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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소비’의 다양성
올해 최고의 화제작인 ‘야놀자’ 광고를 성공시킨 이노션 내 드문 여성 리더로서 20여 년의 광고 경력을 가진 조성희 그룹장은 이제 시각을 넓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양말 프로젝트’와 검은 개 입양을 위한 ‘블랙독 캠페인’ 등 사회를 향한 새로운 소통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ITNERVIEWEE
조성희 그룹장ㅣINNOCEAN
Q. 진행해 오신 프로젝트들에 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오랫동안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광고를 진행했고, 유니클로와 대한항공도 클라이언트로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최근 프로젝트로는 야놀자와 참이슬, 요기요 광고가 있고요. AE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기획자’라고 불리고 싶습니다.
Q. 야놀자 광고가 꽤 큰 성공을 거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야놀자와는 지난해부터 파트너십을 맺고 캠페인을 진행 중인데, 패러디가 넘치고, '수능 금지곡’에 꼽힐 만큼 화제가 되더라고요. (웃음) 야놀자와 함께 온라인 기반 오프라인 서비스 업체인 요기요 광고도 비슷한 맥락에서 전개해가고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새로운 업종이 생기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기술과 서비스가 엇비슷해지기 때문에 자기다움을 분명히 가지는 ‘브랜딩’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두 업체 모두 치열한 경쟁 상황 속에서 경쟁사와 분명하게 구분되는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브랜드를 차별적으로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히, 야놀자는 상품이나 서비스 측면에서 명확한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광고를 통해 브랜드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전달하고 싶었고, 브랜드가 한번 각인되면 자연스럽게 소비자가 앱과 접촉하면서 차별적 상품이나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소비자에게 강하게 각인시킬 방법을 고민하던 중, 가장 단순하지만 중독성 있는 춤과 멜로디를 반복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반복하는 멜로디는 이미 사람들이 충분히 알고 있어 친근한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 하에,아이들 세계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영어 동요 ‘포니테일’의 배경 음원을 활용해 춤과 가사를 얹어 이를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Q. 이 광고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인데, 제작 과정은 어떠셨나요?
결국 광고는 많은 사람의 협업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거기에는 광고회사의 기획과 제작뿐 아니라 광고주와의 파트너쉽도 포함됩니다. 이번 광고를 제작하면서 다시 한번 파트너에 대한 이해와 존중,함께 고민하고 좋은 솔루션을 내려는 광고주와의 팀워크가 얼마나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야놀자 이수진 대표님은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분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광고 제작 과정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항상 명확한 가이드와 함께 신뢰를 주셔서 자연스레 브랜드에 대한 팬으로서 더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 '가치 소비’와 ‘착한 소비’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가치 소비는 다양성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저마다 스스로가 여기는 가치의 의미가 다를 수 있잖아요.”
Q. 기존에 오랫동안 진행하신 현대카드 같은 광고와는 사뭇 다른 스타일이긴 합니다.
야놀자는 제가 진행했던 기존 프로젝트들과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브랜드에 대한 책임감, 좋은 광고에 대한 고민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다르다고 볼 수 없습니다. 늘 광고를 만들면서 경계하는 것은 ‘해당 브랜드에 대해 우리처럼 오랫동안 준비하고 연구한 입장에서 소비자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과 소비자가 듣고 싶은 것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야놀자의 광고처럼, 소비자는 광고를 통해 무언가를 설명 듣거나 설득당하기보다 즐겁게 가지고 놀고 싶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소비자의 눈높이를 잘 맞춘 광고로 분명한 효과를 입증한 만큼 앞으로 저의 광고에 대한 고민도 이런 맥락에서 이어질 것 같습니다.
Q. 일반적으로 광고 스타일에 따라 그에 맞는 팀원 구성이 정해지나요?
전에는 본인의 색깔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광고를 진행하든 자신만의 스타일이 나와야 한다고 말이죠. 그런데 최근 들어 브랜드마다 처한 상황이나 니즈가 다른 상황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담당하는 광고인의 역할로 보았을 때 각자의 개성보다 ‘유연성’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돼요. 유연성이란 원래의 형태로 돌아오는 탄성뿐 아니라 찰흙처럼 가해진 힘에 따라 형태가 변하는 ‘소성’이라는 것도 있죠. 다양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게 그때그때 좋은 결과를 내려면 이제 이 소성이라는 부분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렇게 다변화된 세상에서 어떤 과제에도 똑같이 본인의 스타일로 돌아오는 게 아닌, 브랜드나 상황에 맞는 형태로 언제든 유연하게 변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그룹장님은 처음부터 광고 업계에 계셨나요?
광고 회사에 취업하기 전 다른 분야의 회사에도 잠시 있었습니다. 사실 기자가 꿈이었거든요. 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며 학보사 활동도 열심히 했었죠. 당시에는 정의감에 넘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하지만, 기자의 꿈을 접고 대기업을 거쳐 광고 대행사인 금강기획에서 광고의 첫발을 내딛게 됐습니다. 광고 역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기자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Q. 이번 호 주제가 ‘개념 소비’인데요, 평소 이에 대한 관심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고, 모두가 광고 회사의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합니다. 저 역시 지금의 방식을 고집하는 게 맞는 것일까 하는 고민을 계속하게 되고요. 광고라는 업의 본질을 생각하다 보면 결국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광고주의 고민을 해결해내는 것이 브랜드와 소비자를 원활히 연결하는 것이라면, 사회의 여러 문제를 풀어내는 것 또한 광고인의 새로운 역할이 될 수 있죠. 그런 측면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점자 양말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여성분이 문에 부딪히는 것을 보고 놀라 확인하니 시각장애인이셨어요. 의상이나 메이크업 등 외적인 것으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거든요. 그 이후 시각장애인들은 본인의 옷을 어떻게 코디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마침 유니클로를 담당하고 있기도 해 시각장애인들이 컬러를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고민해 보기도 했고요. 그러다 아예 맹인 학교를 찾아가 인터뷰를 했는데, 이후 팀원들과 양말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됐어요. 양말은 짝을 맞춰야 하는 아이템이잖아요. 보호자가 없으면 양말조차 고르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이후 패션 양말을 제작하는 아이헤이트먼데이 홍정미 대표를 만나 이를 상의했고 점자 양말 제작을 실행할 수 있게 됐죠.
Q. 기존 업무 이외의 일이었기에 실행하기 역시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아이디어보다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 역시 실행하지 못하고 생각에만 머무는 상황이 매년 반복됐고, 이제는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죠. 혼자서라면 못했을지 모르지만, 뜻에 동참해 준 팀원들과 좋은 파트너 분들, 또 이런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신 회사 경영진 덕분에 가능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에요.
Q. 이와 비슷한 프로젝트를 계속 구상 중이신가요?
‘점자 양말 프로젝트’뿐 아니라 검은 개 입양 프로젝트인 ‘블랙독 캠페인’을 진행하며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여전히 사회 풍토가 이러한 것들에 쉽게 열리지 않았다는 것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프로젝트들이 실제 판매에서 큰 성과를 냈다고 보기엔 어렵거든요. 그렇다 보니 이러한 프로젝트들을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더 알릴 수 있을지 또 좋은 브랜드들과는 어떻게 협업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하는 문제들에 대해 고민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착한 소비’, '개념 소비’ 등 '가치 소비’와 엇비슷한 단어가 혼재돼 사용되는 것도 같아요.
‘가치 소비’와 ‘착한 소비’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가치 소비는 다양성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저마다 스스로가 여기는 가치의 의미가 다를 수 있잖아요. 제 경우엔 디자이너의 철학이나 브랜드의 지향점이 공감될 경우, 해당 브랜드 충성도가 생기는 편이에요. 그럴 때면 가격에 대한 고민은 잠시 내려두는 편이고요. 그런 것들이 착한 소비와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어요. 취업, 학업 등으로 인정받던 과거에 비해 오늘날은 자신을 증명하고 인정받을 기회가 더 약해진 만큼 SNS를 통해 이런 인정을 갈구하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브랜드를 입는지, 무엇을 먹고 있는지... 등등이요. 나만의 소비 행태, 취향이 자신을 표현하는 창구로서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가치 소비란 다양성, 즉 개성과 연결된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Q. 가치 소비를 잘할 수 있는 그룹장님의 노하우가 있다면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먼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자기 취향이나 관점에 대해 생각하고 그에 맞는 제품을 사려고 하는 것. 이런 모습은 꽤 성숙한 소비 행태라고 볼 수 있어요. 맹목적으로 남이 사는 것만을 따라 하기보다 나란 사람에 대해 한 번쯤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요. 오가닉한 삶을 추구하는지, 화려한 삶을 지향하는지 말이죠. 사실 한 번에 그것을 찾기란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해볼 수밖에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방법을 통해서요.
Q. 가치 소비는 왜 필요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이에요. 유행을 좇아 삶을 산다면 그것은 진정한 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생은 '나로 살아가는 것’이잖아요. 결국 주어진 삶을 살고 행복을 꾸려야 하는 것도 나인데, 나를 찾는 것에 대한 경험이 숙달되지 않았을 때 공허하지 않을까요?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취향을 갖고 있다면 그 삶은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거예요. 소비 행태라는 것도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죠.
Q. 가치의 중요성을 아는 이가 늘고 있음에도 여전히 자극적인 광고가 주를 이루는 듯한데요.
디지털 매체를 예로 든다면, 광고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는 이를 미친 듯이 웃기거나, 펑펑 울려야 한다고 말하곤 해요. 요즘의 소비자들은 더 단발적인 것을 원하는 만큼, 광고를 만들 때도 스킵 되지 않도록 자극적인 방법을 찾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가치의 중요성을 알리는 콘텐츠 제작이라는 측면에서 브랜드들의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제가 진행했던 채널 현대카드의 ‘인스피레이션 토크’는 브랜드가 세상에 영감을 전파하는 가치 있는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던 프로젝트로 기억에 남습니다.
Q. 현재 가지고 계신 고민이 광고주의 요구 측면에서 조금 충돌할 여지도 있어 보이네요.
그래서 점자 양말이나 블랙독 같은 프로젝트가 제게는 일종의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의 과제로서가 아닌 자발적인 프로젝트로서 ‘가치’를 따라 나만의 무기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측면이 있으니까요.
Q. 최근 관심 있게 바라보는 소비 트렌드가 있나요?
요즘 대부분 브랜드가 ‘일상’을 말하고 있죠. 미래, 비전을 말하던 과거와 달리 현재, 순간, 일상을 말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행복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다른 것에서 얻기 어렵기 때문에 그 경로가 ‘나’로 바뀌고 있다고 보입니다.
Q.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신다면요.
'책임감’을 강조하고 싶어요. 우리가 만드는 광고는 대중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넓게 퍼지고 그 파급력이 큽니다. 그만큼 광고를 보는 사람들에 대해 또 담당하고 있는 브랜드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죠. 또 하나는 ‘프라이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광고인으로서의 자부심 말이죠. 물론 이 자부심은 그냥 있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치열하게 고민하고 좋은 결과를 시장에서 얻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