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코로나가 가져다준 뜻밖의 챌린지
Writer. 김세희 Kim, Se-hee Copywriter, 김정아 ECD팀ㅣINNOCEAN
얼마 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후배가 유튜브 방송을 위한 카메라와 마이크 등 각종 장비를 주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온라인 수업을 시행하게 되었는데, 동료 선생님들 사이 경쟁이 붙어 서로 더 인기 있는 강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벌인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내게 충격적이었던 건, 이 후배는 평소 휴대폰, 최신 IT 기기에 문외한인 데다 유튜브보다 TV와 더 친한 유형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본의 아니게 후배를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게 만들었다. ‘아무노래 챌린지’, ‘달고나 커피 챌린지’, ‘레몬 챌린지’ …. 그리고 한 초등교사의 ‘유튜버 챌린지’까지. 코로나는 우리 모두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챌린지를 하게 만들었다. 나 또한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고 챌린지라 부르기에 부끄러운, 소소한 챌린지 몇 가지에 동조했다.
길고 지루하고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콘텐츠 정주행 챌린지
나의 검지손가락은 인내심이 사라진 지 오래다. 광고 건너뛰기, 스크롤 바 내리기, 화면 넘기기, 빨리 감기를 재빠르게 실행해가며 속전속결로 인스턴트 콘텐츠를 주행해간다. 그렇게 수십 편의 콘텐츠를 후루룩 단숨에 들이키고나면, 영화 한 편을 줄거리 요약만 보고도 다 본 듯한 착각이 든달까. 그런 나의 검지손가락에 인내심을 길러주는 챌린지를 시작했다. 긴 시간과 집중을 요하는 콘텐츠를 섭렵해가는 챌린지. 모든 약속이 사라지고 대부분을 집콕하며 보내는 지금이 적기였다. 15년 전, 장장 21권의 장편<토지>를 1년에 걸쳐 완독했을 때를 되새기며, 천천히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과정을 다져가는 것이다. 수년째 완독에 실패했던, 먼지 쌓인 장편소설들을 꺼내 읽어 내려간다. ‘검지, 기다려. 아직 페이지 넘기는 거 아니야’, 성질 급한 검지를 달래가며.
핫플 대신 동네의 재발견
파리 사람을 만나건, 런던 사람을 만나건, 어떤 나라 사람을 만나건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 “거기 맛집은 어디야?” 나 역시도 마찬가지.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밀집 장소를 기피하게 되면서, 또 그렇다고 집밥만으로는 참을 수 없게 되면서 어느새 내 발걸음은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뜻하지 않게 발견하게 되는 소박한 혹은 신박한 동네 가게들을 만났다. 지난 주말엔 즉석 떡볶이집을 가게 되었는데, 맥주를 같이 파는 드문 집이었다. 콩나물 가득 얹은 즉석떡볶이에 낮맥 한 잔을 하고 20분 정도 살살 걷고 나니 집에 도착해 있었다. ‘이런 곳이 있었나?’ 싶었다. 우리 동네 재발견 챌린지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마치 도장 깨기 하듯 차곡차곡 들르는 사이, 이태원, 홍대, 힙지로는 마음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이런 현상이 더 많은 사람에게 퍼진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특정 상권만 잘 되는 것이 아닌 전국 모든 상권이 골고루 행복해지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아무 창작 챌린지
흔히 시인이나 소설가가 본격적인 글쓰기 작업을 할 때, 도시와 떨어진 곳,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간다고 들었다. 일부러, 굳이, 고립을 자처하는 것이다. 온갖 방해요소들을 걷어내고 오롯이 창작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일까. 셰익스피어 또한 그렇다.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하자 런던의 극장들은 줄줄이 폐쇄됐고, 조연급 배우였던 셰익스피어는 설 무대가 없어졌다고 한다. 실직자가 된 셰익스피어는 집에 틀어박혀 글을 썼고, <리어왕>, <맥베스> <맥베스>등 그의 대표 비극이 이 시기에 완성됐다고 한다.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지 않았다면, 셰익스피어는 배우로 남았을 것이고, <리어왕>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는 그 위대한 작품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고립된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답은 이미 나왔다. 무작정, 아무거나, 창작을 시작해보기로 했고, 첫 스타트는 한 페이지 일기였다. 사실 평소 꾸준히 창작활동을 해가는 건 광고 일을 하는 데 있어 막강한 체력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거겠지만). 여기서 방점은 ‘한 페이지’다. 얼마전 세 줄 일기가 인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흥미로워 시작해볼까도 했지만, 세 줄이라는 단서가 마뜩잖았다. 나에게 일기란 고귀한 창작물이다. 그런데 세 줄로 완결하라니. 마치 삼행시 짓기만큼의 노력만 기울이면 뚝딱 탄생하는 창작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지극히 개인적인 다소 고지식한 생각….). 그래서 나의 방점은 ‘한 페이지’였다. 꼬박 한 바닥을 채우는 일기.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검사했던 느낌을 되살리고, 빼곡히 한 바닥을 채운다. 또한 단 하루도 빼놓으면 안 된다. 그래서 밀리면 이틀 치를 쓰기도 하고 일주일 치를 주말에 몰아 쓴 적도 있다. 일기는 뿌듯할 만큼 쌓여가고 있고, 또 다른 영역의 창작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별거 없는 나의 코로나 극복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 별것 없는 챌린지가 어떤 별것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도 저마다의 챌린지를 계속해가고 있는 모든 챌린저를 응원하며, 아무거나 뭐든 계속해주기를 기대한다. 지금 도전한 만큼, 코로나 이후의 삶은 진보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