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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의 재발견, 텍스트힙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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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의 재발견, 텍스트힙

책 읽기가 Z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며, ‘글자’를 뜻하는 ‘텍스트’와 ‘멋있다, 개성있다’라는 뜻의 ‘힙하다’가 합쳐진, ‘텍스트힙’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영국 매체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Z세대의 독서 열풍으로 2023년에 6억 6,900만 권의 책이 팔리며 역대 최고 판매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서는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서점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며, 텍스트힙 열풍이 더욱 거세어졌다.

 

Z세대는 본인이 읽고 있는 책이나 책을 읽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 SNS에 올려 인증한다. 틱톡에서 ‘#booktok’을 검색하면 본인이 읽은 책을 추천하는 3,000만 건이 넘는 영상을 볼 수 있고, 인스타그램에는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책추천’ 등의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들이 수백만개가 게재되어 있다.

 

독서에 대한 Z세대의 관심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확장되었다. 올해 6월 열렸던 서울국제도서전에 15만명이라는 사상 최대 인파가 몰렸으며, 도서전을 찾은 관람객 중 20대와 30대의 비중이 각각 45%와 28%로 나타나, 텍스트에 대한 젊은 세대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읽는 것을 넘어 텍스트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

Z세대가 텍스트를 즐기는 것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텍스트를 쓰고, 듣고, 기록하는 등 텍스트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즐기고 있다.

 

연필로 쓰는 손글씨보다 키보드로 작성하는 문서가 더 익숙한 Z세대에게 ‘필사’가 텍스트를 즐기는 방식 중 하나로 주목받았다. 필사는 책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감명 깊은 부분을 손으로 직접 베껴 쓰는 것으로,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설현이 자신의 취미로 소개하면서 더욱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음악을 감상하듯 텍스트를 함께 읽고 듣는 ‘낭독회’도 힙한 문화로 자리잡았다. 올해 초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를 운영 중인 코미디언 문상훈이 출간한 에세이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을 기념해 열린 사운드 낭독회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에세이는 출간 직후 교보문고 종합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낭독회 영상은 공개 3일 만에 조회수 17만 회를 기록했다. 책 출간을 기념한 유명인의 낭독회 뿐만 아니라, 홈파티나 호캉스에서 서로 작성한 편지를 읽어주는 ‘편지 낭독회’도 Z세대의 새로운 놀이 문화로 등장했다.

 

텍스트를 ‘기록’하는 것도 텍스트힙의 일환으로 즐기고 있다. 소비, 운동 등 일상의 다양한 활동을 텍스트로 기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특히 일기 쓰기를 취미로 삼는 Z세대가 증가하였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진행하는 ‘주간일기 챌린지’는 매년 100만 명 넘게 참여할 정도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텍스트를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는 SNS라는 점에서 블로그는 Z세대의 힙한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텍스트힙 열풍으로 인기를 끈 핫 플레이스

종이책을 읽는 경험이 적었던 사람들에게 서점을 방문하는 것은 더욱 낯설고 신선한 경험일 것이다. 책을 구입할 일이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구입하더라도 대부분 인터넷서점에서 구매하여 집으로 배송받는 것에 익숙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서점을 포함하여, 텍스트힙 열풍으로 Z세대에게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곳들을 만나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운영하는 독립 서점, <책방 오늘>

‘책방 오늘’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작가 한강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독립 서점이다. 작가와 함께하는 메아리 낭독회, 독서 모임과 글쓰기 워크숍, 공연 등 텍스트와 관련된 다양한 모임을 제공한다. 서점 내 진열된 책 중 ‘비밀의 책 꾸러미’는 제목이나 표지가 보이지 않도록 포장된 책에 해당 도서의 인상 깊은 구절 하나만 쓰여 있는 책이다. 책의 제목이나 대략적인 정보도 모른 채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책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함께 제공하는 것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어른들의 편지 가게, <글월>

‘글월’은 ‘편지’를 뜻하는 순우리말이자, 편지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잡지사 에디터가 만든 편지가게 ’글월’에서는 옛날 우표, 편지지, 만년필 등 편지와 관련된 다양한 소품을 판매한다. 편지를 직접 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모르는 이에게 편지를 쓰고 펜팔함에 넣어두면 다른 사람이 쓴 편지를 가지고 갈 수 있는 ‘펜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손글씨 서평과 자체 제작 굿즈가 있는 북카페, <당인리 책발전소>

아나운서 김소영이 운영하는 ‘당인리 책발전소’는 1층은 자체 큐레이션한 책들을 파는 서점, 2층은 카페로 운영되는 북카페이다. 당인리 책발전소만의 도서 베스트 10 목록을 매주 공개하고, 책마다 추천사를 손으로 직접 써서 붙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책 이외에도 노트, 다이어리, 북커버, 북백 등의 책발전소 자체 제작 굿즈가 Z세대 독서인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Z세대는 왜 텍스트에 열광하나?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하루 평균 OTT 시청 시간은 70분으로 전연령대의 평균 시청 시간인 56분을 훌쩍 뛰어 넘어, 가장 OTT 이용 시간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기기와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성장한 Z세대에게 OTT, 유튜브, 숏폼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익숙한 일상이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끊임없이 재생하는 영상 콘텐츠에 피로감을 느낀 이들이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책을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 텍스트힙이 트렌드로 떠올랐다.

 

대세에 따르기 보다는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 싶은 Z 세대의 역트렌드 추구 성향도 텍스트힙이 부상하는데 한 몫 했다. 카세트테이프, CD 같은 아날로그 매체가 Z세대에게 다시 각광받는 것처럼, 종이책을 읽는 것이 남들과 다른 문화를 소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주류의 힙함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Z세대는 SNS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담은 사진과 글을 공유하며, 자신을 브랜딩하는 데 익숙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책읽기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구와 맞물려 트렌드로 자리잡았다는 다소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독서 인증이라는 순수한 의도 너머에, 교양 있는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지적 허영과 자기 과시의 목적이 담긴 이미지 브랜딩의 고급 소재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텍스트힙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들이 엇갈리는 속에서, 누군가는 텍스트힙이 일시적인 바람처럼 스쳐지나 갈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텍스트힙이 긍정적인 영향력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소설가 황석영은 최근 한 방송에서 “책을 ‘있어 보이는’ 목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올바른가?”라는 질문에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책 읽기는 운동과 같다. 작은 아령부터 시작해 근육을 키우듯이 독서력도 마찬가지”라고 답하며 텍스트힙의 긍정적인 영향력에 힘을 실어주었다. 책읽기를 통해 디지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본인의 관점과 생각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는 Z세대의 건강한 자기 표현 방법으로 오랫동안 지속되는 트렌드로 남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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