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n-off Project
스핀오프 : 브랜드는 가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전준석 BX Lab
이노션 BX Lab에서 고객 경험과 세대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와 고객 경험의 효과 측정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스핀오프의 정의
먼저, 〈아이언맨2〉는 스핀오프가 아니다. 〈아이언맨〉의 다음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미니언즈〉는 스핀오프다. 애니메이션 〈슈퍼배드〉의 주인공 ‘그루’가 아닌 노란색 바나나처럼 생긴 부하들 ‘미니언’들이 펼치는 새로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스핀오프(Spin-off)는 본편의 설정과 세계관을 이용해서 나오는 새로운 콘텐츠를 뜻한다. 기준은 명확하지 않으나 속편보다는 이전 편과의 연관성이 적고, 원작의 주인공과 세계관 등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콘텐츠를 주로 지칭한다. 배경은 이전 편과 같은 요소를 공유하지만, 이전 이야기와의 연속성에서 벗어난 의외성이 있다. 스핀오프는 ‘다음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다. 그럼 브랜드한테 스핀오프란 무엇일까? 브랜드가 기존에 해오던 정체성과 역량에 기초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하며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것이다.
브랜드가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이유
회사에서 우리는 항상 원인과 결과에 묶여 있다.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오가는 회의는 시간 낭비가 되기 십상이며, 앞의 분석과 맞지 않는 제안은 설득력을 잃는다. 브랜딩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는 일을 잘하기 때문에 잘하는 걸 잘한다고 자랑하자.”는 내용의 커뮤니케이션 기획은 뻔하더라도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뻔한 일에 재미를 더하며, 더 나아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역량의 범위를 늘린다. 마찬가지로 소비자는 오랫동안 자신의 성공 방식을 지켜온 브랜드를 신뢰하면서도 허무맹랑하더라도 새로운 상상력을 던지는 브랜드를 재미있어 한다. 브랜드의 스핀오프는 이런 욕구에서 시작한다. 작게는 소비자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고 크게는 매력적인 새로운 생각에 소비자가 감화되고 브랜드를 응원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은 고객의 관심을 끌기 힘들며, 브랜드 자신의 관심을 끌기도 힘들다.
스핀오프는 어떻게 구현되는가
그렇다면 브랜드가 스핀오프를 시도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장난스러운 방식부터 진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만우절은 1년에 한 번, 사람들이 엉뚱한 소리를 해도 웃으며 넘어가 주는 날이기에, 마케터에게는 ‘엉뚱한 소리’를 시도하기 적절한 시기다. 항공사에서 우주 여행 티켓을 판다거나, 구직 사이트에서 엉뚱한 아르바이트 일자리 공고를 올리는 등 가볍고 유쾌한 톤 앤 매너 아래서 “오, 있을 법한데?”라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마케팅 이벤트를 기획한다. 하지만 본디 판을 깔아주면 놀기 어렵듯이, 농담의 톤 앤 매너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큰 부작용을 겪게 된다. 폭 스바겐은 2021년 3월 29일 폭스바겐(Volkswagen)의 미국 사명을 볼츠바겐(Voltswagen)으로 바꾼다는 성명을 웹사이트에 게시했다. 전기차로의 전환을 보여주기 위해 전압 단위인 볼트(Volt)를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폭스바겐의 전기차 생산에 대한 의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면서 4월 1일에 농담임을 밝히며 고객에게 재미를 주려는 장난의 일환이었으나, 분위기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만우절보다는 게시일이 며칠 빨랐기에 사람들은 이 농담을 진지하게 받았고, 주가는 요동쳤다. 결국 폭스바겐은 만우절이 되기도 전에 사명 변경은 사실이 아님을 해명해야 했고, 브랜드 이미지는 크게 실추되었다.
컬래버레이션은 브랜드가 스핀오프를 시도하는 안전하고 쉬운 방법이다. 자신의 브랜드만으로 새로운 관점과 서사를 만들어내기 어려울 때, 다른 카 테고리의 브랜드 제품과 콘텐츠를 통해 새로움을 부여한다. 대한제분의 밀가루 브랜드 ‘곰표’의 역사는 컬래버레이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7년 동안 곰표는 의류, 맥주, 팝콘, 화장품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하면서도 브랜드 가치를 계속해서 지켜 나가고 있으며, ‘밀가루를 쓰는’ ‘하얀 색의’ ‘레트로한’ 감성과 이미지를 컬래버레이션 제품에 부여하며 고객이 브랜드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반면, 앞의 시도보다 더 진지한 스핀오프가 혁신을 이끄는 브랜드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아마존의 오너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는 우주 식민지 건설의 꿈을 발표했고, OTT 기업인 넷플릭스는 모바일 게임 업계에 진출하며 가입자의 모든 시간을 점유하겠다고 선언했다. 소셜 미디어 기업인 메타는 VR 기기가 일상화된 시대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러한 기업의 딴소리는 기업의 현재만 보고서는 기대할 수 없는 높은 주가를 만들어낸다. 기업 주가 가치를 판단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인 PDR(Price to dream ratio, 주가 꿈 비율)로 기업을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가치판단 수단인 PER(Price earning ratio 주가 수익 비율)과 PBR(Price to book value ratio, 주가 순자산 비율)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 기업이 향후에 만들어갈 꿈과, 향후 점유할 시장의 크기를 계산하여 주가에 반영하는 것이다. 자신의 사업에 대한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것을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설득하는 능력은 이제 기업의 중요한 역량이 되었다.
의외성의 발견과 스핀오프의 시대
필자가 어린이일 때, 어른이 되면 쏘나타의 넘버가 몇 정도 될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림잡아 ‘쏘나타 8’ 정도를 사게 될 것이고, 그때쯤 되면 바퀴도 여덟 개 정도 달리지 않을까 상상했다. 한창 유행하던 유튜브 스케치 코미디에서 묘사한 ‘아이폰 33’은 지금은 4개가 달려 있는 카메라 렌즈가 16개 정도로 늘어난 모습이었다. 이렇듯 우리가 속편을 상상하는 모습은 매우 선형적이다. 비슷한 콘셉트와 주제 아래서 조금 더 나아지는 것 정도를 상상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브랜드의 변화는 속편보다는 스핀오프에 더 가깝다. 기존 가치 안에서 의외성을 가진, ‘다음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존의 가치가 순식간에 낡은 것이 되어 버리는 현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정의하는 것은 이제 뉴 노멀이 되었으며, 이제 마케터는 제품, 브랜드, 기업의 가치를 매 순간 해체하고 새롭게 바라보아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