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O.SIGHT

Essay

반응 공동체

New-Normal Player

Opinion

반응 공동체

 

Writer. 김신식 Kim, Shin-sik 감정사회학 연구자

 


 

영화 말미에 주인공이 공연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비디오로 <시스터 액트><시스터 액트>의 후반부를 자주 돌려 봤다. 수녀들의 합창이 신명날수록 점잔 떨다가 열띠게 호응하는 성도들을 보는 맛이 있었다. 그런 맛을 함께 느끼고 싶어서 영화를 같이 보던 아빠, 엄마의 표정을 재차 확인했다. 시상식을 챙겨보는 이유도 비슷하다. 나는 해외 영화제 시상식에서 공로상 부문은 되도록 본방 사수를 하는 편이다. 수상자가 호명되고 존경어린 기립박수로 화답하는 동료·후배 반응을 시청하며 눈으로 확인하는 쾌감 때문이다. 아빠는 이런 나를 두고 집안 내력이라며 “우리 집안은 원래 환경에 약하데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아빠의 말을 응용해 스스로 ‘친환경주의자’라 칭했다. 오해를 방지하자면 여기서 친환경주의자란 생태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다. 스포츠 경기를 시청할 때 관중 매진 여부에 집착하는 사람들, 연기 시상식에서 가수들 축하 공연이 있으면 관객석 내 연기자들이 멀뚱히 있는지 지켜보는 사람들, 음악영화 속 엔딩 중 기립박수 씬이 나오면 마음을 뺏기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친환경주의자다.

 

명명 당시 가치 판단을 내리진 않았지만, 오래전 <나는 가수다>에서 뭉클해 하는 관중 표정을 클로즈업 하는 장면에 중독되었을 때, 내가 만든 별칭에서 점점 벗어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시간이 흘렀고 유튜브에서 리액션 콘텐츠를 하나둘 접했다. 문화연구자 김예란은 유튜브 내 리액션 방송 초창기 시절, 리액터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리액션 주목경제의 주체인 리액터는 작가, 유통자, 연기자, 비평가의 역할을 겸한다.” 예전엔 유튜버 한 명이 K-POP 뮤직비디오를 작은 창에 띄워놓고 표정과 몸짓으로 퍼포먼스에 대한 호불호를 표시했다면, 지금은 집단 리액션이 인기 콘텐츠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친구가 단순 감기인데도 시국이 시국인 만큼 괜히 조심스럽다며 약속을 취소한 어느 날, 나는 집에서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한 방에 모여 ITZY의 ‘Wanna be’에 환호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보았다. 모두가 일제히 환호하진 않았다. 소리 지르는 친구를 말리는 반응도 있었고, 후렴구에서 시그니처 안무를 따라 하며 한 몸이 된 듯한 이도 있었다. 어떤 이는 맨 뒤에 앉아 내내 얌전히 흐뭇한 미소를 내보였다. 이처럼 다양한 표정과 반응을 통해 청년들은 짧은 클립 영상 안에서 반응의 공동체가 되었다. 나는 이를 ‘반응 공동체’로 부르기 시작했다.


 

반응 공동체는 구성과 내용에 따라 확장 가능하다. 영화나 드라마 장면에 반응하는 리액터는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학점이 발표되는 기분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리액터, 자신이 예전에 찍은 추억 영상을 보며 감회에 젖은 표정을 공유하는 리액터도 있다. 사람들은 리액터의 모습을 보면서 공감이나 불쾌의 댓글로 ‘리액션’한다. 언택트 속 리액션의 생활상은 결혼식의 참여 양상도 조금씩 바꾸고 있는 듯하다. 하루는 코로나19로 하객을 직접 초대하지 못해 둘만의 결혼식을 온라인으로 중계한 영상을 보았다. 신랑 신부는 친구와 지인의 얼굴들이 실시간으로 나오는 여러 스크린을 보며 식순을 이어나갔다. 식장 벽에 N개의 스크린이 있고 그 속에 하객들의 각기 다른 반응이 동시에 나왔다. 유튜브 스튜디오에 비슷하게 설치된 ‘스크린 월 screen wall’을 연상케 했다. 한편 스포츠 중 관중 반응이 없으면 보는 재미가 떨어지는 종목이 있다. 프로레슬링이다. WWE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라고 내세울 만큼 선수와 관객 간 재미거리, 경기 중 반응 유도에 신경 쓴다. 이를 아는 일반인의 WWE 관련 콘텐츠를 살펴보면, 관련 검색어로 ‘CROWD’나 ‘REACTION’이 자주 등장할 정도다. 그런 WWE가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 중계방송을 강행 중이다. 챔피언은 관중이 반응해준다고 상상하며 챔피언 벨트를 번쩍 들어올리고, 정작 관중석에 없는 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해당 장면에 리액션을 보낸다(나도 그 중 한 명이다). 각국, 각 도시, 각 방, 각 화면 내 사람들로 이어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반응 공동체 속 아무개. “관중이 있을 때보다 선수들 경기력이 더 좋은 것 같지 않아?”라고 위트를 날리며 나름의 응원을 보낸다. 이처럼 직접 참여하진 못하지만 화상으로 반응을 공유하고, 그 반응에 대한 반응을 유발하는 공동체 놀이가 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감정을 화면 속 얼굴로 확인하게 되면서 감정이 제법 선명하게 ‘표출’되는 경향이 짙다.

 

그런데 최근 남다른 리액션 영상을 보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유튜버가 직접 나와 연출한 리액션 영상이 아니라 어느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실제 나온 반응이었다. 선생님은 상 받을 학생을 소개했고, 소개 끝에 박수 소릴 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수상 예정 졸업생이 자폐증 autism에 걸렸기 때문이다(자폐증 환자는 외부 소리에 대한 자극에 꽤 민감하다). 카멜 고등학교 졸업생 잭 히긴스는 주변인의 부축을 받으며 단상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상을 받는 동안 다른 졸업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는 척만 하며 고요함을 유지했다. 어떤 이들은 양손을 흔들며 수화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잭이 단상에서 내려와 돌아갈 때까지 장 내 침묵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지금까지 320만 명이 본 ‘Graduation Crowd Silent for Student with Autism’란 영상 속 오프라인에서 나타난 공동체의 반응을 나는 끝날 때까지 숨죽여 시청했다. 그러는 동안 이 영상을 유튜브 창으로 동시에 보고 있을 반응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떠올렸다. 우리들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직접 만나 악수할 일은 없겠지만, 유튜브란 플랫폼과 화면으로 결성된 ‘감정의 공동체’이기도 하리라.


 

일찍이 심리학에선 개인이 타인을 포함한 사회적 요소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에 따라 저맥락 사회와 고맥락 사회라는 용어를 제시해왔다. 이를테면 우리는 ‘한국 사람들, 참 다른 사람 눈치 많이 봐’라는 말을 자주 접했을 것이다. 이 말은 곧 한국 사회 내 개인은 타인이란 맥락을 강하게 의식한다는 점에서 고맥락 사회를 예증한다. 고맥락 사회는 대개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이들끼리 긴밀하게 연관되어 개인의 실천에 제약이 있는 경우를 비평할 때 쓴다. 내가 언택트한 반응 공동체에서 들여다보는 측면은 감정 표출을 에워싼 진심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아무도 속박하지 않고 누군가 깔아놓은 판에 접속만 하면 된다. 사람들은 순간마다 자기감정이 이러하다고 타인을 향해 반응의 단서를 달지 않아도 된다. 언택트 모드에서 화상으로 결성된 반응 공동체란, 타인의 반응이 있어야 존재 가능한 고맥락 사회의 징표다. 동시에 타인이 내 진심을 확인하려는 데 심히 집착하지 않는단 점에선 저맥락 사회의 표지이기도 하다. 언택트 모드에 대한 청사진이 속속 제출되는 가운데, 나는 반응 공동체를 통해 탈착과 부착이 편한 운동화를 신는 기분을 상상해본다. 과연 ‘사뿐한 감정’을 꿈꿀 수 있을까? 아직까진 마음 편히 반응의 공동체를 드나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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