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
Full Of Taste
확고한 취향이 공간이 될 때
인공지능의 발달로 개인의 취향에 맞춘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누구나 손쉽게 자기만의 취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것이 영양가 있는 경험 인지에 대한 물음의 답은 여전히 미지수다. 이는 공간 또한 마찬가지. 팝업 스토어의 유행을 필두로 많은 공간이 유행에 편승하고 있지만 그것이 꼭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세상의 흐름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 다움을 느끼고 싶을 때 방문하면 좋을, 취향이 집약된 공간들을 소개한다.
마시고 느끼며 숙성되는 취향
Place to Drink
ⓒ월하보이
월하보이 | @whtea_seoul
점점 빨라지는 세상, 혼곤한 마음을 잠시라도 내려둘 곳이 필요하다면 월하보이에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옛 경기고등학교 축대에 위치한 월하보이의 내부는 분주한 바깥 풍경과 달리 차분하다. 이곳에서는 사전 예약을 한 뒤 60분간 다회를 즐길 수 있는데, 차를 몰라도 상관없다. 당신을 차의 세계로 인도할 팽주(차를 대접하는 사람)가 있기 때문이다. 월하보이의 다회에서는 팽주의 안내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보이차를 경험할 수 있다. 보이차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자연 발효된 ‘생차’와 인공 발효된 ‘숙차’가 바로 그것. 그러나 차를 음미하다 보면, 두 분류는 그저 하나의 참고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보이차뿐 아니라 다도 도구까지 구매할 수 있어, 다도 세계를 위한 입문으로 안성맞춤이다.
ⓒ와인소셜
와인소셜 | @winesocial_dosan
와인만큼 유명세에 비해 음미하는 법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취향이 또 있을까. ‘도대체 좋은 와인이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 때 찾아야 할 곳이 있으니, 바로 와인소셜이다. 이곳에서는 와인을 직접 마셔보고, 구매할 수 있다.와인소셜은 ‘와인 맛은 명성이나 라벨에 있지 않다’는 일념으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한다. 와인 리스트 대신 시즌별로 다양한 테마를 선정해 그에 맞는 다섯 잔의 와인이 코스로 준비된다. 내어온 와인에는 라벨 대신 맛을 표현하는 키워드가 붙어 있는데, 소믈리에의 안내에 따라 내 취향에 맞는 와인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이 포인트. 게다가 따스한 조명과 동굴 같은 내부 구조는 누구든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해 ‘와인 바는 고급스럽다’는 인식을 바꾸고 있다.
디깅하는 재미, 생음악의 전율
Place to Listen
ⓒ사운즈굿 스토어
사운즈굿 스토어 | @soundsgood_store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AI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디깅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근거 없는 낙관적인 예감을 품고 방문한 곳에서 좋은 바이닐을 건져 올렸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널찍한 공간과 청음 시설 그리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연남동 끝자락에 위치한 사운즈굿 스토어는 음악에서 갈라져 나온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을 표방한다. 주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재즈, 솔&펑크 바이닐을 청음하고 구매할 수 있다. 바이닐을 보관하거나 틀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이들의 굿즈를 구매해 보는 건 어떨까. 굿즈에서 나아가 이들이 전파하는 바이브를 소유하고 싶다면, 종종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되는 플레이리스트를 참고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천년동안도
천년동안도 | @chunnyun.jazz
천 년 동안 지속될 재즈의 섬, 재즈 바 천년동안도의 이름이 가진 의미다. 이들이 태동했던 대학로점은 사라졌으나 낙원, 종각, 강남으로 뻗어나가 1987년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명실상부한 재즈 신의 산 증인인 셈. 천년동안도에서는 주기적으로 재즈 연주자들의 공연이 열린다. 이외에도 재즈 영화 상영 등 재즈와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이곳의 매력이다. 연주자의 색이 담긴 즉흥 연주가 원곡과 차이를 만들어 내며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것처럼, 천년동안도의 세 지점(낙원, 종각, 강남) 또한 비슷한 듯 다른 분위기를 풍겨 각 지점을 방문해 보는 것도 이곳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말라버린 영감에 충전이 필요할 때
Place to Read
ⓒ도탑다
도탑다 | @_dotopda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아내는 을지로의 한 인쇄 골목에 매거진 리딩숍을 표방하는 도탑다가 자리하고 있다. 매장 내부에는 과거 경제 호황기를 구가했던 시절부터 일본에서 발간된 빈티지 매거진들이 포진해 있다. 자리에 앉아 커피와 함께 매거진을 읽거나, 주인이 수집한 빈티지를 둘러볼 수 있다. 다양한 정보를 시의성에 맞춰 편집해 발간되는 잡지. 잘 만들어진 한 권의 잡지는 시의성을 떠나 단행본 못지않은 인사이트를 자랑한다. 도탑다를 운영하는 주인은 공간 외에도 과거 패션을 다루는 아카이브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Y2K를 표방하며 다시금 조명받고 있는 그 시절의 감성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PDF | @pdf_seoul
바쁜 업무로 말라버린 창의성, 영감을 샘솟게 할 공간을 찾고 있다면 PDF로 가보자. PDF는 사진(Photo), 디자인(Design), 패션(Fashion) 서적을 취급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포토그래퍼, 아트 디렉터, 큐레이터 등 국내외를 오가며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온 디렉터가 10년 이상 모아온 서적을 만나볼 수 있다. 내부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마음에 드는 도서를 감상할 수 있는데, 시선을 끄는 예술 서적들을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훌쩍 가 있다. 개방감을 선사하는 높은 층고와 스틸 소재의 감각적인 집기들은 이곳의 숨겨진 매력. 서점을 표방하고 있지만, 팝업 스토어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가 열리고 있으니 인스타그램 채널을 눈여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