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영향력이라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
Writer. 황선우 Hwang, Sun-Wooㅣ코리아 피처 디렉터
SNS 인플루언서는 역사상 가장 친근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명성을 얻은 신인류다. 개개인이 브랜드이자 미디어로 작동하는 그들은 아마도 지금 마케팅 불변의 법칙을 무너뜨리는 눈에 띄는 변수들일 것이다.
캐나다 뮤지션 그라임스 Grimes가 한국에 왔을 때 독점으로 화보 촬영과 인터뷰를 했다. 매체 홈페이지와 SNS에 릴리즈 할 영상 촬영에 대해 아티스트에게 설명하는 과정에 질문이 돌아왔다. “좋아! 내 계정에도 더블유코리아를 태그해서 올릴게! 그런데 너네는 몇 케이 (K, 천)니?” 지금은 잡지의 발행 부수가 몇 권인가를 묻는 대신 자연스럽게 팔로워 수를 묻는 시대인 것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815K인 그라임스(@grimes)는 팔로워 637K인 더블유 코리아(@wkorea)를 태그해 그날 촬영 현장 스냅들을 여럿 올렸다. K 위에는 물론 M(백만)이 있다. 게시물을 본 사람의 수, ‘좋아요’를 누른 사람의 수, 댓글 수, 그리고 도달률까지 숫자로 분명하게 파악되는 SNS의 시대에는 이처럼 사람들에게 온라인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을 판단할 근거가 명백하다.
2018년 현재 팔로워 수는 명예이자 자본, 권력, 성공의 잣대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코비치 Djokovic를 누르면서 순식간에 스타가 된 한국의 테니스 선수 정현은 호주 오픈 출전 목표에 대해 명예나 국위선양, 상금이 아니라 ‘인스타그램 팔로워 10만 명을 달성하는 것’ 이라고 말했고, 그 목표를 무난하게 이루었다. 천만 명이 넘는 팔로워가 아니었다면 브루클린 베컴 Brooklyn Beckham이 17세에 버버리 향수 캠페인을 촬영하는 사건은 벌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톱스타라 해서 모두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광고나 1년에 두세 편 찍으며 두문불출하는 신비주의 전략은, 인플루언서들이 움직이는 최전선과 여전히 공존하긴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다. 지금은 단연 자신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업로드해서 팔로워들의 타임라인 피드를 차지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떤 브랜드 의상과 메이크업 제품으로 자신을 꾸몄는지 브랜드를 알려주며, 댓글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친근한 셀럽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토키 Talkie 발명 이후의 무성 영화 배우들, MTV 이후의 라디오 스타들처럼 지금 세상은 유명함에 관한 패러다임 이동을 겪는 중이다. 그라임스와 더블유, 혹은 버버리와 브루클린 베컴의 예처럼 창의적인 영역에서 누구와 함께 일할 것인지 선택할 때, 본질적인 역량이나 매력 외에도 팔로워 수를 고려하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 결과물이 비공식적인 채널로 널리 전파되는 효과를 부가적으로 얻을 수 있으니까. 그것도 누구의 시선이 머무는지 알 수 없는 전광판이 아니라, 호감을 바탕으로 하여 지켜보는 특정 그룹의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렇다면 누가 성공적인 인플루언서일까? 다양한 분야의 여러 인물이 있겠지만, 모델 아이린(@ireneisgood)이 그렇다는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팔로워가 105만인 그는 아주 큰 키나 개성 넘치는 얼굴을 가진 편은 아니라서, 등장과 더불어 몇 시즌 런웨이를 지배하는 전통적인 슈퍼 모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패션, 뷰티 브랜드들의 행사에 가장 자주 초대되는 인물이다. 활발한 업로드와 호감 가는 콘텐츠 큐레이팅, 능통한 영어 구사력이 보태져 팔로워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본 계정 외에도 브랜드 동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창작 플랫폼 계정을 또 하나 운영하며 (@theFIAspace), 홈페이지에서 구독 신청을 받으면서 앱 론칭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과거에 한 브랜드가 하던 일을 이제 한 개인이 얼마든지 단독적으로 벌이는 것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서 혼자는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는 소셜 미디어에도 요즘은 전문적인 크리에이티브 팀이 따라붙는다(아이린의 경우 6명의 디지털 콘텐츠 팀과 일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16년 서울에서 열린 컨데나스트 럭셔리 컨퍼런스 Cond Nast International Luxury Conference에서는 ‘미래의 럭셔리’를 주제로 한 토론이 이틀 동안 진행되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모델들의 급등하는 영향력에 대한 것이었다. 중국의 리우웬 Liu Wen, 러시아의 사샤 루스 Sasha Luss 등이 참석해 SNS를 활용할 수 있게 된 이후부터 모델들이 어떻게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발언했다. 이전의 모델들이 매체나 브랜드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고, 화보를 통해 흠 없이 연출된 모습만 보여줄 수 있었다면 이제는 자신의 채널을 가진 이후로는 본인의 취향과 캐릭터를 드러내고 자신에 관해 스토리텔링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같은 콘텐츠를 업로드한 브랜드 오피셜 계정에는 거의 외면당하다시피 시원찮은 반응을 얻었지만, 거기 출연한 모델의 SNS에서 훨씬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예는 수없이 많다. 제작비를 많이 들여서 공들여 찍은 뮤직비디오보다 거칠게 흔들리는 ‘직찍’ 버스킹 영상이 오히려 많은 조회 수를 얻는 현상과 유사한 맥락이다. 공식적이고 제도화된 웰메이드의 무언가보다는 날것이더라도 보다 개인적인 맥락의 친밀한 콘텐츠가 효과적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엘리트 모델 매니지먼트의 지주 회사인 엘리트월드의 회장 존 훅스 John Hooks는 각기 인스타그램을 가지고 독립을 성취하게 된 모델들의 영향력에 대해 ‘인스타-펜던트’라는 신조어로 설명했다. “오늘날의 모델들은 불안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브랜드의 신뢰할 만한 홍보대사로 변모했습니다. 에이전시의 중간 역할을 위협할 정도로 기술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있죠.” 물론 대중들도 어떤 게시물들은 브랜드에게 광고비를 받고 작성되었다는 걸 알고 있으며, 팔로워 수에 따른 포스팅 액수 단가도 공공연히 언급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기존 매체들에서 집행되던 고전적인 광고들이 은근하게 연출되었다면,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광고가 나에게 필요한 제품에 대해 정보를 줄 바에야 나쁠 것도 없다는 식이다. 이제 2천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들이 성장하고 성인이 되면 인플루언서의 영향력 양상은 또 달라질 것이다. 모바일 폰의 네이티브 들인 이들은 냉장고에 붙여둔 한글 공부보다 먼저 뽀로로를 만지며 터치스크린을 깨치며, 그림일기처럼 자연스럽게 비디오 툴을 갖고 놀며 영상을 찍고 편집한다. 그리고 인플루언서들에게 영향을 받듯 자신이 인플루언서가 되기도 한다.
누구나 스타가 되기도 쉬워진 것처럼 기존에 형성된 영향력의 지형도도 앞으로는 빠르게 바뀌어나갈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 시장이 작은 편이고 M보다 K단위 인플루언서들이 많다는 점이야말로 오히려 기회일지 모른다. 얼마 전 내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은 유니클로 라이프웨어를 입은 사람들의 모습으로 채워졌다.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포토그래퍼, 플로리스트, 셰프들에게 아마 브랜드에서 제품 시딩을 한 모양이었다. TV는 채널을 돌리고 동영상 광고는 스킵하면 그만이지만, 평소 내가 좋아해서 구독하던 톤 앤 매너 Tone & Manner와 벗어나지 않고 라이프스타일에 녹아난 콘텐츠들은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았다. 팔로워 10만 이하의 일반인으로 대중에게 친근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을 일컫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Micro Influencer’라는 개념이 요즘 등장했다고 한다. 저스틴 비버 Justin Bieber나 비욘세 Beyonce를 움직이기는 쉽지 않지만 한국에서 10만이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공교롭게도 정현 선수가 목표로 했다던 바로 그 숫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