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verse, Closer Than
It Looks
세계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과거 소수의 창작자가 설계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되던 ‘세계관’이란 단어는 기술의 발전과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환경을 만나 새롭게 진화했다. 더는 소설과 영화, 게임의 전유물이 아닌 셈이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로 촉발된 부캐 열풍이 세계관을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데 크게 한몫하면서, 각종 광고에서 ‘본캐’ 대신 ‘부캐’가 등장하는 일이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며 재미와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MZ세대는 세계관 문화에 누구보다 진심이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점점 옅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떤 세계에 몰입하고 있을까.
세계를 사로잡은 세계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세계관으로 평가받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1939년 만화책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2008년 첫 실사 영화 〈아이언맨〉으로 MCU의 서막을 열었다. 즐기는 이를 따라갈 자 없다 했던가. 마블 코믹스의 열혈 팬이던 케빈 파이기Kevin Feige는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이 된 후 만화 속 세계관을 영화에 충실히 구현하고 ‘덕업일치’(본인이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음)를 이루며 MCU의 성공 신화를 이끌었다. 아이언맨, 헐크, 스파이더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 도우 등의 슈퍼히어로들은 주인공이자 때로는 조연이 되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위기에 맞서 세상을 구해낸다. 마블과의 컬래버레이션 상품들은 언제나 ‘완판’ 행진이다. 새로운 시리즈가 개봉할 때마다 마블의 세계관 역사를 훑어 주는 총정리 영상이 인기를 얻는가 하면,
새로운 시리즈의 단서, 즉 ‘떡밥’을 찾기 위해 지난 영화들이 재조명되기도 한다. 지난 9월 개봉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역시 그렇다. 2008년 〈아이언맨〉에서 베일에 싸인 비밀 조직이던 텐 링즈가 2021년, 뉴히어로 샹치와 만나 마블 세계관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지난 8월 25일에는 넷마블과 마블의 두 번째 협업작이자 마블 IP 최초 모바일 오픈월드 액션 RPG인 ‘마블 퓨처 레볼 루션’이 출시됐다. 국내 배우 마동석이 길가메시 역으로 합류해 화제를 모은 〈이터널스〉와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이후 2년 만에 돌아오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마블의 세계관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견고해지며, 전 세계 팬들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그들도 우리도 모두 진심인 편
K-세계관 피식대학
트렌디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즐기는 MZ세대가 열렬히 호응하는 곳이 있다. 끼와 열정으로 뭉친 매력적인 자아가 공존하는 곳, 바로 ‘피식대학’이다. 피식대학은 관객과 소통할 무대를 잃은 KBS·SBS 공채 개그맨 3인(김민수, 정재형, 이용주)이 뜻을 모아 만든 코미디 유튜브 채널이다. 피식대학이라는 이름답게 대학교의 공감에 피소드를 주제로 한 짧은 콩트가 이들의 첫 콘셉트 영상이었다. 이후 ‘05학번이즈백’, ‘한사랑산악회’, ‘B대면데이트’ 등의 코너가 대박을 치며 채널 개설 2년 만에 구독자 140만 명이 훌쩍 넘는 대형 채널로 발돋움했다. B대면데이트에 등장한 카페 사장 최준은 ‘준며들다(최준+스며들다)’라는 신조어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 및 광고계의 러브콜을 받았으며,
리얼한 부캐 설정과 상황극으로 인기몰이중인 김갑생할머니 김 미래전략실본부장 이호창은 실제 식품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랜선 밖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공감과 웃음을 부르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확실한 캐릭터 설정, 알고도 속아 넘어갈 것 같은 리얼한 연기력과 디테일한 묘사, 폄하 없이 무해한 콘텐츠 등 피식대학이 잘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다. 또 각기 다른 코너 속 캐릭터들의 혈연관계, 친분이 콘텐츠에 자연스레 녹아들면서 구축해 가는 세계관은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올 초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던 개그맨 김민수의 말처럼 피식대학은 ‘전에 없던 새로운 웃음 공식들을 만들어나가는 노력’을 통해 끊임없이 변주하고 있다.
ⓒ피식대학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지워가다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메타버스는 1992년 닐 스티븐슨의 SF 소설 《스노크래시》 에서 처음 표현된 개념이다. 게임 산업에서 시작해 엔터, 교육, 유통 등 전 세계 다양한 분야에서 ‘포스트 인터넷 시대의 뉴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플랫폼으로는 미국의 로블록스Roblox와 포트나이트Fortnite, 국내의 제페토Zepeto가 가장 대표적이다. 제페토는 네이버제트가 2018년 출시한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전 세계 2억 명이 넘는 이용자 중 Z세대가 80%를 차지해 ‘10대들의 놀이터’로 불린다. 얼굴 인식과 증강현실, 3D 기술 등을 이용해 나만의 아바타를 만들고 나면, 다양한 가상현실을 경험하거나 다른 이용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 스튜디오 서비스를 통해 직접 아바타의 헤어스타일, 옷, 신발 등을 디자인하고 판매로 수익을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현실처럼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 즉 메타버스 생태계가 구축된 공간이다.
마스크를 쓸 필요도,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다. 약 2만 개 맵이 존재하는 제페토 월드에서는 그곳의 주민이 되어 학교 교실, 지하철역, 한강공원, 벚꽃카페, 유령의 집 등 일상과 테마를 아우르는 공간을 돌아다닐 수 있다. 여행이 그리운 이 시기, 공항이나 세계 각국의 관광지 맵을 방문하는 재미도 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와의 제휴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K-POP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인만큼, 자사 아이돌을 캐릭터화해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콘서트와 팬미팅을 여는 식이다. 지난해 9월 열린 블랙핑크 가상 팬사인회에는 4,600만 명의 글로벌 팬들이 몰려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구찌, 크리스챤 디올 같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도 제페토 합류 소식을 전하며 메타버스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온갖 제약이 뒤따르는 코로나19의 현실 속에서 제페토는 새로운 가치를 실현해 가며 무한확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