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나를 위한 즐거운 방패
Writer. 민용준 Min, Yong-Jun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 영화 저널리스트
Esquire Korea Feature Editor & Movie Journalist
논다는 것만큼 쉬워 보이는 일도 없지만, 막상 잘 놀았다고 말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잘 놀기 위해선 나를 잘 알아야만 한다. 지금의 내가 가장 즐거워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항상 맛있는 것만 먹으러 다니잖아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는 이 원고를 쓰기 직전에 집에서 비빔면을 끓여 먹었다. 항상 맛있는 것만 먹으러 다닌다면 좋겠지만 실상 그러기엔 내가 그리 부지런하지 않다. 매번 잘 먹는 것도 노력과 열정이 필요한 일이리라. 그런데도 그런 말을 듣게 되는 건 SNS 때문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종종 술자리나 특별한 약속이 있어서 만난 식사 자리에서 찍은, 보기 좋은 음식을 찍어서 올렸을 뿐인데 뜻밖의 미식가가 되어 버렸다. 물론 맛있는 걸 먹는 건 좋아한다. 다만 그건 여느 개든 고양이든 사람이든 모두가 그러하므로 나 또한 그러할 뿐이다. 그리고 퇴근 후에 만나는 사람들과는 주로 술을 마실 경우가 많아 무언가를 먹게 되고, 그때마다 이왕이면 맛있는 안주가 있는 술집을 찾게 되고, 그것을 가끔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렸을 뿐이다. 사실 나만 그런 건 아니다. SNS의 팔 할은 음식 사진이다. 아니면 고양이나 강아지 혹은 내가 오늘 지른 어떤 자랑거리. 어쨌든 대부분 사람이 먹고 마시는 재미를 공유한다. 언젠가부터 먹고 마시는 것이 하나의 놀 거리가 된 셈이다. 그리고 잘 먹고, 잘 마신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도 하나의 놀 거리가 된 것이다. 아마 지금도 누군가는 열심히 먹고 마시며 찍어서 올릴 것이다. 어쩌면 먹고 사는 게 중요했던 시대를 넘어 잘 먹고 잘사는 게 중요한 시대가 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가 중요한 덕목처럼 여겨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직업 외에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어떤 취미를 즐기는지 역시 중요해졌다. 좋은 직업을 갖고 돈을 많이 버는 것만큼이나 잘 노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남는 시간은 생기기 마련이고,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조차 그 사람의 경쟁력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돼버렸다. 오죽하면 <잘 노는 것이 경쟁력이다>란 제목의 책까지 나오겠는가.
그런데 말입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잘 노는 것일까요? 일단 ‘논다’의 사전적 의미란 이렇다.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다.’ ‘직업이나 일정하게 하는 일이 없이 지내다.’ ‘어떤 일을 하다가 일정 동안을 쉬다.’ 그러니까 논다는 것은 즐겁다고 느껴지는 무언가를 한다거나,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고 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잘 논다는 기준의 필요조건은 어떠한 노동도 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노동만큼이나 힘든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노동처럼 느껴지지 않는 낙이 된다면 필시 그것은 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범주의 행위일 것이다. 물론 혹자는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에서 삶의 낙을 찾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노동자는 퇴근하기 위해 출근한다. 주말을 기다리며 평일을 견딘다. 직장을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염원한다. 딱히 대단한 계획이 있어서가 아닐지라도 그렇다. 침대에서 굴러도 그건 내 시간이므로. 사실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논다. 놀기 위해서는 집을 벗어나야만 하는 이가 있다면 누군가는 집 안에서도 잘 논다. 타인을 만나야만 놀 수 있는 이도 있겠지만, 혼자서도 잘 노는 이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은 점점 특별한 취미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시절엔 춤을 추는 취미가 있었다. 학창시절에 유행했던 브레이크 댄스라는 것에 탐닉했던 시절이 있었고 제법 열심히 했다. 농구를 너무 좋아해서 농구공을 한번 들었다 하면 해가 중천에 떴다가 질 때까지 농구 코트에 머물던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역동적인 취미는 과거형이 돼버린 지 오래다. 점점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것이 가장 큰 취미의 범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취미를 영위하면서 생각의 빈도도 함께 커졌다. 취미라 부르는 것들이 일과 연관된 행위가 된 탓이다. 덕분에 마냥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낙의 필요성을 문득 느끼게 된다.
피처 에디터로 잡지를 만드는 처지다 보니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사소한 일상을 취재하는 때도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누군가의 특별한 취향을 엿보고, 남다른 취미를 살피는 일들. 그러다 보면 문득 내 일상에 하나쯤은 들여놔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낙을 발견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손을 써서 무언가에 몰입하는 이들에게서 공통으로 듣게 된 말이 마음을 당겼다. 잠시 생각하지 않게 돼서 뇌가 쉬는 기분이라는 말. 가구를 만들거나, 도기를 만들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그럴 때면 세상의 온갖 번뇌로부터 자신을 떼어놓는 기분이라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말 쉬는 느낌이라고 했다. 크게는 몸을 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운동하거나, 춤을 추거나, 무엇이 됐든 무언가에 자신의 몰입하는 취미를 가진 이들 역시 그랬다. 어쩌면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진정 필요한 놀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몇 달 전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시 다녀볼까 고민 중이다. 초등학생 시절에 4년간 피아노 학원에 다녔는데 제법 재미를 붙였다. 그러니까 이제 키보드만 두들기지 말고 다시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손가락을 움직여 생각을 정리해 넣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움직여 생각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좋겠다고. 너무 오랜만이라 낯선 감각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해보지 않았던 걸 시작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잠시라도 머릿속을 비운다는 그 느낌을 얻고 싶었다. 성격 탓인지, 직업 탓인지 몰라도 요즘에는 머릿속에서 돌고 도는 생각을 멈춘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가 않다. 무언가를 보면 어떤 생각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요즘은 스마트폰을 통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니 더더욱 그렇다. 가끔은 뇌 용량을 넘치는 정보들과 생각들에 지배당해 쉽게 피곤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잘 노는 것이 경쟁력인지 잘 놀아야 성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양의 오래된 속담처럼 놀지 않고 일만 하면 바보가 되는 건 맞는 것 같다. 긴 시간을 내서 멀리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영원히 떠날 수 없다면 자신이 버티고 선 곳에서 견딜 수 있는 재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복잡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낙은 그 복잡함을 버틸 수 있는 방파제 같은 낙 하나쯤은 갖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친한 친구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일상의 스트레스까지 꿀꺽 삼킬 수도 있겠지만, 결국 혼자만의 시간 안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즐거운 방패 하나쯤은 필요한 법이리라. 마음이 동할 때 쉽게 부를 수 있는 동네 친구처럼 쉽게 행할 수 있는 나만의 취미 말이다. 물론 아직 나 역시 고민을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피아노 학원을 다시 다녀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서 반년째 공회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생각을 시작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너무 뻔뻔한 이야기 아니냐고? 5년째 도자기 공예를 했다던 한 취재원은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데 2년 정도가 걸렸다고 했다. 그러니까 ‘하고 싶다’에서 ‘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결국 ‘하게 됐다’는 말을 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나 역시 2년을 기다려볼 것이란 말은 아니다. 다만 하고 싶은 게 생겼으니 언젠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는 의미다. 사실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건 너무 많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해서 문제일 뿐이지. 그래서 우린 남들이 하는 것들을 따라 해보고, 때론 동경한다.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따라 하다 보면 정말 내 것을 만나게 될 것이므로.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할지라도 살아있는 동안 만큼은 최선을 다해 나를 위하는 수밖에 없으므로. 그래서 나 역시 조만간 하고 싶은 것을 해볼 것이다. 피아노를 연주할 것이다. 일단 그것으로 나를 돌볼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