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O.SIGHT

Essay

질문있습니까

이야기는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는가?

Opinion

 

질문있습니까

 

Writer | 진광혁 GCD
이노션에서 여섯 명의 팀원과 함께 광고를 만든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다. 짧고 빠른 메시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잠시 붙잡지만 오래 머물게 하지는 못한다. 반면 어떤 이야기는 사람을 그 안으로 끌어들인다. 좋은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질문은 캐릭터를 움직이고 서사를 만들며, 브랜드 이야기에도 사람들을 참여하게 만든다.


 

질문에서 출발하는 이야기의 힘

몇 해 전 여름, 소설을 썼다. 들어가서 한동안 머무르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소년 범죄를 다룬 뉴스를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이 아이는 어떻게 범죄자가 되었는가? 동시에, 이 아이는 범죄자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는가? 아이의 불우한 환경은 도덕적인 알리바이가 될 수 있는가? 용서는 언제, 누구로부터,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이야기의 도움이 필요했다.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질문을 거기에 던졌다. 서글서글한 눈망울로 사람을 죽인 한 아이를 그안에 놓아두었다. 소설을 쓰는 내내, 그 아이의 삶을 살다가 가을이 지나서야 나왔다.

 

나는 때때로 이렇게 무언가를 해소하기 위해 이야기를 쓴다. 지금의 나를 이해하고,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 방편으로 쓴다. 그리고 그 시도는 어느 정도의 분량을 내게 요구한다. 몇 줄이 아니라 적어도 몇 장. 내가 던진 질문이 그 안에서 한동안 자라며 무르익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시간은 필요한 것이다.


 

짧은 콘텐츠 시대가 만든 생각의 공백

이야기의 반대편에는 짧은 콘텐츠가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가장 빠르게 웃음을 주고 조급한 위로를 건넨다. 생각도 질문도 없는 세계. 조지 오웰은 대표작 《1984》에서 “빅 브라더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한 문장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미 80여년 전에 통찰했다. 우리의 정신은 밤낮없이 덧없는 콘텐츠들을 받아든다. 부작용을 표기하지 않은 알고리즘의 처방전 같은 것들을.

 

그럼에도 인간이란 종에는 집단적인 항상성이 있는 걸까? 최근 들어 사람들은 다시 긴 호흡의 서사로 돌아오고 있다. 텍스트힙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려는 진지한 노력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아이폰보다 몇 배는 무겁고 느리지만, 사람들은 불편을 감내하며 긴 시간 그 두께 속에서 산다. 그리고 거기 머무르는 동안 나는 좀 풍성한 나로 사는 것 같아진다. 사나운 미디어의 세계에서, 작가가 곡진하게 마련해 놓은 ‘좋은 질문’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좋은 서사를 움직이는 질문의 역할

좋은 이야기에는 좋은 질문이 있다. “인간은 무엇을 믿으며 살아야 하는가?” 근대 소설의 원형이라 칭송받는 소설 《돈키호테》가 품고 있는 물음이다. 스스로를 세상을 구할 기사라 믿으며 풍차와 맞서 싸우는 돈키호테. 돈키호테는 저자 세르반테스가 만든 캐릭터지만, 동시에 낭만과 이상이 사라져가던 17세기 스페인에서 세르반테스가 세상에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코엔 형제의 영화에는 냉소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 많다. 그중, 영화 〈시리어스 맨〉의 주인공 래리에게는 코엔 영화의 모든 캐릭터를 통틀어 가장 많은 고난이 한꺼번에 닥쳐온다. 유대인인 그는 신에게 의지하려 세 명의 랍비를 찾아간다. 하지만 랍비들은 하나같이 엉뚱하고 하나 마나 한 대답만을 내놓는다. 코엔 형제는 관객에게 되묻는다. “신은 인간의 고난에 답을 주는가?”

 

캐릭터는 작가의 ‘살아 있는 질문’이다. 작가는 이야기 속 캐릭터에게 자신이 품은 질문을 짊어지게 한다. 그 덕에 캐릭터는 숱하게 헤매고, 진탕 방황하며 길을 잃는다. 좋은 작가는 지독한 사디스트인 법. 캐릭터를 극 중에서 살려두는 유일한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캐릭터를 죽을 만큼 괴롭히는 것뿐이다. 관객은 이러한 캐릭터의 고행을 노심초사하며 쫓는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가 짊어진 작가의 무거운 질문을 양손에 함께 나눠 든다. 이야기의 전선에 함께 선다.


 

브랜드 서사를 완성하는 질문의 힘

화자가 브랜드라고 해서 각별할 것은 없다. 흥행한 대부분의 브랜드 서사는 대중에게 답을 내리지 않는다. 질문할 뿐이다. 파타고니아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 이렇게 많이 소비해야 할까?’ 브랜드를 윤리적인 사유의 장으로 둔갑시킨다. 듀오링고는 부엉이 캐릭터의 입을 통해 묻는다. ‘공부가 꼭 진지해야 해?’ 가벼운 질문으로 공부에 작은 균열을 내고, 대중에게 망치를 쥐어준다.

 

모든 질문은 사람을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답을 주는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생각할 자리를 내어주지 않지만, 질문을 던지는 브랜드는 사람을 브랜드의 서사에 고이 끌어들인다. 모든 크리에이터는 스스로 창작자인 동시에 최초의 리뷰어다. 내가 지어 올린 브랜드 서사가 튼튼한지 점검해 보고 싶다면, 한번쯤 살펴보면 어떨까.

 

지금 내 이야기에
질문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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