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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블링 게임이란 무엇일까?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등 각종 자기 성향 유형화 테스트가 급격히 유행하는 것을 ‘레이블링 게임(Labeling Game)’이라고 한다. 레이블링 게임이란 자기 정체성에 특정화된 유형으로 레이블을 붙인 뒤 해당 유형의 라이프스타일을 동조하고 추종함으로써 정체성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게임화된 노력을 말한다. 이번 칼럼에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정의하고자 하는 문화 트렌드와 더불어, 이를 마케팅에 활용한 예시와 전망에 대해 살펴본다.
왜 MZ세대가 MBTI에 열광할까?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의 MBTI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뿐더러 전문가처럼 분석하기도 한다. 왜 이토록 MBTI에 열광하는 것일까. 첫째, MZ세대는 자아와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욕망이 크다. 또한 소속감의 욕구도 커서 같은 성향 또는 잘 맞는 성향의 사람들과 교류하려고 한다. 둘째, 검사가 쉽고 간단하여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무료 검사 링크가 뜨고 검사 시간은 10~15분 정도로 빠르게 할 수 있다. 또한 성격 유형에 대한 특징과 강점, 약점을 살펴볼 수 있어 이를 내 실제 성격과 비교해 보고 같은 유형을 가진 사람들끼리 동질감을 느껴 다양한 대화 소재를 만들 수 있다. 셋째, 인간의 다양한 성격을 16가지로 나누어 놓았기 때문에 처음 만난 경우라도 MBTI를 알면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가령 처음 만난 어떤 사람의 MBTI가 ENFP라고 한다면, 나는 4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그가 열정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상대방의 성격을 미리 이해하고 그에 맞게 대할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MZ세대는 약 1,700만 명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4%이고, 국내 근로자의 60%를 차지할 만큼 핵심층으로
자리를 잡았다. MZ세대가 전체 구성원의 절반이 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MZ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기업과 경영진의 다양한 시도가 늘고 있다. 전체 임직원의 60%가 MZ세대인 C사는 최근 경영진이 MBTI 검사를 받기도 했다. MBTI 유형으로 자신의 자아를 인식하고 타인의 유형을 궁금해하는 MZ세대의 특성을 이해하고 소통의 계기로 삼기 위해서다. 회사 측은 검사에 그치지 않고 경영진에 MBTI 결과에 기반해 자신을 돌아보고 구성원들과의 소통 방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코칭북을 지급했다. 실제로 경영진은 구성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호응을 얻는 등 MBTI 기반의 코칭이 MZ세대 임직원들과의 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고 느끼고 있다.
MBTI를 활용한 마케팅에는 무엇이 있을까?
제주맥주는 지난 4월 편의점 GS25와 손잡고 MBTI를 활용한 신상 맥주 ‘맥BTI’를 선보여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맥BTI는 총 4종으로 출시됐고 캔 양면에 ‘E-I’, ‘N-S’, ‘F-T’, ‘P-J’ 등 각각 다른 알파벳과 함께 알파벳별 성격을 표현하는 멘트도 적혀 있어, 4캔을 조합하면 개인의 성격을 나타내는 한 문장이 완성되는 재미 요소도 갖췄다.
의류업계와 호텔업계도 레이블링 게임을 활용한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애슬레져(애슬레틱+레저) 브랜드 뮬라웨어는 MBTI를 적용한 ‘퍼스널 애슬레저 웨어 컬렉션’을 내놨다. 성격 유형에 따라 ‘탐험가형·관리자형·외교형·분석형’ 등 4가지 카테고리로 나눠 16가지 운동복 패션을 제안하는 콘셉트로 기획됐다. MBTI 유형별 맞춤 호캉스 패키지도 나왔다. 워커힐 호텔앤리조트는 내향형과 외향형을 각각 대표하는 ‘ISTJ’와 ‘ESTJ’에 맞는 여행 패키지를 구성했다. 내향형인 ‘I’유형 고객에게 추천하는 ‘플랜 포 유(PLAN FOR YOU)’는 사우나와 웹툰 대여 서비스가 포함돼 있고, ‘E’유형에게는 ‘두잇 유어 웨이(DO IT YOUR WAY)’ 패키지를 추천해 다양한 액티비티와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호캉스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최근 금융권이 경쟁적으로 MZ세대의 고객 영역 확대에 나서면서 시중 은행뿐 아니라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까지 마케팅에 MBT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MBTI 검사 인증기관과 제휴해 ‘MBTI 정식 검사 쏠게!’ 이벤트를 시행했다. 또한 MBTI 검사 결과와 더불어 자세한 유형 특성 설명을 담은 자기발견보고서도 고객에게 함께 제공한다. NH농협은행도 MBTI를 소재로 한 경품 이벤트에 나섰다. 증권업계도 다양한 영역에서 MBTI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삼성증권은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MBTI별 다양한 투자 대응 상황을 보여주고 전문가 조언을 얻는 방식의 예능 버라이어티쇼 ‘MBTI 투자토크쇼’를 선보였다. NH투자증권의 경우 지난해 공개한 브랜드 디지털 플랫폼 ‘투자가 문화로’를 통해 ‘투자성향 MBTI 진단’을 콘텐츠로 선보인 바 있다.
유형화 테스트 열광,
언제 시작되었고 언제까지 갈까?
MBTI는 국내에 도입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본격적인 붐이 인 건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초중반부터다. 코로나19가 MBTI 확산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대면 접촉이 줄어든 상황에서 SNS를 통해 급속히 퍼진 MBTI는 2030세대가 자신을 표현하는 코드임과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는 도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성격의 단점이 아닌 장점에 집중해 가능성을 보려는 특징 때문에, 틀림이 아닌 다름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과 맞물려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고객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흥미 위주 마케팅을 넘어 무리하게 MBTI가 적용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모 은행의 경우 MBTI를 직원 채용 과정에 적용해 논란을 빚었다. 올해 상반기 공개채용 자기소개서에 ‘자신의 MBTI 유형 및 장단점을 소개하라’는 항목을 넣은 것이다. 이에 온라인상에서 가벼운 심리 테스트 정도로 유행하고 있는 MBTI를 공식적인 채용 절차에 적용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MBTI를 활용한 마케팅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모 경영학 교수는 “과거 혈액형 마케팅이 잠깐 유행했던 것처럼 요즘엔 MBTI 마케팅이 인기인데 이러한 유형화 마케팅은 일시적인 효과밖에 낼 수 없다”며 “MBTI의 경우 기분에 따라서 하루에 몇 번씩도 변할 수 있어 신뢰도가 떨어지고 진정성을 찾기 어려워 장기적인 트렌드로 활용될 수는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MBTI 열풍이 3년째인데,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기업들의 MBTI 마케팅이 더해져서
열기는 쉽게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MBTI가 언제까지 갈지 예측하기 위해서는 트렌드 관련 기본 용어 5가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트렌드와 비슷하지만 의미가 조금 다른 용어들이다. 먼저 마이크로 트렌드(Micro-trend)가 있다. 이는 3개월 이내 또는 수시 변화를 나타내는 말이다. 둘째는 패드(Fad)다. 패드는 1년 이내 변화를 표현하는 단어다. 셋째가 트렌드(Trend)다. 트렌드는 3~5년의 변화를 나타내는 용어다. 넷째는 메가 트렌드(Mega-trend)다. 메가 트렌드는 10년 정도 지속되는 변화를 나타내는 말이다. 마지막 다섯째는 문화로 번역되는 컬처다. 문화는 30년 정도 연속되는 변화를 표현한다. 필자가 보기에 MBTI는 패드를 넘어섰고, 트렌드 또는 메가 트렌드로 가고 있다. MBTI를 트렌드로 보면 5년 정도인 2025년 정도까지 지속되고, 트렌드를 넘어 메가 트렌드가 된다면 2030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본다. MBTI 테스트를 필두로 꼰대 레벨 테스트, 대학교 학과 테스트, 샌들로 성격 테스트 등 다수의 자기 진단 테스트가 인기를 끌며, 자신의 성격 유형을 분석해 인증하는 과정이 유행하고 있다. 테스트 결과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게임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이러한 유행이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도 있다. 각 개인과 기업들이 MBTI를 맹신하기보다는 장점을 잘 활용하고 단점들을 보완해서 MBTI가 건전한 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