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주린이 라이프
Writer. 김지수 Kim, Ji-Soo Art DirectorㅣINNOCEAN
주린이의 시작
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투자를 죄악시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성경 구절을 문자 그대로 따르느라,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투자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소개팅을 했는데, 돈에 있어선 꽉 막힌 사고와 무지로 일관하던 나와는 다르게, MTS를 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잠드는 순간까지 투자 콘텐츠를 보는, 거기에 귀엽게 생긴 데다 유머까지 겸비한 미친 매력남이 나온 것이다. 그런 그와 어떻게든 장단 맞춰보려 부랴부랴 투자 관련 책을 사 읽은 것이 시작이었다. 책을 읽다 보니 내 죄책감은 무지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예금과 주식 투자의 구조를 살펴보면, 우리가 오랜 세월 미덕이라 여기던 예금은 은행에 돈을 맡기고 은행은 그 돈으로 기업에 융자하고 투자해 이익을 얻는 구조다. 주식 투자는 단지 은행을 거치지 않고 다이렉트로 기업에 투자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나의 돈이 기업에 흐른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물론 예금은 원금 보장이라는 매력이 있지만, 요즘처럼 유동성이 풀리고 저금리를 지속하는 시기에 과연 5년 후에도 원금이 보장된다고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예금=미덕, 주식=도박’이라는 미신을 깨고 본격 주린이 라이프를 시작했다.
아프니까 주린이다
투자의 원동력이 단순히 ‘자산 증식’에만 있었다면 3년도 지속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소개팅남이 투자를 10년 이상 지속한 것은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헝가리 출신 투자자 코스톨라니 Kostolany도 책에서 투자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한다. ‘단순히 돈을 벌었기 때문에 기쁜 게 아니라, 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보다 올바르다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에 기쁜 것’이라고. 예상대로 시장이 움직일 때의 쾌감, 혹은 그 반대로 고민할 만큼 고민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의 아쉬움…. 두 쪽 어디든 그래도 투자가 ‘재미있는 이유’는 이런 선택을 한 나만의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 놓쳤던 것들은 메모해 두었다가 다음 투자 때 채워 넣을 벽돌이라 생각하면 그만이라는 주린이 정신으로….
2년 전 진에어에 투자할 때였다. 당시 LCC 업계는 해외여행 열풍과 저유가로 훈풍이 돌았던 때다. 나는 업계 1등이던 제주항공보다 중장거리 노선을 갖춘 2등 진에어에 관심을 가졌다. 항공사는 단거리를 띄울 때보다 원거리를 띄울수록 수익성이 증가하는 데다가, 대한항공 덕을 볼 수 있는 진에어가 금융리스와 운용리스를 적절히 운영하는 데 유리해 전망성을 좋게 봤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조현아의 물컵 갑질 사건’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진에어에 불똥이 튀며, 절체절명의 투자 기회를 얻게 된다. 항공법은국가기간산업인 항공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이 임원이 되는 것을 금지하는데,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국적자인 조현민을 등기 이사로 올린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면허 취소라는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진에어의 주가는 연일 폭락하기 시작했다. 청문회가 가까워져 올수록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수를 읽기 위한 나의 고뇌는 알파고를 상대하는 인류의 마지막 자존심 이세돌급으로 진지해졌다. 갖가지 요소를 고려해 5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았는데 어떤 시나리오도 면허 취소에 이르기는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그렇게 청문회 날 아침이 밝아오고 나는 증권 계좌를 풀장전. 떨리는 손가락으로 매수 버튼을 눌렀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상대로 진에어는 면허 취소를 면했다. 주가는 순간적으로 원래 가치를 빠르게 회복했다. 하지만 짜릿함도 잠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청문회를 마치고 신규 노선 취항 금지가 포함된 국토부의 제재가 발표된 것이다. 주가는 다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머리가 하얘졌다. 고꾸라지는 주가와 함께 내 피도 거꾸로 솟았다. 지금이라도 실패를 인정하고 손절할 지, 기업 가치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결국, 나는 길고 긴 제재 동안 진에어와 함께 주린이의 성장통을 온몸으로 겪어냈다. 결론적으로 수익을 실현한 투자였음에도 그때의 쓰라린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아프니까 주린이다.
주린이는 멈추지 않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구절을 문자 그대로 믿느라 금융맹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나는, 이런저런 진한 성장통을 거치며 이제는 길 가다 특정 옷 브랜드가 눈에 밟히면 그 회사 실적이 궁금해지고, 경쟁 PT로 어떤 기업을 접하게 되면 10년 후에도 이렇게 장사를 잘하고 있을지 궁금한 사람이 되었다. 이런 호기심도 한 6개월 가다 말겠거니 했는데,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통관심사를 주고받는 기쁨 때문인지, 수익 실현의 기쁨 때문인지, 일단 재미를 맛보니 계속하게 된다. 그나저나 그때 그 미친 매력남과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3년 후 남편이 되어 여전히 나의 투자 뮤즈가 되어 주고 있다. 퇴근하고 저녁 먹으며 투자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아무쪼록 이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 우리 모두 포동포동하게 잘 먹고 잘살게 되었으면 하는 주린이의 바람으로 마치겠다. 주린이는 멈추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