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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럭셔리의 일상화

Daily Luxury

Everyday Luxury

럭셔리의 일상화

 

 


 

 

모나리자의 럭셔리, 블랙 실크

 

르네상스 시대, 현대의 패션 도시 뉴욕에 버금가던 이탈리아 피렌체는 올블랙All Black 패션에 빠져들었다. 문제는 검은색 염료가 신대륙인 미국에서만 자라는 로그우드란 나무에서 채취되는 희귀한 재료였던 것. 미국이란 신대륙을 발견한 스페인은 이 재료를 독점해서 엄청난 부를 거두었다. 이 시기에 스페인 동부에 위치한 발렌시아는 견직물 교역의 중심지였는데, 이곳은 아시아 및 중동, 유럽의 모든 직물이 모이는 집산지였다. 게다가 기술 혁신을 시도할 수 있는 최고급 장인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스페인과의 독점 교역을 통해 검은색 염료를 유럽에 공급한 이가 피렌체의 상인이자, 다빈치가 그린 그림의 주 인공 모나리자의 남편 프란치스코 델 지오콘도다. 그는 수입 럭셔리 실크를 판매하기 위해 단독 매장까지 세웠다. 모나리자를 보면 보석을 포함한 액세서리를 일절 하지 않고 검은색 베일을 쓰고 있다. 이 실크 베일은 당대 최고의 사치품이었다. 모나리자의 블랙 실크는 희귀한 원재료, 단독 브랜드 매장, 혁신적 제품 기술, 장인 의식 등 전통적 럭셔리 산업을 지탱하는 요소들을 모두 보여주는 예다. 17세기 파리로 가면 상황은 더 놀랍다. 루이 14세 시대 최고의 럭셔리 중 하나는 가구였다. 귀족 엘리트들은 왕궁과 계약을 맺은 최상위 장인들이 못을 사용하지 않고 조립해 만든 가구를 샀다.

 

그렇다면 그 아래 계층은 어떤 물품을 샀을까? 그들은 오랜 수련을 거쳤지만 아깝게 장인이 되지 못한 이들이 만든 제품을 구매했다. 현대의 역사가들은 이 제품을 ‘포퓰룩스Populuxe Goods’라고 부른다. 포퓰룩스란 대중적이란 뜻의 Popular와 Luxury의 합성어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대중화된 럭셔리였다. 17세기 소비자들은 소비자 기호에 부합하는 하급 장인의 제품을 선호했으며 그들이 만든 제품은 도시를 넘어 교외, 시골까지 퍼졌다. 럭셔리의 민주화가 이뤄진 것이다. 포퓰룩스 개념은 고급품을 일반 대중이 비교적 쉽게 살 수 있도록 만든 *매스티지나 명품 브랜드의 세컨드 라인에 가깝다. 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나 소수의 배타적인 취향을 만족시킨 럭셔리는 대중에게 퍼지며 필수품이 되어갔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핫한 패션 트렌드는 명품의 일상화다. 2020년 한국의 명품 시장 규모는 125억 420만 달러, 약 15조에 이른다.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7위의 명품 구매력을 자랑한다. 올해는 선진국 독일도 제쳤다. 코로나19의 매서운 여파로 국내 백화점 전체 매출이 전년 대비 9.8%가 감소하고 잡화와 여성 캐주얼, 남성 의류, 아동까지 전 제품군에서 두 자리 숫자의 감소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명품 브랜드만 15.1% 매출이 증가했다.

*매스티지Masstige 준명품을 일컫는 말


 

매일매일 명품에 젖는다

 

럭셔리 산업은 집을 짓는 건축 행위에 비견될 수 있다. 건축은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위해 서로가 약속한 것을 붓을 들어 적는다는 의미의 건과 나무로 비파라는 현악기를 만든다는 의미의 축이 결합된 단어다. 다가오는 세월을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하게 집을 짓되, 재료의 종류와 장인의 손길에 따라 음색이 바뀌는 악기처럼 섬세하게 지으라는 뜻이 담겼다. 패션 분야의 럭셔리도 이와 같다. 소재의 품질, 유구한 장인 정신, 희소한 원재료 및 한정판 같은 공급의 제한성, 제품의 미적 매력도, 쇼핑 체험 및 디스플레이 환경 같은 감성적 요소, 브랜드의 명성, 디자인과 미적 차별성, 독창성, 혁신에 토대를 둔 우수한 제작 기술, 고유한 라이프스타일의 창조라는 열 개의 원칙은 전통적인 럭셔리 산업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최근 명품의 일상화가 심화하면서, 취향과 고가에 기반을 둔 소수를 위한 명품은 이제 연령이나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모두가 소유하기를 희망하고, 소유할 수 있으며, 또 소유해야 하는 물건으로 정의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과거 명품 브랜드는 여성복과 남성복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일상복과 완전히 다른 디자인을 만들고, 파리와 밀라노에 와야만 6개월 먼저 볼 수 있는 상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명품은 한정된 장소에서 제한된 소비자를 위한 상품을 만드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자본을 투자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디지털 혁명과 더불어 와해되었다. 사람들이 패션쇼 컬렉션의 착장을 보는 즉시 사는 ‘Just see and buy’를 요구하면서 버버리는 이에 맞춰 2016년부터 플래그십 스토어와 웹사이트에서 컬렉션을 생중계하고 즉시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2018년 4월 LVMH 그룹 산하의 브랜드 리모와가 슈프림과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한 슈트케이스 컬렉션이 모두 팔리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6초였다. 두 브랜드가 한정판을 만든다는 소식은 제품 출시 3일 전, SNS를 통해 상품 사진과 출시 날짜를 게시한 게 다였다. 디지털을 이용해 특정 날짜와 시간을 정해서 신제품을 기습적으로 판매하는 드롭Drop 방식은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가 가장 환호하는 마케팅 책략이 되었다. 이 드롭 마케팅은 패션 산업이 온라인 중심으로 완전히 패권을 재편하게 될 것이라는 징후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구찌 옷을 사려고 오프라인 매장에 가지 않는다. 메타버스 플랫폼인 제페토를 통해 구매하거나, 모바일 게임인 테니스 클래시에 접속해 자신이 움직이는 아바타를 통해 명품 의상과 굿즈를 착용한다. 사람들은 매일 명품에 노출된다. 명품 의상을 입고 SNS를 통해 착장에 대한 타인의 피드백을 바로 받는다. 이렇게 명품은 일상화의 길을 걷는다.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샤넬

 

명품의 일상화를 가속하는 두 개의 강력한 힘은 온라인 판매 플랫폼의 확대와 기성세대와 차별화된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최근 온라인 명품 시장의 거래액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는 전 세계 명품 판매 중 온라인 판매 비중이 2025년까지 전체 럭셔리 매출의 25%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한다. 온라인 명품 시장은 유통 단계에서 발생하는 거품을 줄이고 제품에 대한 철저한 검수 및 애프터 서비스까지 강화하면서, 젊은 층은 물론 중장년 고객층까지 확대하고 있다. 작년 국내 온라인 명품 시장 규모는 1조 5,000억 정도다.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나 백화점 이용도가 높은 전통적 럭셔리 유통은 신규 브랜드가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 럭셔리 제품의 유통 채널 중 단일 브랜드 스토어와 백화점의 비중이 줄면서 온라인 판매 비중이 증가했다. 발란, 머스트잇, 셀렉온, 트렌비, 캐치패션 같은 온라인 명품 판매 플랫폼의 성장 속도는 놀랍다. 전 세계 모든 명품의 비교구매가 가능하고, 테마에 따른 제품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며, 인공지능 로봇이 전 세계의 세일 정보를 분석해 제공한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잘 구할 수 없는 물건까지 10% 할인가에 한 번에 볼 수 있으니, 사용 편이성이란 측면에서도 훨씬 낫다. 게다가 MZ세대는 저렴한 SPA 브랜드 옷을 여러 벌 구매해 계절이 지나기도 전에 형태가 망가져서 버리느니, 명품 한 벌을 오래 입는 것이 합리적이고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 변화는 최근 한국의 의류 기업 중 중간 가격대의 내셔널 브랜드들이 하나둘 시장에서 퇴장하고 있는 결과와 맞물려 있다. 이제 소비는 초저가 혹은 고가 명품, 두 가격대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중이다. MZ세대에게 명품은 자기 과시를 위한 수단이 아닌 투자 대상이다. 명품 구매에 참여하는 MZ세대 중 60%가 재판매 가치를 염두에 둔다고 한다. 이들에게 샤넬 핸드백은 가장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다. 샤넬이 1년에 네 번씩 강제적으로 판매가를 올려왔기 때문이다. 이는 투자자인 이들에게 주기적으로 상향될 가격에 대한 신호를 보여줌으로써 소비자의 투자 욕구를 이끈다. 재판매 시장의 안정적인 확대와 함께 샤넬의 핸드백은 5%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인기 품목이자 시차에 따른 미실현 수익의 가능성이 큰 투자 품목인 것이다.


 

올드럭셔리 vs 뉴럭셔리

 

최근에는 명품의 사회적 지위와 혈통의 과시적 욕구를 강조하는 전통적 명품과 집단 내 소속감과 자신에 대한 가치를 확인하는 신명품으로 구분하는 흐름이 강해지면서 럭셔리 개념을 구성하는 요소도 바뀌고 있다. 인간이 항상 새로운 범주를 만들고 이름 붙이는 것은, 이러한 네이밍이 새로운 시장과 소비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뉴럭셔리 개념의 탄생은 전통적 개념의 럭셔리 시장의 소비자와 판이한 또 다른 층위의 소비자들을 만들어낸다. 결론적으로 명품은 더욱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고 확장되며, 대중화를 향해 진군한다. 독일의 트렌드 예측 회사이자 브랜드 컨설팅 기업인 하이스노비티에서 출간한 《The New Luxury: Defining the Aspirational in the Age of Hype》라는 책에서 스니커즈와 스트리트 패션이 어떻게 새로운 명품 반열로 인정받게 되었는지 냉철하게 풀어낸다. 이들은 MZ세대가 만들어낸 럭셔리를 뉴럭셔리란 범주로 묶으면서 전통적 럭셔리와 매우 다른 라이프스타일과 브랜드를 탄생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럭셔리를 수용하는 이유는 오랜 시간에 걸쳐 브랜드가 구축한 가치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에르메스는 승마를 통해 보여주는 유럽 귀족 문화를, 루이비통은 여행을 통한 자아 찾기와 엘리트 계층의 라이프스타일을, 샤넬은 시대에 저항하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성을 보여주었고, 이를 브랜드의 DNA를 복제하기 위한 토대로 삼았다.

 

이에 반해 뉴럭셔리는 자신의 관심사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면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주력한다. 뉴 럭셔리는 전통적 럭셔리와 달리 개방과 포용성을 중심에 두고 유색인, 소외계층, 흑인 힙합 아티스트에 이르는 하위문화를 수용한다. 이런 태도가 없었다면, 발렌시아가가 스트리트 패션에서 잔뼈가 굵은 뎀 나 바잘리아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뽑지도 않았을 것이고, 루이비통이 흑인인 버질 아블로를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임명하고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과 협업하는 도전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오프 화이트나 베트멍 같은 인디 브랜드가 럭셔리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스트리트, 스포츠, 힙합과 래퍼는 뉴럭셔리 패션의 어휘가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스니커즈는 뉴럭셔리 패션의 대표 품목이 되었다. 2021년 전 세계 스니커즈 매출은 60억 달러 규모에 이르렀다. 또한 뉴럭셔리는 제품 구매 시 윤리적 가치를 우선순위로 생각한다. 지속가능성, 동물복지, 공정무역, 지역사회 배려 같은 요소가 럭셔리 브랜드의 유지에 필수 요소가 된 것이다. 특히, 뉴럭셔리 산업의 핵심 소비층인 MZ세대는 지속가능성에 가장 헌신적이며 브랜드의 윤리 기준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역사적으로 희귀품들은 모두 럭셔리로 시작해, 대중의 손에서 사용되는 필수품이 되었다. 럭셔리란 한 벌의 옷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의 의미와 조우하고, 매일의 변화를 모색해 가는 인간의 태도다. AD 1세기 그리스 로마 교양인들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자기 수양이나 존재의 품격화에 힘썼다.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다. 이때 ‘작품’ 이란 예술적 사물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키며, 스스로 자신의 작품이 되는 행위를 말한다. 철학자 푸코는 이런 행위를 품격화Stylization라고 불렀다. 삶에 스타일을 부여하는 각양의 명품 브랜드가 우리를 초대한다. 데일리 럭셔리, 참 멋지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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