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pret Of Record
소셜 기록, 기억을 해석하다
김소연
뉴미디어 기업 더에스엠씨그룹 산하 더에스엠씨 콘텐츠연구소 소속으로 소셜 미디어 콘텐츠와 밀레니얼 Z세대 트렌드를 연구한다. 《숏폼 콘텐츠 머니타이제이션》의 공저자이며, 경제·경영 서적 《콘텐츠 머니타이제이션》의 기획 및 편집을 담당했다.
자유롭게 기록을 열람하고 공유하는 오늘
우리는 선조의 기록이 만든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산출된 기억과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로 전달한다. 전승된 기록은 축적되어 문화를 만들고 또 다른 기록에 의해 지속해서 확대된다. 거창한 이야기 같지만, 작게 보면 기록은 일상에도 묻어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돌아오지 않는 ‘오늘의 나’를 남기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과 영상을 찍는다. 기억이라는 데이터는 소실되어도 기록이 주는 내용과 맥락은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의 기록이 시간이라는 종단(縱斷)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면, 지금의 기록은 한 시점에서 공간의 한계를 넘는 횡단(橫斷)적 확산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몇십 년 어쩌면 한 세기를 넘기면서, 그 수단은 변하지 않았으나 채널은 다양해졌다. 블로그에 쓰고, 인스타그램 피드를 꾸미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도 한다. 과거보다는 훨씬 공개적인 공간인 덕에 누구나 나의 기록을 열람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나는 이렇게 일상을 보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오늘날의 기록은 소셜 미디어라는 플랫폼에 주목할 때 이해가 쉽다.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나는 이렇게 일상을 보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카이브의 산물이 된 소셜 미디어
지금의 소셜 미디어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아카이브’와 일정 부분 닮았다. 고대의 통치권자들은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정보를 아카이브해 특정 장소에 보관해 두고 필요에 따라 시민들이 자유롭게 열람하게 했다. 정보의 선별 과정에서부터, 누군가의 관점과 해석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구축물인 셈이다. 과거의 기록은 넓은 장소와 견고한 건축물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기록할 정보를 선별하는 선택권’을 특정 권력층이 소유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록이 곧 유산이자 역사가 되었기 때문에 기록은 사회 문화적인 구조를 마련하는 기반이 되었다.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세밀해진 디지털 기술 안에서 훨씬 효율적인 체계로 기록을 보존할 수 있으며, 모두에게 기록할 권력이 주어져 있다. 따라서 기술을 개발하는 플랫폼이나 이를 보존하는 시스템이 절대적인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흥미롭게 보이기 위한 자발적인 기록
우리 시대의 주요 기록 매체인 소셜 미디어는 필연적으로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공개된 공간’이다. 그리고 유저는 ‘보다 흥미로운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본성’을 표출한다. 이곳에서 기록은 기억하고 싶은 대상을 선별해 본인의 방식대로 해석하는 행위다. 비리얼과 스레드의 실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셜 미디어 유저가 생각하는 기록이 무엇인지가 보인다. 프랑스의 소셜 미디어 ‘비리얼’은 탄생부터 화제였다. 2022년 연말에는 애플 앱 스토어에서 ‘올해의 앱’으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핫했다. 앱에서 ‘진짜를 보여줄 시간(Time to BeReal)’이라는 푸시 알림이 오면, 유저는 2분 안에 스마트폰 후면 카메라로 주변 환경을 찍어 업로드해야 한다. 후면 카메라가 촬영을 끝내면, 전면 카메라가 자동으로 셀카를 찍는다. 틱톡과 인스타그램도 텍스트 기반으로 보다 빠른 게시물 업로드가 가능한 틱톡 나우, 스레드 등을 출시했다. 그러나 모든 서비스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비리얼의 경우 필터와 편집 없이 지루한 일상의 단면을 보여주다 보니 앱 자체의 활성화 지수가 낮았고, 스레드는 유저들 사이에서 ‘인스타그램 감성에 어울리지 않게 트위터를 입힌 기묘한 공간’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타깃 그룹이 모호해졌다. 트위터야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이지만, 인스타그램 계정과 연동된 스레드에는 날 것의 일상을 기록하거나 의견을 표출하기 꺼려진다는 것이다. 즉 ‘인스타그래머블’을 충족하지 않는 콘텐츠는 남기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어떻게 플랫폼 유저의 자발적인 기록을 끌어낼 수 있을까. 다행히 유저가 기록하고 싶은 범위의 경계선은 앞으로도 확장될 것이고, 그 경계를 끌어낼 수 있는 가치를 어떻게 접목하는지에 따라 행위를 유발할 수 있다.
기억을 해석하는 이용자만의 언어
관건은 기억을 해석하는 행위를 이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말이 되면 온라인은 한 해를 기록하는 콘텐츠로 가득하다. 이때 똑똑한 플랫폼들은 기록에 대한 유저의 욕구를 활용해 SOV(Share of Voice)를 높이는 전략을 펼친다. 스포티파이 랩드(Spotify Wrapped)는 연말마다 연간 사용자의 음원 청취 습관 분석 결과를 공개한다. 유저가 1년간 가장 즐겨 들은 아티스트 음원과 연간 음원 재생 시간, 주요 사용 시간, 청취 습관 등 개인 정보를 시각적 요소로 제공한다. 이를 받아본 유저는 본인의 음악적 취향이 한 해의 무드와 경험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받아들여 자발적으로 ‘올 한 해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음악’,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소셜 미디어에 공유한다. 앞선 데이터를 활용해 SOV를 확대한 플랫폼도 있다. 넷플릭스가 2023년 상반기 전면에 내세운 ‘요즘 넷플 뭐봄’ 캠페인은 유저가 직접 본인이 시청한 콘텐츠를 선별해 기록하게 유도하며, ‘#요즘넷플뭐봄’이라는 해시태그를 생성해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미디어 전반에 노출하게끔 한다. 자발적으로 본인의 데이터를 노출하며 콘텐츠를 추천하는 유저들이 빗발쳤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콘텐츠가 유저의 문화적 취향을 세련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떤 장르를 선택했는지와 함께 자신이 받은 문화적 영향을 기술할 수도 있고, 간명한 평가를 통해 통찰력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이 두 사례는 산발적으로 흩어진 본인의 재생 목록을 한곳에 모으며 ‘경험을 수집’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하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라는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기록의 선별과 선정을 담당하는 것은 다름 아닌 유저다. 플랫폼은 기능을 수반할 뿐, 절대적인 권위체가 될 수 없다. 결국 소셜 미디어는 유저의 관점과 이해로부터 결코 독립될 수 없으며, 굳이 그 권력관계를 저울질한다면 유저에 기울여져 있다고 보는 게 옳다. 유저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가끔은 잘라내고 싶은 단면은 배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일상이 된 기록을 활용한다는 건 이런 단순한 전제에서 출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