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좋은 답을 위해
다시 묻는 일
문제는 처음 주어진 문장 그대로 풀리지 않는다. 어떤 질문으로 바라보는지, 불편한 피드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누구의 문제로 다시 좁혀 보는지에 따라 답의 방향은 달라진다. 더 정확한 방향을 찾기 위해 문제의 모양을 다시 살피는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본다
데
WRITER
홍성혁 ECD
아이디어 브리핑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순간은 ‘데’가 등장한 이후다.
늘 가장 중요한 말은 언제나 ‘데’ 다음에 시작된다.
“다 좋은데.”
“말은 되는데.”
“재미는 있는데.”
“신선하긴 한데.”
문제는 늘 그 뒤에 숨어 있다.
‘데’는 참 반갑지 않은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싫다.
칭찬을 예고하는 것처럼 등장하지만 사실은 문제를 호출한다.
긴장을 불러오고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같은 회의에 앉아 있었는데도 각자가 꺼내는 ‘데’는 전부 다르다.
누군가는 재미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정보 전달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브랜드를 이야기한다.
신기한 건 모두 같은 아이디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디어는 하나인데 문제는 여러 개가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어렵고,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쉽다.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새롭고,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익숙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아이데이션의 시작이다.
사실 각각의 ‘데’ 다음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면서 원래 취지를 지켜 나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모순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더 진지했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더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동시에 나온다.
그럼 진지하면서 가벼운 것을 만들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을 몰입시키면 된다.
제품을 더 길게 노출하길 바라는 의견과 제품이 짧고
임팩트 있게 등장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동시에 나오면
제품을 사고 싶게 만드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해결하면 된다.
이처럼 개별 문제를 모두 모은 후 합쳐서 하나의 문제로 만드는 일.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는 것.
나는 이것을 문제와 문제의 물리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이라고 생각한다.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서 물이 되는 것처럼.
이렇게 ‘데’를 통해 문제는 재정의되고 진짜 심각한 문제가 무엇인지 찾을 수 있게 된다.
오늘도 내일도 수많은 회의가 잡혀 있다.
그리고 그 회의 내내 ‘데’를 만나게 될 것이다.
여전히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다.
아이디어를 객관화하고 허점을 찾는 과정에서 ‘데’만큼 유용한 것도 없다.
“다 좋은데….”
라고 말하는 순간보다
“다 좋아요.”
라고 말하는 순간을 경계해야 한다.
이건 문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문제를 못 찾은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좋은 말에 안심하지 말고
‘데’ 다음에 이어질
듣기 싫은 말에 귀를 기울이자고 다짐한다.
좋은 질문이 답을 바꾼다
WRITER
류현준 브랜드솔루션팀 팀장
몇 년 전 로리 서덜랜드(Rory Sutherland)의 TED 강연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오길비(Ogilvy)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광고인이자, 행동경제학의 관점으로 사람들의 선택과 인식을 이야기해 온 인물이다. 처음에는 광고에 대한 흥미로운 강연 정도로 보기 시작했지만, 그가 소개한 유로스타 사례는 이후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유로스타의 문제는 단순해 보였다. 런던과 파리 사이를 오가는 시간을 더 줄이는 것. 일반적으로 이런 문제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해결책은 속도를 높이는 일이다. 더 빠른 열차를 만들고, 더 좋은 선로에 투자해 실제 이동 시간을 줄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를 조금 다르게 보았다.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것이 정말 ‘긴 시간’인지, 아니면 그 시간을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끼는 경험인지 다시 물은 것이다.
그 지점이 인상적이었다. 문제를 ‘얼마나 빨리 도착하게 만들 것인가’로 정의하면 답은 막대한 인프라 투자와 속도 개선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동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로 정의하면 답은 달라진다. 꼭 시간을 줄이지 않더라도, 그 시간을 더 즐겁고 가치 있게 만드는 방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도 어떤 질문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문제가 되고, 전혀 다른 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문제를 정의한다는 것은 결국 좋은 질문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질문을 만들면 답은 쉬워진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질문은 멋진 문장이나 새로운 표현을 찾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정말 바꿔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더 빨라져야 하는 문제인지, 덜 지루하게 느껴져야 하는 문제인지가 달라지는 순간, 이후의 전략과 해결책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전략 업무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만난다. 광고주의 과제는 대체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싶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싶다,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는 식의 단순한 문장으로 주어진다. 문장만 보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해 보이지만, 그대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답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전략의 일은 주어진 요구에 곧바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요구가 실제로 어떤 문제에서 출발했는지 확인하는 데서 시작된다. 같은 과제 안에도 시장의 변화, 소비자 인식, 경쟁 구도, 브랜드가 축적해 온 자산, 내부 이해관계자의 기대가 함께 얽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하나의 문제처럼 보이는 과제도 다른 방식으로 구조화해 보면, 처음과는 다른 질문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데이터는 이때 중요한 단서가 된다. 데이터 분석이 중요하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데이터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의외로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는다. 데이터의 가치는 결과를 확인하는 데만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인식을 흔들 때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브랜드는 기술력을 강점이라고 생각했지만, 소비자는 신뢰를 더 중요하게 볼 수 있다. 광고주는 새롭다고 생각한 메시지를 소비자는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사람들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 선택 상황에서는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어긋남은 단순한 예외가 아니라, 문제를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신호다.
특히 AI와 함께 일하는 것이 일상에 가까워진 지금, 질문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AI는 매우 빠르게 답을 만들지만, 질문이 모호하면 답도 모호해지고, 질문이 잘못되면 그럴듯하지만 엉뚱한 결과가 나온다. 앞으로 전략 업무에서 더 중요해지는 역량은 많은 답을 만들어내는 능력보다, 어떤 답이 필요한지 정확히 묻는 능력에 가까워질 것이다. AI가 답을 빠르게 제시할수록 사람에게 남는 역할은 답이 향해야 할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일이 된다.
결국 좋은 문제 정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정리하는데서 멈추지 않는다. 더 많이 알려야 하는 문제인지, 다르게 기억되어야 하는 문제인지, 소비자의 선택 이유를 만들어야 하는 문제인지, 브랜드의 역할을 다시 정리해야 하는 문제인지에 따라 전략의 방향은 달라진다. 좋은 질문은 이 방향을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좋은 전략은 좋은 답을 먼저 내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좋은 질문을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 문제를 다르게 묻는 순간,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답도 달라진다.
AE의 문제
WRITER
김종찬 BX4본부1그룹 그룹장
“사람에게 있어 위대한 것은 그가 하나의 교량이라는 것, 목적이 아니라는 것.”
-프리드리히 니체
정말로 문제 삼을 문제인가
원고 청탁을 받고 보니 AE와 문제는 비슷한 처지 같다. 위 인용구의 뒤를 잇는 문장, “사람에게 있어 사랑받을 만한 것은 그가 과도기이자 파멸하는 과정이라는 것”에서 ‘사람’을 ‘AE’ 혹은 ‘문제’로 바꾸면 그럴싸하다. AE에겐 문제란 그 자체보다는 건너편에 ‘해결’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문제가 현상을 건너 솔루션이 될 때 기획의 임무는 소멸한다. 해결할 수 있는 걸 고민하자. 인간으로서 이런 태도는 편협하다. 그러나 AE로선 윤리다. 동료들이 고민하는 문제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솔루션도 없다. 회사와 동료들의 귀한 리소스가 낭비된다. 그래서 문제를 생각할 때 첫 단추는 문제 같지 않은 문제를 제거하는 것이고, 해결할 가치가 없거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빠르게 ‘킬’한다.
적절한 답의 틀을 갖춘 구체적 문제인가
‘인간을 오랫동안 지상에 묶어놓은 것은 중력의 법칙이 아닌 상상력 부족’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 날지 못한다는 현상은,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불가피한 제약이 될 수도 있고 해결 가능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해결 가능한 문제는 해결 가능한 답의 틀을 포함한다. ‘왜 날지 못하는가?’보다는 ‘날기 위해 필요한 조건 중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해결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의 일은 인사이트에서 시작한다. 인사이트는 허공에 있지 않기 때문에 종종 ‘Why’라는 삽을 들고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는 땅을 파 내려간다. ‘Why’라는 삽은 매우 유용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이유는 원인과 다르고, 원인은 복잡하여 종종 묘사조차 어렵고, 아는 것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또 다르다. 위대한 진리는 간명하지만 매번 발견되지는 않는다. 종종 문제 창조와 묵시록적 해결의 유혹이 온다. 하지만 우리를 구원하는 건 예뻐 보이진 않아도 적절한 답의 틀을 갖춘 구체적인 질문이다. ‘Why’가 막힐 땐 ‘How’로.
누구에게 문제인가
참된 자아 찾기가 시대의 화두다. MBTI와 정신병리학의 과잉 생산을 자아의 진공상태가 지탱한다. 그러나 문제 인식에 있어서는 정반대의 자아가 등장한다. 비즈니스에서 다루는 문제는 당사자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빙의’하려 하는데 자아는 가로막는다. 나는 상상 이상으로 나답다. 우리가 객관적이기 어려운 것은 자아에 중독된 우리가 일종의 마비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자기 중독으로 마비된 감각은 우리를 호도한다. 내가 편안하다고 느끼는 설명이나 논리는 어쩌면 치명적으로 위험할지도 모른다. 나의 스스로에 대한 적응에 균열을 내는 ‘탈합치’가 필요하다.
어떤 광고주가 있었다. 뛰어난 기술력에 국가 경제 기여도 엄청난 큰 회사인데 사람들이 우리를 모른다는 점을 문제로 생각했다. 조사 결과 열에 일곱은 그런 내용을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었다. 그게 문제였을까? 광고주의 오랜 고민일 뿐 대중에겐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충분히 알려졌으나 대중에겐 여전히 소원한 것이 문제이니 그 문제를 해결하자고 방향을 바꿔 탄생한 것이 요즘도 가끔 소환되는 SK하이닉스 캠페인들이다.
진리가 가는 길이 방법이다
말이 길었지만 결국 ‘도처에 오류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자’가 전부다. 그릇된 길을 몇 가지 거론할 수 있을 뿐 성공 공식을 논하는 건 주제넘은 일이다. 문제를 제대로 알아보는 것도 이러할진대 해결로 가는 길은 또 얼마나 고단할까. 고단한 길을 가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문장을 스피노자에게 빌어왔다.
진리는 이미 우리 안에 있고 진리가 가는 길이 방법이니 방법론은 진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우리가 만약 올바른 문제를 안고 성실히 가고 있다면 당장은 방법을 모른다 할지라도 문제의 올바름이 해결로 인도하지 않을까. 문제를 고민한 시간이 고될 수 있으되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