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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음(無音) 매장, 침묵을 찾는 사람들
ⓒ카페침묵 (출처 : 카페침묵 인스타그램)
최근 휴대폰을 포함한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사람들 간의 대화를 허용하지 않는 무음(無音) 매장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이동 중에도 디지털 기기를 항상 손에서 놓지 못하는 디지털 네이티브로 살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무음(無音) 매장은 매우 낯설고 불편할 법도 하지만, 이색 경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부상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무음 매장에 대해 알아보고, 어떤 이유로 많은 이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는 지 알아보자.
디지털 디톡스 카페, <욕망의 북카페>
ⓒ욕망의 북카페 (출처 : 욕망의 북카페 인스타그램)
역삼동에 자리잡고 있는 ‘욕망의 북카페’는 21년 오픈 당시에는 기존의 다른 북카페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이용객들이 노트북이나 휴대폰으로 인해 독서에 몰입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23년 5월 디지털 디톡스 카페로 전환하였고, 이후 더 큰 화제를 얻으며 방문객이 늘어났다. 이용객들은 본인의 휴대폰을 금고 형태의 보관함에 제출한 후 카페 이용이 가능하며, 카페를 나서기 전까지는 어떤 이유로도 되돌려 받을 수 없다. 노트북이나 태블릿 PC 등의 디지털 기기도 엄격한 제한 속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운영 초기 휴대폰이 없는 상황에 어색함이나 불안감을 표현하는 이용객들이 있기도 했지만, 책과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할 수 있고 휴대폰으로부터의 해방감을 얻었다는 등의 호평을 이끌어내며, 현재 평일과 주말 모두 웨이팅이 발생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반드시, 조용히, 쉴 수 있는 <카페 침묵>
ⓒ카페침묵 (출처 : 카페침묵 인스타그램)
서대문구에 위치한 ‘카페 침묵’은 카페 운영자 본인이 평소 가지고 있던 ‘휴식을 위한 카페’에 대한 필요로 인해 탄생한 곳이다. 카페 운영자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조용히 책 읽는 걸 가장 좋아하는데 옆자리 손님에 따라 그날의 카페가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침묵 카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카페를 열게 된 배경을 소개했다. 카페를 처음 이용하는 사람을 위해 마련된 이용안내서에는 카페 이용규칙과 주문 방법이 자세히 적혀 있다. 주문과 계산할 때를 제외하고, 귓속말을 포함한 일체의 대화는 카페 내에서 금지된다. 휴대폰이나 노트북은 무음 모드로,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조용히 사용해야 한다. ‘휴식을 위한 완벽한 무소음의 공간’을 지향하는 카페 주인장의 노력은 카페 내 곳곳에서 엿보인다. 클래식 고음악에 최적화된 오디오를 세팅해서 잔잔한 음악을 틀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전동 그라인더 머신 대신 수동 그라인더를 사용해 직접 원두를 갈아내고 있다. 매장 내에서는 일체의 대화를 금하지만, 매장 내 비치된 방명록을 통해 이용객들은 같은 공간 속에 얻은 경험을 공유하며 느슨한 교감을 나눌 수 있다.
혼술뮤직바, <인현골방>
ⓒ인현골방 (출처 : 인현골방 인스타그램, 네이버 예약 페이지 )
을지로에 있는 칵테일바 ‘인현골방’은 대화 금지 술집이다. 메뉴 주문과 음악 신청은 카카오톡 메시지나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주인장 부르기 없기’는 기본 룰이고, 함께 방문한 일행끼리도 카카오톡이나 귓속말로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대부분의 술집이 시끌벅적한 회포를 나누는 장소로 이용되는 것에 반해, 이곳은 술과 함께하는 사색의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분리된 개개인 좌석과 테이블이 있고, 대형 스크린을 마주보고 있는 구조라 함께 온 일행이 있든 없든, 옆에 앉은 타인과 따로 또 같이 술과 음악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이색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물론, 혼자 술을 마시고 싶지만 집에서는 적적하고, 일반 술집에서는 남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내며, 현재 서울을 포함하여 부산, 대구, 인천, 제주 등 전국 12개 지점이 운영되고 있다.
무음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SNS와 숏폼 중독을 벗어나기 위한
‘탈 도파민’ 장소로 각광
보통 15초, 길어도 1분 이내의 숏폼을 보다 몇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는 고백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SNS와 숏폼의 범람으로 염증을 느낀 사람들 사이에서 도파민 중독과 집중력 상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며, 디지털 디톡스의 일환으로 무음 매장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짧고 강력한 쾌락에 익숙해질 수록, 더 강렬한 자극만 찾아다니다 스스로 자제하기 힘들어진 사람들이 반강제적으로 중독에서 벗어나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탈 도파민’의 장소로 무음 매장을 찾는 것이다.
초연결 시대,
사회적 관계의 과부하로부터의 피난처로 활용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해 오늘 날 우리는 언제, 어느 곳에 있든 타인과 연결되어져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로 인해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이 놓이게 되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주의원이 퇴근 후나 휴일에 직원에게 연락하는 고용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비단 업무 상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인간관계와 SNS 소통 과잉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사람을 상대하고 싶지는 않지만, 옆에 머무르는 것은 허용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적 단절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고자 하는 욕구가 적절히 충족되는 무음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향후에도 그 시장이 점점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노션 리서치인사이트팀 황선영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