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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깨어있는 자세, 박건호 CD

TECHNOLOGY

CD Manual

깨어있는 자세

 

깨어있는 자세, 박건호 CD 이미지

박건호 Park, Gunn-Ho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reative Director

박건호CD팀

 

박건호 CD에게 있어 아이디어란, 매사에 주변을 살피는 관찰력에서 나온다. 일상에서 얻은 아이디어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항상 깨어있으려고 한다는 그의 태도는 그동안 진행해온 캠페인을 통해 빛을 발한다.


 

Interview

Q. CD님은 어떻게 처음 광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해외 여러 곳에 살았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때 한국에 돌아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죠. ‘오리콤 Oricom’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한국에서 영어를 하는 크리에이터가 영어를 광고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외국계 광고 대행사로 옮겨 봤는데, 제작에서는 영어가 크게 의미 없더라고요. 그러던 중 아내와 함께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서 싱가폴 및 중국에 갈 기회가 생겼고 현지 광고 대행사를 다녀보기도 했어요. 그렇게 5년의 해외 광고 생활을 하고나서 2011년에 이노션 월드와이드에 오게 되면서 다시 한국에 돌아왔어요. 처음 오리콤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했던 ‘크리에이티브가 한국에서 영어를 광고에 어떻게 써먹지?’라는 생각이 비로소 이곳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죠.

Q. 외국에서의 생활이 여러모로 CD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셈이네요.

이노션이 대기업 계열 대행사이기 때문에 비교적 글로벌 캠페인을 많이 할 기회가 생겨 영어가 활용도 높게 쓰이더라고요. 그 부분이 굉장히 좋았어요. 일을 시작하면서 생각해왔던 나의 장점을 이제서야 잘 활용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요. 영문으로 카피도 쓰고, 외국 감독들과 소통할 때도 수월하게 제 의지를 전달할 수 있었거든요.

Q. 처음 시작은 아트디렉터로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광고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가 있었나요?

없었어요. (웃음) 대학교 4학년 때는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았어요.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남들 이력서 내는 곳에 이력서를 냈죠. 그러다 대학교 4학년 때 고등학교 친구가 카피라이터를 하고 싶다기에 광고회사에 이력서를 내러 같이 갔다가 그 친구는 떨어지고 저는 붙었어요. 그래서 광고를 하게 된 거예요.

Q. 올해 진행했던 캠페인 중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캠페인 두 가지가 저희 팀에 있어 굉장히 큰 프로젝트였어요. 현대 그랜저 Grandgeur가 해외에 수출될 때는 ‘아제라 Azera’ 라는 이름으로 수출이 되는데, 아제라가 중동에 나갈 광고를 만들었어요. 중동으로 수출하는 아제라 모델은 국내에서는 아직 시판되지 않는 더 큰 엔진을 실은 모델인데요. 클라이언트가 엔진을 좀 더 부각시켰으면 좋겠다고 해서 소리를 시각화시키는 ‘싸이매틱스 Cymatics’를 이용했어요. 소리라는 것은 주파수잖아요. 주파수는 파동이고, 소리는 결국 진동이거든요. 들리는 소리를 진동으로 변형해서 그 진동을 이용해 형체를 만드는 거예요. 진동 위에 판을 깔아서 그 위에 모래를 올리면 소리가 진동하면서 모래에 패턴이 생겨요. 그걸 가지고 캠페인을 풀었어요. 재미있는 게 올해 5월 말에 캠페인을 풀었는데, 6월 말에 재규어 Jaguar에서 저희가 한 것과 거의 똑같은 광고를 만들었어요. 한 달 만에 모방할 리는 없고, 제 생각에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또 하나는 현대자동차 미니 SUV ‘코나 Kona’인데요. 코나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새로운 종의 발견’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봤어요. 총 3편 중 한 편은 밀림에서 발견된 하나의 야생동물처럼 표현했고, 나머지 두 편에서는 하나의 생명체가 도시에 등장했을 때 사진작가들이 어떻게 접근을 할까 하는 쪽으로 스토리를 풀어봤어요. 코나라는 자동차가 젊은 층을 타깃으로 했기 때문에 좀 더 재미있게 접근해보고 싶어 영화적으로 푼 거죠.

Q. 많은 프로젝트 중에서도 CD님에게 큰 인상이 남는 광고는 무엇인가요?

기억에 남는 건 크게 두 가지예요. 하나는 현대자동차 글로벌 브랜드 캠페인 ‘메시지 투 스페이스 Messege to Space: 우주로 보내는 메시지’라는 프로젝트인데요, 이건 제가 처음으로 칸 국제 광고제에서 상을 받은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요. 또 하나는 처음 이곳에 와서 진행했던 현대자동차 브랜드 광고예요. 그때 글로벌 캠페인으로 ‘리브 브릴리언트 Live brilliant’ 시리즈를 시작했어요. 2년에 거쳐서 7편의 현대자동차 브랜드 광고를 만들었는데, 현대자동차에서 그동안 하지 않았던, 굉장히 감성적인 캠페인이었어요. 제가 이노션에 와서 처음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는 점, 현대자동차가 최초로 시도한 감성 광고였다는 점, 이병헌 씨의 나레이션만 사용했다는 점, 공중파에서 1분 광고를 온에어 했다는 점 등 저에게 여러모로 굉장히 의미있는 캠페인이었어요.

Q. 광고를 만들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나요?

사실 스트레스라는 게 업무보다는 사람 때문에 받는 거잖아요. 조율하는 과정, 광고주를 설득시키는 과정에서 일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는 내 능력에 대해서 되묻게 되는 경우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을 치유할 때 가장 많은 도움을 받는 건 바로 아내예요.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편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죠.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Q. 광고는 창의력이 경쟁력이 되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CD님은 주로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연차가 어릴 때는 광고를 많이 보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덜 보려고 해요. 광고를 많이 보다 보면, 무의식중에 따라하게 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오히려 광고 외의 영상물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에요. 싸이매틱스라는 아이디어도 유튜브 과학 채널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고, 코나 역시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편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매사에 대한 관찰력인 것 같아요. 무엇을 보더라도 거기서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을지 살펴보는 거죠.

Q. 이번 호 이슈가 ‘기술 문명’이에요. CD님은 새로운 기술이나 최신 기기에 관심이 많으신 편인가요?

원래 얼리어답터였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그것보다 삶에 중요한 것들이 많이 생겨서 그런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뭐가 나오지?” “출시일이 언제야?” 이런 것 하나하나가 제 삶의 큰 영향을 미치는 뉴스인 줄 알았는데, 이젠 그렇지 않은 거죠. 그래도 물론, 뭐가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계속 관심을 두고 있어요. 놓는 순간 못 따라가거든요. 요즘은 기기적인 것보다도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정보가 더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생각해요.

깨어있는 자세, 박건호 CD 이미지

Q. 최근 4차 산업혁명으로 대두되는 기술들이 광고와도 밀접하게 관련 있어요. 광고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해지겠죠. 기술이 일종의 툴이 되어서 할 게 더 많아진 거예요. 다변화된 환경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공부를 많이 하는 수밖에 없어요. VR을 이해하고, IoT 등 요즘 화두가 되는 이슈들을 이해해야지만 어떻게 캠페인에 사용할지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Q. CD에게 있어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지구력인 것 같아요. 일종의 참을성이라고 할까요? 프로젝트 하나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 긴 여정 동안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항상 의식을 하고 있어야 해요. 팀원들과 함께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팀원들 간의 좋은 관계, 팀의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고, 기획과 많은 회의를 조율해야 하고, 수시로 광고주와의 미팅을 하면서 보고 단계마다 반복적으로 우리의 아이디어를 설득시켜야 해요. 제작 단계에서는 프로덕션과의 조율, 감독과의 협의, 후반 작업과 이어지는 시사 회의에서 생기는 돌발 상황들에 대한 대처도 필요하고요. 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장애 요소들이 너무 많아요. 이 긴 여정을 흔들리지 않고 협의가 되었던 방향으로 최대한 안정적으로 이끌고 가려면 감정적, 정신적 그리고 체력적 지구력이 필요해요.

Q. 올해가 가기 전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이게 매년 같은 목표이고 매년 이루지 못하는 건데, ‘살 좀 빼자!’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하니까 힘들어요. 그렇다고 노력하지는 않고 먹는 데만 노력하죠. (웃음) 지난 달에 한 달 동안 휴가를 가졌는데, 여행을 가는 남들과는 달리 일상을 즐기자란 생각으로 쉬면서 운동만 했어요. 아침에 필라테스 가고, 집에서 잠깐 쉬었다가 오후에는 PT 가고, 저녁엔 친구들 만나고, 가끔 자전거 타면서 한 달을 보냈어요. 그런데 한 달 지나고 보니까 오히려 몸무게가 늘더라고요. 살은 안 빠지고 근육만 늘어서 건강한 돼지가 됐습니다. (웃음)


 

CD’S ESSAY

어쩌다 광고

국민학교 이후로 처음 해보는 글짓기. 착하게 성장하다 보니 장문의 반성문 쓸 기회조차 없었다. 내가 어쩌다 광고를 하게 돼서, 이노션 월드와이드 사보 <Life is Orange>에 에세이를 쓰느라 주말에 고민하고 있는지 생각을 해본다. 대학 시절, 기필코 광고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적도 없고, 광고 동아리 활동을 해본 적도 없고, 공모전으로 방학을 불태워본 적도 없고, 대행사에서 인턴조차 해본 적 없는데… 광고를 시작하고 나서도 이 일이 나에게 맞는지, 디지털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고민도 많이 했고, 중간에 번아웃 Burn Out을 겪고 아예 그만두기도 했다. 그러다 국내에서의 광고 업계는 경험할 만큼 경험했다는 생각에 광고를 해보려고 해외로 잠시 나간 적도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광고 생활 5년 동안 국내나 해외나 광고업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디지털 일도 잠시 해보면서 디지털 쪽도 광고와 다를 게 없을뿐더러 더 세분된 분야는 나의 적성에 더 안 맞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더 아득한 기억 너머를 짚어 본다. 초등학교 시절, 그땐 국민학교였지. 아버지 직장 때문에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저 나라에서 다시 이 나라로, 잦은 이사와 전학을 다녀야 했다. 유독 헤어짐에 익숙하고 외로운 유년시절이었다. 필사적으로 혼자서도 잘 노는 법을 찾아야 했는데, 그때 내 눈에 꽂힌 것이 광고 전단지들이었다. 매주 토요일, 집에 배달되는 신문 사이에 꽂혀있던 수많은 광고 전단지! 할인 쿠폰들을 죄다 잘라서 어머니 손을 끌고 마트로 갔다. 이미 나는 오늘의 특가, 1+1 행사 등의 프로모션 등을 줄줄 외운 상태였다. 그런데 정작 마트에 도착해 정신 차려 보면, 머릿속을 채웠던 그 수많은 프로모션들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곤 패키지가 예쁜 제품들 앞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패키지의 색감, 일러스트, 글씨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성비 좋은 상품들보다도 디자인이 예쁜 제품들이 좋았다. 집에는 1년에 2번씩 두꺼운 백화점 카탈로그가 배달되었다. 책이 헤질 때까지 보고 또 보았다. 백화점 카탈로그는 적어도 내겐 소설책보다 재미있었고, 나는 그것을 교과서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살 능력도 안 되는 손목 전자시계, TV 브라운관, 카세트 플레이어 등, 나는 그 책 속에 있는 제품들의 장단점을 분석해가면서 어떤 제품이 나에게 혹은 집에 어울릴지 고민하곤 했다. 1년 동안 나를 포함한 온 가족의 생일 선물 시나리오를 짜고, 1월부터 연말 크리스마스에 부모님께 선물 드릴, 그리고 내가 선물 받을 상품들을 고르고 또 골라봤다.

비슷해 보이는 물건들이 브랜드에 따라서 왜 가격 차이가 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브랜드라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차를 사러 간다는 아버지를 따라나선 적도 있다. 수도 없이 자동차 매장을 다니면서 나는 모든 자동차의 카탈로그들을 수집했다. 방에 돌아와 그것들을 쭉 펼쳐놓고서 아름다운 화보들은 카탈로그에서 잘라내서 방 벽에다 포스터처럼 붙이고, 각 차의 브랜드, 디자인, 재원들을 보면서 장단점을 초등학생의 시선으로 비교했다. 주말에는 아버지를 따라 레코드샵에 자주 갔다. 아버지는 늘 클래식 코너에 계시곤 했고, 나는 팝과 록 코너에 가서 카세트와 LP 표지들을 구경하며 진열된 금주의 추천 음반들의 음악을 감상했다. 음악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현대미술관 같은 느낌이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멋진 음반 표지들, 티셔츠들, 록 밴드나 가수들의 화보집들을 수도 없이 구경했다. TV에서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면, 그것이 야구든 농구든 미식축구든 프로 경기든 대학경기든, 경기보다 마스코트와 팀 로고, 유니폼 디자인을 분석하는 게 경기보다 더 재미있었다. 옷이나 신발을 사면, 태그나 박스도 모두 버리지 않고 모았다. 중고로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예뻐서! 어머님께서 사신 주방용품 사용설명서에서부터 아버지께서 가져오신 레스토랑 성냥갑까지 내 주변을 둘러싼 그림, 그래픽적 요소들은 모두 다 궁금했고, 그 와중에 많은 것들을 따로 모으기도 했다.

 

돌아보니, 내 모든 일상은 소비문화와 그것을 홍보하는 광고와 디자인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좋아했다. 제품 자체보다도 그 제품을 포장해 놓은 여러 가지 요소들에 눈길이 갔고, 설득됐고, 손이 갔고, 관심을 가졌다. 상대적으로 더 아름답게, 멋지게, 유니크 하게 포장된 제품들이 장르를 막론하고 더 좋았다. 이것이 마케팅이라는 것을 어린 나이에는 몰랐지만. 어린 시절을 그런 환경에서 성장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멋진 것이 좋고, 내 주변 모든 것이 아름답고 멋졌으면 좋겠다. 거기에 내가 이바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는 일이 아니라 여전히 즐거운 놀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회의실에서 논다. 광고 전단지 대신 인터넷을 서핑하고, 자동차 카탈로그 대신 자동차 기획서를 읽으면서. 레코드샵 대신 핀터레스트를 뒤지면서, 무엇인가를 더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게 만들어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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