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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미니멀리즘이 남긴 질문

개념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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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이 남긴 질문

Writer. 허윤선 Hur, Yoon-Sunㅣ<얼루어 코리아> 피처 디렉터

 

한동안 ‘미니멀리즘’,‘단샤리’ 등의 라이프스타일이 화제의 중심이 되면서 나 역시 ‘미니멀리즘’에 도전해본 적이 있다. 도전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건 부단히 노력해야 결실을 얻을 수 있는 도전에 가까웠다.

 


 

미니멀리즘은 소비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고, 또한 이미 가진 것조차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야 얻을 수 있는 차라리 고행이라고 부를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미니멀리즘 체험이 아예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미니멀리즘이 현상으로 대두된 이유는 분명히 존재했다. 한정된 자원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한정된 공간이 더욱 피부로 다가왔다. 주거 공간은 한정적인데 물건은 너무 많은 게 사실이었다. 좋아서 못 버리고, 아까워서 못 버리는 물건들이 쌓이고 쌓여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미니멀리즘 체험이 내게 남긴 질문은 한 가지였다. 최소한으로 가져야 한다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가질 것인가?

 

소비의 종류는 많다. 실제로 물건을 소유할 수 있는 소비재를 원할 수도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경험재를 원할 수도 있다. 소비재와 경험재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는 이렇게 상상해보면 된다. 한 달 월급의 일부로 발렌시아가 Balenciaga 스니커즈나 마르니 Marni 코트를 살 것인가? 아니면 일본으로 우동 투어를 떠날 것인가? 최근에는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덧붙여지고 있다. 마음이 편한, 죄책감을 덜 수 있는 소비다. 일부에서는 ‘착한소비’,‘개념 소비’,’가치 소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는 소비에 한 가지 질문이 덧대어진 것이다. 이 소비가 윤리적이냐는 것이다.

 

내가 소속된 잡지 ’얼루어 코리아’의 4월호는 조금 특별하다. ‘Green Issue’라 칭하는 친환경 특집호는 남산에서 열리는 ‘얼루어 그린 캠페인’과 연계되어, 한 호의 대부분 기사가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고민과 제안으로 이루어진다. 10여 년을 넘게 이어오면서 에디터들의 소비도 많이 달라졌다. 이미 8년 전부터 사무실에서 개인 컵과 텀블러를 사용하고 있고, 포장 쓰레기가 많이 남는 배달 음식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한 에디터는 신발을 제외하면 가죽 제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녀는 스텔라 맥카트니 Stella McCartney의 팬인데, 그것은 스텔라 맥카트니의 컬렉션이 아름답고 현대적일 뿐만 아니라 모피 가죽을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피와 가죽은 생산 과정에서 동물권을 침해하고, 처리 과정에서는 유해 물질이 생성된다는 이유다. 가죽을 사용하지 않은 스텔라 맥카트니의 가방은 그럼에도 고가에 판매된다.

 

대나무와 재생 농업,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지속가능한 패션’은 패션계와 소비자가 함께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다. 최근에는 SPA브랜드의 막대한 재고가 화제가 되었다. 이른바 ‘패스트 패션’의 주역인 SPA브랜드의 확산으로 누구나 최신 유행 패션을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제 3세계의 노동력 착취, 판매되지 못하고 남은 의류가 고스란히 쓰레기가 되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SPA 브랜드는 제각기 친환경 제품 라인을 만들고, 의류의 재활용에 참여하는 고객에게 할인 쿠폰을 증정하는 등 친환경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미 환경의 주범으로 몰린 SPA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하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SPA 브랜드 소비를 줄이겠다는 소비자들의 목소리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해양 오염 물질로 대두된 미세 플라스틱 이슈는 뷰티 업계를 긴장시켰다. 미세 플라스틱이 함유된 제품이 이슈화되자 해당 성분이 들어 있는 제품을 보이콧하자는 움직임이 생겼다. 이런 움직임은 대표적인 경험재인 여행에서도 이어진다. ‘공정 여행’은 물가가 저렴한 여행지의 노동력과 환경을 착취하는 대신,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현지인들의 자립을 돕는 여행 형태다. '공정 무역’의 여행 버전인 셈이다. ‘개념 소비’,‘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은 대단히 적극적이다. 이미 가치에 투자하는 대신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한 소비자들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무실에서 텀블러를 쓰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스타벅스 등에서도 텀블러를 이용하는 건 번거로움을 감수할 때만 가능하다. 언제고 마신 후 버릴 수 있는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는 직접 설거지까지 마쳐야 다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어떠한가? 전기차의 오너들은 매일 충전을 해야 하지만, 최신의 기술을 소유하는 동시에 환경 오염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한편, 소비자들은 적극적으로 기업에 요구하기도 한다. 많은 팬을 거느린 마켓 컬리 Market Kurly는 식재료의 신선도를 위해 아이스팩과 함께 꼼꼼히 포장해 배달해왔다. 커다란 포장박스와 아이스팩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고 꾸준히 건의한 것은 소비자였다. 버리자니 죄책감이 들고, 그렇다고 쓸 일은 없는 아이스팩이 여러모로 부담된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목소리에 마켓 컬리는 이렇게 화답했다. 100% 재활용이 가능한 에코워터팩을 만든 것이다.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하는 기존 보냉재 대신 100% 물만 담겨 있어 집안에서도 쉽게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만하면 해피 엔딩이 아닐까? 마켓컬리의 고객 충성도는 조금 더 올라갔을 것이다.

 

소비가 없는 삶은 심심하다. ‘색계’의 작가로 유명한 중국 소설가 장아이 링 Zhang Ailing이 첫 원고료를 받은 뒤 달려간 곳은 백화점이었다. 그곳에서 립스틱을 샀다고 한다. 당대의 아이콘이기도 했던 장아이링은 자신의 에세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비에 대한 철학을 남기기도 했다. ‘어떤 물건은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다른 이보다 더 그것을 향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아주 많으면 무엇을 살 때 고민할 필요가 없고, 돈이 전혀 없어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런 고통과 즐거움은 소시민의 것이다.’ 우리가 모두 건물주가 아닌 이상은, 무엇을 사든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제 여기, 질문이 하나 더 더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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