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Archive
Becomes Brand
취향의 기록이 브랜드가 될 때까지
브랜드의 성공과 성장에는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지만, 그중에서도 기록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록은 소비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주고, 나아가 브랜드의 결과 방향을 일관성 있게 유지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2006년, 개인의 무드보드 블로그로 시작한 자운드(JJJJound)는 이제 58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브랜드가 됐다. 공장 하나 없이 글로벌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가능하게 한 이들의 기록을 들여다본다.
기록이 지켜내는 자기다움의 가치
브랜드를 시작하기 위한 요소에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필수적인 것이 바로 시장과 상품이다. 하지만 애먼 소비자에게 상품을 팔 수는 없는 법. 상품을 팔기에 적합한 시장과 소비자를 찾아 나서면서 브랜드는 고도화된다. 여기에 가치 소비나 환경 문제 같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섞여 브랜드의 입체감은 강화된다. 브랜딩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이제는 상품의 경쟁력이 만듦새나 가격에서만 나오는 시대는 지났다. 과거에는 명품 하우스 브랜드만이 호화스럽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소유했다면, 이제는 수많은 브랜드가 저마다 각자의 가치를 내세우며 자기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그에 따라 브랜드를 시작하는 방식도 다변화됐다. 이제는 상품이나 시장을 먼저 노리지 않고, 무언가를 기록하고 지향하는 행위만으로도 브랜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운드는 2006년, 저스틴 손더스라는 한 그래픽 디자이너의 기록 계정에서 출발했다. 초기 자운드는 저스틴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를 나열하는 식의 무드보드에 가까웠다. 자운드의 가장 큰 특징은 이미지 나열에 어떠한 설명도 없다는 점인데, 심지어 이미지들의 개연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저스틴의 감성에 맞춰 조정된 이미지들은 곧 다른 이들에게도 영감이 되기 시작했다. 곧이어 카니예 웨스트, 버질 아블로 등의 거물 아티스트와 디렉터들이 그를 주목하게 됐다. 카니예 웨스트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인 [YEEZUS]에 아트 디렉터로 참여하는가 하면, 패션 브랜드 1017 ALYX 9SM의 창업자 매튜 윌리엄스와 함께 BEENTRILL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했다.
저스틴 손더스
자운드 그래픽 디자이너
익숙한 디자인에 위트 한 스푼
무언가를 꾸준히 오래 하다 보면 어느 수준의 ‘경지’에 이르기도 하지만,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자운드는 무엇이 달랐을까. 손더스는 큐레이션이 생소했던 2000년대부터 무언가를 엮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행위를 했다. 개인의 이미지 기록 블로그에서 시작한 자운드는 ‘JJJJound Creative Design Studio’라는 스튜디오로 성장한다. 이들은 인테리어, 테크, 패션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지금껏 쌓아 올린 감각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제품을 선보이며, 이미지 언어로 자신들의 무드를 전한다.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들에게 취향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 앞서 말한 것처럼, 자운드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제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쿨함과 심플함. 자운드는 좀처럼 화려하고 장식적인 이미지, 제품을 업로드하지 않는다. 이들의 무드보드에 그래픽, 일러스트, 로고, 장식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자운드의 브랜드 협업 제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기존 제품이 가진 외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람들 눈에 익은 익숙한 모습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안에 위트 있는 변주 한두 개를 집어넣는 것이 바로 자운드의 전략이다. 손이 자주 가면서 다양한 스타일과 융화될 수 있으며, 일반적인 것과 조금 다른 특별함을 가진 것. 그것이 바로 자운드의 행보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아닐까.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한 한 장의 이미지
이미지 기반 플랫폼의 득세로 언어를 읽고 사고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줄어들고 있다. 반대로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대두되고 있다. 때로는 백 마디 논리적인 말보다 한 장의 이미지,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만든 ‘무드’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기록을 이어가며 일관성을 만드는 것이다. 자운드의 성공은 무드를 제안하는 능력만으로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저스틴 손더스로부터 시작해 17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고집스럽게 선별된 정제된 무드는 이제 보는 이로 하여금 ‘자운드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나아가 자운드의 사례는 창조성에 대해서도 되묻게 한다. 과연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만을 창조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운드는 과거의 기록에서 영감을 얻어 그것을 편집, 재조합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즌마다 비슷한 콘셉트와 로고 플레이만으로 취향과 지향점이 드러나지 않는 브랜드는 무수히 많다. 이들은 동시대에 유행하는 것만을 바라보며 그것을 똑같이 따라 하기 바쁘다. 이런 브랜드들은 아이템으로 소비될 수는 있지만, 브랜드로 소비되지 못하며 팬덤이 생기기는 더욱 어렵다. 취향을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브랜드에 다가설 수 있는 지금, 브랜드를 전개하고 싶다면 자운드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그 무엇보다 강력한 팬덤을 만들지도 모른다.
신발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는
X
자운드의 스니커즈 협업
자운드 X 뉴발란스
뉴발란스의 유서 깊은 모델인 990, 991, 992 시리즈를 재해석한 협업. 리셀 가격이 치솟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비결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원형에 가미된 자운드만의 위트. 90년대를 떠오르게 하는 빈티지한 색감도 인기 비결이다.
자운드 X 아식스
아식스의 스테디셀러이자 기본템으로 각광받는 젤라이트 III를 자운드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뉴발란스와의 협업과 마찬가지로 원형은 거의 건드리지 않았지만, 두 가지 색상 조합으로 뉴발란스와의 협업 때보다 심플한 것이 특징이다.
자운드 X 리복
뉴발란스, 아식스와의 협업을 통해 각 브랜드의 헤리티지가 있는 모델을 선보인 것처럼, 리복과의 협업에서도 그들의 상징적인 모델인 ‘클럽 C’를 재해석해 내놓았다. 흑백의 심플한 디자인이지만, 리복의 로고가 있어야 할 자리에 ‘JJJJound’를 넣어 멋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