 때문일까. 나는 절이 좋다. 불교는 잘 모르지만 절을 좋아한다. 고향에 가거나 안 가본 지역을 가면 근처 절에 들른다. 한적함이 좋고, 절마다 다른 풍경이 좋다. 법당 안의 정리된 깨끗함이 좋고, 향이 좋다. 무게감 있게 툭 떨어지는 방석이 좋고, 무릎 꿇고 있는 자세가 좋다. 한 살씩 더 먹으면서 바뀌어가는 기도가 좋고, 점점 평범해지는 나의 소망도 좋다. 왠지 뭔가를 깨달을 것 같지만, 별다른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좋다.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라 좋고, 언제나 그곳에 있어 좋다.

 

어쩌면 그곳에서 만나는 내가 좋은지도 모르겠다. 광고 일은 항상 머릿속을 채우는 일이고, 머릿속을 헤집는 일이다. 절에 가면 광고인이 아닌 내가 있다. 평소 고민들은 축소되고 담백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할머니를 떠올린다. 부모님을 떠올린다. 우리 집 말썽쟁이 고양이를 떠올린다. 잘 걷고, 잘 먹고, 잘 웃고 있는 나를 떠올린다. 그러다 보면 결론은 늘 ‘잘 살고 있다.’ 이런 식이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리쿠르트 광고 카피 같은 응원을 나 자신에게 건네기 위해 절에 가는지도 모르겠다. 얼마간 후에 다시 절을 방문할 때까지 잘 지낼 나를 위해서 말이다. 절은 그렇게 과거의 나를 보내고, 미래의 나를 기다린다


 

일상과 함께하는
공간, 자연 그리고 도서관

이소연
CX스페이스1팀 | INNOC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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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참 많은 공간이 있다. 어쩌면 그리 같은 공간 하나 없이, 공간마다 각자의 색이 있다. 마치 사람들의 외형을 패션과 얼굴로 구분하듯이, 공간도 외형이 각각 다르다. 외관도 다르지만 내부도 공간의 목적에 따라 참 다르다. 그 공간 속에서 참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우러지면서 산다. 공간의 외형도, 내부도 모두 중요하지만 어디에 그 공간이 있는지도 참 중요한 것 같다. 나의 업무가 어떤 공간의 서비스 디자인을 상상해 보고, 온·오프라인의 고객 경험을 연결 짓고, 그 경험을 실제화하는 것이어서 SNS에 나올 법한 곳은 머릿속에 메모리화되어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물어보시는 분이 참 많다. 그러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갈 시간이 없다. 핑계가 아니라 정말 없다. 사실 어떤 크리에이티브한 공간을 만들 때는 공간에 가서 공간을 생각하지 않는다. 가급적 공간을 보지 않으면서 경험을 많이 하려고 한다. 특정 장소를 꼽을 수는 없지만, 공간과 상반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을 찾는 편이다. 공간 운영을 잘하는 곳에 가 서비스 마인드를 느껴보면서, 관련 집기들을 관심 있게 보고 어떤 브랜드인지 보는 편이다. 내가 앉아 있는 의자가 안락하다면, 어떤 브랜드인지를 살피고, 사진을 찍고, 브랜드를 기억해 보려 한다. 그리고 추후 어떤 공간의 의자를 제안할 때 다시금 꺼내어 본다. 하지만, 온전한 휴식이 단 30분이라도 있다면 책이 많은 곳인 도서관으로 향한다. 회사와 가장 가까운 곳은 회사 라이브러리지만, 영감을 주는 환경적인 요소를 고려할 때 회사와 가장 가까운 곳이자 주변 환경이 너무나 완벽한 곳은 ‘양재 도서관’이다. 책으로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서 잠시 책을 읽으면 사계절을 뚜렷이 느낄 수 있고, 흙냄새만으로도 같은 책을 읽어도 참으로 다른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장소로는 도서관을 꼽지만, 영감의 대상은 앞에서 말했듯 일상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참 많다. 일상에서의 소소한 경험이 모여 새로운 크리에이티브가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일상의 경험을 편안히 받아들이면서도 조금의 새로운 점이 모이는 게 ‘새롭다’로 읽히지 않을까 싶다.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을 위해 잠시 걷고, 조금은 다른 환경에서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일상은 항상 내 곁에서의 친구 같은 존재이자 긍정적인 시너지를 주는 친구이자 동료다.


 

22세기형 힙쟁이들의 공간
글라스하우스

서현민
OOH솔루션팀 | INNOCEAN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바다를 유난히 좋아한다. 원래도 자주 바다에 갔지만, 자차가 생기고 난 뒤부터는 여름이건 겨울이건 친구들이랑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인 동해로 향했다. 마음이 조금 답답하거나 갑자기 짭짤한 바닷바람이 그리워질 때면 자연스럽게 차를 타고 동해로 떠났고, 자주 가는 만큼 자연스럽게 강원도가 변화하는 슬픈(?) 모습과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여드는 모습 또한 지켜봐 왔다. 특별하지만 부담 없고 재미있지만 평화로운 그때의 바다를 다시 찾기 위해 삼척, 동해, 강릉, 양양, 속초를 헤매다 고성 천진해변에 위치한 ‘글라스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단번에 느꼈다. 드디어 내가 원하던 장소를 찾았다는 걸. 글라스하우스는 천진해변을 따라 쭉 걷다 보면 바닷가 가장 끝자락에서 만나는 곳이다. 글라스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후다닥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고성의 바다를 조금이라도 더 느낀 뒤 들어가는 점이 너무 낭만적이었다. 글라스하우스 주변에는 허름하고 저렴한 민박집들과 조그마한 편의점 그리고 슈퍼마켓, 약간은 촌스러운 콘셉트의 카페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데, 오히려 이 점이 공간을 더욱 힙하게 만드는 포인트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절대 없을 법한 콘셉트의 공간이 있다는 반전 매력 때문에 사람들이 글라스하우스를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공간 설명이 부족했는데 거창한 서론과 다르게 이곳은 커피와 디저트를 판매하는 카페다. 시멘트 색상의 황량해 보이는 심플한 구조를 가진 공간이다. 하지만 글라스하우스는 이러한 공간 카테고리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우선 직원들 국적이 다양하다. 사실 직원분들의 국적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이분은 외국 사람이 분명한데 저분은 한국 사람인가? 일본 사람인가? 아니면 남미 사람인가? 미래에서 온 듯한 독특한 패션을 한 직원들 서너 명이 안팎을 오가며 일을 하고 있는 모습부터 범상치 않다. 음료를 시킨 뒤 중정 같은 공간으로 나가 보면 용산의 유명한 타치노미 ‘키보’의 팝업 스토어를 만나게 된다. 최근에는 많이 풀렸지만 그땐 구하기 어려웠던 아사히 생맥주캔을 먹을 수 있는 곳이어서 대낮부터 많은 사람들이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쪽 건물은 다양한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가 열리는 공간으로 운영 중인데, 행사가 없는 평상시에는 ‘스톡홀름 서프보드 클럽’이라는 스웨덴 브랜드의 제품들이 상시로 비치되어 있다. 여름 시즌이 되면 주말마다 글라스하우스에선 공연이 열린다. 낮에는 밴드 사운드 기반의 모던록 공연, 저녁에는 DJ 파티가 주를 이룬다. 생각보다 공연 퀄리티가 매우 높아서 커피 말고 맥주 한잔 드시던 분은 춤판을 벌이기도 하고, 저녁에는 어디에선가 소문 듣고 찾아온 힙쟁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스우파와 스맨파’를 찍고는 한다. 일하다 보면 누구나 답답한 순간이나 잠깐이나마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는 한 번쯤 고성 천진 해변과 글라스하우스를 찾아가 보길 바란다. 바다를 바라보며 나의 고민과 괴로움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흥겨운 음악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술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한 번 더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될 것이다(적어도 나는 그렇다). 언젠가는 이곳과 이 바다도 양양처럼 하나둘 변할 수밖에 없겠지만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즐거움이 가득한 이곳의 감성을 여러분들도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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