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lay Your Day
하루를 기억하는 법
매 순간을 음미하기에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 매일의 기록은 하루를 되돌아보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한 초석이 됐다. 기록을 꾸준히 하고 있는 세 이노시안에게 하루를 기억하는 방법에 대해 물어봤다.
라이브한 경험 클라우드
임지현
CX라이브2팀 | INNOCEAN
ⓒ임지현
챗GPT는 올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요한 기술임에 분명하다. 개발자의 말에 따르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대화를 할 수 있으며, 원하는 정보를 제공해 준다고 한다. 나도 궁금한 내용이 있거나 서치하기 정신없이 바쁜 상황일 때면 이따금 챗GPT에게 질문을 던진다. 최근엔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할 만한 장소와 활동이 뭐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구 수성못에서 태권도 체험.”이라는 대답에 정말로 친구들과 퀘스트를 깨 보겠다는 주인공의 마음가짐으로 대구행 열차표를 끊을 뻔한 적이 있다. 대구 수성못에 태권도가 유명한지 찾아봤는데, 진상은 충격적이었다. ‘태권도의 날’을 기념해 대구 수성못에서 정화 활동을 펼쳤다는 것이다. 챗GPT는과연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문과와 이과를 반씩 걸친 ‘혼종’이다. 그래서 방법론적 회의론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과적인 명제의 ‘생각한다’는 말보다 ‘느낀다’는 표현이 참된 경험의 존재를 상정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일상은 느낌의 기록에서 출발한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자마자 약 10분간 명상을 하고 기분과 컨디션, 목표를 느낀 대로 기록한다. 태양이 서쪽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데이터도 축적된다. 카페에 잠시 머물렀을 때의 분위기, 소리, 향 그리고 색감. 시각과 청각, 후각으로 쌓인 다양한 데이터는 그 공간을 온전히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데이터는 경험의 클라우드에 쌓여 프로젝트 아이데이션을 해야 할 때나 클라이언트에게 ‘느낌’을 표현할 때 동기화하여 쓸 수 있다.
이 데이터는 경험의 지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기록으로도 저장된다. 느낌을 클라우드에 저장하기 위해 전시회나 팝업 스토어 같은 공간을 짧은 영상으로 담아 인스타그램 릴스, 스토리로 기록하거나 바다 또는 숲, 공원 등의 자연을 보이스 레코더로 기록한다. 경험은 유지 기간이 짧다. 기록하는 순간, 동기화가 될 수 있는 나만의 데이터로 저장된다.
느낌의 기록은 인공지능이 표방할 수 없는 그 자체의 고유함을 가진다. 일상을 기록하면서 데이터화가 된 경험은 일상의 새로운 시작의 불씨가 됨과 동시에 업에 대한 열정을 높여주는 장작 같은 역할을 한다. 내재화된 클라우드가 발현될 때 나의 일상을 빗대어 소비자의 일상으로 들어가 무엇보다 정확하고 생생하게 그리고 긴밀하게 공감할 수 있는 클라우드셰어를 경험할 수 있고, 이는 우리가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는 라이브한 일의 중요한 경험 데이터이며 느낌을 기록함으로써 쌓이는 무한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라이브한 경험의 클라우드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키보드의 경쾌한 타자 소리와 북적이는 사무실의 온기와 함께 기록되고 있다.
동력 증폭 장치
길민정
캠페인플래너 | INNOCEAN
ⓒ길민정
기록은 조용하면서도 역동적인 움직임을 갖고 있다. 소소한 일상을 큰 감동으로 확장할 때도 있고, 잊고 있던 기억을 다시 재생시켜 어딘가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어떤 에너지로 작용할지 알 수가 없다. 워낙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보니 라이프스타일이 자주 바뀌는 편이다. 그때마다 그냥 흘려보내는 경험이 아니라, 겹겹이 쌓아 남기기 위해 노력해 왔다. 다방면으로 잡다한 나를 정리하고 다듬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인생은 매 순간이 연습이다.” 인간적으로도, 프로로서도 좋아하는 선배가 말했다. 지금 당장 보이진 않더라도,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트여 있을 거라고 말이다. 기록은 매 순간을 잘 살고 싶은 나의 연습 방법이기도 하다. 어떤 감정을 비우고,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채워야 하는지. 생각과 마음의 근력을 단단하게 채우게 해준다. 그렇게 나는 연습 벌레이자 기록 벌레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고, 무엇을 만나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몇 년 전에 썼던 글을 꺼내보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웃다가도, 세상이 떠나가라 울던 순간들이 이젠 별거 아닌 게 되어 있다. 그런 조각들이 모여 나를 성장시켰다는 허무함과 함께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성장과 동시에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증폭 장치인 셈이다. 나에게 기록이란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자 대답과도 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시간이 갈수록 꾸준함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진다. 그 꾸준함을 근근이 지키고 있는 기록도 지겹지 않으려면, 온갖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과정이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꾸준히 IMC적으로 쌓다 보면 언젠가 체화되어 나만의 것으로 응축될 거라 믿는다.
가장 아날로그한 방식으로는 미니멀한 수첩부터 두꺼운 연습장까지 취향이 담긴 노트를 컬렉팅하며 적재적소에 맞게 분류해 쓰는 것을 즐긴다. 또박또박하게 쓴 글들과 흘려 날린 글씨체 그리고 알 수 없는 그림들. 그날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메모를 보는 재미도 있고, 시리즈물이 완성되는 듯한 기대감도 생긴다.
고전 광고와 해외 수상작 같은 영상물은 개인 유튜브 채널에, 독서 후기는 인스타그램 부계정에 아카이빙한다. 사진과 영상물을 사람들과 공유하면 다양한 반응을 통해 또 다른 자극으로 연결된다. 혼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신선한 포인트가 보일 때도 있다.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은 스마트폰 메모장에, 각종 일지는 에버노트에 정리한다. 덕분에 출처가 불분명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버퍼링도 줄어들었다. 자주 애용하는 툴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나만의 카테고라이징으로 기록하는 것을 습관화하다 보니, 어떤 것들이 쌓이는지 조금은 가시화되어 간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점점 선명해진다. 무엇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긍정적인 동기 부여를 준다. 기록은 그렇게 동력 증폭 장치가 된다.
귀로 기억하는 오늘
박수직
카피라이터 | INNOCEAN
ⓒ박수직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하루라는 시간은 어쩌면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 매일같이 그 하루를 마감하니까. 온종일 일하고 끝이 흐릿해지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참 빨라. 어제와 오늘의 유행도 달라. 잔인하다. 어느덧 올해의 절반 이상이 흘러버렸다. 속절없이 흐르는 가엾은 하루들에게, 나라도 관심을 주지 않으면 누가 기억해 줄 것인가.
기록은 나의 삶에 체화되어 있다. 업무적인 이유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늘 무언가를 떠올리고 적어서 남기는 것은 오랜 취미이자, 매일 함께하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조금은 다르게 하루를 기억하고 싶어졌다. 물론 내가 아주 사랑하는 것과 함께.
바로 음악이다. 나는 이번 생은 끝까지 카피라이터로 살고 싶지만, 평행 세계의 박수직은 록스타로 활약하고 있길 진심으로 바랄 정도로 음악을 좋아한다. 늘 24시간 곳곳을 음악으로 채워 넣는 나에게 음악만큼 좋은 기록 장치는 없다.
늘 희미하게 날아가고 놓치기 쉬운 오늘을 가장 분명하게 붙잡는 법. 하루를 시작하는 첫 음악을 기억하기로 했다. 나만의 오프닝 곡을 날마다 갱신하는 것은 하루를 끝내며 되돌아보는 것보다 훨씬 신선하고 선명했다. 오늘을 상냥하게 들여다보는 DJ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별거 없던 출근길이 괜스레 에너지가 넘치는 매일매일이 되기 시작했다.
눈을 감는다, 또 눈을 뜬다. 목을 짓누르는 에어팟 맥스의 무게를 익숙하게 견뎌내며 집을 나선다. 뇌 근육보다 목 근육이 발달한 카피라이터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뭐 하나라도 튼튼한 것이 좋겠지. 시작이 또렷해지니 하루가 더 맑아진 느낌이 든다. 기분이 좋다. 오늘은 또 어떤 음악으로 시작하고 어떻게 기억할까.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이노시안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며 마친다. “오늘 당신의 오프닝 곡은 무엇이었나요?”
오늘, 당신의 오프닝 곡은 무엇이었나요?
심혈을 기울여 매일 아침 고른 테마곡들. 멜로디는 감상이 되고 가사는 기록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을 함께한 음악들을 소개한다.
잔나비 ‘Wish’ | 샛노란 광선을 쏘면은… 까맣게 덮인 저 먹구름 보기 좋게 걷힐 거예요🎵
잔나비 덕후의 최애 곡, 밤에 들어야 제맛이지만 어둑한 이른 아침에 듣는 것도 다름없이 좋다.
실리카겔 ‘No Pain’ | No Pain, No Fail, 음악 없는 세상🎵
야근한 다음 날에도 힘이 번쩍 난다. 음악 없는 세상은 아무래도 싫다.
너드커넥션 ‘Back in Time’ | 그대를 기억해요 … 빗속에서 보여줬던 그대의 춤을🎵
있지도 않은 아련함이 몽글몽글 솟는 아침이다. 이런 하루도 괜찮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