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대를 초월하는 인사이트가 필요할 때
Writer | 고지희 BX Lab
이노션 BX Lab에서 고객 경험과 세대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연구하고 있다.
마케터에게 세대란?
세대 개념은 마케팅보다는 사회학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은 1920년대 후반 저서《세대 문제》에서 세대와 관련한 중요한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 그는 세대를 역사적·사회적 맥락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로 정의했다. 즉, 세대란 비슷한 시기에 특정한 사건을 겪으며 고유한 문화적 코드를 형성하는 집단이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이 마케팅에서 활용되면서, ‘세대’는 코호트 기반의 개념으로 변화했다. 세대 간 공통점을 찾아 이들을 하나로 묶는 데 중점을 두게 된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가 미래 시장의 트렌드를 이끌 것이라는 기대 아래, 많은 브랜드는 이들을 열심히 정의하고 분석하며 타깃으로 삼았다.
예를 들어, 브랜드들은 민주화 운동과 외환위기,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자란 1980~90년대의 젊은이들을 ‘X세대’라 부르며 자유롭고 개성적인 이미지를 강조했고, SNS와 스마트폰을 일찍 접한 세대를 ‘밀레니얼세대’라 부르며 이들을 위한 SNS 마케팅에 주력했다. 초고속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에 익숙한 ‘Z세대’를 겨냥하여 숏폼 콘텐츠에 집중하는 등 다양한 세대별 전략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잘파세대는 핑계고
언뜻 보면 이러한 세대론은 매우 간편하다. 미래 트렌드를 이끌 집단의 공통된 특성을 찾는 것은 유효한 마케팅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한때 유행처럼 번지던 ‘MZ세대’ 담론은 단순히 ‘이해하기 힘든' 젊은 세대를 타자화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그 결과 MZ하지 못한 MZ세대는 소외되었고, 개개인의 다양하고 고유한 특성은 무시되었다.
특정 세대를 단일한 집단으로 규정하고 그 집단의 모든 특성이나 행동을 고정된 이미지로 덧씌우는 경향은 새로운 세대가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었다. 최근 MZ세대 다음으로 떠오르는 ‘잘파세대(Gen Z + Alpha)’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세대의 이면에 복합적인 사회적 맥락과 개인들의 차별화된 경험이 존재함을 염두에 두지 못했다.
세대라는 틀에 가두지 마세요
최근 미국 와튼스쿨의 마우로 기옌(Mauro F. Guillen) 교수가 자신의 저서《멀티제너레이션, 대전환의 시작》에서 언급한 ‘퍼레니얼(Perennial)’ 사고방식이 주목받으며, 세대 구분에 기반한 기존 마케팅 접근 방식에 변화가 일고 있다. 퍼레니얼은 다년생 식물을 뜻하는 단어로, 세대를 초월해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들을 비유한 것이다.
마우로 기옌 교수는 ‘교육-일-은퇴’라는 기존 생애주기를 뛰어넘어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민첩하게 받아들이며 변화를 거듭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가 확산되면서, 특정 세대에 국한된 마케팅보다 세대를 초월한 공통된 경험과 가치에 주목하는 마케팅이 요구되고 있다. 이제는 ‘어떤 세대에 속하는지’보다,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 인기 있는 콘텐츠들만 살펴보더라도, 특정 세대를 겨냥하기보다 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가 더 큰 인기를 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TV나 영화관 스크린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이른바 ‘슈퍼스타’들이 유튜브 플랫폼에 진출해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80년대에 배우로 데뷔해 활발히 활동 중인 최화정 씨는 레시피와 추천 아이템을 다루는 ‘안녕하세요 최화정이에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배우 고현정 씨도 자신의 유쾌하고 사적인 일상을 담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의 채널은 짧은 시간 안에 수십만 구독자를 돌파하며, 세대 불문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JTBC의 야구 프로그램 <최강야구> 또한 다양한 세대를 사로잡은 대표적인 콘텐츠다. <최강야구>는 전성기를 겪은 야구 선수들이 은퇴 후 다시 모여 경기를 하는 내용으로, 출연진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승리를 향한 노력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러한 내용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감대를 형성했고,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 굿즈 및 팝업스토어를 개최하며 성공적인 멀티제너레이션 콘텐츠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멀티제너레이션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대 간 공통된 가치가 무엇인가를 찾는 태도다. 특정 세대에게만 공감되는 가치란 더 드물다. 같은 세대라도 본인이 처한 상황과 라이프 스테이지(Life Stage)에 따라 이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솔직함’이란 가치를 전하는 배우 고현정 씨의 유튜브 채널, ‘승리를 향한 끝없는 노력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최강야구>의 사례처럼 다양한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전달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내 세대가 아닌 나와 연결된 브랜드
특정 연령대나 세대를 타깃으로 하기보다는 ‘가치관’으로 연결될 때 사람들은 비로소 브랜드와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다. 단순히 요즘 세대는 취향이 세분화되었다든가, Y2K 트렌드를 좋아하기 때문에 옛날 콘텐츠에 열광한다는 식의 해석은 금물이다. 소비자는 자신을 특정 세대에 묶기보다는 자신과 깊이 공감하고 연결된 브랜드를 찾는다. 브랜드는 특정 세대를 넘어서 공통된 인간 경험, 감정, 가치에 공감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때 더 큰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보다 폭넓고 다양한 소비자층을 아우를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