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Culture
Becomes
Brand
브레인데드
이전에는 그저 소수자들의 문화였던 하위문화는 지금과 같은 나노사회에서 기회의 창으로 인식되고 있다. 메가트렌드에 비해 하위문화 향유자들은 보다 끈끈하게 브랜드와 연대하기 때문이다. 브랜드 디렉터들은 소비자 취향을 고려하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과 보여주고 싶은 것을 꾸준히 세상에 내보이는 브랜드에 사람들이 자연히 모이고 있다.
패션을 넘어
문화를 짓는 곳
미국의 브랜드 ‘브레인데드(Brain Dead)’는 도버스트릿마켓, 센스, 슬램잼 등 영미권의 주요 패션 편집숍에 입점해 있어 패션 브랜드처럼 보인다. 하지만 브랜드의 행보를 보면 볼수록 패션은 그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임이 드러난다. 독창적인 그래픽을 수놓은 의류 라인으로 패션업계에서 빠르게 성장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이 궁극적으로 가닿고자 하는 것은 패션을 넘은 ‘문화’ 그 자체다. 유행을 좇는 보통의 패션 산업에 편승하는 대신, 자신들이 지지하는 다양한 분야의 주체들과 협업을 하며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의 입지를 다져오고 있다.
디렉터인 카일 응(Kyle Ng)과 에드 데이비스(Ed Davis)에 의해 2014년 시작된 브랜드는 펑크 음악, 언더그라운드 코믹스를 필두로 한 하위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실험적이고 키치한 그래픽의 의류와 제품을 선보인다. 한 번 들으면 각인될 수밖에 없는 ‘뇌사’라는 뜻의 이름은 유쾌함과 진지함이 공존하는 자신들의 태도를 반영시켰다고. 카일의 표현을 빌리자면, 브레인데드는 ‘문화 향유’라는 전시 공간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기념품 가게다. 이는 다양한 문화의 성장을 지지하고, 이를 상품의 영역에서 소개하는 브레인데드의 정체성을 함축한 말이다. 그의 표현처럼 이들은 반팔 티셔츠부터 가구, 쿠션, 커피, 롤러 보드와 플레잉 카드에 이르기까지 실로 방대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 제품들이 대부분 협업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들은 브랜드가 지지하는 문화를 알리고, 사회적인 이슈나 조명을 받지 못한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수단으로 협업을 이용한 다. 유명 R&B 아티스트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와 제작한 티셔츠의 판매 수익은 흑인 인권 운동과 LGBTQ 해방 기금 조성에 사용됐다. AAPI(아시아계 미국인 및 태평양 섬 출신)에 대한 차별·외국인 혐오를 멈추기 위해 한 레스토랑과 손잡고 비건 버거를 출시하기도 했다. 클라이밍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클라이밍을 알리고, 클라이밍 문화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클라이밍 챔피언과 협업한 클라이밍화를 내놓기도 했다.
문화를 향한 마음,
찐팬을 만드는 진심
초거대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하고, 소비자인 우리는 그들의 마케팅을 좇아 소비를 이어간다. 카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각각의 아티스트와 브랜드 그리고 문화가 가진 맥락을 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브레인데드의 역할은 시장에서 논의되지 않는 문화의 맥락을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밝힌다. 이들은 패션보다 문화, 제품보다는 의미를 추구한다.
브레인데드가 선보이는 각종 진이나 앨범, 머천다이즈는 ‘브랜드 굿즈’의 의미를 넘어선다. 왜냐하면 이들이 선보이는 아이템들은 단순히 브랜딩의 차원을 넘어선, 문화에 대한 헌신과 지지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브레인데드를 좋아하고, 이들의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브레인데드를 소비한다는 건 멋을 내기 위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브랜드의 팬들은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특정 문화를 지지한다.
이제 곧 10주년을 맞는 브레인데드를 지속하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구분 짓지 않는 태도와 호기심 그리고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이 있다. 브레인데드에는 전통적인 패션 산업의 구분(맨/우먼, 시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데, 그 대신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끊임없이 디깅하며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선보인다. 조금 현란하고 정신없어 보이는 브레인데드의 인스타그램 채널이 매일 새로운 콘텐츠로 장식되는 이유는 이들이 향유하고 제안하는 문화가 그만큼 다채롭기 때문이다.
커뮤니티를
만드는 공간
2020년, 브레인데드는 브레인데드 스튜디오(Brain Dead Studios)를 선보였다. 이곳은 브레인데드의 고유한 시각으로 프로그래밍된 영화들이 상영되는 영화관이자, 각종 행사와 공연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겸한다. 일반 영화관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호러, 예술, 독립 영화를 상영한다. 영화가 끝나면 브레인데드만의 감성으로 해석된 영화 티셔츠 등의 굿즈도 구매할 수 있다.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아 이 곳에서만 접할 수 있는 굿즈는 스튜디오에 필히 방문해야 할 이유가 되어준다.
브레인데드가 오프라인 스튜디오를 만든 이유는 문화와 공명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설파하기 위해서다. 수많은 상업 시설과 공간이 소비자들의 편의와 그들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동안, 브레인데드 스튜디오는 고집스럽게 자신들이 알리고 싶은 ‘B급 문화’를 제안한다. 근대 이후 오랜 기간 동안 문화의 허브로 기능하던 영화관의 의미를 계승하면서, 그들만의 바이브를 넣은 것이다.
브레인데드 스튜디오에서는 브랜드의 프로레슬링 레이블인 ‘브레인슬램(Brainslam)’ 경기가 열리기도 한다. 대형 프로레슬링 단체와 비교하면 작은 규모지만, 각각의 레슬러에게 독자적인 캐릭터와 스토리를 부여해 흥미를 더했다. 게다가 시각적으로 뛰어난 브레인데드의 감각이 더해져 퍼포먼스의 재미는 배가 된다. 경기 포스터나 선수 얼굴이 들어간 그래픽 티셔츠도 살 수 있다.
Editor 박종일 Photography ©Brain Dead
진심은 통한다는 걸
믿는 브랜드
브레인데드의 궤적을 함께한 팬이라면 이들의 성공이 잘 계산된 수치를 기반으로 한 탁월한 전략에서 온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다. 브레인데드가 성공한 이유는 그만큼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좋아하는 것을 고집스럽게 제안하는 이들의 행보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브랜드가 포지셔닝을 뾰족하게 갈고 다듬을 때, 브레인데드는 서브컬처 문화 전반에 집중해 소외된 문화를 돌봤다.
이들의 제품은 빠른 시간 내에 매진되고, 높은 가격으로 다시 팔린다. 특별한 굿즈를 구매할 수 있는 행사는 말할 것도 없다. B급 영화와 레슬링을 몰라도 누구나 브레인데드 스튜디오에 한 번 발을 들이면 영화와 레슬링의 팬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브레인데드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44만 명이 넘는 사람이 팔로우 하고 있다. 바꾸어 말해 브레인데드는 하나의 매력적인 커뮤니티가 됐다. 카일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라면, 어떻게 자신의 진정성과 내러티브를 보여줄 수 있겠냐”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과 브레인데드가 이룬 것들은 다시 커뮤니티로 돌아가야 함을 밝힌다.
브레인데드의 사례는 브랜드의 모든 행동과 가치가 결국 어디로 귀결돼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브레인데드의 행보는 가치 소비의 기준이 점점 올라가는 지금 시대의 이면에 결국 ‘진심’이 자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애정을 가진 문화를 진심으로 향유하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협업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한 브레인데드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브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