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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작고 무용한 물건이 가진 사회적 가치

Goods Boom

Opinion

작고 무용한 물건이 가진 사회적 가치

Writer | 전준석 트렌드인사이트팀

소비자 트렌드를 연구하고 리포트를 배포하고 있다.

굿즈는 한정판, 컬래버 상품, 액세서리 등으로 확장되며 브랜드와 소비자를 잇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소비자는 굿즈로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고, 브랜드는 이를 통해 가벼운 경험을 제공한다. 작은 키링 하나도 취향의 표현이 되는 시대, 브랜드는 감성을 담은 굿즈 전략이 필요하다.


 

머치(Merch)와 굿즈(Goods)의 차이

‘굿즈(Goods)’는 매우 묘한 말이다. 굿즈는 원래 ‘상품, 재화’라는 의미를 가진 경제학 용어에 가깝다. 요즘 의미에 가까운 ‘기념 판매품’에 해당하는 말은 머천다이즈(Merchandise), 줄여서 머치(Merch), MD가 더 정확한 용어다. 실제로 SM, 하이브 등 아티스트 소속사에서는 굿즈의 공식적인 명칭을 ‘Merch’나 ‘MD’로 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어의 뜻은 시간이 지나면 제멋대로 변하기 마련. ‘굿즈’는 일본에서 특정 콘텐츠의 팬들을 위한 팬시 용품(실용성은 부족한 문구 제품 등)을 의미하게 되었고, 한국에도 그런 뜻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의 일반 브랜드에서도 ‘굿즈’라는 표현을 일반적으로 쓰고 있다.


 

이전보다 더 방대해진 굿즈의 의미

한국에서 ‘굿즈’는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한정 생산 제품, 타 브랜드·인플루언서와의 컬래버레이션 상품, 상품에 매달 수 있는 액세서리, 일부 매장에서만 제공·판매하는 MD 상품도 굿즈 영역에 발을 담그고 있다. 이러한 굿즈 트렌드의 증가는 본디 나뉘어 있던 상품 생산, 개발 분야와 마케팅 분야의 업무적 결합이 증가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소비자가 직접 생산하는 굿즈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윗치폼, 마플샵 같은 플랫폼 덕분에 누구나 손쉽게 굿즈를 제작·판매할 수 있다. 케이팝 팬덤에서는 공식 굿즈보다 더 기발하고 완성도 높은 ‘비공굿’(비공식 굿즈)이 넘쳐난다. 취향의 확산이나 제품의 브랜딩을 목적으로 만든 상품은 모두 ‘굿즈’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브랜드는 왜 굿즈를 중요하게 여길까? 소비자는 왜 굿즈에 열광할까? 브랜드와 소비자, 두 관점에서 굿즈의 가치를 살펴보자.

 


 

브랜드 : 경쾌한 상품성이 주는 매력

작년 5월, 잠실 롯데타워에서 열린 〈에르메스 인 더 메이킹(Hermès in the Making)〉 전시는 에르메스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직접 장인들이 염색, 가죽 공예, 바느질, 프린팅 등의 작업을 시연하는 공간 마케팅 이벤트였다. 큰 행사장에서 가장 붐빈 곳은 에르메스의 전통 판화 방식으로 포스터를 인쇄해 가져가는 코너였다. 많은 이들에게 에르메스 제품을 무료로 얻는 첫 경험이었을 것이다.

 

쇼핑은 늘 즐겁다. 우리는 ‘구매’와 ‘쇼핑’이 주는 즐거움의 차이를 본능적으로 안다. 가치 있는 것을 비싸게 사거나, 저렴하거나 무료로 얻을 때 ‘즐거운 쇼핑’이라 느낀다. 이런 점에서 굿즈는 매력적이다. 적은 비용과 간단한 결정만으로 브랜드를 소유하는 경험을 주기 때문이다. 지드래곤의 패션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과 캐릭터 IP ‘모남희’의 컬래버 키링은 10만 원에 육박하지만, 피스마이너스원의 패션·잡화 제품에 비하면 비교적 접근 가능한 가격이다.

 

이처럼 굿즈는 고가격, 고관여 브랜드의 무거운 소비 경험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고객은 ‘공짜 혹은 낮은 가격’으로 브랜드를 ‘소유’하는 경험을 얻고, 브랜드는 호의적인 팬을 얻는다. 이러한 매력적인 인식이 유지되는 한, 굿즈의 매력은 마케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 :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표현하는 방식

“난 원체 무용(無用)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 tvN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김희성

 

 

그렇다. 굿즈는 대부분 무용하다. 최근 실용적인 굿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긴 하나, 이는 굿즈 가격 상승에 따른 보상심리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우린 ‘무용’한 제품을 사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걸까? 그리고 정말 무용하긴 한 걸까?

 

요즘은 어떤 팬덤에도 속하지 않은 잘파세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취향과 덕질이 세분화됐다. 자신이 ‘무언가에 애착한다’는 것을 알리는 행위 또한 거침없다. 처음 만난 모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표할 정도로, 젊은 세대는 취향을 알리는 것을 자기소개 방식으로 삼고 있다. 굿즈는 ‘나는 이런 걸 좋아해!’라고 말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한 대학생의 가방 안에 있는 전공 책은 그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어떤 단서도 주지 못한다. 반면 가방에 달린 프로게이머 ‘페이커’의 키링은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굿즈는 사회생활에서도 유용하다.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식이자, 소셜미디어 프로필처럼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


 

'상품에 함의된 메시지'가 더 강조될 마케팅 업계

이제 누구나 플랫폼을 통해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기능적으로 편차가 적은 브랜드가 고객에게 ‘쇼핑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상품이 가진 메시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제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먼저 고민한다.

 

‘정체성 기반 소비’는 오래된 트렌드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성공했다’는 메시지는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이 대신 말해준다면, ‘내가 이런 걸 좋아한다’는 메시지는 그 가방에 매달린 작고 무용한 키링이 말해줄 것이다. 만약 내 취향이 바뀌면, 가볍게 바꿔 달면 그만이다. 당분간 지속될 굿즈 트렌드 속에서, 브랜드는 자신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굿즈로 변신해야 할지를 깊게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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