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ew World For Future Generations,
Metaverse
미래세대의 새로운 세계, 메타버스
Writer. 고찬수 한국PD연합회 회장
1995년 KBS에 입사하여 KBS 예능PD로 예능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콘텐츠 제작과 함께 IT 관련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 《인공지능 콘텐츠 혁명》, 《스마트 TV 혁명》 등을 출간하기도 했다. KBS에서 웹드라마와 MCN 사업을 진행했고, 현재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시즌3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메타버스Metaverse라는 가상세계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관심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 전문가들만의 외침에 불과하던 이 단어가 이제는 국내 기업 관련 뉴스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정부가 VR 등 실감형 콘텐츠 산업을 메타버스와 연관 지으며 육성하는 정책을 추진하자 관련 산업계에 훈풍이 불고 있으며, 몇몇 선도적인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메타버스를 받아들여 투자에 나서고 있다.
편의점 CU가 *제페토 내의 인기 장소인 가상 한강공원에 가상 편의점 ‘CU 제페토 한강공원점’을 열었고 구찌, 루이비통, 나이키, 컨버스 등 패션 회사들도 제페토의 젊은 유저들을 겨냥하여 가상공간의 아바타에게 자신들의 패션 제품을 입힐 수 있도록 가상 패션 제품을 서비스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제페토 속에 가상공간인 다운타운과 드라이빙 존을 만들고 쏘나타 N라인을 아바타들이 시승하게 하여 업계 최초로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자사 차량을 구현해 시승 경험을 제공한 회사가 됐으며, 젊은 유권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정치인들도 앞다투어 메타버스 공간을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젊은 소비자들이 새로운 서비스인 메타버스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메타버스 공간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전적인 시도는 주로 10대인 Z세대를 겨냥하고 있다.
국내에서 메타버스에 가장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의외로 금융인데, 거의 모든 기업이 메타버스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을 정도다. 10대나 20대 고객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금융 기업이 이렇게 적극적인 이유는 인터넷 전문은행(K뱅크, 카카오뱅크, 토스 등)에게 미래 시장을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감에서인 듯 보인다. 보수적인 문화를 가진 금융권의 이러한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국내 메타버스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느끼게 한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면, 하나은행이 인천 청라 하나은행 연수원의 구조와 외형을 그대로 담은 가상 연수원을 제페토 안에 만들고 이곳에서 신입 은행원들의 멘토링 프로그램 수료식을 진행하였고, 국민은행은 메타버스 기반 협업 플랫폼 *게더타운에 가상 영업점을 오픈 하여 고객 체험관을 개설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외에도 거의 모든 은행, 카드사, 증권사 등에서 메타버스 관련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제페토Zepeto: 네이버의 자회사인 네이버제트에서 서비스하는 AR아바타 기반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2억 명이 넘는 전 세계 유저들을 확보하고 있음.
*게더타운GatherTown: 미국 스타트업 게더가 서비스하는 아바타 기반의 화상회의 메타버스 플랫폼.
왜 지금 메타버스 열풍인가
메타버스는 무엇인가를 초월한다는 의미를 가진 ‘메타Meta’라는 단어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 Universe’를 합성한 용어로, 1992년에 나온 소설 《스노크래시Snow Crash》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소설 속 이 혁신적인 개념에 매료된 필립 로즈데일은 최초의 메타버스 서비스인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를 2003년 세상에 내놓는다. 이 서비스는 미국광고연맹The American Advertising Federation이 2007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2006년 미디어 시장에서 발생한 가장 놀라운 현상으로 ‘세컨드라이프 돌풍’을 꼽았을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끌어냈지만, 반짝 성공으로 막을 내리고 만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게임과 VR 분야를 선두로 다시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각광을 받고 있으며, 스마트폰 이후의 차세대 킬러 서비스로까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 환경이 필요해졌고, 현실세계가 바이러스로 소통이 어려워지자 가상공간을 활용한 소통과 가상세계에 서의 콘텐츠 소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필자의 생각에는 가상세계를 현실의 일부분처럼 받아들이는 미래세대(Z세대, 알파세대)의 등장이 더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Z세대와 알파세대
태어나면서부터 게임을 보아왔고, 스마트폰과 함께 자라온 Z세대(1996~201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와 알파Alpha세대(2011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컴퓨터가 만든 가상세계인 게임에 익숙하다. 기성세대는 게임을 모니터 앞에 멍하니 앉아 괴물이나 적군을 죽이는 폭력적인 전쟁놀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미래 세대에게 게임은 더 이상 가상공간에서 누군가와의 전투를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곳만이 아니다. 지나친 몰입으로 ‘게임 중독’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던 과거의 게임을 미래세대는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에게 게임은 또래들이 항상 접속해 있는 소통 창구로,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게임을 하면서 문자나 음성으로 친구들과 소통을 하고, 일부 게임 속에서는 또래들과 같이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본다. 기성세대에게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이 콘텐츠 소비와 생산을 하며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통하는 공간이라면, 10대에게는 게임이 그런 공간이다. 게임을 하는 것 자체의 즐거움도 크지만,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 문에 접속하는 것이다.
이처럼 게임이라는 가상세계에 친숙한 미래세대, 그들이 열광하는 콘텐츠에는 새로운 특징들이 보이는데, 세계관이라는 표현이 콘텐츠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쓰이게 된 것도 그중 하나다. 세계관이란 영어의 ‘Fictional World(가상세계)’를 번역한 용어로, 콘텐츠 창작물에서 단순한 설정을 넘어서 구체적이고 일관된 논리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일컫는다. 그동안은 ‘마블’이나 ‘스타워즈’ 등 영화나 게임 콘텐츠에서 주로 사용되어 오다가, 사용 범위가 점차 넓어지면서 ‘하하버스(하하+유니버스: 자신의 인기를 남들은 아는데 본인만 모른다)’, ‘민경버스(민경+유니버스: 타고난 근력과 운동 센스로 그냥 하면 다 잘하는데 본인은 모른다)’처럼 이제는 일상적인 Z세대의 놀이문화가 되어 버렸다.
아이돌 세계관 그리고 부캐 문화
K-POP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세계관을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이를 발전시켜 왔다. 2012년 데뷔하며 아이돌 그룹 최초로 ‘세계관’을 내세운 ‘엑소EXO’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K-POP 아이돌 그룹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팬덤과 소통한다. 마블 세계관처럼 K-POP 아이돌 세계관도 상상으로 만든 독창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소비자들(팬덤)과의 소통으로 아이돌 가상세계를 팽창해 간다. 자신이 원하는 아이돌 가상세계를 선택하고, 나와 같은 선택을 한 다른 팬들과 공동의 정서를 느끼며 교감하고 소통하는 세계가 바로 아이돌 세계관이다. 이런 아이돌 세계관은 이미 탄탄한 스토리와 함께 적극적인 참여자인 다수의 팬덤을 보유하고 있어 성공적인 ‘메타버스’로 진화해 나갈 가능성까지 지니고 있다.
이렇게 아이돌 세계관 같은 가상 세계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기는 젊은 세대가 콘텐츠 소비와 창작의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나타나는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가 바로 ‘부캐 문화’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매드몬스터’는 부캐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 중 하나다. 유튜브 채널 ‘빵송국’ 안에서 시작된 매드몬스터는 필터로 만든 비현실적인 외모와 오토튠으로 가득한 음악을 선보이며, 마치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인 것처럼 가상의 세계관을 만들어 활동한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이런 허풍의 세계관과 부캐를 많은 사람이 놀이로 즐겁게 받아들이며 함께 동참하고 있다. 이들의 세계관이 콘텐츠로써 큰 성공을 거두게 되자, 부캐가 유튜브 콘텐츠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을 넘어 방송과 광고 촬영까지 하게 되었고 실제 아이돌 그룹처럼 활동하고 있다.
메타버스의 미래
유아기 사회화 과정을 기계(스마트폰과 인공지능 스피커)와의 소통으로 보낸 미래세대는 가상의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메타버스를 현실세계의 연장으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세상은 현실세계만이 아니라 각각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가상세계도 함께 존재하는 곳으로, 가상공간은 또 하나의 내가 현실과 연결되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그들은 메타버스 속 자신의 분신인 아바타를 자신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게임 속 아바타의 능력치를 높이는 아이템이나 스킨을 얻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을 넘어 이제는 아바타의 외모를 멋지게 보이도록 하는 가상 패션 제품에도 아낌없이 돈을 지불하고 있다. 아바타를 현실의 자신과 동일시하여 가상공간 속 삶에 기꺼이 돈을 지출하는 새로운 세대의 소비 행태는 메타버스 속 가상 경제 시스템을 크게 성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가상 경제체제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미래의 흐름이 되지 않을까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은 단순한 패션 제품을 구매하는 데 그치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거의 모든 경제 활동이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서 이루어질 거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경제 신대륙인 메타버스를 선점하려는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엔비디아 등의 거대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메타버스는 세계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소통 창구, 즉 SNS 역할에서, 현재 막 콘텐츠 소비 플랫폼으로 진화를 시도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용자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게임 ‘포트나이트’가 이런 움직임의 선두주자다. 게임 속 가상공간에서 유명 스타들이 아바타의 모습으로 라이브 공연하는 버추얼 콘서트Virtual Concert를 여러 차례 시도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게임 속 광장에서 영화 상영회도 진행하는 등 가장 많은 도전적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자극받은 ‘로 블록스’나 ‘마인크래프트’ 같은 또 다른 대형 게임에서도 비슷한 시도들이 이어지며, 게임이 콘텐츠 유통 소비 플랫폼으로 점차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콘텐츠 플랫폼으로 메타버스가 자리를 잡게 된다면, 다음 목표는 인간 생활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가 상 경제 시스템의 구축이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가상공간에서 가상의 부동산을 구매하고, 가상의 도시를 건설하며, 아바타를 통해 쇼핑하는 등 현실세계의 모든 경제 활동을 메타버스에서도 하게 된다. 또한 각각의 세계관으로 분리되어 있던 메타버스들이 서로 연결되어, 지금의 인터넷 세상처럼 누구나 원하는 가상세계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가상공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멀티버스’의 세상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