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ing
Fun
어떻게 즐기고 있나요?
바야흐로 취향과 취미의 전성시대. ‘기쁨은 나누면 두 배’라는 말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재미는 배가 된다. 부담은 내려놓고 즐거움만 들고 모이는 느슨한 모임에 대해 세 이노시안에게 들어보았다.
라이딩 할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박창기
데이터인사이트팀 | INNOCEAN
ⓒ박창기
내 시간을 내가 오롯이 통제하면서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주일 중 최소 5일을 업무라는 변수에 맞춰 지낸다. 그래서인지 주말에는 자유를 만끽하며 사적인 시간을 즐기고 싶다. 나는 이따금 휴식 시간이 생기면, 작은 바이크를 타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닌다. 영화 〈탑건〉에서 톰 크루즈가 엉덩이를 바짝 들고 활주로를 달릴 때 타는 그런 멋진 바이크는 아니다. 125cc 정도의 배기량을 가진, 그리 빠른 속도를 내지 않는 작은 바이크다. 그렇지만 얼굴에 정통으로 부딪히는 바람과 선명한 엔진 소리를 들으면서 서울 구석구석을 달리면, 다이내믹하고 짜릿한 속도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취미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바이크를 타기 시작하면서 모임이나 동호회에 많이 가입했다. 동호회에선 구력이 꽤 되는 라이더들이 어떤 바이크를 사야 하는지, 좋은 라이딩 코스는 어디인지 등의 정보를 공유해 준다. 그래서 다양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혼자서 취미를 즐길 때보다 수고를 덜 하게 돼 초보 라이더인 나에게 딱 맞는 모임이었다. 게다가 많은 인원이 정기적으로 가는 단체 라이딩도 있어서 본격적으로 바이크를 타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체계적이어서 좋다고 생각하던 동호회가, 내가 취미를 오롯이 즐기는 데 조금씩 방해가 된다고 느껴졌다. 일주일 중 5일은 일에 전념하고 쉬는 날엔 작은 바이크를 타고 여유롭게 라이딩을 하고 싶은 나에게, 모임에 꼭 참여해야 하거나 정해진 긴 코스를 라이딩 해야 하는 타이트한 룰이 조금씩 부담이 되었다. 라이딩의 여유가 부담으로 바뀌고 있을 즈음, 운이 좋게도 내가 사는 동작구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10명 미만의 작은 소모임을 알게 됐다. 그곳에는 다행히도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고 그때부터 ‘서로 필요할 때만 찾는 쿨한 사람들’로 이뤄진 작은 모임을 즐기고 있다.
모임이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구성원 대부분이 작은 바이크로 혼자 라이딩 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정말 가끔은 다른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 심심할 때, 세차를 같이 하고 싶을 때, 초행길인 곳을 경험자와 함께 가고 싶을 때, 문제가 생겨 도움이 필요할 때가 생기면 자유롭게 참여하고 싶은 사람을 단톡방에서 실시간으로 모집한다. 마치 어릴 때 놀이터에서 “여기 여기 붙어라~!” 하며 엄지손가락을 내밀 듯이. 근처에 있거나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시동을 걸고 출발해 가까운 곳에서 만나 즐겁게 라이딩을 즐긴다. 아무도 오지 않으면 늘 그렇듯이 혼자 느긋이 내 시간을 즐기면 된다.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혼자 가는 사람은 서운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여러 명이 모이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엔 서로 ‘오늘은 정말 모임 같다’는 너스레를 떤다. 마치 길에서 지인을 우연히 만난 것 같기에 더욱 반가운 마음으로 같은 취미를 즐긴다. 철저하게 필요할 때만 만나고 필요하지 않을 땐 서로 무심한 모임이다. 하지만 자신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마음을 공유하기에 그 어떤 모임보다도 문제없고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다. 이노션의 라이더분들도 올여름 항상 ‘안라무복(안전한 라이딩 무사복귀)’ 하시길.
마시고 보는 사람들
최락빈
카피라이터 | INNOCEAN
ⓒ최락빈
4명의 남자들이 테이블에 둘러 앉는다. 테이블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위스키 박스. 각자 인증샷을 찍고 병을 딴다. 오늘 마실 위스키는 ‘보모어 15년’. 무라카미 하루키가 극찬한 제품이라며 위스키를 가져온 친구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증류소가 바다 옆에 있어 짭짤한 맛이 느껴질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술자리에 없으면 섭섭한 게 바로 안주 아닌가? 하지만 테이블 위엔 위스키와 물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왜냐고? 우린 이 글 제목이 암시하듯 위스키에 ‘영화’를 안주로 페어링해 ‘마시고 보는’ 모임이니까. 잔에 보모어를 따르자 친구 말처럼 바다의 짠내가 풍긴다. 대체 어떻게 이런 맛과 향이 날 수 있을까 궁금해하던 찰나, 영화가 시작됐다. 페어링할 작품은 망망대해에서 조난 당한 선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하트오브더씨〉다.
마시고 보는 모임의 시작은 여느 다른 모임들처럼 조촐했다. 오랜만에 모여 회포를 풀던 중, 맛이나 보자며 땄던 ‘조니워커 블루’. 소주와 맥주의 밍밍함에 질려 있던 혀에 강렬한 풍미가 퍼지니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무엇보다 한번에 잔을 비워야 하는 소주와 달리 극소량만 홀짝이며 잔을 비우는 매력이 대단했다. 마치 진짜 어른이 된 듯한 묘한 기분이 우리들을 괜시리 들뜨게 했다. 그렇게 토론하길 좋아하는 A, 영화관련 마케팅에 종사하는 B와 C, 그리고 영화광인 내가 뭉쳐 자연스레 결성된 것이다.
모임의 내용은 단순하다. 함께 마시고 싶은 위스키가 생기면 집으로 초대하고, 테이스트에 맞는 장르까지 골라 함께 보며 수다떠는 게 끝. 예컨대 미장센이 뛰어난 웨스 앤더스 풍 영화에는 ‘글렌 그란트’처럼 프루티한 위스키를, ‘기생충’ 같이 복잡미묘한 영화엔 블렌디드 위스키를 곁들인다. 우린 위스키를 연료 삼아 쉼없이 의견을 나눈다. 마치 영화 감독이라도 된 듯, 각자의 시선으로 인물의 결정을 해석하며 논쟁을 펼친다. 한 편의 영화엔 한 사람의 인생이 깃들어 있다 했던가?
영화에서 출발한 화두는 시시콜콜한 일상 위로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오래 담아둔 불만이나 입이 간질간질했던 썰들을 한풀이 하듯 쏟아낸다. 가장 날 것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귀한 이 순간, 시간은 ‘벌써’라는 말이 나올 만큼 순식간에 흐른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마음은 세수한 듯 개운하다. 이 모임은 어느덧 4회차를 넘어섰고 위스키를 전혀 몰랐던 친구들에겐 저마다 위스키를 사야할 명분까지 생겼다. A는 월급날 기념으로, B는 해외출장 후 고생한 자신을 위한 선물로 구매할 정도다. 그리고 난 쌓이는 병들을 주체할 수 없어 PT에 들어가기 전 ‘따면 따자’는 마음으로 딱 한 병씩만 사기로 했다. 며칠 전 B에게 문자가 왔다. ‘카발란 도착! 〈헤어질 결심〉이랑 같이 보자~담주 어때?’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참새가 있겠는가. 모처럼의 회동을 위해 이번 주는 꽤나 달려야 할 듯 싶다.
꽃 한 편이 피었습니다
이승희
캠페인플래너 | INNOCEAN
ⓒ꽃 한 편[꽃:단편]
꽃에는 저마다 꽃말이 있다. 기쁨, 분노, 사랑, 즐거움. 그 꽃말과 함께 저마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런 꽃말에 이야기를 더해 글로 쓰고, 이를 목소리로 전달하는 오디오 클립 ‘꽃:단편’에서 나는 꽃에 진심인 세 명의 사람과 들리는 꽃을 만드는 편집자로 활동했다. 꽃 하나에 이야기 한 편, 꽃 단 편이 된다. 녹음하는 아나운서, 채널 운영자, 디자이너, 편집자 4명이 누군가 글을 쓰면 그걸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자연스레 찾아서 하는 과정이 신기하기도, 재밌기도 했다. 각자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 오디오 클립을 만드는 과정에서 위안도 얻었다. 시즌 2부터는 “왜 꽃말은 다 정해져 있어? 그냥 우리가 지어버리면 안 돼?”라는 막내(본인)의 다소 엉뚱한 발언에서 시작해 꽃말을 재해석해 보기도 했다. 이모티콘 꽃에도 꽃말을 붙여보고, 기존에 있는 꽃말에 최근의 바람을 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편은 ‘리코포티움 플래그마리아’ 편. 위에서 길게 떨어지며 자라는 이 식물의 꽃말은 ‘역주행’이다. 어떻게 보면 ‘취준’이라는 인생 암흑기에 팀원이 써준 이 글 하나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처음에는 편집이라는 내가 가진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 시작했지만, 점점 꽃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길가의 꽃집에서 꽃을 보면 이건 어떤 꽃인지, 꽃말은 뭔지 혼자 생각하며 미소를 짓는다. 지금은 가끔 모여 일상만 나누고 있지만, 곧 시즌 3을 해야할 시간이다. 요즘도 가끔 듣는 나의 소중한 오디오 클립들을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꽃 한 편[꽃:단편] 오디오 클립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