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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양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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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Manual

광고인의 각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양승규 이미지

양승규 Yang, Seung-Kyu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reative Director
양승규CD팀

 

자아실현과 세계관을 표출하기 위해서가 아닌, 분명한 목표와 목적을 가져야 하는 것이 광고 대행사의 업이라고 말하는 양승규 CD. 그는 일과 사람에 지쳤을 땐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지.”라는 영화 속 대사를 읊조리며 기운을 얻는다고 한다.


 

Interview

Q.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2011년에 이노션 월드와이드에 입사한 양승규CD팀의 양승규라고 합니다. 입사할 때만 해도 14팀 CD였는데, 이름으로 팀 명이 바뀌었어요. 굉장히 책임감을 들게 하는 이름이 아닐 수 없네요. (웃음)

Q. 입사를 결심하게 했던 이노션의 매력은 무엇이었나요?

당시만 해도 이노션은 신생 기업으로서 막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회사였습니다. 한 마디로 잠재력이 보이는 회사였달까요.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동차를 다루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국내에 자동차를 다루는 광고 회사는 몇 개 없거든요. 그런 희귀성을 지닌 품목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어요.

Q. 자동차 관련 프로젝트를 할 때 더욱 흥미를 느낀다는 말인가요?

물론 모든 프로젝트가 다 기억에 남고 애착이 가는 것들이지만, 자동차는 나름의 매력이 확실한 품목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자동차는 힘든 프로젝트 중의 하나입니다. 프로젝트 하나당 기본 두세 달이 걸리는 작업이기도 하고, 보고 체계도 다른 것들에 비해 많은 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힘든 과정을 거치고 프로젝트가 완성되었을 때 오는 보람과 희열을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네요.

Q. 입사 후에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어떤 순간인가요?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언젠가 야근을 하다가 잠깐 옥상에 바람을 쐬러 올라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묘한 기분을 느꼈어요. 강남대로 한복판 옥상에서 눈이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그 순간을 말이죠. 그땐 계절이 바뀌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바빴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눈이 잠시나마 쉬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Q. 슬럼프를 극복하는 나름의 방법도 있을까요? 광고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노하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머리를 비우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가령, 술을 마셔서 뇌를 잠깐 멈추게 한다든가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뇌에 있는 피를 위로 잠시 내려가게 한다든지 말이죠. (웃음) 왜 다들 그런 경험 있잖아요.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도 생각이 멈춰지지 않는 때. 그럼 잠의 질도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날의 일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처럼 업무를 볼 때도 그런 것이 중요해요. 가끔은 뇌를 멈추게 하는 것이요.

Q. 양승규 CD님에게 영감의 원천이란 무엇인가요?

글쎄요. 하나 확실한 건 업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불현듯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길을 걷다가 혹은 샤워를 할 때 같은, 전혀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말이죠. 어떠한 일을 하기 위해 몰두해서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를 집어넣고 일한 후,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머리는 본능적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 같아요. 영감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순간보다는 그 전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쉬기만 한다면 업무에 활용할 수 있을 만한, 그러니까 영감이라고 할 만한 생각들이 떠오르기엔 쉽지 않겠죠.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할 때 많은 생각을 하는 편이에요.

Q. 그렇게 떠오른 아이디어를 업무에 맞게 적합하게 선정하여 활용하는 나름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제 기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우리가 하는 일은 목표가 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기준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주얼을 만들고, 영상을 만들며 그에 맞는 카피도 쓰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예술과 엄연히 다른 지점은 바로 콘텐츠의 일정한 목표가 있다는 점이지요. 자아실현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진 않잖아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선정할 때 가장 먼저 고심하는 것은 프로젝트의 목표입니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아이디어인지를 보고, 그것이 옳은 방법으로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을 판단하죠. 그다음이 아이디어가 새롭고 트렌디한 점인가를 고려해요.

Q. 일하면서 생긴 나만의 징크스가 있다면요?

저만의 의식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데, 중요한 보고나 PT 전에 저는 손톱을 깎습니다. 결과가 좋기를 바라는 의미도 있고, 이걸 덜어내고 나면 더 결과가 좋을 것 같은 심리 때문이죠. 징크스가 생긴 계기라고 한다면 특별한 건 없었어요. 언젠가 안 풀리는 일이 있었는데, 우연히 손톱을 깎고 나서 잘 풀렸던 때가 있었겠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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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순간보다는 그 전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쉬기만 한다면 업무에 활용할 수 있을 만한, 그러니까 영감이라고 할 만한 생각들이 떠오르기가 쉽지 않겠죠.”

Q. CD님이 인생관으로 삼는 문구나 구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지.”입니다. 이게 사실은 김지운 감독 영화 ‘달콤한 인생’에 나오는 대사예요. 영화의 주인공인 이병헌이 보스의 여자인 신민아를 마음에 두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까 말까 망설이는 장면이 나와요. 그때 이병헌이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지.”라고 말하면서 결국 핸드폰을 던지는 찰나의 장면인데, 전 그 대사가 와 닿았어요. 사실 팀장이 되면 팀원에게 상처받는 경우도 종종 생겨요. 팀원이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관계에서 오는 회의감이나 실망 같은 감정을 견디는 거죠. 저 역시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지.” 하고 되뇌면서요. (웃음)

Q. 〈Life is Orange〉의 이번 호 주제는 ‘색’입니다. CD님이 선호하는 컬러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회색을 선호합니다. 회색지대라는 표현이 있는 것처럼 저는 흑도, 백도 아닌 중간 지대를 좋아하거든요. 사실 지금은 모든 것을 흑, 백으로 완전하게 나눌 수 없는 사회가 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회색은 업무에 활용하기 어려운 색이기도 해요. 회색을 비롯한 무채색은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구현할 수 있는데, 저는 그런 점이 좋은 것 같습니다. 뭐랄까 검은색보다 더 시크해 보이기도 하고요. 흥미로운 사실은 실제 제가 자주 입는 옷엔 회색이 거의 없다는 점이에요. 오히려 남색이 더 많은 것 같네요. (웃음)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의 양승규 CD님의 목표에 대해 말해주세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언젠가 영화처럼 칩을 사람 몸에 이식하는 시대가 올 것 같긴 한데, 그럴수록 저는 조금 더 아날로그적인 광고를 만들고 싶어요. 실제로 사용하는 물건들은 디지털이 주를 이루겠지만, 광고에서 그것들을 표현하는 방법론은 충분히 아날로그로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책과 LP가 증명해주듯이 사람들 마음에는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이 있다고 믿어요.


CD’S ESSAY

나는 번역하는 사람

“많은 사람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진심’을 담아 전하기만 하면 상대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중략)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김영하의 산문집 <보다>의 일부입니다. 마지막 문장의 이야기란 단어를 ‘광고’로 그리고 작가를 ‘광고인’으로 바꿔 다시 읽어 볼까요? 제가 이 지면을 통해 같이 나누고 싶은 주제가 그 안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광고대행사의 업은 무엇일까, 우리는 알고 있을까에 대해서 말이죠.
과연 우리는 어떤 일을 하는 걸까요. 아이디어를 낸다는 명목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만들지만, 우리의 글과 그림이 예술과 다른 것은 그 뒤에 꽤나 분명한 목표 혹은 목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아실현이나 개인의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지는 않죠. 판매를 늘리거나 이미지를 개선하거나 브랜드를 각인시킨다거나 하는, 마케팅 목표에 따라 기억될 만한 문구나 강렬한 이미지와 스토리를 개발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하는 일을 일종의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클라이언트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소비자가 듣고 싶거나 행동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메시지로 — 시대의 흐름에 따른 어떤 매체나 기술을 통해서라도 — 번역하여 전달하는 일 말이죠. 이런 번역의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김영하의 글처럼 아무리 좋다고 소리쳐도 ‘잘 설계된 우회로’를 거치지 않는다면 설득하기는커녕 관심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어떤 매체에서건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광고는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하고 싶은 대상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일은 직역과 의역을 오고 가며 SF와 액션, 로맨틱 코미디 등 장르를 넘나들고 뛰어난 음악 PD였다가 몇 줄로 눈물을 떨굴 줄 아는 스토리텔러가 되어 관심을 사로잡아야 하는, 어렵고 복잡하고 괴로운 과정의 연속입니다. 그렇기 때문이 이 일을 지치지 않고 하기 위해서는 직업윤리까지는 좀 거창하고, 마루야마 겐지 Maruyama Kenji의 책 제목 <소설가의 각오>를 빌려 말하자면 ‘광고인의 각오’까지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불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그리고 정말 된다면 본인도, 화재를 당한 사람도 모두 위험에 빠지겠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일이 피곤하다면 기획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제작은 이 시대가 공감하는 문화나 인사이트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자신을 예민하도록 밀어붙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아이디어는 때론 30분 만에 나오기도, 일주일이 걸려도 풀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직업이 개인적인 시간의 희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괴롭히지만, 어쩌겠습니까. 아무도 당신에게 광고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거나 강요한 적은 없는 걸요. 오늘도 이런 생각으로 다시 한번 각오하고, 잘 설계된 번역을 시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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