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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에너지의 원천
컨텐츠플래닝팀 이주명이 밝은 미소를 띄며 스튜디오로 들어오자, 그녀 특유의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본업은 물론,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와 취미 활동을 즐기며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그의 원동력이 궁금해졌다.
INTERVIEWEE
이주명 Lee, Joo-Myung 컨텐츠플래닝팀ㅣINNOCEAN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CCC Contents Creative Center서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고객 경험 플랫폼과 콘텐츠를 기획하는 이주명입니다. 브랜드의 철학과 메시지를 고객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전략을 수립하고, 가장 적합한 형태의 콘텐츠를 기획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Q. CCC 조직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빠른 속도로 산업의 영역이 융합되고 고객의 니즈가 다양해지면서 새로운 고객 경험에 대한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증대되고 있는데요. CCC는 이러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BTL Below The Line 기반의 고객경험 개발을 목적으로 컨텐츠 플래닝, 컨텐츠디자인, 컨텐츠비즈니스 3개의 팀으로 만들어진 조직이에요. 저희 구성원들은 컨설팅, 전략, 프로모션, 공간/전시, 디지털 콘텐츠, 커머스 등 다양한 영역의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어요. 덕분에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한 고객경험 콘텐츠를 기획할 수 있어요. 지금은 롯데컬처웍스 신규 스페셜관 리뉴얼, 두바이엑스포 한국관 전시운영 사업 등을 진행 중이고요. 대표적인 결과물로는 제주항공 인천공항 라운지, 마포애경타운 홍대복합역사 직원공용 공간, 기아자동차 BEAT360 등의 신규 상설 공간과 콘텐츠를 기획, 조성했고요. 또 삼성동 WTC 무역센터 명소화 마스터 플랜 수립, 현대자동차 미래표준 고객대응 서비스 모델 개발과 같은 컨설팅 업무도 수행했습니다. 최근 코엑스 외부 대형전광판과 별마당도서관이 생기게 된 배경에도 CCC가 있는 거죠. 뿐만 아니라 이노션의 BTL 역량을 활용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BTL 분야는 업무 범위가 넓고 각 전문영역이 세분화되어 있어요. 주로 CCC가 독자적으로 업무를 하는 편이고, 브랜드 익스피리언스 본부, 컨텐츠캐스트 본부와 협업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Q. BTL 기반의 고객 경험 솔루션을 기획하는 일이 주 업무라고 들었는데요, 정확히 어떤 업무인가요?
저희의 업무 범위가 넓고 결과물의 형태가 매번 달라서 한마디로 설명하기 쉽지가 않은데,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기억을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브랜드가 고객에게 어떻게 기억되어야 할지 전략을 수립하고, 가장 매력적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오프라인에서의 고객 경험을 설계하는 거죠. 왜 이러한 플랫폼과 경험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설득하고요. 고민 끝에 나오는 결과물들은 공간, 전시/디지털 콘텐츠, 서비스 등 정보 전달을 넘어 고객이 경험을 통해 감각으로 브랜드를 기억하게 하는 것들이에요. 신차 발표회, 모터쇼 등 BTL 기반의 고객경험 콘텐츠를 만드는 브랜드 익스피리언스 본부와 역할의 차이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CCC는 ‘클라이언트 에게 가장 필요한 플랫폼과 경험을 찾는 과정’에 조금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관점에서의 접근을 필요로 하는 상설 공간 개발, 서비스 구축 등 컨설팅 단계에서 시작하는 과업이 많아요. 클라이언트가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도록 방향성 수립 작업부터 참여하기 때문에 해당 프로젝트 결과물이 실체화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입니다.
Q. 업무에 요구되는 필수 역량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뻔한 이야기 같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클라이언트 설득을 위해 생각을 구조화하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디어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기준은 내가 아닌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예요. 소비자의 행태가 점점 세분되어가는 지금은 더더욱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이해를 해야 하죠.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는 보이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감각으로 느끼고, 기억에 남아야 하므로 경험을 통해 클라이언트와 소비자가 ‘교감’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연애할 때처럼 상대방을 알아야 하죠. ‘저 사람은 어떤 걸 좋아하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웃지? 나의 어떤 면을 좋아하지?’ 같이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 처럼 소비자의 행동을 항상 관찰해야 해요. 그래야 어떤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지 클라이언트에게 자신 있게 제안할 수 있으니까요.
Q. 그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시간이 꽤 지나긴 했지만, 기아자동차 BEAT360을 꼽고 싶어요. BEAT360은 CCC에서 초기 기획부터 공간 디자인, 설계, 시공, 전시 및 디지털 콘텐츠까지 모두 담당한 복합 체험 브랜드 공간이에요. 저는 디지털 콘텐츠 부분을 담당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애정을 많이 쏟았던 콘텐츠는 서라운드 미디어 존이었어요. 비정형 와이드 스크린을 통해 기아 자동차의 브랜드 비전 영상을 송출하기로 했는데, 무게감 있는 영상보다는 소프트하게 커뮤니케이션 하자고 방향을 잡았어요. 대부분 차량 구매를 고려하고 있는 성인을 위한 콘텐츠로 구성하고 있었는데 미래의 고객인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와 아빠가 스팅어를 타고 우주를 여행해서 동화책 속 어린 왕자를 만나는 내용으로 스크린과 턴테이블을 이용해 놀이기구 타듯이 연출해서, 영상으로 차량의 특장점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죠. 5분 길이의 8K 영상을 CG로만 제작하고, 서라운드 효과를 살리고자 50인 오케스트라와 BGM 녹음을 하러 다니기도 했고요. 프로덕션팀과 사심을 담아 제작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웃음) 이제는 제 손을 떠난 프로젝트이지만, 지금도 종종 카페를 이용하러 가기도 하고, 차량을 보러 방문하기도 해요. 개관한지 3년 되었는데, 기대와 조금은 다르게 브랜드와 고객이 이용하는 모습을 보며 지금도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어요. 초기 기획방향처럼 오랜 시간 사랑받는 공간이 되려면 무엇을 보강해야 할까, 이전에 조성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이었나 등등 숙제를 줘서 제겐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 프로젝트 같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린 다른 프로젝트와는 조금 의미가 다르네요. 아! 여름이 되었으니 BEAT360 방문하시면 꼭 스미스티 카페에서 밀크티 빙수를 드셔야 해요. 고품격 빙수 맛집이에요!
Q. 현재 롯데시네마 신규 스페셜관 리뉴얼을 담당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업무를 진행 중이신가요?
지난해 롯데컬처웍스와 이노션이 MOU 롯데시네마의 공간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데요. 영화관이야말로 새로운 고객 경험을 필요로 하는 공간이라, 롯데시네마의 스페셜관에 대한 검토와 새로운 콘셉트 개발이 필요했어요. 작년 하반기에 신규 스페셜관에 대한 방향성과 콘셉트 제안을 했는데 긍정적인 피드백이 있었고, 지금은 당시 제안에 따라 새롭게 조성될 신규 스페셜관을 위한 경험 콘텐츠를 이성규CD팀과 함께 준비하고 있어요. 영화관은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상업시설이라 마케팅 목적의 브랜드 시설과는 또 다르게 풀어 내야 하더라고요.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코로나19 발병으로 예상 일정보다 미뤄졌어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앞으로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이 급변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라는 행동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이미 영화를 감상하는 방법이 다양화되고 있으니 영화관에서의 경험과 자극이 좀 더 복잡하고 고차원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덕분에 어떤 경험을 준비해야 할지 클라이언트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프로젝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직 말씀드릴 수 없지만, 영화관이 개관되면 다시 한번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Q. 고객 경험 플랫폼과 콘텐츠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매 순간 너무나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어요. 브랜드를 소비자의 기억에 각인되게 하려고 광고캠페인을 만들고 노출도를 최대화하는데 이와 동시에 일부 소비자는 광고를 보지 않으려 서비스 플랫폼에 돈을 내기도 하고요. 소비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가 봇물처럼 쏟아지니 아무리 잘 만든 캠페인일지라도 소비자의 기억에 남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앞서 저는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기억을 만든다고 말씀드렸는데요. BTL 캠페인은 고객이 자발적으로 브랜드 체험을 희망해서 현장을 방문하죠. 방문을 결심하는 순간부터 경험의 시작이에요. 브랜드와 제품을 경험하면서 그 순간의 시간이 지나면 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잊혀질 수도 있지만 그 공간에서의 기억과 이미지는 남아요. 노출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각인의 깊이는 다르죠. 결국 브랜드의 매력에 젖어 들게 하는 것이 고객 경험 플랫폼과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경험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브랜드를 신뢰하게끔 만드는 요소들이죠. 코로나 이후에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닮아가고 있어요. 온·오프라인 플랫폼의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온·오프라인 모두 단순 판매 거점을 넘어 브랜드의 매력에 젖어 들게 하는 고도화된 플랫폼과 경험이 요구될 겁니다.
Q. 일하시면서 체감하는 업무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매일매일 경험하는 모든 것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는 점이에요. 친구를 만나고, 먹고 노는 것 모두 공부가 되는 거죠. 화제가 되는 지역이나 공간, 공연, 전시를 찾아다니고, 커뮤니티 참석도 부지런히 하다 보니 네트워크 생성이 끊임없기도 하고요. 관심도 없던 게임이라던가 디지털 솔루션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게 하는 배움의 연속이라 성장판이 닫힐 틈이 없다는 것도 매력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이도 천천히 먹는 것 같고요. (웃음)
Q. 최근 체감하고 있는 광고계의 가장 큰 변화, 주요 트렌드가 있다면요?
이제는 완벽한 캠페인을 만들어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함께 캠페인을 완성해나간다고 봐요. 브랜드가 아니라 고객이 주인공이 되는 거죠. 특히 오프라인에서의 브랜드 공간은 멋진 공간을 오픈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놀 수 있도록 빈틈을 남겨둬요. 고객들이 방문해서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경험을 SNS로 공유하면서 캠페인이 완성되는 거죠. 예전에는 20대 유동인구가 많은 가로수길, 홍대와 같은 지역에 팝업 공간을 오픈하곤 했는데 이제는 방문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서 고객이 찾아오게 만들어요.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으면 을지로, 크래프트맨십을 강조하고 싶으면 성수동 등 브랜드의 정체성과 어울리는 지역에 자리를 잡는 거죠. 고객이 해당 장소를 찾아가는 여정부터가 고객 경험의 시작이거든요. 최근에 만들어진 성수동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나 공간 와디즈, 을지로 코오롱 솟솟상회 같은 공간들이 그런 흐름을 보여주죠. 오프라인 공간, 디지털 채널 등 영역과 형태에 관계없이 브랜드의 플랫폼에서는 브랜드의 보이스를 줄이고, 고객이 자발적으로 참여 및 소비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해요. 그 또한 디테일과 경험 설계가 필요하고요.
Q. 최근 흥미롭게 보고 있는 플랫폼이나 콘텐츠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상설 공간과 관련된 프로젝트들을 꾸준히 하다 보니 공간의 영속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 영속은 차별화된 양질의 콘텐츠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가가 결국 콘텐츠와 공간의 생명력을 결정하더라고요. 작년에 중림동에 USO Urban Space Odyssey 라는 공간이 오픈했어요. 서울의 역사를 담은 골목을 따라 좁고 길게 만들어진 그리 크지 않은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이곳은 여러 개의 작은 방들이 모여서 전시, 커뮤니티, 토크 등 테마와 목적에 따라 공간을 활용하는데, 전 박지호 편집장님과 어반북스가 운영을 해서 그런지 공간 구성이 마치 잡지를 공간으로 펼쳐놓은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앞으로 서울이라는 도시를 어떻게 담아서 콘텐츠로 풀어나갈지 기대가 되는 공간이에요. 또 하나는 부산의 코올액티브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부산의 브랜드들과 제품을 전시, 시식, 마켓과 같은 라이프 스타일 콘텐츠로 풀어서 소개하는 곳이에요. 남천동에 위치한 작은 숍이지만 부산의 여섯 개 기업이 모여서 부산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을 발굴하고 기회를 만드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요. 두 곳의 장소 모두, 뜻이 맞는 분들이 크루가 되어 이용자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쌓아가는 점이 좋아요.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시간의 힘을 필요로 하니까 누구도 쉽게 카피할 수 없죠.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해볼 수도 있지만 꾸준하게 키워나가는 실천은 누구나 할 수 없어요.
Q. 개인의 시대를 고민하는 콘퍼런스 ‘개뿔콘’이나 야외요가 커뮤니티 ‘씨티요가’ 등 업무 외에도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획 및 진행해오셨어요.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나요?
부서를 옮기면서부터 불안함과 갈증이 있었어요. 현업부서에서 실행 프로젝트를 하다가 CCC로 옮긴 뒤에는 주로 컨설팅 업무를 하다 보니 행여나 현장에서 배웠던 감을 잃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내 프로젝트, 내가 잘하는 것을 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BTL 파트는 항상 기획부터 제작, 실행까지 모두 다 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커뮤니티와 콘퍼런스 모두 기획부터 준비, 홍보, 모객 등 실행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으니 뚝딱뚝딱했죠. 내 프로젝트이고 최종 결정권자도 ‘나’이니까 너무 재미있고 신나더라고요. 불안함과 갈증으로 시작을 했지만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이에요. 꽤 긴 시간을 매주 주말마다 기꺼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친구들과 공유하고,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서였어요. 마침 제가 무언가 해보려고 하면 흔쾌히 도와주거나 따라와 주는 친구들도 많았고요. 우연히 재미 삼아 시작한 것들이라 때로는 사람과 관계 때문에 지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주고받는 에너지가 나도 모르게 또 나를 움직이게 해요.
Q. 이러한 사이드 프로젝트가 실제 업무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도 궁금해요.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요. 두 사이드 프로젝트 모두 재미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사업 못지않은 경험을 할 수 있었거든요. 클라이언트에 대한 이해도가 달라지고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되었어요. 프로젝트 규모를 떠나서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예전보다 깊이 생각하게 됐죠. 사이드 프로젝트를 경험하기 전에는 소프트웨어 측면만 생각했어요. 좋은 콘셉트와 아이디어로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고 프로젝트 사업비로 어떻게 하면 멋있게 결과물을 만들어낼까, 어떻게 하면 사업비를 조금 더 증액시킬 수 있을까 등이요. 하지만 직접 사이드 프로젝트를 총괄해보니 콘셉트 이전에 비즈니스 구조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이 모임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셋업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의 목적과 비용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최종 결정권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좋은 콘셉트와 아이디어라도 ‘WHY?’가 충족되지 않으면 단 1,000원도 쓸 수가 없어요. 어떤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생각의 범위도 달라지고, 우선순위도 달라지고요. 여러모로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Q. 조직에서 개인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성실함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느 포지션에 있든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실하면 실력이 쌓이고, 자신감이 생기고 신뢰도 따라와요. 어려서부터 스스로의 가치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성실함에서 만들어진다고 배웠는데 사회에 나와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결과물로 평가받는 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성실해야 해요. 광고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각자 역할의 충실하지 않으면 절대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어요. 일과 삶의 경계가 없고, 계속해서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내야 하는 일의 특성상 어느 순간 슬럼프가 올 것 같기도 해요.
Q. 슬럼프를 이겨내기 위한 본인만의 방법이 있다면요?
저희 아빠가 해주신 여러 조언 중에 “거센 파도를 만났을 때는 파도를 이겨내려고 하지 말아라. 그럴 땐 그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다가 파도 끝에 도착했을 때 최선을 다해 움직이면 되는 거다.”라고 말해주신 적이 있어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3년 전부터 매년 발리 여행을 갔어요. 햇살 좋은 곳에 널어놓은 이불처럼 한동안 저를 내버려 둬요. 지쳐서 힘든데 슬럼프를 이겨내려고 애쓰면 더 힘들잖아요. “나 노력했는데, 너무 힘들었어. 아, 이주명, 애썼다. 애썼어.” 울고 싶으면 울고, 누군가 원망스러우면 원망도 하고요. 슬럼프가 왔을 때는 지친 나를 스스로 위로도 하고, 유연한 내가 될 수 있도록 나에게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최근 몇 년간 하고 있는 도전이 ‘하기 싫은 것을 해보기’예요. 발리를 처음 가게 된 것도 항상 해외 대도시로만 여행을 다니던 내가 요가도, 수영도 못하면서 발리라는 섬에 가면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하고 저를 훅 던져본 거거든요. 가만히 못 있고 새로운 즐거움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스스로를 테스트해 보며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해서 알아가는 중이에요.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내가 나를 믿어주는 것 아닐까요? 이 세상에 나만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요.
Q. 다양한 취미나 여가 활동도 즐기신다고 들었어요.
제 별명이 취미 컬렉터에요. (웃음) 요즘엔 운동하는 시간을 즐기고 있어요. 일하다 보면 스트레스와 너무 많은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는데 그럴 때는 생각을 접어 두고 내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하고 땀을 흠뻑 흘리면 기분 전환이 돼요. 작년에는 요가 수련을 하다가 성장하는 즐거움에 눈을 떠서 평생의 로망이었던 자전거와 수영을 배웠고요. 이참에 올해는 미뤄두었던 골프 레슨을 시작했어요. 헬스하고 골프 연습하고 주말엔 테니스 치느라 일주일이 너무 바빠요. 하하. 집안 DNA에 운동신경이 없어서 운동포기자였던 저에겐 이런 시도들이 작지만 나름의 도전이고, 학습 속도는 느리지만 내가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늘어간다는 건 커다란 성취감을 줘요. 그런 성공의 기억들이 내 안에 쌓여서 슬럼프를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 같고요. 누군가는 종목을 하나만 정해서 집중하라고 할 수도 있는데 저는 잘 못해도 상관없어요. 제가 프로 선수를 할 것도 아닌데 저만 즐거우면 되는 거죠! 6년전에 타 본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사내 테니스 동호회 가입했다가 이렇게 일상이 달라졌어요. 활기로 가득 찬 풍요로운 일상으로요!
Q.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올해의 목표가 있나요?
우선은 롯데컬처웍스와 진행하고 있는 롯데시네마 신규 스페셜관 리뉴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하는 거예요. 코로나19 발병 등으로 여건상, 저희의 제안내용을 모두 구현할 수는 없지만, 꾸준히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차근차근 새로운 기회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저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건강한 에너지’의 실체를 만들어보려고요. 체력이 좋아야 할머니 될 때까지 재미나게 일하고 놀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주 4회 이상 출근 전에 운동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데 연말쯤에는 매일 5km 달리는 것이 익숙해졌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도 건강한 삶에 대한 저의 생각과 경험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도록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고요. 가을에는 친구들과 웰니스를 테마로 하는 생일파티도 하고 명랑 골프 대회를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커다란 목표를 향해 달리기보다는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해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어떤 광고인이 되고 싶나요?
내 안의 프레임을 깨뜨리는 혁명가! 너무 과격한 표현인가요? (웃음) 연차가 쌓일 수록 나의 경험이 정답인 것처럼 스스로의 프레임에 매몰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제가 하고 있는 업무는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해답을 찾아가는 거잖아요. 빠르게 판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섣불리 규정 짓기보다는, 저만의 주관은 가지고 있되 유연하게 살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저보다 똑똑하고 훌륭한 실력자들이 너무 많아요. 그것을 인정하고 나면 그 다음 단계부터는 쉬워지죠. 실력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최고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면 되거든요. 프레임을 뒤집으며 사고의 폭을 확장하는 기획자가 되고 싶어요
이주명에게 영감을 주는 물건
포켓형 노트 & 라미펜
수첩에 메모하는 것을 좋아해서 외부 미팅은 물론, 휴일에 동네 카페에 갈 때도 가지고 다녀요. 오늘 해야 할 일, 우연히 발견한 정보, 세미나 필기, 전시 관람 후기 등 생각나는 것과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을 메모하고, 종종 그림으로 그려 두기도 하죠. 카테고리 구분 없이 시간순으로 기록하고, 꼭 기억해야 하는 업무와 관련된 내용은 포스트잇 라벨로 표시해둬요. 머릿속에 있는 걸 끄적이는 시간도 즐기지만, 종이 위에 길이 잘 들어진 만년필이 미끄러지는 듯한 느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라미 Lamy펜을 사용하고 있는데 잉크 색상 별로 구분해 그날 기분에 골라서 사용하고 있어요. 스마트폰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기록할 수 있지만, 수첩은 메모하는 순간의 감정까지 기록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낡은 i30
서른 살을 앞두고 만난 생애 첫 차이자, 나의 30 대 이야기가 담긴 기억의 산물입니다. 이전 직 장에서 처음 현대자동차 프로젝트를 할 때 i30 가 출시됐는데 그때 현대자동차 계동사옥 로비에 전시되어 있던 빨간색 i30가 너무 예뻐서 구매했어요. 저의 파란만장했던 30대를 함께한 차라서 애틋한 마음이 있어요. 10년이 훌쩍 넘어 이제는 많이 낡았지만 그 또한 열심히 일하고 사랑했던 내 삶의 흔적이라 차를 쉽게 바꾸지 못하고 ‘일 년만 더’라며 타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항상 보조석에 앉았던 제 친구들에 게도 의미가 각별해요. 친구들과 함께 강릉, 부산은 물론 청산도까지도 가곤 했거든요. 닳고 닳은 꿀벌 열쇠고리도 마치 본인 차를 산 것처럼 좋아하던 친구가 선물해준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