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AI가 만드는 새로운 놀이 문화
Writer | 이지은 리서치인사이트팀
숫자 너머의 감각을 읽고, 그 안의 가능성을 해석한다.
최근 온라인 콘텐츠의 기준은 누가 더 기발하고, 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할 수 있느냐에 맞춰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러한 황당한 상상은 AI 기술을 활용해 이미지나 음성으로 구체화되며, 콘텐츠를 넘어 놀이로 확장되고 있다. 상어를 닮은 강아지, 꿀을 부은 키보드, 나이키를 신은 고래처럼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상상들이 AI를 통해 시각과 청각으로 펼쳐지고,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고 웃고, 따라 하고, 변주하며, 놀이의 영역을 끊임없이 넓혀간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AI는 단순히 상상을 구현하는 도구를 넘어, 상상에 형체를 부여하고, 그 형체가 다시 새로운 상상으로 이어지도록 자극하는 창의의 매개체이자 확성기가 된다. 놀이 역시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만든 세계관을 바탕으로 함께 상상하고 표현하는 열린 행위로 바뀌고 있다. 상상이 콘텐츠로, 콘텐츠가 다시 새로운 상상의 출발점이 되는 이 순환 구조 속에서 AI는 ‘창의성의 파트너’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보법이 다른 디지털 네이티브의 상상
AI를 만나 문화가 되다
Z세대가 주도하는 창의성의 흐름은 이전 세대와는 결을 달리한다. 이들은 더 이상 정교하거나 완성도 높은 결과물에만 매료되지 않는다. 오히려 낯설고 기이하며, 때로는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요소들의 조합에 끌린다. 이상한데 웃긴 상상에 몰입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감각으로 자리 잡았고, 이를 밈이나 챌린지로 변주하며 공유하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AI 생성형 콘텐츠를 통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트랄랄레로 트랄랄라’ 콘텐츠는 무의미한 문장을 AI 음성으로 합성하고, 기괴한 캐릭터에 촌스러운 편집과 과장된 효과음을 더해 ‘Italian Brainrot’이라는 독특한 유행을 만들어냈다. 카푸치노가 담긴 커피잔이 머리인 ‘발레리나 카푸치나’, 세계관 최강자인 방망이 ‘퉁퉁퉁퉁퉁퉁퉁퉁퉁 사후르’, 바나나 속 초록 침팬지인 ‘침판지니 바나니니’ 등의 캐릭터는 사람들 손을 거쳐 새로운 세계관으로 확장되거나 굿즈로 재생산되며, 하나의 놀이로 자리 잡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확산된 ‘가상 ASMR’ 콘텐츠 역시 주목할 만하다. ‘키보드에 꿀을 부으면 무슨 소리가 날까?’ 같은 무의미하지만 끌리는 상상들이 AI를 통해 시각과 청각으로 구체화되고, 실현 불가능한 행동들이 감각 자극 콘텐츠로 소비되며 새로운 놀이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기이한 상상력을 구현하는 데, 생성형 AI 툴의 접근성 강화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복잡한 기술 없이 몇 마디 텍스트만으로 상상이 이미지와 소리로 형태를 갖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Z세대에게 상상이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공유하고 변주하는 감각의 놀이에 가깝다. AI는 이 창의성에 즉각적인 구현력을 더하며, 상상의 실험성과 표현 범위를 확장시키는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나의 상상으로 시작된 콘텐츠
모두의 놀이가 되다
콘텐츠를 대하는 감각이 달라졌다. 예전처럼 정보를 얻기 위해 콘텐츠를 정리해 소비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콘텐츠는 완성된 정보가 아니라, 상상을 자극하고 반응을 유도하는 ‘열린 형태’로 소비된다. 사람들은 콘텐츠를 단순히 보는데서 멈추지 않고, 그 안의 상상력을 받아들이고, 따라 하고, 변주하는 방식으로 놀이에 참여한다. 한 번 보고 지나치는 정보가 아니라, 다시 만들고 싶은 감각, 함께 공유하고 싶은 재미가 콘텐츠의 핵심 가치가 되고 있다. 특히 숏폼은 짧은 러닝타임과 반복 가능한 구조, 몰입감 있는 편집으로 놀이의 확산을 가속화하고 있다. AI 기반 캐릭터나 음성 콘텐츠는 밈(meme)화되며 유저 간의 자발적 놀이 규칙을 만들어내고, 하나의 콘텐츠가 커뮤니티 전체로 확장되는 흐름을 만들어 낸다.
그 흐름은 실험적 콘텐츠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김밥 위로 용암이 흐르고, 고기가 젤리처럼 반짝이는 AI 이미지가 화제가 되자, 일부 먹방 유튜버들은 이를 실제 재료로 구현하는 콘텐츠를 선보였다.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을 넘어, 기이한 상상을 인간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구현하는 시도다. AI가 먼저 던진 이미지에 인간이 다시 응답하고, 그 결과는 또 다른 상상을 자극한다. 콘텐츠의 무게 중심은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떤 상상을 어떻게 구현했느냐’에 놓인다. 표현이 목적이 아닌 놀이의 수단이 되고, 상상을 구현하는 행위가 콘텐츠의 본질이 된다.
이러한 창의의 순환은 오프라인에서도 이어진다. 요즘 술자리에서는 AI가 게임 마스터 역할을 한다. 슈퍼맨 모드를 입력하면 누군가가 하늘로 날아가고, 경찰 모드에선 친구가 연행된다. 황당하지만 실감 나는 장면이 현실 공간 위에 펼쳐지면, 모두가 그 낯선 상상에 반응하고 웃으며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상상은 이제 개인의 머릿속에서 멈추지 않고, AI의 기술적 구현을 통해 눈앞에 펼쳐지고, 사람들 간의 놀이로 이어진다.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다. 기이하고 유쾌한 상상이 AI와 만나 형체를 갖고, 그 형체가 또 다른 상상을 낳는 이 상호작용의 흐름이야말로 지금 콘텐츠가 진화하는 방식이다.
상상을 일로 연결하는 AI
광고 업계의 창의성을 확장시키다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을 시각화하고 실현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 AI는 크리에이티브 업계에 전에 없던 무기를 쥐여줬다. 광고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아이디어는 이제 텍스트 몇 줄만으로 이미지, 사운드, 모션의 형태로 구현된다. 이는 곧 ‘상상을 증명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하며, 아이디어의 전달력과 설득력을 결정짓는 프로토타입 제작 과정이 빠르고도 풍부하게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AI는 단순한 생성 도구를 넘어, 새로운 감각과 조합을 실험하는 창의적 파트너로 기능하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조합, 기이한 제안 속에서 AI는 상상력의 촉발점이 되며, 인간은 그 제안들을 다듬고 방향성을 부여한다. 기술과 감각의 접점을 탐색하는 이 협업 속에서, 상상은 더 이상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다. 기획자, 디자이너, 카피라이터, 모션그래퍼가 협업하듯, 이제 AI도 하나의 팀원처럼 브레인스토밍의 일부가 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상상력이다
AI는 상상력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상상이 구체적인 형체를 얻도록 돕고, 그 형체가 다시 새로운 상상을 자극하도록 매개하는 존재에 가깝다. 이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과 AI는 서로의 창의성을 증폭시킨다. 특히 요즘 세대에게 놀이는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게 아니라, 각자가 만든 세계관 안에서 함께 상상하고 표현하는 ‘열린 행위’다. 그리고 이 열린 창작의 장에 AI가 자연스럽게 개입하면서, 상상의 과정과 결과 모두가 더 확장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AI를 도구처럼 활용하며 상상을 콘텐츠로, 콘텐츠를 다시 새로운 맥락의 언어로 풀어내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그 실험이 브랜드의 메시지가 되기도 하고, 업무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AI는 창의적 상상을 빠르게 시각화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도우며, 결과물의 완성도보다는 ‘상상하는 힘’에 주목하게 만든다. 결국 중요한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놀잇감 삼아 상상할 줄 아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창의성은 그런 태도 속에서 자라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