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소(小小) 소비: 웬만해선 소비를 막을 수 없다
Writer | 문경환 브랜드인사이트팀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불황이 길어지며 소비를 줄이는 태도가 익숙해졌지만, 최근의 소비 패턴은 더 이상 ‘쓰지 않음’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소비는 줄이기보다 선택의 기준을 세우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을《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6》에서는 ‘소소(小小) 소비’로 설명한다. 이는 불황 속에서도 소비가 사라지기보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보다 신중하고 다채로운 형태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움트고 있는 소비 심리
원자재와 인건비, 임대료 상승 등으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 부담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환율 상승까지 겹치며 변동성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국내 소비자들은 경기와 시장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2025년 11월 소비자 심리지수(CCSI)가 201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인 112.4를 기록했다.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일 경우 소비자가 시장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해석하는데, 잇따른 불황 속에서도 8년 만의 최고 수치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소비 심리가 다시 활성화된 배경에는 코로나19 이후 요노(YONO)*와 무지출 챌린지를 거치며 억눌려 있던 소비 욕구가 본격적으로 분출된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불황 속 폭발하는 소비 심리는 무조건적인 소비가 아닌 실속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에 따르면 2025년 1월 ‘시즌 오프’ 키워드 검색량이 전년 동기 대비 18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가격대가 높은 겨울 의류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려는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가격 대비 효용과 만족이 소비의 핵심 기준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소비 심리는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더욱 확장된다. 한때 유행하던 ‘무지출 챌린지’가 하나의 놀이가 된 것처럼, 지금의 소비 역시 온라인상에서 놀이처럼 자리 잡고 있다. 누구보다 빠르게 신상을 소개하며 얼리어답터 이미지를 챙기는가 하면 할인 정보를 공유하며 합리적이고 똑똑한 소비자라는 이미지를 챙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더 큰 만족과 가치를 얻고, 그것이 다시 소비를 이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지점이 불황에도 소비가 멈추지 않고 활기를 띠는 중요한 이유다.
*요노(YONO): ‘You Only Need One’의 약자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실용성과 가치를 중심으로 꼭 필요한 것에 집중하는 소비 트렌드
경제 위기에 더욱 주목받는 소비 트렌드
최근 유통 업계를 뜨겁게 달군 트렌드에는 ‘듀프(Dupe)’가 빠질 수 없다. 제품 로고부터 외형까지 복제하는 가품과 달리, 듀프는 디자인이나 기능은 유사하나 가격이 현저히 저렴한 제품을 뜻한다. 국내에서는 다이소가 대표 사례로 언급된다. 다이소는 명품 브랜드 샤넬의 ‘립앤치크’와 기능이 비슷한 색조 화장품 ‘아티 스프레드 컬러 밤’을 2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출시했다. 다이소의 파격적인 가격 정책은 한정된 예산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 사이에서 더욱 각광 받았다. MZ세대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다이소는 향수, 스킨케어 제품까지 듀프 제품을 선보였고 2024년 뷰티 카테고리 매출액을 전년 대비 144%까지 상승시켰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함께 소비하는 ‘소분 모임’ 역시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소분 모임은 대용량으로 판매되는 상품을 여럿이 함께 구매한 다음, 각자 필요한 만큼 나누는 것을 뜻한다. 이는 1~2인 가구의 급증과 온라인 커뮤니티가 발달하며 더욱 활성화되는 양상이다. 이 중심에는 하이퍼로컬 플랫폼 ‘당근’이 있다. 2025년 6월 당근 플랫폼 안에서 생성된 소분 모임은 2022년 말 대비 약 21배 증가하였다. 효율적인 소비와 동시에 지역에서의 소속감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인식된 것이다. 하나의 커뮤니티 문화로 진화하고 있는 소분 모임은 경험의 즐거움을 누릴 뿐 아니라,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가치 소비의 측면도 포함하고 있어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마지막으로 주목한 트렌드는 바로 ‘1인분’이다. 1인 가구 증가와 개인화된 소비가 일상화되며 제품과 서비스의 기준이 1인분으로 재편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배달의민족의 ‘한그릇’ 카테고리다. 최소 주문 금액 때문에 원하는 가게를 이용하지 못했던 1인 소비자를 위해 5천 원~1만 2천 원대의 1인분 메뉴만 등록 가능한 전용 카테고리를 신설한 것이다. 배달의민족 한그릇 카테고리는 신설 후 70여 일 만에 누적 이용자 100만 명을 돌파하며, 1인분 시장의 잠재력을 입증했다. 식품 유통 업계는 물론 외식, 디저트 시장까지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마트와 백화점, 편의점에서는 1인 소비자를 위한 커팅 과일, 컵 과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빙수나 육회처럼 여럿이서 먹는 음식 역시 혼자서도 먹을 수 있는 양으로 출시되며 인기를 얻고 있다. 1인분 소비는 나만을 위한 소비를 전제로 하며 혼자서도 충분히 경험을 누리고 싶은 욕구를 반영한다. ‘1인분’이라는 기준은 합리성과 경험에 대한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며 유통과 외식 산업 전반의 기준을 바꾸는 축이 되고 있다.
소비 양상의 변화가 가져올 기회와 의미
듀프 소비, 소분 모임, 1인분 경제로 이어지는 흐름은 소비자들이 무조건 소비를 줄이는 대신, 합리성과 경험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적 소비로 전환했음을 보여준다. 여럿이 함께 나누며 실속을 챙기거나 오롯이 나만의 만족을 누리는 방식, 그 과정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모습까지 결국은 자신에게 맞는 가치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에게도 분명한 시그널을 준다. 단순히 가격만 낮추는 전략이 아니라, 변화하는 생활 방식과 가치관에 맞춘 정교한 대응이 요구된다. 소비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읽어내는 역량이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과감한 전략과 빠른 실행으로 입지를 다진 여러 사례들처럼, 새로운 소비 기준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하느냐가 앞으로의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경제를 넘어 생활 전반으로 스며들고 있다. 합리성과 경험을 중시하는 태도는 사회 전반의 소비 문화를 조금씩 바꾸고, 브랜드와 공동체가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까지 새롭게 제시한다. 경제 위기라는 상황에서 등장한 이 변화는 이제 일상의 습관으로 자리 잡으며 우리 사회의 소비 풍경을 한층 다채롭고 성숙하게 할 것이다. 불황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바로 ‘더 현명하게 소비하는 습관’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동력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