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O.SIGHT

Essay

취향을 향유하는 세대

Cross Generation

Opinion

취향을 향유하는 세대

 

Writer. 최샛별 Choi, Set-byol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2월 20일 방송한 ‘내일은 미스터트롯’ 8회가 전국 평균 시청률 30.4%를 기록했다. 이는 가구 단위 지상파 시청률을 조사하기 시작한 지난 2006년 1월 이래 예능 프로그램으로는 2번째로 높은 수치이며, 9년 만에 30%를 넘은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같은 날 판매된 ‘내일은 미스터트롯’ 서울 콘서트 티켓은 10분 만에 2만 석에 달하는 좌석이 매진되었다고 하니 지상파가 아닌 종편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문화사회학적 측면에서 한 사람의 음악 취향은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표식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가 놀랄 만큼 크고 굵직한 변화를 빠르게 가로질러 온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 즉 세대가 이러한 집단을 나누는 가장 강력한 경계로 작동해왔다. 음악 취향으로서 트로트는 60대 이상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자 다른 연령층에서는 가장 좋아하지 않는 장르로 세대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였다.


 

젊은 세대의 놀이의 틀 안에서

윗세대의 취향 함께 즐기기

 

예상과는 다르게 화면에 비친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방청객은 중장년층과 노년층은 물론 청년층까지 폭넓은 연령대를 아우르고 있다. ‘내일은 미스터트롯’ 전국 투어 티켓을 단독판매하고 있는 인터파크에 따르면 예매자 연령대는 20대가 43.3%, 30대가 36.5%, 40대가 10%, 50대가 4.8%로 20대의 비중이 가장 높다. 사실 인터넷 티켓 판매의 경우 모바일에 익숙한 2~30대가 부모 세대의 티켓까지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많은 청년층이 트로트라는 윗세대의 고유한 취향을 함께 나누고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오디션 형식이나 무대 구성, 그리고 클래식과 록,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를 배경으로 장착한 뮤지션들의 무대는 사실상 익숙한 트로트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겼던 현란한 춤과 화려한 무대, 열광적인 분위기에서 응원봉을 들고 환호하며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기꺼이 봉투에 기부금을 넣는다. 자녀와 주변 사람들에게 원픽 가수의 모바일 투표를 당부하는 흰머리의 어르신들이 더 눈에 띄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뿐이었을까. 세대 문화 연구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젊은 세대는 윗세대의 취향을 자신들의 놀이의 틀 안에 가지고 와 즐기고, 윗세대는 아랫세대의 방식을 즐기는 모습이다.


 

그들은 오팔 OPAL세대다

 

요즘 젊은 세대 못지않게 인터넷과 모바일을 능숙하게 활용하고 활발한 여가활동을 추구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50대 말에서 60대를 일컬어 ‘오팔 세대’라 한다. 오팔 세대는 ‘활동적인 삶을 영위하는 노인 세대 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약자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현시점 기준으로 은퇴 시기를 맞고 있는 50대 후반부터 60대의 베이비부머를 대표하는 58년 개띠생과 더불어 중년의 색 ‘실버’가 아닌 보석 오팔의 ‘오색찬란함’이라는 의미 역시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세대 연구자에게 가장 어렵고 중요한 업무는 특정 세대에서 명칭을 부여하는 것이다. 각 시대에 벌어진 주요 사건·사고의 장면들과 그 연령대의 특징을 떠올릴 수 있는 명칭을 찾기 위해 골몰한다. 그래서인지 특정 세대에 부여된 다수의 명칭을 살펴보면 그 연령대의 삶의 궤적과 한국 사회에서의 역할과 위치 등을 대략적으로 그려 볼 수 있다.

 

10여 년 전 경제력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 못지않은 구매력을 가진 예비 노인들은 과거 노인 세대들과 구별된다는 뜻에서 ‘뉴 시니어’로 불리며 부상하기 시작했다. 절대빈곤에서의 탈출과 신체적 안전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던 그들의 부모 세대와 달리, 경제적 풍요와 문화적 수혜를 받으며 성장해 안정적이고 윤택한 노후를 꿈꾼다. 인생의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그동안 찾지 못했던 자아와 꿈을 실현하는 것이 베이비붐 세대가 바라는 이상적인 노후의 모습이다. 그들이 그렸던 노후의 모습들이 지금 오팔 세대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다양화된 플랫폼을 통해 조우하는 세대 문화

 

선사시대 동굴 벽화에도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하는 상형문자가 남아 있다고 하니 세대 차이나 갈등은 참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사회 현상이다. 그러나 세대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심각했던 세대 간의 큰 차이점과 문제점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한 세대가 무대 뒤로 사라지면 흔적도 없이 소멸된다. 또 세대 간의 큰 차이를 만들었던 요소들이 세대를 이어주는 요소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근 10년 동안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세대 간 생활방식의 차이를 만들어냈던 IT 기술이다.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의 특징이자 전유물로 여겨졌던 IT 기술은 발전을 거듭하며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문턱이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10여 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거치며 오팔 세대라 불리는 5~60대들은 젊은 세대와 같은 모바일 세대가 되면서 세대 상호 간의 이해가 커질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유튜브는 젊은 세대가 윗세대의 문화와 그들의 삶을 접하고, 그들의 틀 안에서 윗세대를 이해하고 좋아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박막례 할머니의 인기와 탑골공원 GD, 양준일의 소환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어린 초등학생들이 너무도 멋지게 트로트를 소화해 화제가 되었다. 이들은 프로그램에 나와 트로트를 좋아하게 된 연유로 한결같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꺼낸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틀어 놓거나 흥얼거리는 트로트를 옆에서 계속 듣다 보니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트로트 신동이 조부모와의 교류 없이 부모의 손에 키워졌다면 아이돌이나 클래식 음악가를 꿈꿨을지 모를 일이다. 이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세대 간의 상호 교류이다. 1인 가족이 대세가 되고 오프라인에서의 세대 간의 교류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한국 사회에서 IT 기술의 발전과 다양화된 플랫폼에서의 세대 문화 간의 조우가 교류의 물꼬를 틀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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