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Be
A Life Creator
광고에서 삶으로, 황영호 CD
황영호 CD는 매일 아침 새로운 정보를 찾는 일로 하루를 연다. 그렇게 10년 넘게 원하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는 그는 이제 광고를 넘어 라이프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을 위해 앞으로의 10년을 그린다. 일을 후순위로 두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 과 삶, 내일의 인생에서 자신이 가장 자신다울 수 있는 모습을 찾겠다는 포부다.
Interview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노션 11년 차, CD란 무엇인가를 3년째 배우고 있는 황영호 CD입니다(웃음).
Q. 현재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가요?
작년부터 진행한 일이 꽤 있어요. ‘도미노 피자’를 1년 동안 하면서 수시로 일을 하다 근래 한바탕 정리하고, 지금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작년에 현대자동차그룹 ‘기프트카 레드카펫’을 캠페인을 진행했는데요, 이번에는 후속으로 현대자동차그룹 CSR 캠페인을 확장해서 추진하고 있고요. 또 ‘쌤소나이트XBTS’와 ‘현대카드’ 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직장인에게는 3년마다 고비가 찾아오는 이른바 ‘369증후군’이 있다고들 하는데요. CD 3년 차의 삶은 무탈한가요?
‘369’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1369’가 아닐까 싶은데요(웃음)? CD 3년 차인데 정확히 말하면 CD를 1년 6개월 했고, 그에 앞서 YCD라는 직책을 얻어서 1년 정도 일한 후 정식으로 CD가 되었죠. 가장 힘들었던 건 YCD, 그러니까 CD 보임 첫해였어요. 저는 매년 지난 1년을 다시 반성하거든요. 습관이에요. 지난 몇 해를 돌이켜 봤을 때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당시에는 ‘열심히 하고 있는 나를 주변에서 왜 이렇게 힘들게 하나.’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CD로서 제 컬러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스스로 절 괴롭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팀원들에게도 과한 걸 요구할 때도 있었고요. 그들도 힘들고 부담이 됐겠죠.
Q. 처음이었으니까요.
CD라는 직책에는 무거움이 있어요.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심리 때문에 시작도 하기 전에 결과를 생각하고, 생각한 만큼 꼭 결과도 나와야 한다는 미련한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내가 언제 광고를 즐겁게 만들었지?’,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하는 고민을 해봤어요. 결론은 과정이더라고요. 결과물이 좋았을 때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이 신나고 재미있을 때가 더 기억에 많이 남거든요. 그래서 마음을 바꿨죠.
Q. 지금은 어떤가요?
제가 생각한 것들을 팀원들에게 말하고 있어요. 요즘 일을 함께하는 친구들이 고맙게도 “정말 잘해볼게요.”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그때마다 “잘하는 건 필요 없어. 어떻게든 해결해 줄 테니 재미있게만 해.”라고 해요. 혹 제가 해결 못 하면 센터장님께서 해결해 주실 테니까요(웃음). 그런 식으로 요즘 일하고 있어요. 그러면 회의 분위기도 되게 밝아져요. 그렇게 제가 놓쳤던 것들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는 중이죠.
Q. ‘3’의 시간은 다행히 찾아오지 않았군요.
아니요, 왔습니다(웃음). 사실 일의 결과물에 대해선 크게 고민하고 있지 않아요. 대신 제 인생을 많이 돌아보고 있어요. ‘황영호라는 삶은 대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올해 갑자기 들더라고요. 지금까지 밤을 새워가면서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들이 결과물로 나오고, 그걸 잘하고 있는 거라고 여겼는데, 요즘 그게 되게 미련한 짓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요즘 친구들의 장점 중 하나가 일을 참 효율적으로 해요. 일할 때 집중하고, 자기 생활도 잘 지켜 나가고요. 예컨대 ‘제가 지금은 육아를 하고 있어서요, 이 시간을 피해서 일을 하겠습니다. 대신 자료는 열심히 찾아볼게요.’라는 식이죠. 당연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난날의 저를 빗대보게 되더라고요. 슬퍼지더라고요.
Q. 슬퍼지기까지요?
회사 내에 CC라는 제도가 있거든요. CD가 되기 전 인큐베이팅 과정이라고 보면 되는데, CC 시절에 결과물을 내야지만 CD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장시간 일을 했어요. 당연히 집에는 늦게 가거나 잘 안 들어가거나 그랬고요. 그런데 어느 날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아이 어린이집 선생님이 “혹시 아버님이 안 계시냐?”고 물었다는 거예요. 사연인즉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을 하면서 친구가 아빠랑 등원하는 걸 봤고, 그 친구가 이번 주말에 아빠랑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다고 자랑을 했대요. 저희 아이가 그 말을 듣고 울면서 “우리 아빠는 오늘도 내일도 없어!” 그랬다는 거죠.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사실 이런 고민을 많이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그때부터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고 느꼈죠.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진 않나 싶더라고요.
Q. 그럼에도 CD로서도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계시잖아요. 심지어 다채롭고 새로운 작업물을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고요. 직함에도 있는 ‘CREATIVE’함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CREATIVE DIRECTOR’라고 해서 CD만이 창의적인 걸 고민하지 않아요. 방향성에 대해선 팀 전체가 함께 고민을 하죠. 게다가 광고인이라면 누구나 CREATIVE를 고민할 거예요. 제가 광고회사 다니면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뭔 줄 아세요? “세상에서 보지 못한 것들을 가져와.”예요. 심지어 저도 CD를 처음 맡았을 때 팀원들에게 그런 말을 했고요. 요즘 제가 매일 아침 하는 일은 포털에서 서칭하는 거예요. 새로운 토픽이나 기술이 무엇인지, 오늘의 세상은 또 어찌 돌아가는 지를 알기 위해서죠. 영어를 잘 못하는데도 해외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무언가 찾으려고 애써요. 물론 영화도 보고, 그 밖에 새로운 것을 접하기 위해 다양한 것을 시도하기도 하죠. 성실한 하루들이 모여 어느새 11년이라는 시간을 이노션에서 보냈어요.
Q.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아보자면요?
여러 순간이 떠올라요. 광고를 진행하면서 ‘칸 라이언즈’에서 수상도 했고요.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입사할 때랑 CD 보임됐을 때네요. 이노션 입사 전에 작은 광고회사에서 더 큰 광고회사로 이직을 3번이나 했는데도 이노션에서 광고 일을 꼭 해보고 싶다는 일념이 있었어요. 그때 이노션은 신생 기업이라 젊고 에너지 넘치는 이미지였거든요. 면접 볼 때 마지막 질문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아트디렉터로서 혹은 광고인으로서 뭐가 되고 싶냐?”였어요. 그래서 “내가 원하는 광고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라고 했죠. 그리고 CD로 보임 하면서 그 꿈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요. 아마 둘 다 새롭게 시작하는 타이밍이라 더 기억에 남지 않나 싶어요.
Q. 지금껏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를 꼽아보자면요?
지금까지 진행한 광고들이 스쳐 지나가니 무엇 하나 꼽기가 쉽지 않네요. 제가 만든 것뿐 아니라 다른 이가 만든 광고 중에도 좋은 게 많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대단히 좋은 걸 만들었다면 바로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걸 보니 아직까지 만들지 못했나 봐요. 앞으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Q. 인생에 전환점을 가져다준 프로젝트가 있나요?
앞서 말한 칸 라이언즈에서 도미노피자 ‘워터드롭’ 캠페인으로 ‘브론즈’ 상을 받고, 일주일 넘게 해외에서 전 세계 광고인들과 프로그램을 이수했어요. 다들 어떻게 프로젝트를 운영하는지,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들어보고, 강의도 듣고요. 외국은 한국과 달리 ‘9 to 6’ 삶을 지향할 줄 알았는 데 다들 광고에 욕심이 많은 터라 한국 못지않게 일하더라고요. 또 CC일 때 진행한 ‘구글플레이’, ‘정관장’, ‘SKT’ 프로젝트는 제가 CD가 될 수 있었던 단초였기 때문에 그 광고들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할 수 있죠. 그때 했던 광고뿐 아니라 함께한 팀원들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Q. 욕심이 앞섰다던 CC 시절 팀원들이요?
네, 지금은 모두 다른 팀에 있지만 김초아 아트디렉터와 박은주 카피라이터, 저 이렇게 셋이 부단히 노력했어요. 덕분에 결과물도 좋았고요. 이 자리를 빌려 말하자면 당시에는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그들에게 많이 부담을 줬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에게 고맙고 미안해요. 이 말을 꼭 한 번 전하고 싶었어요.
Q. 시행착오 끝에 과정을 즐긴다고 하셨지만,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오롯이 과정만을 즐기기란 쉽지 않잖아요.
광고인들은 돈이나 명성 때문에 광고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돈을 좇았다면 사업이나 다른 걸 했을 거예요. 광고라는 직업은 좋아해야만 할 수 있고 그런 친구들이 모여 있어요. 그러니 재미있게 해야죠. 즐겁게 일을 하면 그 과정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들의 표정과 분위기가 눈에 보여요. 그래서 다들 ‘이때 정말 힘들었어.’가 아닌, ‘이때 즐거웠어.’로 광고와 그 시절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훗날 지금을 회상할 때도 재미있고 즐거웠던 때로 기억하길 바라요.
Q. 근래에 제작하신 한화 ‘탄소 줄이는 기술’ 캠페인도 즐겁게 하셨겠어요. 특히 이번 호의 주제가 ‘ESG’라 궁금한 점이 많은데요. 이번 캠페인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포인트가 있다면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와 기후변화 때문에 환경과 미래에 관심을 두잖아요. 그래서 친환경 그룹 또는 경제산업 환경의 지속가능한 기업으로서 메세지를 전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어요. 일상에서 쉽게 실천 가능한 것을 알려주되 ‘메이커 보이스Maker Voice’의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건 견제했어요.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하더라도 ‘너 이렇게 해야 돼.’ 라고 하는 대신 스스로 고민하고 되돌아볼 수 있게끔 하고 싶었어요. 사회 문제를 이야기할 때 먼저 상황을 끄집어내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봐요. 저도 누가 시켜서 하는 건 질색이니까요. 나에게 필요한 것들, 내가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 내 생활에 도움되는 것들, 이런 요소를 찾아야만 동참이 되고, 그렇게 해야 하나의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Q. 한화 캠페인으로 ‘국민이 선택한 좋은 광고상’을 수상하셨다고요. 광고인이 되길 잘했다고 느낀 순간은 이런 수상의 순간인가요?
전혀요. 수상보다는 다른 때 뿌듯한데요. 아빠가 없다 오해를 받던 제 딸이 요즘은 TV를 보면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는 광고 만드는 사람”이라고 저를 소개하기도 하고, 이따금 “아빠가 만든 광고”라며 열심히 보기도 해요. 그럴 때 광고 만들길 잘했다 생각해요.
Q.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광고인과 인간 황영호 사이의 삶의 균형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에 그간 못 해본 캠핑이랑 낚시를 시작했어요. 해변에서 피크닉을 즐기기도 하고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제 삶이 채워지는 기분이더라고요. 이렇게 삶의 균형이 맞춰지니 일에도 시너지가 나는 것 같아요. 일은 즐겁고 삶은 채워지는 기분이랄까요?
Q. 10년 전 면접에서 ‘내가 원하는 광고를 만드는 CD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셨어요. 그리고 10년이 지났고요. 앞으로의 10년은 어떻게 보내고 싶으세요?
우선 만들고 싶은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아직은 못 만들었지만요. 언젠가 만들게 되길 바라요. 다행히 광고 크리에이터로서 못하고 있진 않으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신 앞으로는 제 인생의 라이프 크리에이터로서 더 고민해 보고 싶어요. 어떻게 살아야 더 재미있게 살 수 있나 같은 궁리요. 일은 물론이고 가족, 인간관 계까지 폭을 더 넓혀서 생각하고 싶어요. 지난날, 놓쳤던 것들을 되새기며 눈앞에 놓인 지금, 오늘과 내일을 즐겁게 살고 싶네요.
CREATOR's ESSAY
Writer. 황영호
균형을 찾아서
직책으로, 자녀 이름으로 불리는 삶을 살고 있는 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이노션 11년 차. ‘나는 ‘나’의 삶을 잘 살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산다고 말했더니 남들 다 그렇게 산다고 답하더군요. 열심히 살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건 정답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심히’보다는 ‘재밌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닌가? 일도 재밌게, 가족과도 재밌게, 하고 싶은 일도 후회 없이 해보고…. 그러기 위해선 일하는 시간과 가족의 시간, 그리고 내 시간을 갖기 위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데 참 어려운 일이었어요.
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요즘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보며 많은 걸 배웁니다. 예전엔 시간을 더 많이 써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참 미련한 생각이었어요. 시간을 효율적으로 집중해서 쓰는 친구들의 아이디어를 보면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이번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팀원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CD님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하더군요. CD로서 매우 고맙지만 “열심히 하지마! 그냥 재밌게 해줘!”라고 대답했어요. 과거 수많은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건 성공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진행하면서 스스로 재밌다고 느낀 프로젝트였거든요. 즐거움을 찾는다면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일’ 역시 재밌는 추억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취미가 많이 생겼습니다. 여유가 생기면 캠핑을 가고, 날씨가 좋으면 바다로 피크닉을 가고, 생전 해보지도 않던 낚시에 도전하고…. 주말에는 겨우 오후에 일어나 집 앞 놀이터나 나갔던 나인데, 평소보다 주말에 더 일찍 일어나고 있어요. 물론 피곤합니다. 갔다 오면 녹초가 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족과 친구와 함께한 시간이 어떤 광고 장면보다 더 선명하게 남아 하나씩 쌓여 가더라고요. 그런 덕분인지 얼굴 좋아졌다는 소리 많이 듣고 있는데, 아쉽게도 살이 빠져 턱선이 살아났거나 한 건 아니고 웃고 다녀서 그런 듯해요. 삶의 일부인 일이든 가족과의 시간이든 재밌게 살자고 생각한 순간부터 부담이 줄고 마음이 가벼워진 기분입니다. 일을 적게 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이 편해지니 여유가 생기더군요. 이건 제 이야기고 인생에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한 번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 고민은 필요해요. 스스로 답을 찾고 행동한다면 분명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