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SG Revolution
Is Coming
ESG의 현재, 그리고 미래
Writer. 김재필 수석연구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비즈니스스쿨WBS에서 MBA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국내 통신기업 경제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코로나 이코노믹스》, 《한국형 4차 산업혁명의 미래》, 《ESG 혁명이 온다》 등이 있다.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ESG’가 경영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수많은 기업들이 사내에 ESG 부서를 신설하고, 환경 및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기존의 사회공헌 활동과는 달리,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 차원에서 교통, 주거, 환경 등 글로벌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솔루션을 만들고 전사적 차원에서 추진한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혁신적 미래 사회 조성을 위해 *UNDP와 함께 ‘for Tomorrow’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데, 세계 각계 구성원들의 집단지성을 모아 솔루션을 만들고 이를 현실화하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방식으로 진행되어 기업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한다. 태양광 가로등(나이지리아), 그린 에너지 모빌리티(네팔), 리얼 아이스(영국) 등이 대표적인 ESG 솔루션이다.
*UNDP(UN Development Programme): 유엔개발계획
ESG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앞 글자를 딴 약자로 기업의 비非재무적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다. 투자 대상을 선정할 때 재무제표나 현금흐름 같은 금전적 이익뿐만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 투자하겠다고 만든 기준이 바로 ESG다. ESG 투자의 주된 목적은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성과의 기회와 위험 요인을 식별해 위험 조정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재무 연관성 여부에 따라 ESG 항목을 평가하고, 공익적 가치 실현이 아닌 고객 혹은 수익자의 투자 수익 극대화가 목적이다. 불확실성이 높아져만 가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환경, 사회, 지배구조라는 전방위적인 리스크에 얼마나 잘 대응하고 지속적으로 경영을 이어갈 수 있는지가 ESG의 핵심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알려진 *CSR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CSR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업의 이해 당사자들이 기대하고 요구하는 사회적 의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수행하는 활동이다. 반면, ESG는 투자자가 요구하는 비재무적 성과 측정 지표다. CSR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기 위한 활동을 경영에 통합하는 것’이다. 즉 기업이 자발적으로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함과 동시에 거버넌스에 관한 정보를 정해진 지침에 따라 공개한다. 하지만 ESG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자 관점에서 바라본 사회적 책임이다. 투자를 하려면 정량적 지표도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ESG 활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계량화·정량화된다. 이것이 CSR과 ESG의 결정적 차이다. CSR은 비즈니스를 책임감 있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ESG는 그 노력을 측정 가능하도록 하게 한다. 기업이 직원을 대우하고, 공급망을 관리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다양성과 포용성을 높이고, 커뮤니티 연결을 구축하는 모든 활동들이 정량화되면서 ESG 등급과 지표로 산출되는 것이다. 경영 전략 측면에서 본다면 CSR은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ESG는 리스크가 없고 기회 요인을 잘 찾는 건강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CSR이 경영 성과에 대한 사회적 배분을 중시한다면, ESG는 성과뿐만 아니라 성과 창출의 과정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중요시한다.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
예를 들어 환경 영역에서 CSR은 제품 및 서비스의 원재료, 조달, 가공, 생산, 유통, 폐기 단계 전반에서 일반적인 시장 기준 대비 유한 자원을 얼마나 절약했는지, 또는 자연에 유해한 오염 물질을 얼마나 줄였는지를 파악한다. 이는 ESG에서도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ESG는 기업 전략, 프로세스, 투명성까지 전반적으로 본다.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리스크에 대응하는 전략이 있는지, 중요한 환경 정보를 투명하게 공시하고 관리하는 체계가 있는지, 환경영향 관리를 하는지 등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는 투자자에겐 매우 중요한 정보로, 블랙록 등 대다수 투자기관들은 기업 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환경 정보를 산업 내 비교가 가능하도록 구체적으로 관리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 보고서의 작성 기준도 다소 차이가 있다. CSR은 *GRI 표준에 맞춰 보고서를 작성한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란 기업이 환경과 사회 문제에 책임을 다하겠다는 계획을 담은 보고서를 뜻한다. ESG는 GRI 표준에 더해 *TCFD 및 *SASB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최근 들어 많은 투자기관들은 ESG에 대한 공시정보로 TCFD와 SASB 보고서를 요구하고 있다. 난립해 있는 ESG 평가기관들의 평가 등급보다는 비재무적 요소들을 재무 성과와 연동시킨 객관적인 공시정보를 통해 보다 정확한 ESG 평가를 하겠다는 취지다.
그렇다고 해서 CSR과 ESG를 양분화하여 CSR을 과거의 개념으로 치부해 폐기처분하고 ESG만을 중시하는 식의 경영 전략은 옳지 않다. CSR과 ESG는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지, 기업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지향점은 동일하다. CSR은 엄밀히 얘기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기업의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이다.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를 정의하고, 기업과 이해관계자 간 지속가능한 상호 공존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해관계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책임의 깊이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화·발전해 가고 있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내세운 ESG가 등장하였다. 그러니 CSR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경영에 잘 적용해 온 기업이라면 ESG 경영 역시 잘할 것이다.
다만 ESG는 투자자들이 내세운 투자 지표로써 기업가치와 재무적 안정성에 방점을 찍다 보니, 사회· 환경적 의미를 추구하는 데 몰두한 나머지 실적을 내지 못해 투자자들의 압박을 받는 이른바 ‘ESG 딜레마’가 발생하기도 한다.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전 세계에 통용되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국제기구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
*SASB(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Board): 지속가능 회계기준 위원회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최대 식품 기업 다논Danone이다. 다논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각종 친환경 방침을 세우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공익 추구를 강조하는 등 ‘ESG 경영의 교본’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그러나 코로나 직격탄을 맞으면서 2020년 이후 1년 반 사이 주가는 20% 넘게 하락하고, 매출은 7% 줄어드는 등 실적 부진이 이어졌다. 대조적으로 경쟁사인 네슬레는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발 빠른 재고 관리 및 신선 배송, 유기농 식품 개발 등으로 실적과 주가를 높여 다논의 부진은 더욱 두드러졌다. 결국 2021년 3월 다논의 주요 주주인 행동주의 펀드들이 7년간 회사를 이끌어 온 에마뉘엘 파베르 CEO에게 퇴출 압박을 가했고 그는 사임하게 된다. 또,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GPIF 역시 2017년 이후 ESG 관련 지수에 3조 5000억 엔(약 35조 원)을 투자했는데, 수익률이 일본 토픽스 TOPIX 지수보다 저조해지면서 “환경이나 ESG라는 명칭 때문에 수익을 희생할 수는 없다.”며 ESG에 한 발 물러서는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ESG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정한 일정 수준의 수익률이 지켜지지 못하면 언제든지 ESG에서 발을 뺄 수 있다. 환경과 사회, 투명성과 공명정대도 중요하지만 투자자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나 수익률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의 관심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기업들도 ESG 경영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ESG는 한때의 트렌드로 끝나버릴 것이다. 하지만 ESG는 한순간의 트렌드로 사라질 정도의 가벼운 개념이 아니다. 오염된 지구를 살리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망가진 세계 경제를 회복시킬, 그리고 배금주의拜金主義로 비뚤어진 자본주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마지막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면 인류와 지구는 영원히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놓일지도 모른다.
ESG는 투자자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경영 활동은 기업이 하지만, 그 결과는 온전히 소비자의 몫이다. 기업이 탄소 배출로 대기를 오염하면 소비자들은 마스크를 사서 써야 한다. 공장 폐수로 물이 오염되면 소비자들은 역시 정수기를 달거나 생수를 사서 마셔야 한다(이를 비용의 외부성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과 투자자뿐만 아니라 소비자 역시 ESG에 관심을 갖고 기업이 제대로 ESG 경영을 하고 있는지, 진정성 없는 ESG 선언만 한 것은 아닌지를 잘 보고 판단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경을 오염하고 소비자를 속이고 먹거리에 장난을 치는 등 옳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기업들이 존재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기업에 ESG를 요구하고, 개인 투자자도 기업에 투자할 때 ESG 경영을 면밀히 파악해서 ‘돈쭐(돈으로 혼쭐을 낸다는 의미)’을 내야 한다. 투자기관들이 발을 빼더라도 소비자들이 요구해 기업들이 계속해서 ESG에 관심 갖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기준으로 구매를 하는 MZ세대는 기업의 ESG 경영에 진정성이 있는지, 이중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지를 매의 눈으로 지켜본다. 진정성이 있는 기업은 적극적인 구매와 홍보로 응원하지만, ‘쇼잉’에 불과한 기업에 맞서는 불매 운동으로 저항한다. 이것이 바로 ESG 기준에 근거해 구매 활동을 하는 ‘ESG 소비’다. ESG 소비가 늘어나면 해당 기업의 실적과 주가는 상승하고, 기업들은 ESG 등급 올리기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위한 진짜 ESG 경영을 하게 된다. 대중의 가치 소비, 가치투자가 이루어지면 기업의 실적과 주가도 올라간다. 이런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고 ESG 경영을 하는 기업이 많아지면, 사회도 국가도 건강해진다. ESG는 자본주의의 중심이 ‘돈’에서 ‘사람’으로, 그리고 ‘사회와 지구’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자 기준이다. 이것이 우리가 ESG에 관심을 갖고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