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O.SIGHT

Essay

미디어로 하나 되는 세대

Cross Generation

Essay

미디어로 하나 되는 세대

Writer. 원세희 Won, Sehy Copywriterㅣ이일호CD팀 INNOCEAN

 

우리도 분명히 늙는다. 불분명한 미래 앞에, 오팔 세대는 조금씩 우리에게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영역은 점점 단단해지고 넓어질 것이다. 분명히 우리도 언젠가 그 안에 소속되어 또 다른 콘텐츠를 창조하고 동시에 다른 세대와 융합될 것이다.

 


 

이런 글을 본 적 있다. 제목은 ‘오십 대 후반 이상 되시는 청년분께 호소합니다.’ 무슨 호소 내용이지 하고 호기심에 글을 눌렀다. 착실한 행동 강령이자, 절절한 러브 레터였다. 그 내용을 조금 옮겨보겠다.

 

‘… 어제부터 팔 소매 다 걷어붙이고 멜론 가입하여 스밍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남는 게 뭐입니까. 시간과 돈밖에 더 있지 않읍니까. 자,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시면 안 됩니다. 한 명 한 명이 모여서 이렇게 45,000명 회원이 되지 않았읍니까. 눈이 안 보이면 돋보기 쓰고 하시고, 잘 모르시면 자녀분께 도움도 받으시고, 나이 들수록 자꾸 머리도 쓰시는 게 치매 예방에도 좋습니다. 우리 송블리님 꼭 인기차트 1위 입성하게 만듭시다. 어게인 50대 후반 청년들이여, 제발 도와주십시오!’

 

각종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이 글은 읽어보면 알 수 있다시피, 트로트가수 송가인 팬클럽 ‘Again’ 팬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투박한 말투와 ‘읍니까’를 쓰는 오래된 맞춤법, 있는 건 시간과 돈밖에 없다는 엄청난 자신감, 눈이 침침하면 돋보기, 머리를 쓰면 치매 예방에도 좋다며 스밍(‘음악사이트 스트리밍’의 줄임말)을 해달라는 자조적 자세까지 오묘하게 섞여 있다. 글의 내용과 형식이 새롭고 재미있어서 몇 번을 읽었다. 이처럼 우리의 부모님 세대인 신중년층은 그전에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팬덤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일명 ‘밀레니얼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2030 세대는 부모님의 세대와 절대 양립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도 분명히 늙는다. 불분명한 미래 앞에, 오팔 세대는 조금씩 우리에게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영역은 점점 단단해지고 넓어질 것이다. 분명히 우리도 언젠가 그 안에 소속되어 또 다른 콘텐츠를 창조하고 동시에 다른 세대와 융합될 것이다.

 

IMF라는 역경 이후, 중장년층은 다양한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대신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자식을 위해 투자했다. 반면 밀레니얼 세대들은 그런 부모님의 땀과 눈물을 자양분 삼아 인터넷이라는 신기술과 SNS의 발달과 함께 성장했다. 이렇게 다른 성장 배경과 정치, 문화, 사회 전반에서 형성된 가치관은 서로를 다른 길로 안내하는 듯했다.

 

하지만 매우 반갑게도, 일명 ‘오팔 세대’로 불리는 신중년층은 은퇴 후 찾아온 여유와 안정적인 생활로 뒤늦게 미디어와 친근해졌다. 그리고는 밀레니얼 세대가 지배하던 미디어 영역에 그들만의 방식으로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온갖 유튜브 영상에 댓글로 안티들을 패고 다니는 송가인의 아저씨, 아줌마 팬이라든지, 종편 방송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내고 있는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흥행 이유에도 오팔 세대가 존재한다. 더 나아가 가마솥으로 초코 크레이프 케이크를 척척 만들어내는 할머니들이 나오는 유튜브와, 모두가 아는 박막례 할머니의 새로운 시니어 도전기는 오팔 세대 문화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인스타그램도 예외는 아니다. 오팔 세대에게 인스타그램은 그들 삶의 지혜나 생각을 전하는 소통 창구가 된다. @montana_choi라는 계정의 인플루언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안경과 패션 철학을 오랜 시간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해왔다. 팔로워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그는 모 기업의 CEO라는 직업 외에 자신의 열정체였던 ‘안경테’를 필두로, 또 다른 사업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느샌가 우리는 미디어라는 플랫폼 안에서 융합되어 서로의 멋과 철학을 뽐내고, 인정하고,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오프라인에서도 활발하다.


 

‘뉴트로’는 사람들을 을지로로 불러들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원조 단골 어르신들과 그들의 반도 살지 않은 탈색한 젊은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맥주와 노가리를 씹는 모습은 미디어라는 플랫폼이 없었다면 가히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었을 것이다.

 

카페에서 좋은 노래를 하나 들었다. 그런데 노래를 찾으려 스피커에 핸드폰을 가져다대도 찾아내지 못했다. 계속 듣다 보니, 내가 아는 노래인 동시에 전혀 다른 노래였다. ‘권인하’라는 가수가 커버한 ‘장범준’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거야’였다(유튜브에서 한번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분명 샴푸 향인데 한방샴푸 향이 날 것 같다는 댓글이 달렸다. 그걸 읽으며 또 피식 웃었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오팔 세대가 만든 콘텐츠에 밀레니얼 세대는 열광하고 댓글을 달며 즐긴다. 조회 수는 어느새 1M을 훌쩍 넘는다. 아마 인터넷의 발달이나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소통이 용이한 미디어 매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권인하라는 가수를 우리 세대가 알 기회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에 TV나 뉴스, 라디오만이 자신을 드러낼 유일한 미디어 매체였던 오팔 세대의 중장년층은 그 목마름을 해소하듯 PC와 모바일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다양하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그들이 하나의 필드를 일궈나가는 동안, 밀레니얼 세대는 뜨거운 반응으로 화답하고 있다.

 

광고 일을 하면서도 이 흐름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이제는 중장년층의 전형적인 모습을 광고에서부터 바꾸어야 할 때다. 무인 계산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 매거나(물론 노인들에 대한 IT기술 교육은 더 강화되어야 하겠지만), 미디어로 하나 되는 세대 IT기술에 무지할 것 같은 중장년층에 대한 시각을 조금씩 바꿔 나가야 한다. 나 역시 트리트먼트 회의를 하거나 PPM을 할 때 유심히 보는 것 중의 하나가 그것이다. 엄마들은 꼭 주름진 얼굴에 앞치마를 두르고, 아빠는 돋보기를 쓰고 폴더폰을 들고 다니는 고전적이고, 험블한 표현의 시대는 지났다. 얼마 전 모 광고에서 중장년층의 엄마 모델이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데 그 문자에 일부러 오타를 냈더라. 광고가 좋네, 안 좋네를 떠나서 내 의견은 ‘굳이?’였다. 감동을 전하려 중장년층을 그렇게 소비하는 것은 우리부터 지양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충분히 바뀌고 있고, 달라지고 있는 것을 너무나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후숙한 아보카도를 어떻게 보관하는지 궁금해하던 엄마가 주방에서 스마트폰을 켜고 유튜브로 방법을 찾아보더라. 익숙하게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동영상에서 하라는 대로, 후숙한 아보카도의 껍질을 벗겨 반으로 가르고, 오일 스프레이를 뿌린 다음 작은 지퍼백에 차곡차곡 넣어 냉동실에 넣었다. 이것은 내가 어렸을 때 상상하던 엄마의 모습이 아닌, 스마트하고 닮고 싶은 엄마의 모습 중 하나가 되었다. 신기술에 뒤처져 따르기만 하는 수동적인 세대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 못지않게 궁금한 것은 미디어로 찾아보고 실행하는 능동적인 세대로 변했다. 내가 아이를 낳고, 내 아이가 IT기술을 이용해 알아서 척척 무언가를 할 때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주고 싶은 게 이런 느낌일까? 엄마의 모습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꺼져가는 불씨가 아니라 다시 활활 타오르고 발화하는 오팔 세대의 모습은 나뿐 아니라, 모든 늙어가는 이에게 기분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Search
검색어 입력
뉴스레터
구독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