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olution Of Mobility
이동 수단에서 라이프스타일 표현 공간으로
황기연 | 홍익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이동 환경의 변화
4차 산업혁명을 통한 파괴적 기술 혁신은 이동의 기존 패러다임을 교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DNA(Data, Network, AI)’로 요약되는 기술 혁명은 모빌리티 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모빌리티 혁신의 특징은 연결성(Connected), 자동화(Autonomous),공유 서비스(Sharing service), 전기화(Electrification) 등 ‘CASE’로 요약된다. 연결성을 강화해 교통사고와 혼잡에서 벗어나고, 자동화 기술로 자율주행 이동 수단을 개발해 통행 시간과 사고 비용을 감소시키며, 전기화를 통해 이동 수단의 배출 가스를 최소화하고, 교통수단의 공유화로 자동차 교통량을 감축해 유류 소비를 줄여 이동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 여기에 AI 기술을 활용한 챗지피티(ChatGPT)의 등장은 향후 모빌리티 환경에 더욱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지난 3년간 세계를 휩쓴 팬데믹이 모빌리티 환경에 미친 영향력은 지대하다. 감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버스와 지하철처럼 혼잡한 대중교통 수단보다는 자가용, 자전거 등 개인 교통수단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고, 사이버 통신망에 의존한 재택·원격 근무, 강의, 회의 등도 크게 확산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민의 일상으로 정착될 전망이다. 최근 NYT의 보도에 따르면 뉴욕의 경우 9%만이 주 5일 근무 체제로 복귀했고, 지하철 이용자도 코로나 이전의 60%에 불과하며 2026년이 되어도 이전의 79% 정도에 머물 전망이다. 재택과 원격 근무의 확산으로 사람들의 주 생활 공간이 개인 교통수단 기반의 집 주변으로 옮겨오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주 4일제가 지지를 얻으며 통신망 연결이 가능한 곳이면 장소에 상관없이 일하는 라이프 스타일로 바뀌고 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모빌리티 혁신의 특징은 연결성, 자동화, 공유 서비스, 전기화 등으로 요약된다.
혁신적 모빌리티 수단의 등장
지난 2월 20일 정부는 ‘신성장 4.0 전략 15대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자율주행 자동차 인프라를 완비하겠다고 밝혔다. 자율주행차의 경우 0∼5단계로 구분되는데 2단계까지는 자율주행 보조 시스템(ADAS)이 장착된 경우를 말하고, 일반적으로 자율주행차라고 부르는 것은 3단계 이상을 말한다. 3단계 자율주행차는 운전자가 반드시 운전석에 앉아서 필요한 경우 수시로 운전에 개입하는 상황으로, 현재까지 상용화된 자율주행차는 대부분 3단계다. 특정한 도로의 구간이나 한정된 구역에서 자율주행하는 경우 4단계, 그리고 어떤 경우도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는 무인 자율주행차는 5단계에 해당된다.
2020년 5월 처음 도입된 국토부의 ‘자율주행자동차 시범운행지구’ 사업이 현재 서울을 비롯한 전국 12개 시도 16개 지구에서 시행되고 있다. 특히 작년에는 4단계 자율주행 셔틀이 서울의 광화문, 청계천과 강남 등 교량이 많은 도심에서 처음으로 운행되기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서울 합정역-청량리역에 이르는 13.2km 중앙버스전용차로 구간에서 심야 시간대에 자율주행 버스를 시범 운행할 계획이다. 또한, 충남 내포신도시에서는 자율주행 방범, 순찰 및 주정차 단속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운전 부담 없는 자율주행차 시대가 빠르게 오는 중이다.
자율주행차는 대부분 많은 전자 장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기 동력을 사용한다. 최근 테슬라를 통해 크게 인기를 얻기 시작한 전기차는 코로나로 환경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글로벌 전기차 판매 실적은 전년 대비 68%가 성장한 802만 대로 나타났고,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5는 미국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전기차는 화석연료를 연소시켜 동 에너지를 얻는 내연 기관 자동차와 달리 배터리에 저장된 전력으로 모터를 회전시키기 때문에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엔진, 변속기, 구동축, 연료 탱크가 필요 없다. 따라서 다양한 디자인을 통해 차량 실내 공간과 짐 공간을 확장해서 쓸 수 있고, 실내 바닥이 평평한 장점도 있다. 공간의 제약 없이 좌석을 자유롭게 배치하여 탑승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설계가 가능하다. 또, 엔진을 모니터하는 데 필요한 계기판이 사라지기 때문에 최근 등장한 전기차는 전면 전체에 스크린을 배치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전기차는 공간의 제약 없이 좌석을 자유롭게 배치하여
탑승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설계가 가능하다.
새로운 공간의 쓰임
기술 혁신과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ADAS,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 이동 기술과 결합하면서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에서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한 공간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실내에서는 운전이 최소화되거나 필요 없어지기 때문에 운전석과 승객석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유휴 공간이 확대되고, 교통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실내 충돌 규제에 필요한 공간 구조 설계의 제약도 많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운전석 대신 거실이 생겨서 탑승객 간 회의나 게임을 하고, 좌석들을 연결해 침대처럼 변형시켜 장거리 여행에 적합하도록 개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리창을 초대형 TV 화면으로 만들어 영화관 같은 문화 공간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혁신적 실내 공간 변화는 만약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교통사고를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른다. 모빌리티의 변화에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잘 반영한 자동차는 풀사이즈 픽업트럭이다. 최근 미국 GMC에서 만든 시에라 전기 픽업트럭은 자율주행 보조 기능을 장착하고 있으며, 약 6m의 길이에 6.2L V8 가솔린 엔진, 10단 자동변속기에다가 최고 출력이 426마력 가까이 되고 9천만 원이 넘는 고가임에도 온라인 판매를 통해 초기 분량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최근 미국 젊은 층 이동 문화의 로망으로 자리잡은 픽업트럭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급상승 중이다. 장기간 야외 캠핑을 하는 ‘장박’과 오프로드(Off-road) 주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오지 캠핑’ 등이 젊은 층을 비롯한 대중의 취미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개방된 적재함에 텐트를 설치해 취침 시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피할 수 있으며, 모터사이클이나 자전거 등 레저용 탈것 등을 싣기도 한다. 또한 4t의 견인력을 가질 정도로 힘이 좋기 때문에 요트나 이동 주택을 뒤에 싣고 달릴 수 있고, 카고(Cargo) 램프는 어두운 밤이나 오지에서 불빛을 제공해 활동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지원한다.최근 중국에서는 챗지피티를 내장한 자동차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자동차 안에서 챗지피티를 이용해 코딩, 보고서 작성, 번역, 문제 상담과 해결 등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동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낭비가 아니라 생산 및 업무 활동의 연장이 될 수 있다. 자율주행차 이동 환경이 발전하면 자동차는 완벽한 ‘움직이는 사무실’로 탈바꿈될 수 있고, 자동차에서 보내는 출퇴근 시간도 근무 시간의 일부로 포함해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도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낭비가 아니라
생산 및 업무 활동의 연장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