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Note
팬덤을 만드는 식료품점 트레이더 조
팬덤을 만드는 식료품점 트레이더 조
2021년부터 2022년까지, 2년 연속 미국에서 고객 만족도 1 위를 차지한 식료품점(Grocery)이 있다. 바로 트레이더 조 (TRADER JOE’S)다. 광고는 카탈로그뿐이고, 온라인 몰은 오픈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심심한 마케팅을 하는 식료품점이 어떻게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까?
친밀한 직원들로 가득한 슈퍼마켓
트레이더 조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특별한 매장 경험이다. 첫째, 매장의 크루들이 살갑다. 그들은 고객을 이웃처럼 대한다. 트레이더 조는 스몰토크에 능하고 사교성이 좋으며, 무슨 일이든 능동적으로 자처하는 사람을 크루로 채용한다. 그들은 매장에 방문한 고객들과 ‘라포(Rapport, 마음의 유래)’를 형성한다. 음식을 사러 가는 곳이 아니라 이웃을 만나러 가는 곳이 되는 것이다. 크루 한 명, 한 명이 고객과 맞닿는 마케팅 채널이라는 기본 원칙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키오스크에서 셀프 계산을 하면 효율성은 좋아질지 몰라도 그 마트를 사랑하게 되기는 힘들다. 캐셔들과 나누는 대화가 트레이더 조를 특별하게 만든다.
둘째,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인 매장이다. 트레이더 조의 매장 크기는 평균 1,400㎡(약 423.5평)로 월마트에 비해 약 3분의 1 수준이다. 매장당 직원 수는 약 130~150명 수준이라 하니, 약 2.8평마다 크루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크루들은 고객들을 기억하고 살갑게 대해준다. 친절함으로 가득한 매장은 곧 사람들이 다시 오고 싶은 공간이 되고,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가 된다.
재밌는 광고 채널, 피어리스 플라이어
트레이더 조에서는 일 년에 여덟 번 카탈로그를 발송한다. 현재는 뉴스레터 형태로 발송하고 있는데, 이것이 트레이더 조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광고 채널이다. 바로 '피어리스 플라이어(FEARLESS FLYER)’다. 모든 것이 빠르게 전달되어야 하는 요즘, 일 년에 여덟 번 발송되는 카탈로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여전히 고객들은 피어리스 플라이어를 기다린다. 카피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2024년 5월 호의 제목은 “May We Have This Dance?(우리가 이 춤을 추어도 될까요?)”다. 5월을 맞이해 메 이(May)로 시작하는 것이 인상 깊다. 게다가 식료품점의 뉴스레터에서 춤 이야기로 시작한다니, 무슨 내용일지 궁금해진다. 미국 광고 업계에서는 잘 쓰인 카피를 보고 싶다면 피어리스 플라이어를 보라고 할 정도로 카피에 공을 들인다.
창업 초기 피어리스 플라이어는 열 장 내외로 구성된 신문지 형태였다. 쇼핑 리스트, 레시피, 신제품 소식이 담겨 있는데 큰 틀에서 콘텐츠 변화 없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생활 정보와 할인 뉴스, 신제품 출시 뉴스와 함께 십자말풀이 등 재밌는 요소들을 담아서 고객들에게 보내고 있으며, 고객들은 재미있어서 피어리스 플라이어를 계속 구독하고 받아 보고 있다.
품질 좋은 제품이 곧 효과적인 마케팅
제품의 품질이 좋을 때, 광고와 마케팅은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트레이더 조는 좋은 제품을 싼값에 제공하기 위해 프라이빗 브랜드에 (Private Brand) 제품만 판매한다. 식품 제조 회사에서 제작해서 납품하는 내셔널 브랜드(NB, National Brand) 제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판매되는 제품의 약 80%가 자체 브랜드이기 때문에 믿을 만한 제품을 생산해서 판매할 수 있다.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제품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은 곧 고객들에게 신뢰를 심어준다.
그러나 PB 상품만 판매하는 마트라고 하면 심심해 보인다. 그래서 트레이더 조는 대형 유통 마트에 비해 적은 제품의 종류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돌파한다. 우선 가격 경쟁력이다. 직접 제작하기 때문에 유통 마진이 줄어서 가격이 저렴하다. 그리고 제품의 단종 시기도 빠르게 결정한다. 인기 없는 제품은 오래 끌지 않고 바로 단종시키고, 제품 하나하나를 공들여서 기획하고 만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객들은 트레이더 조에서 본 제품은 오늘이 살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PB 제품은 단지 마진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희소성을 겸비한 트레이더 조의 특별 상품이 된다.
틈새시장을 노린다
한국인이라면 빠른 배송에 익숙하다. 오전에 시켜서 밤에 받거나, 새벽에 집 앞에 음식이 놓여 있기도 한다. 하지만 트레이더 조에는 온라인 몰이 없다. 배송도 안 해준다. 직접 가까운 매장에 방문해서 물건을 구매해야 한다.
게다가 멤버십도 없다. 물건을 많이 사도 포인트 적립 등의 혜택이 없다. 또한 내셔널 브랜드가 입점하지 않기 때문에 매대의 좋은 자리에 해당 회사의 제품을 진열해 두는 식의 매장 속 광고도 없다. 광고와 효율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답답한 영업 방식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방식은 트레이더 조가 틈새시장을 노리기 때문에 가능하다. 트레이더 조의 목표는 업계 1위가 아니다. 창업 초기 CEO였던 조 쿨롬(Joe Coulombe)은 학력은 높지만 임금이 낮은 캘리포니아 사람들을 고객 페르소나로 설정했다. 그들은 좋은 상품을 구매하고 싶고 고르는 눈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타협해야만 했다. 트레이더 조는 그들을 타깃 삼아 프리미엄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식료품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고객들은 필요에 따라 아마존과 코스트코, 월마트, 홀 푸드 마켓을 이용한다. 하지만 트레이더 조에 들른다. 트레이더 조는 흔들리지 않는 브랜딩으로 고객들이 트레이더 조를 이용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BRANDING KEYWORD
에코백 리셀
2.99달러(약 4천 원)에 판매하던 트레이더 조의 에코백이 이베이에서 499달러(약 65만 원)의 리셀가를 기록했다. 희소성 있는 PB 상품의 인기를 체감하듯 재판매가 이루어졌다. SNS 등 온라인상에 에코백이 입고가 되면 가방을 구매하는 영상이 퍼지고 있다. 트레이더 조에서는 “재판매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히며 에코백 공급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트레이더 조의 PB 제품은 일종의 한정판, FOMO 현상을 일으킨다. 제품 전략이 리셀 문화와 결합하며 만들어진 사례다.
동네 슈퍼마켓
트레이더 조는 덜어내는 것으로 브랜드를 지켜나갔다. 자극적인 광고나 공격적인 마케팅이 아니라 브랜드의 미션을 실천하는 것으로 브랜드를 쌓아왔다. 트레이더 조의 미션은 다음과 같다. “동네 슈퍼마켓으로서 가장 질 좋은 제품을 가장 좋은 가격에 고객들에게 제공해 감동을 준다.”
트조 김밥
2023년 미국에서 갑자기 김밥이 인기를 끈다는 소식이 한국에 전해졌다. 바로 트레이더 조에서 판매하는 냉동 김밥이었다. 이른바 ‘트조 김밥’은 미국으로 여행 간 한국인 여행객들도 못 구해서 안달이 날 정도였다. 트레이더 조에서는 냉동식품을 많이 판매하는 편이다. 전 세계에서 품질과 맛이 좋은 제품을 소심하는 MD들은 원래의 맛을 살리기 위해 급속 냉동 기술을 선호한다는 설명도 있다. K-컬처 열풍으로 분석하기도 했지만, 트레이더 조에서 판매했기 때문에 더욱 인기를 끌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트레이더 조의 전략이 한국까지 영향을 미친 사례다.
항해라는 콘셉트
창업자 조 쿨롬은 마트의 콘셉트로 바닷가의 상인들이 거래하는 시장을 떠올렸다. 그래서 첫 매장은 부두에서 사온 깃발과 사슬로 꾸몄고, 직원들은 선원이란 의미로 크루(Crew), 점장은 선장(Captain)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매장 곳곳을 바다를 모티프로 한 그림들로 꾸몄다. 이 콘셉트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어서 매장마다 해양을 모티프로 한 벽화를 담당 직원이 그린다. 담당 직원은 팻말과 가격표도 손수 만드는데, 이 직원의 직책은 예술가(Artist)다. 직원들과 함께 항해하는 마트라는 최초의 콘셉트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