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
탐험을 하고 오피스에 돌아오면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성장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일상은 성장을 위한 탐험과도 같다. 회사 밖에서 겪는 미세한 자극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영역으로 집요하게 끌어들인다. 오피스 문을 열고 나가서도 일에 대한 감각을 움켜쥔 채 더 잘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세 명의 이노시안에게 최근 어떤 탐험을 했는지 물었다.
시간 기록자
한재영
캠페인플래너 | INNOCEAN
업무에서 벗어나 있는 시간에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어느 순간부터 하루를 기록하는 방법이 생겼다. 글이 아닌 사진으로, 오늘의 날씨를 기록하고, 오늘의 음식을 기록하고, 오늘의 기분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기록에 다시금 스토리를 입힌다. 색을 보정하고 명암을 조정하면 원본 사진에서 느껴지지 않았던 분위기와 감정이 생겨난다.
어느 순간 이 과정이 재미와 흥미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 같다. 만약이라도, 정말 만약이라도 광고를 그만두는 순간이 오게 된다면 그다음으로 하고 싶은 1순위 일이 될 것 같다. 사진 보정을 하는 과정은 동화 작가가 되기도, 영화감독이 되기도 하는 과정이다. 색감 배합에 따라 동화 같은 장면이 연출되기도, 영화 같은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이 색감 다루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게 돼서 오늘의 기분에 따라 지브리 감성을 내보거나 할리우드 영화의 장면을 만들어 보곤 한다.
사진과 친해지면서 자연스레 색감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여러 기법과도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제작물을 만드는 데 나름의 감각이 생긴 것 같다. 특히 기획서를 디자인할 때 눈에 들어와야 할 것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지, 어떤 컬러감을 줄지 고민하곤 하는데, 사진과 친해지기 전후로 생각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가끔 산책을 하며 마주치는 사소한 장면들이라도 잠깐 멈춰 기록하기를 추천한다. 한 주 를 어떻게 보냈는지 돌이켜 보고, 다음 주는 어떤 일들이 있을지 기대감도 생기게 된다. 이번 주 주말에도 한 주 동안 찍어온 시간의 기록들에 스토리를 입히며 보낼 것 같다.
내 귀에 들어온 말: 쿠일라
김수희
카피라이터 | INNOCEAN
지난 울릉도 여행은 짐도 많고 뚜벅이 신세라 4박 5일을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한때 세상을 바꾸고 싶던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었는데, 이제 바라는 건 더 나이를 먹어도 당신이 좋아하는 술을 마음껏 마시는 것뿐이라 하셨다. 그래서인지 그곳에선 매일 밤 간단 한 술자리가 이어졌고, 주 종과 안주는 날마다 바뀌는 게스트들처럼 그때그때 달랐다.
테이블 하나를 가운데 두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게스트들에게 사장님은 ‘쿠일라’ 얘기를 꺼내셨다. 게스트하우스를 스쳐 간 여행자 중에는 부모님은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즉, 검은 머리 미국인이 있었는데 위스키를 플라스크에 담아 가지고 다니며 홀짝이더란다. 그에게서 얻어 마신 위스키의 맛은 대단히 훌륭했고 그 맛에 매료된 사장님은 언젠가 꼭 그 술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의 양조장을 방문하겠노라 결심하셨다고 한다.
쿠일라, 그 위스키의 이름이다.
술에 관한 온갖 지식을 해박하게 늘어놓는 사장님을 보면서 ‘아, 저분 술에 진심이구나’ 싶었다. 동시에 궁금해졌다. 내가 맛본다면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내 간의 알코올 분해 능력은 거의 없다시피 해서 나는 평소 술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내가 그날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쿠일라를 들어볼 일은 아마 평생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호불호가 확실했고 관심의 영역 또한 호인지 불호인지 냉정하게 심사해 걸렀다.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게 된 것도, 울릉도까지 휴가를 오게 된 것도 온전히 나의 의지는 아니었다. 위스키와 마찬가지로 내 관심의 영역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으니까. 이번 여행은 특별한 경우로 동행인이 준비한 계획을 군말 없이 따르기로 작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만 편식하는 탓에 밖에서 바라본 내 세계는 어쩌면 중세 봉건영주의 성처럼 높은 벽이 세워진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 의 단 단한 벽에도 낯선 말이 날아들어와 꽂히면 틈이 생긴다. ‘쿠일라’가 귀에 들어온 뒤로 관심도 없던 싱글몰트 위스키 정보를 찾아보고 어떤 맛일지 상상하고 기회가 된다면 맛보리라 다짐하고 있으니 과연 내 세계가 넓어질 가능성인 거다.
내 책상 위 모니터 아래의 포스트잇에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명언이 적혀 있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창틀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고 걸을 때마다 대청마루가 삐걱대는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쿠일라’라는,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이 말이 무척 반가웠다.
사리사욕 같나요?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
이혜준
AI솔루션팀 | INNOCEAN
나는 사람과 술을 매우 좋아한다. 본래 즐거움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한 편이다. 대학생 때는 잠깐 스치는 인연들과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즐기는 데 중점을 뒀다면, 직장인이 된 이후로는 ‘노는’ 것이 자기 계발의 일부가 됐다.
‘그저 노는 것뿐인데 어떻게 자기 계발이 되나’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논다’라는 개념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술 마시고, 수다 떨며, 재미있는 곳을 여기저기 다니는 것은 목표를 향한 과정일 뿐, ‘단순히 놀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가끔은 그냥 놀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내 돈 쓰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 있는 내용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나혼자만의 ‘트레바리’ 혹은 ‘클래스101’로 생각할 수 있을 것같기도 하다.
가령 나는 광고대행사에서 기획자로 일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기본이자 필수적인 역량이다. 단순히 대화를 잘 나누는 걸 넘어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어떠한 대화에서도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역량을 키우기 위해 클래스를 듣거나 관련 영상을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람들을 통해 경험을 쌓으려 한다. 1년 중 거의 매일같이 다양한 모임과 술자리에 참석하며, 다양한 분 야의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해오고 있다. 컨설팅, 건설, IT, 예술, 하이패션, A I 스타트업, 가구 제조, 위스키 바, 파이프 제조 등 제각각 수많은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친구’라는 관계를 맺음으로써, 어떤 프로젝트를 맡게 되더라도 해당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고 업무를 볼 수 있는 강점을 얻었다. 덤으로 팀 내에서도 ‘인싸 중의 인싸’라는 타이틀도.
결국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커리어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얻은 지식과 경험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유용하게 쓰일 때가 많으며,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노는 걸 좋아하는 성향에서 우연치 않게 시작된 나의 자기 계발 방식은 30대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재미있으며, 내가 놀면서 배운 것은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를 넘어서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통한 배움, 다양한 문화와 생각을 접하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다. 이 모든 것이 내 커리어와 개인적인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나는 앞으로도 신나고 재밌게 놀아 제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