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O.SIGHT

Essay

‘잘 쓰는 법’을 배우는 중

Beyond Saving

Experience

 

‘잘 쓰는 법’을 배우는 중

불황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덜 쓰는 대신 ‘어떻게 쓰는지’를 더 자주 떠올리게 된다. 작지만 확실한 만족, 나에게 꼭 맞는 선택, 필요와 여유 사이에서 조율한 소비의 순간들. 이 작은 선택들은 익숙한 기준을 다시 조정하며 각자의 일상에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준다. ‘더 잘 쓰기 위한 감각’이 자리잡아가는 지금, 이노시안이 발견한 소비의 작은 전환들을 만나보자.


내가 돈을 쓰면 서사가 생긴다

김해수

디지털플랫폼2팀

평소 소비에 매우 신중한 편이다. 불필요한 지출을 경계하며 ‘가성비’라는 단어 앞에서 늘 계산기를 두드린다. 같은 기능이라면 더 저렴한 선택을, 비슷한 만족이라면 더 효율적인 대안을 고른다. 그런데 단 하나, 예외로 두는 분야가 있다. 바로 뮤지컬이다. 무대의 조명과 배우의 호흡,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함께 만드는 극적인 순간에 사로잡힐 수만 있다면 나는 계산을 멈추고 기꺼이 지갑을 연다.

 

생각해 보면, 이 예외는 꽤 오래전부터였다.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로 모은 귀한 돈도 공연 보는 데 쓰일 때만큼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이틀 치 시급을 통째로 티켓에 쏟아부어도 금액의 무게보다 설렘과 행복이 먼저 밀려오곤 했다.

 

그때의 설렘은 지금까지 이어져 왜 뮤지컬이 내게 특별한지 자연스럽게 설명해 준다. 깜깜한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바깥의 소음과 속도가 모두 끊기며 다른 세계로 이동한 듯한 기분이 든다. 팍팍한 일상에서 쉽게 마모되는 마음이 무대 앞에서 다시 채워지고, 때로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인류애까지 되살아난다. 평소에는 효율과 속도를 중시해 OTT 콘텐츠도 2배속으로 보지만, 뮤지컬만큼은 유일하게 라이브의 시간성을 온전히 즐기고 싶다. 음악도, 조명도, 배우의 호흡도 그 어떤 것도 내가 조절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깊은 몰입을 만든다. 그래서 이 소비는 평소 패턴을 벗어난 예외지만, 그 예외가 삶의 기준을 다시 정돈하고 극장을 나온 뒤 다시 잘 살아갈 에너지를 채워주는 의미 있는 선택으로 남는다.

‘잘 쓰는 법’을 배우는 중 이미지

〈하데스타운〉을 처음 본 날이었다. 밴드와 배우가 함께 만들어내는 재즈 기반의 넘버가 깊게 꽂혔고 이 작품을 본토 브로드웨이에서 진하게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뉴욕행 항공권을 검색해 그대로 결제해 버렸다. 그렇게 브로드웨이에서 다시 만난 〈하데스타운〉은 예상보다 더 벅차고 생생했다.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뒤섞여 만든 무대의 에너지와 화합은 1년이 더 지난 지금도 또렷한 잔상으로 남아 다음 해에도 다시 뉴욕을 찾게 만들 만큼 강렬했다.

 

돌아보면 이런 선택들은 단순한 지출이라기보다 지금의 나를 조금 더 확장시키는 경험에 가깝다. 비록 평소의 소비 기준에서는 벗어나지만, 뮤지컬이라는 예외 덕분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취향을 선명히 알게 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가격보다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귀 기울이게 되었고,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라면 기꺼이 선택한다. 앞으로도 비슷한 기준으로 뮤지컬을 선택할 것 같다. 내 안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채워주는 순간이라면, 그 정도의 예외는 충분히 괜찮다고 느낀다.


트렌드에서 근본으로

최윤정

HR지원팀

"트렌드를 쫓던 시간들"

 

어릴 때부터 옷과 신발을 유독 좋아했다. 청소년기부터 20대 사회 초년생 시절까지, 내 소비는 늘 ‘지금 유행하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인터넷 쇼핑몰의 신상 알림을 켜두고 재입고 알림 버튼을 눌러서라도 SPA 브랜드 인기 품목을 구매했으며, 패션 블로거의 추천 아이템과 유튜버가 말하는 이번 시즌 필수 아이템을 따라 샀다.

 

소비에 꽤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가진 돈의 한계는 명확했다. 투자한 시간에 비해 물건의 퀄리티는 늘 기대에 못 미쳤고 무엇보다 내게 잘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온라인으로 열 번 주문하면 서너 번은 실패하는 게 당연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트렌드를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던 시절이었다.

“나를 발견하는 시간”

 

언제부턴가 ‘나’를 탐색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심리검사,MBTI, 퍼스널 컬러, 퍼스널 헤어스타일 등). 나도 그 흐름 속에서 나를 공부했다. 내가 비교적 잘 소화하는 분위기가 무엇인지,추구하는 삶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소비 습관과 연결되면서 의사 결정은 놀라울 만큼 심플해졌다.

 

2019년부터 지금까지 한 브랜드에서 꾸준히 겨울옷을 사고 있다. 코트, 패딩, 스웨터, 바지, 재킷. 여전히 질리지 않는다. 그 브랜드의 제품이 나와 동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철학과 감각 그리고 브랜드 대표의 삶의 모습이 내 삶의 방향과 맞아 떨어질 때, 그 옷은 단순한 의류를 넘어 일상 그 자체가 된다는 걸 알게 됐다. 매년 소소하게 구매하지만 몇 년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주는 풍성함이 옷 입는 재미를 만들어낸다. 한 철 입고 버리는 옷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형태와 질감을 유지하는 옷들이 쌓여가는 과정이 참 좋다.

 

그렇게 한 브랜드와 동화되는 과정을 통해 그 브랜드가 단서가 되어 내가 원하는 감도의 브랜드를 조금씩 확장해 나간다. 스스로 확장한 그 가지의 끝자락에는 나나미카, 르메르 같은 이름들이 있더라. (힘내서 성공하자 나 자신!)

‘잘 쓰는 법’을 배우는 중 이미지

“근본으로 돌아가는 소비”

지금의 나는 세 가지 기준으로 소비한다. 첫째, 나의 추구미와 동기화되어 있는 브랜드에서만 구입한다. 브랜드의 철학과 감각이 내 삶의 방향과 맞아떨어질 때, 그 옷은 단순한 의류를 넘어 일상의 태도가 된다. 둘째, 제품의 품질이 좋아 오래 쓸 수 있는 브랜드에서의 소비를 즐긴다. 한 철 입고 버리는 옷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형태와 질감을 유지하는 만듦새 좋은 옷을 선택한다. 셋째, 이른바 ‘근본 브랜드’를 먼저 살핀다. 생각보다 합리적인 가격대에서 본질에 충실한 제품을 만드는 곳이 많다. 청바지는 리바이스나 CK, 운동화는 뉴발란스나 아식스, 러닝복은 나이키처럼 오랜 시간 검증된 브랜드들이 그렇다.

 

결국 소비는 나를 표현하는 언어이자, 삶을 대하는 태도의 반영이다. 많이 사는 대신 오래 입고, 트렌드를 좇는 대신 나와의 어울림을 선택하다 보니 이제는 옷장을 열 때마다 나와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마음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소비

최재민

디지털이니셔티브팀

나는 실용주의자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다. 실용주의자로서 나의 소비 프로세스는 3단계로 규정할 수 있는데, ①필요가 생기고, ②기능이 충족되면, ③최저가 검색 후 곧바로 구매한다. 나는 내 소비 방식에 자부심이 있었고, 단 한 번도 그 방식에 의심을 품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와 정반대의 소비 철학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나의 배우자였다. 그녀는 탐미주의자로 기능의 충족보다는 미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거기서 오는 만족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필요성만으로는 좀처럼 지갑을 쉽게 열지 않는 사람이다. 나와는 소비에 대한 전제부터 완전히 다르기에 합의에 다다를 수 없었고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맞추어야 했다. 누가? 내가.

‘잘 쓰는 법’을 배우는 중 이미지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일인가?”

때는 신혼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실 소파 옆에 둘 협탁이 하나 필요했다. TV를 보면서 커피잔을 올려놓을 협탁. 아니, 협탁이 아니라 스툴도 괜찮았다. 어쨌든 컵을 둘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집에 대한 결정권은 배우자에게 있으므로 나는 지체 없이 협탁 구매를 요청했다.

 

1주가 지나고, 2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록 협탁이 오지 않는다. 컵을 두고싶을 뿐인데, 필요에 맞는 기능만 충족되면 되는데 이게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현했다. 하지만 결과가 바뀌진 않았다. 나는 얌전히 협탁이 배송되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렇게 꼬박 한 달 하고도 2주를 기다린 끝에 협탁이 도착했다.

 

협탁은 시작일 뿐이었다. 이후에 쓰레기통, 조명, 화분, 신문 보관철 따위를 살 때도 예외는 없었다. 그녀는 이 물건이 얼마나 예쁜지, 정말 마음에 드는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을 물건인지를 긴 시간 동안 고심하는 걸 반복했다. 어느덧 우리 집은 아무 물건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 되어 있었다.

“쉽게 허락하지 않은 것에 애틋함이 깃든다”

인간은 환경에 쉽게 적응한다. 결국 그녀의 소비에 적응해버렸다. 어느새 나는 우리 집에 들어와 준 물건에 애틋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애틋한 마음이 생기니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나은 물건이 있는지 두리번거리지 않게 되었다. 하긴, 긴 시간 쉽게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지갑을 열어버린 아이들이다. 그렇게 기필코 내 곁을 차지한 아이들을 두고, 내가 어떻게 다른 물건에 시선을 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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