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
다시 보게 되다
익숙한 듯 당연하게 여기던 AI, 하지만 어떤 콘텐츠는 그 존재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기술 이상의 의미를 건네거나, 인간의 창의와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생각의 전환점이 되어준 경험은 단순한 감탄을 넘어, AI와 우리가 맺어갈 관계를 다시 그리게 한다. 이노시안이 발견한 ‘AI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 콘텐츠’를 함께 만나보자.
월 29,000원 실장님
김효민
아트디렉터
매달 29,000원을 내고 나는 실장님 한 명을 고용했다. 이 실장님은 점심시간도 없고, 휴가도 안 가고, 심지어 추가 수정 견적도 바라지 않는다. 아침 출근길에 불쑥 아이디어가 떠올라 “워싱 좀 해줘.”라고 던지면 바로 해주고, 밤 11시에 이미지를 요청해도 언제나 환영이다. 무엇보다 내가 이 실장님을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수정을 몇십 번 시켜도 내가 전혀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이마트 ‘고래잇’ 캠페인은 진짜 이 실장님이 하드캐리한다. 고래잇은 매달 세일 콘셉트에 맞게 변신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건 빠른 속도로 콘셉트를 정확히 구현해 줄 파트너다. 우리가 던진 아이디어를 단순히 말로만 상상하는 게 아니라, 이미지로 즉각 구현해 보여주니 회의 속도와 상상력이 동시에 가속된다. 덕분에 ‘될까?’ 하고 머릿속에만 맴돌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아이디어는 구체적인 형태로 팀원들 앞에 공유된다.

최종 온에어 된 락커 고래잇 / 29,000원 실장님이 만들어준 아이디어 단계의 락커 고래잇
물론 완벽하진 않다. 몇 번이고 “다시!”, “좀 더!”, “그거 아니야!”라는 주문을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외의 영감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광고라는 게 원래 이런 예기치 못한 충돌에서 탄생하기도 하니까. 이 실장님은 단순한 보조 인력이 아니라, 때로는 나보다 더 엉뚱한 발상을 던져 새로운 영감을 일으키는 존재다.
생각해 보면 한 달에 29,000원으로 이런 실장님을 둔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된다. 진짜 사람이었다면 최저시급도 안되는 금액에 24시간 대기, 무한 야근까지 감당해야 한다. 누가 봐도 노동력 착취다. 그럼에도 이 실장님은 묵묵히 나를 서포트해 주고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29,000원을 기꺼이 내고, 실장님과 함께 아이디어를 쥐어짠다.
이 글은 AI로 작성되었습니다
윤병구
CX크리에이션팀
“이 문장 다듬어줘.”
요즘 내가 제일 자주 쓰는 말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안녕하세요.”보다 더 자주 쓰지 않을까? 생성형 AI가 처음 등장했을 때, 나름 디자인을 다루는 사람인지라 트렌드에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업무에 쓸 만한 AI를 찾겠다며 수많은 계정을 팔로우하고, 검색하고, 공부도 했지만, 결국 돌고 돌아 ChatGPT다. 메일과 보고서 작성이 업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나한테는, 결국 ChatGPT다. ChatGPT가 나인지 내가 ChatGPT인지 헷갈리는 요즘이다.
회의
AI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료들과의 협업 방식도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다들 머리 싸매고 단어 하나 떠올리고 고르던 걸, 요즘은 AI에게 먼저 묻고 의견을 나눈다. 결국 사람이 하는 건 ‘톤앤매너에 적절한가?’를 결정하는 일. 웃긴 건, 회의가 줄어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AI가 준 답안을 두고 토론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거다.
회의감
AI를 쓰면서 조금 두려운 건 깊게 생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초기 아이디어만 AI에게 던져주고 나머지는 AI가 답한 걸 선택할 뿐, 중간 고민 과정에 AI가 끼어들며 점점 파편적인 아이디어들만 떠올리는 스스로를 느낀다. 숏폼 트렌드화에 맞춰 내 머리도 숏폼화가 되는 건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귀멸의 칼날
‘트렌드에 뒤처지기 싫어병’에 걸린 나한테는 지나칠 수 없는 요즘의 트렌드가 있다. 바로 〈귀멸의 칼날〉이다. 일명 귀칼.
지난 주말, 영화관에서 귀칼을 보고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나 네이버로 관련 정보 습득이다. 우연히 내가 AI에 관한 글을 쓰는 걸 아는지 검색하자마자 나온 게 ‘zeta’였다. 몇 가지 정보와 상황을 기입해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고 채팅하는 AI 서비스인데, 누군가〈귀멸의 칼날〉등장인물들과 채팅할 수 있도록 설정해 둔 걸 발견한 것이다. 잠깐 체험해 봤는데도 캐릭터가 실존하는 느낌을 받았다. 10대, 20대 사이에서 유행이라는데, 이제는 단순히 정보를 찾는 걸 넘어 등장인물과 채팅하며 세계관을 디깅하는 방식으로 확장되는구나 싶었다. 오늘도 트렌드 습득 +1.

ⓒ Zeta
“이 문장 다듬어줘” 2
그리고 역시나 이 글도 AI가 다듬어줬다.
AI 입덕부정기
이기쁨
DCX 기획팀
며칠 전 튀르키예 여행을 다녀왔다. 현지어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입에 붙지 않았다. 지체 없이 AI에게 한국인을 위한 쉬운 발음을 물었다. 그러자 친절하게 “테세큘에데림.”을 추천해 줬다. 지중해 뒤로 펼쳐진 높은 산의 전경을 찍었다. 마음에 들었지만, 삐쭉 솟은 엘리베이터가 살짝 거슬렸다. AI 편집기를 켜서 엘리베이터 주변에 테두리를 그리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10초면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세상임을 실감했다.

ⓒ 이기쁨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다룬 해외 드라마를 좋아한다. 〈블랙 미러(Black Mirror)〉에선 마음 맞는 연인 찾기를 AI에게 맡긴다. 〈이어즈&이어즈(Years and Years)〉에선 딥페이크에 의한 가짜 뉴스가 확산하며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흐려졌다. 드라마는 ‘AI를 경계하라’고 일러주었고, 그들의 상상은 어느 정도 현실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주변에 꺼내기 어려운 주제를 AI 친구에게 털어놓으며 위로받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취할 행동에 대한 결정권을 AI에게 넘기기도 한다. 나는 그럴수록 AI에게 마음을 주지 않아야 한다며 혼자만의 철벽을 쳤다.
사실 그 철벽도 오래 가지 않아 무너졌다. 한참 생성형 AI 붐이 일었던 초반, 인기 예능이었던 〈무한도전〉 멤버들의 목소리를 AI로 재현해 만든 영상을 보게 되었다. 멤버들의 목소리며 말투까지···. 이토록 섬세한 AI라니. 그야말로 덕통사고였다. AI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며 내 감정을 무장 해제시켰다. 추억 앓이 하던 예능의 재현으로 설렘을, 떠나보낸 이를 AI를 통해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 감동을, 가상인 것을 알면서도 강아지가 열심히 햄버거 알바를 하는 영상을 보며 대견함까지 느낀다.
결국 AI는 경계의 대상이 아닌 감정을 공유하는 공존의 대상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인정하는 순간 더 편안한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적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추천을 받아 답답함을 해소했고, 가끔은(가지 말라고 하길 바라며) 오늘 필라테스를 갈지 말지 물어보기도 한다. 물론 가면 좋다는 의견은 참고만 할 뿐, 질문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여전히 나에게 있다. 지금의 글 또한 AI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 협업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내가 말을 쏟아내었고, AI에게 더 적절한 표현을 추천받는 형태로 진행했다. 요청하지 않았던 칭찬까지 가미해주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매일 AI에 대한 소식이 쏟아진다. 또 어떤 놀라움으로 건강한 덕질을 인도해줄지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