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O.SIGHT

Essay

아직도 가지고 있다니

Goods Boom

Experience

아직도 가지고 있다니

오래되고 낡은 물건이지만 선뜻 정리하지 못하고 간직하는 이유. 우리는 물건을 통해 '과거의 나'와 연결되기도 하고, 그때의 감정을 추억하기도 한다. 삶의 한순간과 연결된 물건은 그 자체로 고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단순히 회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준다. 이노시안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물건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완벽한 품 안의 세계

최희진
디지털이니셔티브팀

아직도 가지고 있다니 이미지

품에 뭔가를 안고 있을 때 더 잘 자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아주 어릴 때 애착 베개가 있었다. 베개가 숭숭 뚫릴 때까지 안고 다니다 엄마가 몰래 구멍 난 베개를 버렸을 땐 많이 울었다. 그 이후로는 평범하게 이불을 돌돌 말고 잤다. 그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2017년 후쿠오카를 여행하던 어느 날, 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 쿠션 코너처럼 별 볼 것 없는 동네 마트를 지나다가 그 친구를 발견했다. 나를 향해 ‘짧뚱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커다란 고양이 인형. 특별히 독특하게 귀엽지도 않은, 평범한 얼굴. 그런데 별생각 없이 끌어안아 본 순간, 완벽한 그립감에 사랑에 빠졌다.

 

백팩에도 다 들어가지 않는 인형을 굳이 여행길에 사 오는 건 정말 비효율적인 일인데도 집으로 데려와 ‘냥코’라고 이름도 붙여주고, 몇 년을 끌어안고 살았다. 냥코와 잠들 땐 뚱뚱한 쿠션만큼 만족감도 뚱뚱해졌다. 내 몸에 맞춰서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안고 있으면 뭔가 완벽했다. 잃어버린 적도 없는 무언가를 다시 찾은 것처럼 품속이 완전했다.

 

그러다 이젠, 냥코를 안고 잠들지 않는다. 내가 냥코를 안고 자는 걸 질투하던 한 사람 때문에 냥코의 자리는 품속에서 발치로 추락했다. 이제는 딱히 그 질투를 신경 쓸 필요 없게 됐지만, 내 사랑이 죽는 사이 냥코의 푹신함도 죽어버린 탓에 영 예전 같지 않은 사이가 됐다. 그래도 냥코를 버릴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친구가 집에 놀러 오는 날에는 베개랑 이불도 덮어서 침대에 예쁘게 전시해 두곤 한다.

 

아무리 어른스러운 척 행동해도, 냥코를 끌어안고 있으면 어리광을 부리는 기분이 들었다. 다 큰 성인이 큰 인형을 끌어안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 생각해 보면 늘 알아서 잘하기 위해 바빴던 것 같다. 한 사람 몫을 다하고 살기 위해선 너무 큰 노력이 필요한 사회니까.

 

그런데 손톱만큼의 빈틈도 없게 냥코를 간절히 끌어안고 보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밤, 냥코 손바닥을 주물럭거리며 나누던 친구들과의 대화들, 괜히 냥코를 뚜들기며 화풀이했던 소중한 사람과 싸웠던 날까지. 그런 날들이 지나서 이제는 진짜 조금 어른이 된 것 같다. 어쩌면 냥코를 안고 자지 않게 된 건, 쿠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부족함이 줄어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애를 버리지 않고 예쁘게 침대에 눕혀둘 때가 있는 건, 지금의 완전함과 별개로 지나간 내 어리고 미숙한 시절도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내 일부이기 때문일지도.


 

쓸모없지만 쓸모 있는 것들

박소영
글로벌미디어기아팀

아직도 가지고 있다니 이미지 

“Less is more.” 단순함 속에서 더 큰 가치를 찾는다는 말은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다. 꼭 미학적 개념이 아니더라도,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낼수록 본질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은 꽤 매력적으로 들린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을 오래도록 동경해 왔지만, 정작 나는 미니멀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물건을 버리면 불안해지고, 하염없이 그리워하느니 전부 짊어지고 사는 맥시멀리스트, 그게 바로 나다. 여행지에서 받은 입장권이나 영수증 같은 꾸깃꾸깃한 종이류는 물론이고, 선물 포장을 감싸고 있던 리본조차 쉽게 버리지 못한다. 누군가(이를테면 나의 어머니)는 그런 물건을 ‘쓰레기’라 부르며 버리라고 종용하지만, 물건에 의미가 더해지는 순간 보물이 되어 쉽사리 버리기 어렵다.

 

나한테 가장 소중한 물건은 외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전해 내려온 미놀타 필름 카메라다. 비록 고장 난 카메라지만, 절대 버릴 수 없는 보물 1호 중 하나다. 스무 살이 막 되었을 때 이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도쿄로 떠났다. 작동 여부도 불확실하고 사용법도 잘 모르는 필름 카메라를 챙긴 건 무모한 일임이 분명했지만, 스무 살의 패기였을까? 그냥 다 괜찮고, 멋진 사진을 찍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여행 내내 돌덩이 같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정성스레 촬영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필름을 맡기기 위해 사진관으로 달려갔다.

 

결과는 처참했다. 초점은 전부 흐트러지고, 그야말로 망한 사진 대회에 출품할 만한 사진들이었다. 심지어 이 어리숙한 사진들을 끝으로 카메라는 생을 마감했다. 전문 수리 업체에 맡겼지만, 부품이 단종되어 고칠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아 ‘사진을 찍는 기기’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었다.

 

돈과 시간을 앗아간 카메라가 처음엔 야속했지만, 돌이켜보니 오히려 소중하게 느껴졌다. 카메라가 남긴 어설픈 사진들은 한편으론 나의 스무 살과 닮아 보여 애착이 갔다. 전원이 켜지지 않는 카메라를 가만히 바라볼 때면, 오래전 소중한 순간들을 필름으로 기록하셨던 할아버지와 그 카메라로 사진을 배웠다는 어머니 이야기가 떠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미는 더욱 깊어졌고, 이제는 가장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시간의 흔적이 스며든 물건에는 바라볼 때마다 떠오르는 감정과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는 본래의 쓸모를 잃은 물건을 쓰레기라 칭하겠지만, 이런 물건들은 나에게 존재 자체로 쓸모가 된다. 쓸모없지만, 쓸모 있는 것들은 내가 느끼는 감정과 의미로 차곡차곡 쌓여 나를 맥시멀리스트로 존재하게 한다.


 

나를 재생시킨 카세트 테이프

박성민
카피라이터

아직도 가지고 있다니 이미지

열다섯 살. 한 달 새 1cm씩은 자라던 무렵이다. 키만 자라줬으면 얼마나 기특했을까 싶지만, 뭐가 급했는지 중2병은 1년 앞당겨 나를 찾아왔고, 반항심은 키만큼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투팍 샤커(Tupac Amaru Shakur). PC통신 하이텔 흑인음악 동아리에서 알게 된, 미국의 전설적인 래퍼. 활짝 웃을 때 드러나는 새하얀 치아가 매력적이었고, 그 틈새로 새어 나오는 무자비한 욕설은 치명적이었다. 핏대 세워 불만을 쏟아내는 쇳소리는 나를 매료하기에 충분했다. 밤낮없이, 두어 개 앨범을 돌려 듣기 시작했다. 욕 말고는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찌는 여름날, 이모님 댁으로 가는 차 안에서였다. 나는 조수석에서 라디오 대신 투팍의 테이프를 넣어 들었고, 그 순간부터 투팍이 뭐가 그렇게 좋냐는 질문과 함께 아버지의 묵직한 회유책은 시작되었다. 20년 넘도록 교단에서 영어를 가르쳐 온 그에게, 현란한 욕설들은 한 구절 한 구절 선명하게 들렸으리라. 음악의 박자만큼, 아비의 심장도 불안함으로 쿵쾅댔으리라. 이모님 댁에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은 되었을까, 누구 하나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지만, 누구 하나 물러서지도 않았다.

 

여름이 한풀 꺾일 때쯤, 책상 위에 생소한 카세트 테이프 하나가 놓여 있었다. “The Rose That Grew From Concrete.”라고 적힌 앨범 옆엔 작은 쪽지도 있었다. “투팍 사망 4주기를 맞아서, 여러 아티스트들이 투팍이 직접 쓴 시(Poem)를 낭독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앨범이라고 함.” 정도의 건조한 설명문. 앨범은 서정적이었고, 비판과 욕설은 없었다.

 

이 카세트테이프는 잃어버려선 안 되는 그 사람의 마음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라는 응원이었고, 사랑하는 너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누군가의 진심은, 그 마음을 전하기까지의 무수한 고민도 전부 한 세트다. 열다섯, 나의 앳된 반항심은 그렇게 1년을 채 못 가고 생명력을 잃었다.


Search
검색어 입력
뉴스레터
구독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