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
당연했던 것을 바꿔본 순간
우리는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오랫동안 반복된 방식은 어느새 기준이 되고, 그 기준은 좀처럼 의심받지 않는다. 하지만 사소한 불편함이나 작은 의문 하나가 익숙한 풍경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당연했던 것들에 질문을 던진 순간,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시작된다. 의심하지 않았던 기준을 다시 들여다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나는 플리마켓으로 향했다
오주영
카피라이터 | HQ


나는 새것을 좋아했었다. 어릴 적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근처에 살던 내게 그곳은 참새 방앗간이었다. 신상의 유혹에 빠져 퇴근길마다 옷을 사들이고 오래 입을 것처럼 다짐했지만, 다음 해면 왜 그렇게 손이 가지 않는지. 빠르고 트렌디한 ‘새것’을 외치는 세상, 그 중심인 광고업계에 있다 보니 몸이 저절로 새것에 이끌렸던 것 같다. 조금만 유행이 지나도 쉽게 버리고, 장바구니를 새것으로 채우곤 했다. 그러다 문득 이게 맞는 걸까 싶었고, 반복되는 소비 패턴에 질릴 무렵 플리마켓이 눈에 들어왔다.
플리마켓의 가판대 위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공장에서 갓 나와 인성이 없는 듯 새침해 보이는 새것들과 달리, 그곳의 물건들은 저마다 고유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빈티지 그릇, 세월의 흔적을 훈장처럼 새긴 오브제들, 이제는 단종된 독특한 피규어들까지. 보물찾기하듯 발견한 물건들은 신상품이 흉내 낼 수 없는 오리지널리티의 힘을 보여주었다. 거기다 물건의 사연을 듣다 보면 그 모습이 상상되어 마음이 동하곤 했다.
플리마켓을 자주 다니면서 삶이나 업을 대하는 태도도 변했다. 소비의 관점 역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들인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컵 하나를 집에 들이더라도 쉽게 대체되지 않을 나만의 취향을 고민하게 되었고, 나만의 공간을 꾸리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황동만도 베를린 벼룩시장에서 산, 총알구멍 뚫린 코트를 극중 내내 입고 등장한다. 2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 병사가 입었던 역사의 한복판에 있던 옷이라며,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전투복처럼 챙겨 입는다. 그러다 옷이 찢어지며 ‘1998년 메이드 인 차이나’ 불도장을 발견하고 낙담하지만, 이내 반전의 스토리를 입은 그 옷을 더 사랑하게 된다.
극 중에서 그는 말한다. 우리의 업은 스토리라고. 스토리가 없으면 삶은 끝난 것이라고. 나 역시 그렇다. 예전에는 본 적 없는 낯설고 신선한 비주얼의 필름에 눈길이 갔다면, 이제는 각본 없는, 연출되지 않은, 꾸밈없는 영상에 더 마음이 간다. 사람 냄새 나는 진솔한 이야기가 훨씬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새로워져야 한다는 강박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모두가 새것과 트렌드를 좆을 때, 플리마켓 같은 이야기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그곳에서 진짜 나만의 보물을 발견하는 기쁨은 생각보다 꽤 근사하니까.
김빠진 콜라 같은 청첩장 이야기
전준석
모빌리티전략솔루션팀 | HQ
이승기의 ‘내 여자라니까’를 듣고 자란 세대로서, ‘누나를 만날 때는 누나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2000년대 초반의 사회적 규범을 충실히 지켜 지금의 아내와 커플이 되는 데 성공했다. 그 이후로 10년이 넘도록 꾸준히 누나에게 ‘너라고 부르며’ 연애를 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만드는 시기가 왔다.
청첩장에 들어갈 정보를 입력할 때였다. 당연하게도 신랑 이름은 좌측, 신부 이름은 우측에 입력하게 되어 있는 웹페이지 앞에서, 나는 문득 ‘연장자 이름을 먼저 기입하는 것이 규칙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연애 기간 동안 나에게 ‘선배님’이자 최고의 멘토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청첩장에 나보다 먼저 이름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신부 이름이 나중에 오도록 강제하는 것은 고정관념이 만든 차별이 아닐까! 난 아내에게 이 문제를 바로잡고 싶다 말했다.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게.
“맘대로 해~.”
그녀의 심드렁한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신랑에 아내 이름, 신부에 내 이름을 써서 청첩장을 주문했다. 이러면 좌우가 바뀌어서 만들어질 테니까.
10분 만에 청첩장 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혹시 신랑 신부를 반대로 입력하신 것 아닌가 확인하는 전화. 난 맞게 쓴 것이니 진행해 달라고 답했고, 직원은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두 시간이 지나 또 전화가 왔다. 정말 신부님 이름이 ‘전준석’님이 맞으시냐고 물었다. 그래서 난 ‘우리는 연상 연하 커플이고, 저는 인생 선배인 신부가 청첩장에 먼저 기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와이프도 동의한 일’이라고 장황하게 말했다. 직원은 알겠다며, 인쇄해서 보내 드리겠다고 했고, 그렇게 전화를 마쳤다.
밤 11시, 스마트폰이 또 울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이렇게까지 반대할 일인가! 다시 세상의 편견과 싸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거신 분은 청첩장 업체 사장님.
그분의 말투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사장님은 내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며,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커플이 적지 않다고 말을 시작했다. 다만, 양가 부모님이 지인에게 청첩장을 나눠 드릴 때, 인쇄가 잘못된 것도 모른다고 부모님을 뒤에서 흉보는 어르신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름 위치를 원래대로 하는 버전, 좌우를 바꾼 버전 두 개를 인쇄해 드리면 어떻겠냐, 한 버전은 부모님 드리고, 바꾼 버전은 직접 돌리시면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며칠 뒤 두 버전으로 인쇄된 청첩장을 받았다. 청첩장을 받은 사람 중 신부 이름이 왼쪽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사실 열에 셋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 김빠진 콜라 같은 사건은 나에게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종종 청첩장 업체 사장님의 사려 깊은 제안을 다시 생각하곤 한다. 이름 순서 바꾼다고 뭐 큰 변화를 만들어낸 듯 우쭐하던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같이. 그럼에도 나는 우리의 청첩장이 꽤 멋지다고 생각한다(이 글을 쓰며 청첩장을 다시 들춰보아도 그렇다). 그리고 비록 열 명 중 세 명밖에 몰랐지만, 그분들은 새로운 시도를 지지해 주었다. 뭐,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닐까. 열에 셋 정도 공감하는 변화 말이다.
글을 쓰며 요즘 청첩장 업체는 얼마나 바뀌었을지 찾아보았는데, 한 업체의 문구가 눈에 띈다.
[신랑 성함 입력] 일반적으로 좌측 혹은 위에 신랑과 신랑측 부모님의 성함이 위치합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작성 완료 후 아래 번호로 전화 주시기 바랍니다
[신부 성함 입력] 일반적으로 우측 혹은 아래에 신부와 신부측 부모님의 성함이 위치합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작성 완료 후 아래 번호로 전화 주시기 바랍니다
거의 놓칠 뻔한 신호
샐리 리 Sally Lee
몇 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어서 내 발로 걸어 나올 수 있었지만, 허리 상태만큼은 예전 같지 않았다. 그 후로 꽤 오랫동안 은근한 통증이 남았다. 병원을 오갈 만큼 심각하진 않았지만, 문득문득 신경 쓰이는 불편함이었다. 나는 그 증상을 ‘사고가 있었으니 이 정도는 어쩔 수 없겠지’ 하고 넘겨버렸다. 이유를 알고 있는 통증은 이상하게도 쉽게 일상이 된다. 처음에는 분명 몸이 보내는 ‘신호’였을 텐데, 시간이 지나자 그저 배경 소음처럼 느껴졌다. 늘 곁에 있지만 굳이 해석하려 들지 않는 소음 말이다.
문제는 그 배경 소음이 내 삶의 다른 부분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는 점이다. 2년 전 쯤, 사고와는 전혀 무관한 이유로 꾸준히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몇 주 지나지 않아 허리 통증이 씻은 듯 사라졌고, 그 무렵부터 내 삶에는 조용한 변화가 찾아왔다. 직장에서 늘 예민하게 날 서 있던 마음, 그저 내 성격이나 상황 탓이라 여기며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미묘한 마찰들이 신기하게도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 것이다.
통증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 소음이 그동안 내 삶을 어떻게 흔들고 있었는지를.
그동안 나는 불완전한 신호들에 의존해 세상을 판단해 왔다. 나 자신의 성과를 분석하는 데이터 세트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던 셈이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해 측정조차 하지 않았던 변수가 실은 내 삶에 꽤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 중요한 변수를 놓치고 있었으니, 다른 모든 데이터에서 도출한 결론도 어딘가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내 본업은 프로그래매틱 광고다.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신호’에 대해 고민하며 보낸다. 어떤 데이터를 수집할지, 그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 어떻게 행동할지 말이다. 2022년에 진행했던 한 캠페인은 내게 소중한 교훈을 남겼다. 우리가 수집하지 않은 신호가 때로는 우리가수집하고 있는 신호만큼이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시 우리는 한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의 전국 단위 프로그래매틱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었다. 목표는 단순했다. 실질적인 구매 전환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오디언스 데이터는 탄탄했고 타기팅도 정교했으며, 캠페인 구조 역시 흠잡을 데 없이 짜여 있었다. 적어도 우리가 보고 있던 지표 안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이 있었다. 우리가 광고하는 차량이 실제로 매장에 있는지, 다시 말해 고객이 지금 바로 살 수 있는 상태인지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역별 광고비 집행 내역을 실제 차량 재고 현황과 대조해 보니 그 간극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팔 차가 거의 없는 지역에는 광고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반대로 재고가 쌓여 주인을 기다리는 지역에는 정작 예산이 충분히 투입되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즉시 시스템을 수정했다. 기회가 실재하는 곳으로 예산을 옮기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과감히 예산을 거두어들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하지만 결과보다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것은, 캠페인이 최적화 기술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질문’을 던졌을 때 비로소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전략을 완전히 바꾼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수집하는 신호의 종류를 바꾼 것뿐이었다. 우리가 측정할 생각조차 못 했던 단 하나의 변수가 추가되자, 전체 그림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두 가지 경험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만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정의한 문제가 진짜 문제인가?’ 그 질문이야말로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출발점이었다.
브리프는 언제나 다시 의심해봐야 한다. 특히 그것이 나 스스로를 위해 작성한 브리프라면 더욱 그렇다. 가장 중요한 신호는 때로,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에 측정을 멈춘 데이터 안에 숨어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신호를 다시 읽어냈을 때, 우리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진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