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높은 자존감 말고, 그럭저럭 괜찮은 자존감
Writer. 허지원 Hur, Ji-Wonㅣ임상심리학자 겸 중앙대 심리학과 조교수
자존감은 분명히 좋은 심리적 자원으로, 마음의 건강과 실제 성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절대적으로 높은 자존감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낮아져도 그럭저럭 괜찮은, 자존감의 탄성력이 더 중요하다. 낮은 자존감의 프레임이 우리를 함부로 휘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당신의 자존감에 대해 누구도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동안 자존감은 마음 건강 문제와 관련해 참 많은 것을 설명해왔다. 많은 부모들은 본인의 자존감이 낮아 아이들과의 관계가 감정적으로 치닫는다고 말한다.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은게 문제라고 걱정하며, 중요한 회의나 심사에서 편안하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역시 자존감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이야기를 수백 번을 들었을 즈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자존감 때문일까? 자존감은 나도 낮은데?’ 자존감의 높고 낮음으로 누군가를 설명하는 일은 매우 폭력적이다. 잘 되거나, 되지 않았던 일들의 원인을 개인의 특성에서 찾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많은 자기계발서와 미디어들은 엄마의 자존감이 아이의 성격과 자존감, 대인관계를 결정한다며 그렇지 않아도 낮아져 있는 부모의 자존감을 더 휘청거리게 만든다.
개인의 자존감이 사회적 관계망과 직업적 성취를 결정한다며 우연한 불운들에 생의 에너지가 떨어져 한동안 숨 고르고 있는 이들에게 자존감을 더더 높이라며 불필요한 죄책감과 무력감을 심어준다. 이렇게 자존감 문제에서 원인을 찾다 보면 나를 힘들게 하는 상대의 기질적 특성이나 짚고 넘어가야 할 상황적 맥락을 살피지 못하며 실제로 남 탓을 해야 마땅한 지점에서도 본인 탓을 하게 된다. 심지어 진작 다루어야 했을 임상적 수준의 마음 건강 문제도 간과된다.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책과 강연은 지천에 널려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자존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으로 남는다. 마음 건강 문제에 취약한 사람들이 자기계발도서를 읽으면 더욱 무력해진다는 연구들처럼, 오히려 노력하면 할수록 자존감은 낮아지게 된다.
이때 주로 드러나는 태도는 ‘미루기 Procrastination’다. 도대체 어떻게 높일 수 있는 건지 그 방법이 너무나 모호하고 방대한 자존감 높이기에 몰두하면서 사람들은 지금 해야만 하는 결심을 자꾸만 뒤로 미루기 시작한다. 즉, ‘아직 나는 자존감이 낮고 불안정한 사람’이기에 나의 자존감을 좀먹는 이들과 헤어지기를 뒤로 미루고,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하는 실제적 기술들을 배우는 것을 뒤로 미루고, 아이들에게 과잉반응하거나 체벌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뒤로 미룬다. 또 지금이라도 시작해도 될 일을 ‘일단 자존감을 높이기만 하면’ 대인관계도, 성취도, 양육도 수월해질 거라 생각하며 뒤로 미룬다. 나의 진짜 약점들 혹은 변화 가능한 지점들은 ‘자존감 문제’ 뒤에 숨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는 어떤 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낮은 자존감’이라는 프레임에 죄책감, 억울함, 불안감을 번갈아 느끼며 자가 발전하기 때문에 얼어붙어 있기보다 뭐라도 해야 한다. 어떤 실험이든,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일상에서 시도해야 한다. 다음의 방법들은 자존감 문제에서 벗어나는데 꽤 효과적이니 고려해주면 좋겠다. 언젠가 ‘내 자존감, 내 마음의 건강 상태,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 보인다’며 한숨 돌리는 순간도 올것이기 때문이다.
1. 자신의 삶에 충분히 집중하는 ‘척’하기
집중하는 척이 길어지면 그것이 생활이 된다. 혼자 보내는 시간, 먹고 자는 것, 그리고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끝맺는지 그 일상의 단계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 우리의 생이 언제 끝나더라도 이상하지 않기에 내 안에 충실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불행이 닥쳐도 후회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2. 중립적인 이야기에도 과잉 방어하고 정색하는 패턴 억제하기
설사 마음이 불편해졌더라도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한다. 발끈하면 나의 취약점이 티가 너무 많이 난다. 특히, 반복적으로 과잉 방어하는 본인의 패턴을 꼭 인지하고 또 그런 순간이 올 때 최대한 전두엽 기능을 끌어올려 모든 말과 행동을 멈춰야 한다. 즉시의 대응은 언제나 후회를 가져왔던 것을 우리는 알지 않나.
3. 불편한 상황에서 유머로 적절하게 받아치는 ‘척’하기
언짢은 상황에서 도피하거나 싸우려는 태도는 아주 효율적인 대처는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당신 행위의 정당성보다는 그때 본인들이 느낀 감정에 기반해 당신을 평가하며 당신도 상황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거리 유지가 안 된 상태에서 지나친 행동을 해 버린다. 따라서 유머는 언제나 괜찮은 대응이다. 유머가 어렵다면 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다시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다. ‘아 그러니까 OO님은 제가 이러이러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지요?’
4. 혼자 밥을 먹거나 홀로 있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척’하기
이 귀한 시간을 어색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야 비로소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타인의 취향과 관계없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등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지. 나에 대해 세련되고 세심한 방식으로 알아가기 위해서 혼자 있을 필요가 있다. 자신에 대해 천천히 새롭게 알아가는 것을 권한다.
5. 실패 및 성공의 가능성이나 주위의 평판에 초연한 ‘척’하기
초연할 순 없어도 초연한 척은 해보자. 일희일비만큼 에너지 소모가 큰 것도 없고, 부질없는 것도 없다. 지금 전개되는 이 상황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잘 못 해서 못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안 해서 못하는 거야’라며 지레 포기하거나, 자신의 성공에 대해 그간의 우연한 운이나 맥락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오만해지는 모습은 경계해야 한다. 특히 본인의 타고난 인지적 자원, 우연히 가지게 된 사회적 자원과 경제적 자원들의 효과를 절대 무시하지 말자. 마찬가지로, 그 자원들을 우연히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낮은 성취에 대해 노력 문제의 프레임으로 함부로 평가해선 안 된다.
6. 모든 일을 SNS에 드러내지 않기
외로울수록 SNS Social Network Service의 이용이 높아진다. 우리의 모든 감정을 다른 사람들이 일일이 알 필요는 없다. 우리의 감정이나 진심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거대한 자의식이 만든 천동설에서 조금은 거리를 두어야 한다. 나의 세계는 내가 정확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운용하면 된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인맥을 관리하며 자존감을 높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자존감이 높으면 실제로 사회적 관계가 넓어지는 것과 달리, 사회적 관계망이 늘어난다고 해서 자존감이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