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아 Kim, Jung-A
전문임원 / 제작1센터장
Executive Creative Director / Head of Creative Center1
브랜드가 세상에 나올 때 어떤 색의 옷을 입히고 어떻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광고인의 역할이라고 말하는 이노션 월드와이드의 김정아 제작1센터장. 브랜드와 색, 크리에이티브에 관한 질문과 대답을 싣는다.
Interview
Q. 이번 호 주제는 ‘색’입니다. 색은 광고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제작물에서 시각적으로 계산되어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색이라는 단어를 좀 넓게 해석하자면,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브랜드의 색’을 만들어주는 작업이 ‘광고’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색’은 그 브랜드만의 성격 Personality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겁니다. 브랜드의 성격은 광고캠페인 전반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Q. 특정 색을 갖고 싶어 하는 브랜드도 많을 것 같은데요.
요즘의 브랜드들은 자사의 고유 슬로건처럼 자기만의 심벌 컬러까지 갖고 싶어 해요. 고유서체를 보유하는 기업도 늘고 있고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브랜드가 빨강, 노랑, 파랑 등 특정 컬러로 기억되는 것이 꼭 좋은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자기 제품과 서비스, 소비자에 대해 어떤 철학과 태도,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를 명확히 하는 것이 더 먼저입니다. 즉, 자기만의 성격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컬러칩 속의 한 가지 색을 점유하기보단, 매력적인 색을 가진 브랜드가 되는 것이 훨씬 현명하기 때문이지요.
Q. 센터장님의 경우 색을 사용하는 기준이나 방식이 있나요?
개인적으로는 채도가 분명하거나 대비가 강한 컬러 조합을 선호해요. 성격상,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것을 좋아하진 않거든요. 모노톤의 경우, 질감이나 형태의 본질에 더 접근하기 쉽다고 생각해서 한동안 블랙 앤 화이트를 즐겨 사용했었어요. 시선을 더 집중시킬 수 있고요.
Q. 광고인들이 기피하는 색도 있을까요?
특별히 피한다기보다, 최종 제작물들이 구현되는 디바이스에 따라 오차가 많아지는 컬러들은 아무래도 사용하기에 조심스럽죠. 인쇄된 종이 상태나 송출되는 모니터, 스크린 등에 따라 원래 컬러 값에서 벗어나 왜곡되기 쉬운 색은 아트 디렉터 입장에서도 쉽게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Q. 그렇다면, 이노션 월드와이드는 어떤 색을 추구하나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오렌지 컬러 아니냐고. (웃음) 저희는 특정 색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했으면 합니다. 광고 회사가 가진 크리에이티브 컬러의 개수와 그 회사의 경쟁력은 비례한다고 봅니다.
Q. 해외 광고제 심사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해 오셨는데, 현장의 분위기만의 특성이 있던가요?
막연히 상상하는 것처럼 근사하지만은 않아요. 일주일 가량을 합숙하며 ‘블랙룸’이라고 불리는 창문이 없는 방 안에 갇혀 온종일 출품작들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며 채점해야 하거든요. 나중엔 케이스 필름만 봐도 멀미가 날 지경이에요. (웃음) 하지만, 빼어난 크리에이티브로 브랜드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아이디어들을 만날 때면 설레면서도 무엇보다 공부가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심사위원들 저마다 국적도, 문화적 배경도 다르지만, 좋은 결과물은 늘 만장일치의 박수를 받기 마련이거든요.
“(브랜드의) 자기 색깔, 즉 자기만의
퍼스널리티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컬러칩 속의 한 색을 점유하기보단,
매력적인 색을 가진 브랜드가 되는 것이
훨씬 현명하기 때문이지요.”
Q. 지난해 이노션 내부에 신설한 조직 ‘Creative α’를 소개해주신다면요.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리 변화하고 있습니다. T V, 라디오, 책 등 전통적인 미디어들의 경우, 오랜 기간에 걸쳐 생겨나고 진화해왔지만, 근 10년 사이에는 새로운 미디어가 너무도 빨리 생성, 분화되고 있습니다. 분명 이러한 변화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또 다른 자극과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기업이나 대행사의 입장에선 이 쏟아지는 새로운 변화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혼란도 존재하죠. Creative α라는 조직은 그런 혼란 속에서 광고주의 요청이 있기 전 우리가 먼저 새로운 시도를 통해 전혀 다른 성격의 작업을 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어요.
Q. 조직을 꾸리는 데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열 명 남짓한 인원을 꾸리는데 거의 반년 가까이 소요됐어요. 기본적으로 뉴 미디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모으려 했고, 기존 직무와 상관없이 전 직종을 대상으로 했죠. 본격적인 업무는 올해 초부터 시작했는데, 현재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한 콘텐츠들을 만들어 보고 있어요.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센터와 협업을 통해 옥외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다든지 고객들과 실시간으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하는 아트 콘텐츠를 만든다거나, 넥스트 솔루션 본부와 같이 손을 잡고 차창에 손으로 쓴 글자를 바로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콘텐츠도 만들고 있지요. 어떻게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들이 브랜드와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대부분입니다.
Q. 새로운 조직을 만들며 내부적으로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이처럼 실험적인 일에 기꺼이 용감하게 뛰어들 크리에이터들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우선, 하고 싶은 것이 많으면서 쉽게 지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호기심은 제각각이되,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다는 공통점을 가진 그런 사람들 말이죠. 주어진 숙제를 하던 기존의 업무방식이었던 것에 반해, 숙제를 스스로 찾는 것부터 시작하다 보니 모든 게 처음이라 다들 고군분투중 입니다. 수직적 조직 또한 무너뜨려 보자고 팀원 모두가 동의했고, 영어 닉네임 대신에 **선배, **후배로 호칭을 단순하게 대신하기로 했죠. 저도 이 팀에선 센터장이 아니라 선배로 불리길 원하고, 실제로 그렇게들 불러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비즈니스의 많은 부분이 변해 가고 있는데, 브랜드들은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과거의 브랜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알리고 판매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요즘의 브랜드는 ‘우리가 무엇을 만드는지 Look what we made’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Look what we do’로 이미 상당 부분 옮겨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소비자들은 브랜드로부터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는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가진 여러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고 싶어 합니다. 즉, 소비자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고 제공해 줄 수 있는 브랜드들과 함께 살고 싶은 겁니다. 앞으로의 브랜드는 이 점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다양한 신기술이 각 분야에서 나타나고 사라지길 반복해 왔는데, 현재 VR 같은 신기술은 광고 업계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 예상하시나요?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에 무한한 확장을 가져올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How to say’의 차별화를 위해 골몰하던 아트워크, 카피, 편집, 레이아웃 등에 갇혀 있던 고민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돌파구를 찾게 된 겁니다. 기술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무기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 예상합니다. VR 기술의 예를 보더라도, 불과 3~4년 전 성공적인 캠페인으로 꼽혔던 콘텐츠들은 주로 사방이 열린 공간을 입체적으로 체험한다든가, 역동적인 상황을 실감 나도록 표현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VR을 활용한 주요 캠페인은 이 기술이 어떻게 무엇을 위해 쓰이느냐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가령, 고소공포증 환자들에게 VR 기술이 간접 체험 및 치료의 콘텐츠로 활용된다든지 뉴스로만 접하던 분쟁지역이나 난민 지역을 실제로 체험하듯 VR 콘텐츠로 만들어 고발하는 것이 그것이죠. 기업과 브랜드들이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더 창조적으로 요리해 쓸 것인지에 대해 영민한 고민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에 어떤 인사이트를 결합해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느냐가 당분간 화두가 될 것 같습니다.
Q.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는 ‘미디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멸종될 미디어에 대한 예측보다 그 미디어가 주는 대체불가능한 경험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면 그 미디어는 계속 존재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팝콘을 들고 영화관을 방문해 즐기는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스크린이라는 미디어는 계속 존재하지 않을까요? 전자책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각거리는 느낌을 주는 종이책이 건재한 것처럼 말이죠.
Q.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정의가 궁금합니다.
‘문제 해결’입니다. 브랜드가 처한 문제 혹은 숙제를 잘 짚어내고 그 브랜드에 필요한 솔루션을 찾아내는 것. 한정된 예산과 시간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답을 찾아내는 것이 광고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제 나름의 정의입니다.
Q. 과거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의 기준으로 취향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개인의 취향’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취향이 분명한 사람,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분명한 사람과 일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광고는 트렌드가 많이 반영되는 업業이다 보니 장기간 이 일을 거듭하다 보면 ‘요새 뭐가 유행이지?’, ‘요새 누가 인기지?’에 습관적으로 촉수를 세우기 마련입니다. 정작 자기에게 유행하는 뭔가는 없어지게 되지요. 모호하지 않은 자신만의 생각과 관점이 있는 사람과 일할 때 즐겁습니다. 내가 갖지 못한 촉을 가진 이들과 섞여 일할 때 제대로 된 시너지가 나오는 법이니까요. 특히 광고 회사에서 일하려면 꼭 그래야만 하고요.
Q. 어쨌든 광고는 사라지기 때문에 소모적인 작업일 수 있는데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회의는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합니다.
광고 회사에 입사했을 때 누군가가 앞으로 20년 동안 광고만 해야 한다고 제게 말해주었다면 아마 지금까지 이 일을 계속해오지 못했을 거예요. 저는 늘 멀리 보기보단, 바로 앞에 보이는 것을 잘하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매번 뭔가 새로운 걸 만들고 설득해서 그 아이디어를 팔고, 그걸 정말 잘 찍고 잘 편집하고 잘 녹음하는 과정이 늘 재밌고 좋았어요. 물론, 누구나 그렇듯 힘들 때도 자주 있었습니다. 지치고 힘들고 꾀부리고 싶을 땐, 그냥 한동안 절 내버려 두는 편이에요. 애써 빨리 기운차리라고 들볶지 않고, 스스로 저를 좀 봐주려고 해요.
Q. 최근의 경험 중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다면요?
얼마 전, 청년 인디게임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필름을 세 편 찍었습니다. 직접 개발자들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실제 그분들의 경험담을 녹여 콘티를 짰었거든요. 실패를 알면서도 뛰어드는 용기, 전부를 걸고 뭔가에 미쳐있는 그 열정들을 만나고 있자니 맘이 뭉클해지더군요. 초짜 카피라이터로 광고를 처음 시작했던 스물세 살 무렵의 제가 생각나더라고요. 뭔가에 몰두해 있는 사람만큼 멋진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동료, 그런 선배, 그런 후배들을 보면 참 근사해 보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