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 Life, Life In Art
예술지향적 라이프스타일로의 변화
나하나 ㅣ인드라망 아트컴퍼니 대표
워라밸과 그림 열풍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진국이라는 데 큰 자부심이 있는 반면 문화예술 얘기만 나오면 상대적으로 작아지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한국은 마치 예술의 도시 파리를 방불케 한다. 전 세계 어딜 가나 한국 사람들을 향해 K-POP, K-DRAMA에 이어 요즘은 K-ART까지 질문이 쏟아진다. 하지만 이 엄청난 발전이 불과 최근 몇 년 동안의 변화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한국 사회는 1970년대 제조업을 시작으로 해외 수출을 하면서 급성장하였다. 이로 인한 산업의 고도화와 디지털 세상의 출현은 일상의 모든 분야에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물질적 부(富)를 축적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다 보니 정신적인 부분은 도외시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성장을 위해 노동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던 사람들은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려야 했고, 그 부작용으로 공황장애와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같은 ‘현대인의 질병’이라 불리는 것들이 나타났다.
그러다 2018년, ‘워라밸’이라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워라밸은 1970년대 영미권에서 이미 등장한 개념으로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 즉,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추고 여유 있는 삶을 즐기자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육체적인 노동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만족을 충족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에서 비롯된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워라밸에서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나 자신(Myself)이며, 그 다음으로 여가(Leisure)와 성장(Development)이다. 이는 사회적 성장이 최우선이던 과거와는 달리 개인 생활과 정신적 여유를 중요시하는 문화로 바뀌었음을 나타낸다.
예술이 있는 일상
워라밸 열풍이 불기 시작하던 2018년 이후, 개정된 노동법은 직장인들에게 평일 저녁의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당시 미술관들은 이를 놓칠세라 퇴근 후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개최하고,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 모여 소통하는 소셜라이징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그들은 미술관을 방문하는 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유도했으며, 여전히 미술이란 분야가 낯선 입문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또 야외 공연장을 추가 신설하거나 확장하고, 직장인 할인과 프로모션 외에도 일상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프로그램도 제공하였다.
기업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저녁 식사나 술자리를 갖던 회식 문화 대신 뮤지컬이나 연극, 영화 관람 등의 문화예술을 즐기는 방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또한 문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려는 기업이 늘면서 로비에서 전시회를 열거나 특정 미술관과 협연을 맺어 직원들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등의 노력도 이어졌다. 그 결과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만 자리 잡았던 예술의 문턱도 낮아지게 되었다.
달라진 전시문화
그림을 보기 위해 우리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간다. 보통 전시회라 하면 흰 벽의 네모난 공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작품이 걸려 있고 그곳에서 누군가는 조용히 감상하거나, 누군가는 설명을 들으면서 그림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러한 전시문화는 팬데믹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거리두기로 인해 모든 전시공간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대책으로 미술관들은 재빨리 디지털과 결합한 방식의 질 높은 AR이나 VR 등의 온라인 전시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마치 실제로 전시장을 방문해 그림을 감상하는 듯한 생생함과 물감의 질감까지 볼 수 있는 디테일을 선보여 감상자를 만족시켰다. 전시의 형태가 바뀌자 이제 사람들은 직접 미술관에 가지 않고도 간편하게 예술을 즐기고 마치 온라인 쇼핑을 하듯 내가 원하는 만큼 마음껏 전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미술 경매 시스템도 바뀌었다. 예전엔 직접 경매 전시장에 가서 패들을 들고 응찰을 한 후 경합을 해서 낙찰받은 사람이 그림을 구매했다면, 이제는 온라인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간편한 방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술시장과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예술이 들어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아트테크의 시작
그림 열풍은 투자로까지 이어졌다. 팬데믹으로 인해 제한된 해외 출입은 국내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걸 막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중 다수의 자본이 미술계로 유입되었다. 특히 2021년은 주식, 코인 등 투자시장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차익을 얻은 사람들의 예술 투자는 계속되었다. 게다가 미술품이 감가상각이 없는 자산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투자와 이익을 동시에 보고 싶은 심리와 맞닿아 거의 모든 전시장마다 그림을 사기 위한 인파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갖기 위해 열띤 경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시가보다 웃돈을 지불해야만 그림을 가질 수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주문하고 2~3년씩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 되었다. 전시를 보기 위해 새벽부터 전시장 앞에서 줄 서는 일은 일상이 되었으며, 인기 작가의 그림을 소장하려고 하루 전날부터 전시장 앞에 텐트를 치는 일도 있을 정도니 그 경쟁의 정도를 말해 무엇하랴. 이로 인해 2021년에는 한국 미술사상 전례 없던 미술시장의 호황기가 펼쳐졌다. 이때부터 그림은 더 이상 부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약간의 여유만 있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현시대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2021년을 기점으로 한국 미술시장은 점점 글로벌화되어 가고 있다. 이미 미술은 우리의 삶으로 들어온 지 오래며, 우리의 문화 수준은 최소 10년 이상 앞당겨진 듯하다. 물론 현재는 국가 경제의 위기와 더불어 경기 침체로 인해 잠시 정체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술시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그 이유는 그림에 특별한 매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림은 다른 투자자산과 다르게 감상하거나 즐길 수 있으며, 정신적인 영역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부가가치가 있다. 이로 인해, 한 번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이 정신적인 영역까지 책임지는 예술품과 이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그림을 안 사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사는 사람은 없다고 하겠는가. 이처럼 그림이 주는 영향력이란 실로 엄청난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호황기의 데이터를 지켜내기란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비관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블루오션임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