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그리고 함께,
글로벌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김보경 팀장
눈길을 사로잡는 광고는 좁고 정확한 타깃과 빠른 전달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그런데 여기 정반대의 광고를 만드는 이가 있다. 캠페인플래너 김보경 팀장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인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광고를 만든다. 다른 차원의 시선으로 접근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일이 어렵지만, 함께하는 팀원들이 있어 무연한 질문의 답을 잘 찾을 수 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만든 캠페인처럼 더 멀리 천천히, 그리고 함께하는 모두와 진심을 나누며 광고를 만들고 있다.
Interview
Q. 안녕하세요. 독자분들에게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전 세계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현대자동차 글로벌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캠페인플래너 김보경이라고 합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캠페인들을 선보였는지 궁금해요.
인류애Humanity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브랜드의 거시적인 방향성 하에 진행했던 ‘Hyundai X BTS 친환경 모빌리티’ 캠페인을 오랫동안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진행했고요. 최근에는 보스톤다이나믹스 인수 이후의 로보틱스 캠페인, UAM(도심항공모빌리티) 캠페인 등 다양한 미래 모빌리티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현재는 세계 최대 혁신기술 박람회인 CES 2022 행사 기획부터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 관련 업무까지 캠페인 영역을 넓히는 중이에요.
Q. 그 가운데 대표적인 현대자동차 모빌리티 캠페인은 어떤 키 메시지와 방향을 갖고 있나요?
‘Carbon Neutral(탄소 중립)’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을 거예요. 모빌리티 시장에서도 역시 탄소 중립이 화두죠. 전 세계적인 환경이슈와 더불어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선언과 강력한 규제들이 발표되고 있고,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로 대전환 시대를 맞이하고 있어요. 친환경 모빌리티는 동력원 자체가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미래 이동수단을 의미하는데 전기차, 수소차뿐만 아니라 UAM 등 다양한 모빌리티 분야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고요. 현대자동차 미래 모빌리티 캠페인의 주요 메시지는 단순히 편리하게 이동하는 수단을 넘어 ‘모든 사람에게 이동의 자유를 제공하는 모빌리티’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책임 의식과 변화, 노력, 여정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죠.
Q. 캠페인을 진행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보통 ‘광고’라고 하면 ‘어떻게How’에 집중한 이슈를 만들어 굉장히 임팩트 있는 이미지로 광고를 접하는 짧은 순간에 소비자들에게 각인하는 일을 생각할 텐데요. 저희는 최근 어떤 셀럽이 이슈인지 혹은 귀에 걸릴 만한 카피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기보다는 ‘왜Why’ 이 캠페인을 하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더 고민하는 것 같아요.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서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소통이 지속될 수 있도록 거시적인 관점에 서 캠페인을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광고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일이니까요.”
Q. BTS와의 컬래버레이션도 눈에 띄네요.
BTS는 단순히 셀럽이 아닌, 현대자동차의 브랜드 비전을 공감하고 전파하는 앰버서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선한 영향력으로 알려진 BTS가 선한 에너지인 수소에너지를 고객에게 인지시키기 위해 틱톡챌린지, 숏다큐 형태 등의 수소차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하고, 아이오닉 브랜드 캠페인 론칭 때에는 함께 음원을 만들어 전 세계 고객을 대상으로 브랜드명과 의미를 전하기도 했어요. 보스톤다이나믹스 인수 당시 로보틱스 캠페인에서는 BTS와 로봇 개 ‘스팟’이 소통하고 춤을 춤으로써 로보틱스 기술을 친근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방식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고객과 현대자동차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죠.
Q. 모든 일이 그렇듯 BTS와의 협업도 쉽지 않았겠지만, 그만큼 파급력이 있어 뿌듯함이 컸을 것 같아요.
아티스트와 브랜드의 방향, 그리고 캠페인. 이 삼합을 맞추기까지가 조금 어려웠어요. 힘들었지만 대신 아티스트의 영향력이 무척 커서 그동안 몸소 체감하지 못했던 캠페인의 파급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어요. 특히 작년에 진행한 ‘아이오닉’ 캠페인은 BTS와 함께 ‘I’M ON IT’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뮤직비디오로 발표했는데요. 전 세계 오디언스들이 보는 것을 넘어 자발적으로 리액션 비디오를 만들어서 업로드 하거나 음원 자체에 엄청난 관심을 보여줬어요. 덕분에 크고 작게 염려했던 부분들이 기우에 그쳤죠. ARMY(BTS 팬클럽)를 위해서 뭐라도 더 해야겠다 싶어요(웃음).
Q. 브랜드의 비전을 전달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울 것 같아요.
어렵고 부담스럽긴 하죠. 브랜드 이미지라고 하는 건 굉장히 오랫동안 축적되어 쌓이는 것이기에 메시지 하나를 개발할 때도 굉장히 조심스럽고 많은 고민을 거쳐요.
Q. 그럼에도 그동안 숱한 어려운 미션을 잘 이행하셨나 봐요.
팀장의 위치나 자리라는 게 사실 모두가 투표해서 얻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그간 현대자동차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해왔던 성과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함께 일하는 고객사와 선후배들의 의사가 반영되었겠지만요. 많은 분의 공신력 있는 판단이었다고 믿고 싶네요(웃음).
Q. 올해 글로벌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팀장으로 보임하셨다고 들었어요.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생각했던 것보다 큰 변화가 있는 것 같기는 해요. 보임 초기에 이 자리가 모든 캠페인의 PM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너무 부담되더라고요. 또 제가 유관 부서나 고객사, 벤더사 등 모두에게 스스럼없이 의견을 이야기하는 타입이었는데, 관리자 역할을 맡으니 한마디 한마디가 염려되더라고요. ‘이제 내 뒤에는 누구도 서 있지 않다’, ‘이 모든 일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더 신중해지고요. 다행히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을 마쳤어요. 지금은 제가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프로젝트마다 마이크로 매니징하기보다는 거시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관리와 운영 역량을 키워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죠. 이제 제가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팀원들이 업무를 진행하면서 느끼는 어려운 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Q.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된 건 무엇인가요?
마음이 크게 무너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저희 팀원들이 저보다 저를 더 걱정하고, 자신들이 더 잘해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팀원들을 보면서 고마움을 넘어 이렇게 해서는 지속할 수 없겠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조금은 흘려보내도 되겠다고 생각했죠. 한마디로 저를 일으켜 세워준 건 저희 팀원들이에요.
Q. 보임 후 첫 프로젝트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 같아요.
보임 이후라는 것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역할이 변화했음을 느끼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제가 프로젝트 매니저일 때 해야만 했던 일들을 팀원들 각자 본인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책임을 다해 임해주는 모습을 보게 된 거죠. 그리고 깨달았어요. 팀장으로서 해야 하는 일은 프로젝트 매니저처럼 세세하게 챙기는 것이 아닌 그들이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고, 서포트하는 역할이라는 것을요. 전에는 제가 인정받고 빛나야만 프로젝트에 대한 성취감을 느끼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팀장으로서 첫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팀원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이 이렇게나 뿌듯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Q. 현대자동차 ‘Because of you’와 ‘Hyundai X BTS’ 시리즈 등 팀에서 진행한 대대적인 글로벌 캠페인의 경우, 보통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글로벌 캠페인은 국내 캠페인보다 호흡이 상당히 길어요. 본사 주도 캠페인의 경우, 각 권역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캠페인 동의 여부를 포함 상호 간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해요. 일반적으로 최소 3~4개월 이상, 길게는 1년에서 몇 년까지 걸리죠. 월드컵 캠페인은 월드컵이 4년에 한 번 개최되지만, 이전 월드컵이 끝난 그 이듬해 즈음부터 다음 캠페인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캠페인 시작 PM과 마무리 PM이 다른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희가 우스갯소리로 월드컵 캠페인을 들어가라는 지시를 받으면 권고사직이라는 얘기를 하기도 해요(웃음).
Q. 사회의 움직임이나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진행하신 캠페인은 어떤 측면에서 사회·환경운동의 성격을 띠기도 해요.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사회적 가치와 공감대를 확보할 때, 브랜드가 하는 활동에 더 설득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현대자동차가 약 3년 전부터 ‘인간을 향한 진보’라는 새로운 브랜드 비전을 통해 이러한 사회적 가치와 맞물리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해왔죠.
Q. 환경, 장애 등 우리 사회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것들을 조명하기에 더 조심스럽거나 경계해야 하는 부분도 있을 텐데요.
일단 해당 주제에 관한 대중의 공감이 어느 정도인가가 중요한 부분 같아요. 예전 같았으면 환경관점에서 ‘자동차가 지구환경을 위한 활동을 한다’라는 건 대중들이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지구환경을 위해 자동차 회사가 변화한다’라는 걸 많은 사람이 환경 이슈와 내연 기관 규제 등을 이해하며 공감하고 있잖아요. 그러면 커뮤니케이션을 해볼 만한 얘기가 되는 거죠. 하지만 장애에 관한 건 일반적으로 브랜드가 감히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고 생각해요. 다만, ‘두 번째 걸음마’ 캠페인은 ‘하반신 장애인분들을 위해 현대자동차가 입는 로봇을 만들겠다’라는 걸 알렸어요. 모두가 동등한 이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한 브랜드 비전에 따라 현대자동차가 자동차가 아닌 로봇을 통해 처음 소통한 케이스죠.
Q. 이 일에 무척 애정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에 광고 동아리를 했어요. 심지어 동아리 회장 출신이고요. 그래서 애초부터 제 꿈은 광고인이 되는 거였어요. 어쩌면 ‘덕업일치’를 이룬 셈일지도 몰라요. 꿈꿔오던 일을 지금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면서도 한 번도 권태감을 느낀 적이 없어요. 보임 전까지만 해도요(웃음). 이제는 극복했고요!
Q. 일하면서 권태가 없었다는 건 큰 행운이네요.
정확히 2008년도에 광고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늘 앞만 보고 열심히 일했어요. 힘들었지만 분명 재미가 있었으니 지치지도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꾸준히 달려온 거겠죠. 오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더라고요.
Q. 10년 넘은 중견 광고인이자 팀장으로서 앞으로는 또 어떻게 험준한 미션을 헤쳐나갈 요량이신가요?
저희 팀이 최근에 비로소 완전체가 됐어요.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입사했고요. 제 동료 중 하나가 저희 팀을 보고 ‘환불원정대’ 같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좀 강해 보이는 언니들이 모여 있다는 소리겠죠? 근데 솔직히 제가 보기에도 저희 팀에는 비주얼적으로나 캐릭터적으로 조금도 만만한 친구가 없는 것 같기는 해요(웃음). 무엇보다 다들 자기만의 색깔이나 가치관도 굉장히 뚜렷하고요. 심지어 에너지도 엄청 좋아요. 그래서 전 저희 팀을 환불원정대가 아니라 강철부대, 최정예 부대로 키워보고 싶다는 욕심도 들어요
Q. 무척 험난하겠네요.
일을 하면서 팀원들에게 엄격하게 대할 때도 있겠죠. 그렇지만 때로는 엄마처럼 케어해 줄 때도 있을 거예요. 적재적소에 맞게 제 역할을 잘해야 되겠다는 마음이에요. 어차피 이 팀을 운영해야 하는 것도, 집행해야 하는 것도 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요. 팀원들이야말로 제가 이 험준한 세계를 헤쳐 나가는 데 유일한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네요.
Q. 환불원정대이자 훗날 강철부대로 거듭날 팀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원래 조직이라는 게 진입하기가 힘들지 들어오면 함부로 나갈 수 없는 거 알지? 우리 끝까지 가자! 사랑한다!
Q. 훗날 자신의 작업을 쌓아두고 회고할 때, 자신을 어떻게 돌아보길 바라나요?
광고계의 어떤 한 획을 그었다기보다는 고객사, 벤더사 그리고 이노션 사람들 모두가 김보경은 수용력과 추진력,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광고인으로서 지향하는 바예요. 광고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일이니까요. 되도록 모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일을 진행하면 좋은 결과가 나더라고요. 저도 그렇지만 함께하는 친구들 모두가 그런 환경 속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서로 잘 이끌어 나갔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