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파민: 중독되거나 멀어지거나
Writer | 신용비 BX Lab
이노션 BX Lab에서 고객 경험과 세대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연구하고 있다.
도파민은 어쩌다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나
도파민은 뇌신경 세포의 흥분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우리가 재미나 즐거움을 느낄 때 생성되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다. 도파민은 최근 분야를 막론하고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자주 사용된다. 재미있거나 자극적인 콘텐츠를 접했을 때 ‘재미있다’는 말 대신 ‘도파민 돈다’, ‘도파민 폭발한다’ 등 비유적으로 사용되며, 이를 넘어서 너도나도 도파민에 중독(도파민 넘치는 자극적인 콘텐츠에 중독)됐다는 이야기를 하며 환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젊은 세대가 도파민 중독자가 된 배경엔 다소 뻔하지만 모바일 기기 사용의 보편화와 콘텐츠의 범람이 있다. 모바일 기기 때문에 소비자는 문자 언어보다는 빠르고 직관적인 영상 언어에 익숙해졌으며, 홍수처럼 쏟아지는 콘텐츠 속에서 더욱 강렬하고 자극적인 재미를 찾는다. 또 콘텐츠를 선택할 때도 경제 논리를 적용해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을 의미하는 신조어)를 따지며 짧은 시간 안에 큰 재미를 추구하는 콘텐츠를 선호한다. 이러한 연유로 흔히 말하는 도파민 넘치는 콘텐츠가 범람하고, 내성이 생긴 소비자는 더 큰 자극을 빠르게 충족시켜 줄 콘텐츠를 찾아 도파민 중독의 길로 빠져드는 것이다.
중독 경제의 키 - 도파민 마케팅
이러한 도파민 트렌드를 마케팅 시장에서 적극 활용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일 것이다. 물질 풍요의 시대에 소비자는 더 이상 필요가 아니라 갈망에 따라 소비한다. 따라서 기업에게 중요한 건 물건 하나를 팔기 위해 단편적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 아닌, 소비자를 중독시켜 브랜드를 갈망하게 하고 연속적으로 소비하게 하는 행위 중독이다. 이러한 이유로 마케터는 재미와 자극을 통해 빠르게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중독시키는 도파민 마케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어떤 방식으로 소비자를 중독시킬까? 인 터넷에서 사용되는 유머 코드인 밈(Meme)을 활용한 마케팅은 재미를 추구하는 도파민 마케팅 사례 중 하나다. 농협 은행이 어디인지 묻는 외국인의 말을 ‘너무 예쁘네요’로 잘못 알아들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일화에서 시작된 ‘농협은행 밈’을, 농협은행은 ‘넘흐옙은행’이라는 키워드로 광고에 활용했다. 재미로 소비자를 유혹하고자 한 이 시도는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자발적으로 확산하고, 이슈를 만들며 약 1, 000만 뷰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숏폼 콘텐츠를 활용한 마케팅 또한 짧고 재미있는 영상으로 연속적인 시청 중독을 유발하는 도파민 마케팅의 일종이다. 이 짧은 영상 콘텐츠는 최근 이커머스와 결합해 ‘숏핑(숏폼과 쇼핑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으며, 소비의 재미까지 더해 그야말로 끊이지 않고 도파민이 폭발하는 서비스로 인기다. 숏폼 콘텐츠를 시청하며 영상 속 연동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네이버 쇼핑의 '숏클립’이나 틱톡 기반 펀 커머스 ‘틱톡샵’이 대표적인 숏핑 플랫폼이다. 이들 외에도 이커머스 플랫폼 대부분이 숏폼을 활용한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짧은 영상 길이로 제작 비용 대비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상품의 수가 많아 각 기업에서 고객 유입률과 매출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해독제도 팝니다 - 도파민 디톡스
세상은 정반합의 원리로 나아간다고 했던가. 눈만 돌리면 도파민 넘치는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요즘, 한편에선 도파민 디톡스가 유행이다. 이러한 트렌드에 마케팅 업계도 편승했다. 휴대폰을 제출하고 명상과 독서 등 도파민 디톡스 체험을 하는 SKT의 팝업 스토어 ‘송글송글 찜질방’과 휴대폰 사용을 줄이고자 하는 소비자를 겨냥한 디지털 디톡스 캠프 ‘스마트폰 해방촌’ 같은 오프라인 디톡스 공간과 상품이 등장했고, 흥행에 성공했다. 이는 소비자들이 도파민 넘치는 콘텐츠를 찾으면서도, 중독에 대한 우려와 자극적인 콘텐츠에서 느끼는 피로도가 높아져 도파민 디톡스를 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SKT의 체험 전시는 이동통신사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역발상으로 이슈가 되었는데, 도파민 중독이라는 기획자 개인의 고민에서 이 전시가 시작됐다고 하니 도파민 디톡스라는 개인의 열망이 브랜드 마케팅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처럼 도파민 디톡스를 향한 소비자의 니즈가 커져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제력마저도 유행 아이템이 되고 있으며, 이를 도와주는 디톡스 콘텐츠 또한 매력적인 마케팅 소재가 되었다.
도파민과 디톡스, 그 사이에서
도파민 키워드가 트렌드를 넘어 일상에 안착한 지금, 만연해진 도파민 마케팅과 콘텐츠에 피로도가 점점 더 높아질 소비자는 더욱더 도파민 디톡스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도파민 콘텐츠가 사라질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세상은 보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매초 내놓을 것이며, 소비자는 유혹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마케터는 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이슈가 된 종교 행사가 있다. 명상과 요가 같은 도파민 디톡스 콘텐츠의 원조 격인 불교계에서 도파민이 폭발하는 DJ 파티를 열어 큰 호응을 얻은 ‘불교 박람회’다. 이는 도파민과 도파민 디톡스라는 양극단에 있는 트렌드를 적절히 융합한 사례로, 불교에 대한 젊은 세대의 호감도가 크게 상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같이 브랜드가 기존 이미지에 얽매여 하나의 트렌드를 좇기보다 ‘반트렌드’ 와 적절히 융합해 새로움을 주고자 하는 시도에 소비자는 열광한다. 이에 마케터는 도파민과 도파민 디톡스라는 양자택일의 사고가 아닌, 공존할 이 두 트렌드를 유연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고민을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