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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Play’의 의미
염철 Yum, Chavez
이사 / 염철BM
Executive Director / C.Yum BM
광고를 위한 동력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잘 놀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이노션 월드와이드의 염철 이사. 그가 생각하는 놀이와 광고는 무엇인지 들어본다.
Interview
Q. 광고인에게 ‘놀이 Play’란 어떤 의미일까요?
‘많이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많이 놀아야 한다’ 라는 말이 있어요. 하지만 광고업계의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논다’라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광고인들에게 놀이가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놀이의 본질은 상상력이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광고를 잘할 수 있는 동력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잘 놀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본인이 즐기는 놀이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Ride Life’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한 일본 유명 스포츠 전문브랜드가 있는데요. Ride Life까지는 아니어도 저도 타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가끔이긴 하지만 스노보딩 그리고 바이크를 타면서 노는 거지요. 그러다 보니 전형적인 놀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연스럽게 저만의 작은 놀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출근 방법을 살짝살짝 바꾸는 소소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는데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5월 어느 날. 바이크를 타고 출근한 적이 있어요. 보통 차를 가지고 나오면 가장 빠르거나 막히지 않을 길을 찾아 오기 마련인데, 바이크로 출근을 하면 가장 달리기 좋은, 기분 좋은 도로를 찾아달리게 됩니다. 벚꽃이 핀 길을 따라 돌아 출근하는 거지요. 삼성의료원 옆 벚꽃 터널을 지나 개포주공 벚꽃 길과 양재천 벚꽃 길을 지나 뱅뱅사거리 사무실에 도착합니다. 이런 것도 저에게는 즐거운 놀이인 것이죠. 사실, 놀이에 대한 의미가 요즘에는 더 넓게 이해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즐거움 fun’과 ‘활동 Activity’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 말이죠. 물론, 저도 ‘이 좋은 날, 나는 회사를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요. (웃음)
Q. 최근 사회적 현상 중 하나인 ‘혼술’, ‘혼밥’도 일종의 개인 놀이로 볼 수 있을까요?
개인화, 개별화 현상에 따라 점차 그런 현상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해요. 과거 ‘햇반’이라는 제품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비상식 또는 맞벌이 부부를 위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햇반의 주요 타깃이 주부만은 아니듯이 말이죠. 그런 측면에서 혼술 혼밥은 사회구조의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이지 놀이라고 말하기에는 왠지 씁쓸하네요.
Q. 광고인들은 직업 특성상 더 잘 놀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요.
아무래도 트렌드에 민감하기도 하고 또 여러 방면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도 많고 캐릭터들도 조금씩은 독특해서 그런 이미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개인적인 경험에 국한된, 그렇기에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과 정량적으로 비교는 어렵겠지만 실제로도 광고인들이 잘 놀고, 잘 어울리고, 또 모든걸 편견 없이 잘 받아들인다고 생각합니다.
Q. 회사 내 다른 직원이 놀이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면요?
여행도 큰 범주의 놀이라고 생각을 하기에 여행을 가라고 할 거 같아요. 누군가에게 여행지를 추천하고, 여행지에서 가볼 만한 곳들을 이야기해주는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마치 제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곤 하거든요. 과거 그곳으로 여행을 떠났던 기억도 나고요.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말이 “여행은 촬영중인 영화와 같다. 기억이 그 영화를 상영할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Q. 최근 여행의 경험도 들려주시겠어요?
작년에 안식년이어서 가을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거의 2주 동안 차를 빌려 스페인 남쪽지방인 안달루시아 Andalucía를 여행했죠. 조그만 식당들과 작은 항구들, 그리고 예쁜 마을들을 따라 다녔습니다. 특별히 동선과 숙소를 정하지 않고 지도를 보면서 마음 가는대로 다녔어요. 오랜만에 생각도 많이 하고, 조금은 뒤도 돌아보고 하는 풍성한 경험이었습니다. 조금 허세스럽게 말하자면 건축가 승효상 씨가 여행은 공간 속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얻는 성찰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여럿이 여행하는 것 그것은 야만이다’ 라고 했는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Q. VR 같은 신기술의 등장이 ‘놀이’의 개념을 바꿀 수도 있을까요?
새로운 기술이 경험을 확대할 수는 있겠지만, 놀이의 본질이 변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해요. 상상력과 즐거움이 놀이의 본질이라는 것 말이죠. 그동안 보면 10년 주기로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며 업계에 반향을 주곤 했는데, 이에 맞춰 광고 역시 현명하게 잘 대처해 온 것 같습니다. 최근 ‘움짤(특정 화면을 캡처해 움직임을 줌으로써 또 다른 상황을 만들어 내는 방식)’을 활용한 해외 유명브랜드의 광고도 좋은 사례이지요. 일반적으로 움짤은 인터넷에서 패러디 등에 흔히 쓰이는 만큼, 온라인에서 잘 노는 사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이사님이 진행하신 최근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것이 궁금합니다.
광고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좋은 사람들의 따뜻한 광고’를 만들고 싶었어요. 업계에서는 천지인이 맞아야 좋은 광고가 나올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는데, 그만큼 어렵다는 거겠지요. 좋은 제작과 전략 그리고 광고주가 그것인데요. 개인적으로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KCC건설의 아파트 브랜드인 스위첸 Switzen 광고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아파트 광고들처럼 아파트의 속성적인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 엄마의 엄마, 그리고 아이들. 이렇게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와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캠페인을 7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광고인의 입장에서 오랫동안 믿고 맡겨 주시기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힘을 내고 있습니다.
Q. 체 게바라 Che Guevara를 좋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그분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좋아하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마블 Marvel의 히어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어느 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1998년에 볼리비아의 정글에서 체 게바라의 유골이 발견 되어 쿠바의 ‘산타 클라라 Santa Clara’에 안장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 다음해 쿠바로 떠난 적이 있어요. 체 게바라의 유골이 안장된 곳에 신발을 벗고 절을 하다 보안 요원에게 제지 당해 해명한 기억이 있어요. 체 게바라와 관련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당시 석 달 정도 남미를 여행했는데, 교통 여건이 좋지 않아 12번 정도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입국카드를 받을 때마다 이국적인 외모 때문이었는지 매번 스페인어로 된 입국카드를 받아서 작성이 힘들었습니다. (웃음)
Q. 흔치 않은 경험을 즐기는 듯 보입니다.
처음에는 체 게바라를 만나기 위해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기왕 간 김에 다른 곳들도 둘러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때는 남미나 체 게바라 등의 것들이 흔치 않았지만, 지금은 아주 흔한 것이 되었죠.
“시집을 자꾸 보려고 노력합니다. 아무래도 시라는 것이 세상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분야이다 보니 30초가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설득을 하고 나아가서는 감정적 동의까지 얻어내야 하는 광고와 많이 닮았거든요.”
Q. 문득 책을 한 권 추천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 권을 꼽아 추천하기가 쉽지는 않네요. 한국작가로는 김연수, 김영하, 천명관, 유시민 작가 등을 좋아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Murakami Haruki, 코맥 매카시 Cormac McCarthy, 이언 매큐언 Ian McEwan, 폴 오스터 Paul Auster 같은 해외작가들도 좋아하고요. 최근에는 김언수 작가의 소설 <뜨거운 피>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부산의 조폭 이야기인데 이른바 ‘글발’에 빠져듭니다. 이노션 자료실에도 제가 추천해서 구비했다고 하네요. (웃음)
Q. 어떤 분야의 책을 주로 보시나요? 개인적으로 글을 쓰기도 하시나요?
분야 구분 없이 잡다하게 읽는 편이에요. 손에 잡히는대로요. 마케팅이나 브랜딩 관련 책뿐 아니라, 인문 과학이나 사회 과학 분야의 책들도 같이 보죠. 저는 책을 읽는 속도가 조금 빠른 편이에요. 읽다가 좋은 구절이나 내용이 있으면 스크랩하기도 하고요. 틈틈이 쓰는 글들이 있긴 한데 일기 또는 잡문에 가깝습니다.
Q. 좋은 광고적 발상을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예전에 광고하는 어느 분은 새벽 시장의 역동적인 풍광과 사람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 경우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딱히 그런 것은 없더라고요. 어린 연차일 때 답답하고,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집 근처 가락시장을 새벽에 가 보았지만 피곤하기만 하고 별로 효과는 없었죠. (웃음) 그 대신 시집을 자꾸 보려고 노력합니다. 아무래도 시라는 것이 세상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분야이다 보니 30초가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설득을 하고 나아가서는 감정적 동의까지 얻어내야 하는 광고와 많이 닮았거든요.
Q. 시가 그렇듯, 좋은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건의 핵심을 잘 짚어야 할 텐데 어떤 방법론이 있을까요?
눈이 밝아야 광고를 잘 만들 수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여기서 눈이 시력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죠. 직관이나 통찰 같은 것일 텐데. 그런 것들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솔직히 말해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책 말씀을 많이 드렸는데 책을 많이 읽으면 생기는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물론 타고 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요. 그런 것들이 노력으로 어느 만큼 좋아지고 얻어지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저도 줄곧 궁금해하고 찾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알게 되시면 알려주세요. (웃음)
Q. 광고 회사도 사내 문화를 바꾸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노션 최고경영진부터 ‘잘 쉬고’, ‘잘 노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야근이 생활화됐거나 휴가를 쓰기 위해 눈치를 봐야 하는 분위기는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어요. 서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노는 것, 쉬는 것이야말로 광고인의 ‘무한한 동력’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