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Manual
배워가는 과정
‘파워 스톤 Power Stone’이라 불리는 돌을 모으고, 주변인들에게 선물하는 조금은 수상한 취미를 가진 CD. 그녀에게 있어 돌이란 심리적인 위안을 주는 부적 같은 것이다.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남을 생각하고, 늘 배우는 자세로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조현정 CD를 만났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광고는 물론, 인생까지 계속 배워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고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조현정이라고 합니다.
Q. 현재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신가요?
지금은 대부분 마무리되고 있는 시기인데요. 먼저 아이디어 제시부터 제작까지 근 1년이란 시간이 걸렸고, 동화를 콘셉트로 진행했던 기아자동차 브랜드 PR 프로젝트 ‘피터 리턴즈 Peter Returns’의 첫 번째 편이 얼마 전 방영이 되었어요. 총 3부작이라 나머지 편도 준비 중에 있고요. 얼마 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던 현대 모비스와 글로비스 Glovis의 합병을 주제로 한 광고를 진행 중이었는데, 아쉽게 무산이 됐어요. 그리고 광동제약에서 의뢰받은 ‘칸 라이언즈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Q. 최근 진행하셨던 광동제약의 옥수수 수염차 ‘다짜고짜’ 편이 TV CF BEST 100에서 오랜 기간 1위 자리를 차지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광고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기획 방향이 뚜렷했던 프로젝트에요. 처음 옥수수 수염차가 나왔을 땐 여자들이 많이 마시는 미용 음료로 ‘브이 라인’ 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었어요. 사실 요즘에는 짜게 먹는 여성 분이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기획에서 나트륨 배출 콘셉트를 가지고 오신 거예요. 처음에는 반신반의 했는데, 한 번만 믿어달라는 기획의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여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짜던 중, 팀원 중 하나가 ‘다짜고짜’라는 키워드를 가져왔을 때, “네가 위너다!”라고 외쳤던 기억이 나요. (웃음) 한국인이 나트륨 섭취량이 많은데, 옥수수 수염차가 실제로 나트륨 배출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제품의 효능에 대한 수위는 너무 부풀려지면 안 되기 때문에 심의가 나게끔 조절을 잘 해야 해요. 다행히 심의까지 마무리가 잘 되어서 순조롭게 온에어가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Q. 이노션 초창기에 합류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이노션과 어떻게 연을 맺게 되셨나요?
전 사원이 50명 정도였을 때 이노션에 처음 온 것 같아요. 그때 계시던 선배님이 불러서 오게 됐어요. 제가 대리일 때만 해도 사수, 부사수의 대한 개념이 매우 확실했고 단단하던 때였어요. 존경하는 선배가 오라고 하면 “네!”하고 가는 시절이었죠. (웃음)
Q. 입사를 결심하게 했던 이노션의 매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좀 놀라웠던 에피소드가 있어요. 그때 당시 인사팀 팀장님이 제가 재직하고 있던 회사 앞으로 직접 오셨어요. 보통은 면접을 보는 회사 근처에서 만나잖아요. 그런데 면접자의 회사 앞까지 직접 와주셔서 인간적이고 따뜻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Q. 오랫동안 이노션에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모든 첫 시작이 기억에 남아요. 처음 이노션에 왔을 때 CD님, 저, 아트 이렇게 셋이서 팀을 만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CD님도 처음이셨고, 우리 모두 처음 해보는 거라 굉장히 가족처럼 일했거든요. 그때는 CD님이 밖에서 우리 아이디어를 팔 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처음으로 CD가 되었을 때 아트 한 명, 카피라이터 한 명 셋이서 함께 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숱한 밤을 지새 우면서 나만 좋은 게 아니라, 서로에게 좋게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임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지금의 팀이 처음 시작했을 때도 기억에 남네요. 지금 팀은 이노션에서 평균 연차가 가장 어릴 거예요. 그래서 처음엔 걱정도 많았지만, 모두가 열심히 잘해주어서 지금은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Q. 그동안 많은 광고를 제작하셨을 텐데요, CD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는 무엇인가요?
제가 CD가 되기 전에 만들었던 광고인데요. 댓글을 달면 자동차를 기부하는 ‘기프트카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아요. 댓글 100개가 달리면 자동차 한 대가 주어지는 프로젝트 였거든요. 저는 그 광고를 대한민국 바이럴 광고의 효시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기획이기도 했고, 상당히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캠페인이었어요. 이노션 처음으로 광고 대상을 받은 캠페인이기도 하고요. 결과도 좋았지만, 과정 자체도 배울 게 많아서 기억에 남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났던 승가원 친구들과는 그때의 연을 계기로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어요.
Q.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하는 대답이 있어요. ‘문제 해결’인데요. 그것이 시장의 문제이든, 광고주의 문제이든, 브랜드의 문제든, 가지고 있는 핵심 문제를 해결하면 그 프로젝트가 해결된다고 생각해서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먼저 파악하려고 애쓰는 편이에요. 그런데 문제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때도 있어요. 바로 결정권자인 CEO가 광고에 대한 의지가 강할 때가 그래요. 그럴 때가 가장 힘든 것 같아요. 그때부터는 취향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리니까요.
Q. 이번 ‘Life is ORANGE’의 주제는 ‘사운드’입니다. 광고에서 사운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일 텐데요. CD님이 생각하시는 광고에서의 사운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사운드가 주된 콘셉트, 즉 아이디어의 핵심이 되느냐, 광고의 요소 중 하나가 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사운드 자체가 아이디어인 경우에는 모든 것이 사운드를 향해 집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주얼을 비롯한 광고의 모든 요소가 사운드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거죠. 반면에 사운드가 광고의 한 요소가 되는 경우에는 철저하게 콘셉트를 살려주는 것에 집중해야 해요. 예를 들면 메시지가 정확하게 들려야 하는 광고에서 BGM이 너무 임팩트가 있으면 안 되고, 잔잔하게 깔리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처럼요.
Q. 광고에서의 사운드는 과거와 현재에 이르러 어떻게 변화해왔다고 생각하나요?
이 질문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웃음) 사실 사전에 질문지를 주셔서 이 질문은 개인적으로 조사를 해서 답변을 작성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보지도 못한 광고를 지금 와서 말씀드리는 건 CD 매뉴얼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동안 느꼈던 것만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광고에서 사운드가 비주얼만큼 발전을 하진 못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최근 영화 중에 ‘콰이어트 플레이스’라는 영화가 있어요. 스릴러·공포 영화인데 그 동안 같은 장르의 영화들은 사운드 이펙트 Sound Effect를 강하게 해서 공포감을 줬었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반대로 사운드를 굉장히 절제하면서 공포감을 배가시켜요. 이런 식의 임팩트 있는 시도는 영화를 비롯한 여러 콘텐츠에서 많이 이루어졌지만, 광고에서는 아직 시도가 덜 되지 않나 싶어요.
Q. 진행하셨던 프로젝트 중, 사운드가 잘 활용한 프로젝트가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기아자동차 레이 Ray의 론칭 캠페인을 진행한 적 있었는데, 레이라는 자동차 명을 요들송의 ‘요들레이’로 표현한 적이 있었어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온 요들송을 개사한 BGM 송이었는데, 재미있어서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시고 따라 해주셨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서울 맹학교 졸업생들에게 만질 수 있는 졸업앨범을 선물하자는 취지에서 ‘손으로 보는 졸업앨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 있어요. 시각장애인들은 졸업앨범을 볼 수 없으니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각 아이들의 흉상을 3D 프린팅으로 만든 적이 있는데, 시각장애인 아이가 친구들의 입체 졸업앨범을 만지는 장면에서 깔리던 BGM을 싹 빼고 현장의 소리를 그대로 담았어요. 아이들의 숨소리와 감탄하는 소리로만 채웠죠. 소리가 절제되니까 오히려 더 강하게 느껴지고, 임팩트가 있더라고요.
Q. CD님이 특히 좋아하시는 광고의 사운드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운드가 아이디어가 됐던 광고 중에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광고가 있어요. 요즘 흔히 말하는 ‘ASMR’을 활용한 광고인데요, 걸그룹 시스타가 나와서 “스킵하지 말고 들어봐”라고 속삭이던 이노션에서 제작한 11번가의 광고가 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ASMR의 개념조차 없던 때였는데, 광고 기획서에 ‘귀르가즘 ’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광고주를 설득시켰다고 하더라고요. 신선했던 광고로 기억해요.
Q. 광고인이 되길 잘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보통 광고주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홈플러스 20주년 광고를 한 적이 있었어요. 20세기 폭스 영상을 참고해 영화 예고편처럼 만든 광고였는데 그 영상이 나간 후로 홈플러스 매출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고 해요. 당시 이마트를 훌쩍 뛰어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 짜릿했던 기억이나요. 그리고 언젠가 저희 형부가 현대 모비스 광고 중 외계인이 나오는 자율주행 광고를 보고 제게 좋다고 이야기해준 적 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저희 팀에서 만든 광고였을때. (웃음) 그때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Q. 슬럼프에 빠졌을 때 이겨내는 CD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한 2년쯤 된 취미가 있어요. ‘파워 스톤’이라고 특별한 힘을 가진 예쁜 돌을 모으고 있어요. 딸이 하나 사달라고 해서 그것을 주문하고, 같이 풀어봤는데 보는 순간 마음이 되게 편해지더라고요. 그 이후로 돌을 모으거나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게 취미가 됐어요. 슬럼프에 빠졌을 때, 내가 왜 슬럼프에 빠졌을까를 생각하고 그 이유를 없애주는 돌을 간직해요. 그러면 심리적으로 위안이 되면서 슬럼프를 가볍게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Q. 요즘 CD님이 빠져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광고는 매우 선명하고 직접적인 일이에요.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실체가 있는 것이 전부라고 할만큼요. 하지만 그 실체를 만들기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실체가 없는 것에 집중해야 해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말씀드렸던 파워 스톤도 그런 예고요. 요즘엔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 사람이 살아가는 힘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요.
Q. 곧 여름 휴가 시즌인데요. CD님은 어떤 휴가 계획이 있으신가요?
한 번도 아이의 방학이나 남편 휴가에 맞춰 다같이 쉰 적이 없어요. 한번 맞춰 보려다가 PT가 시작되는 바람에 남편이 휴가를 서울에서 다 보낸 적 있거든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억지로 맞추려고 하지 않아요. 지금은 기분 전환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건 별로 흥미가 없어진 것 같아요. 대신 여러 가지 분야에 대해 체험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보컬 수업을 받아 본다거나, 도자기를 만들어 보는 등 제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들이요. 광고에 도움은 조금 덜 되더라도 제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해보면 여러모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중학생 1학년이 된 딸 아이가 재미있는 음악을 듣더라고요. 일본에 ‘우타이테 うたいて’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말하자면 인터넷에 자신이 부른 노래를 올리는 아마추어 가수인데, 그들의 음악이 메인스트림의 음악과는 매우 달라요. 리듬이 독특하거나 음율이 전혀 못 들어본 패턴이라던가 하는데 듣다 보면 재미있고, 중독성 있더라고요. 딸 아이에게 물어보니, ‘마후마후’, ‘96네코’, ‘이라온’ 이라는 우타이테가 유명하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Q. 벌써 올해 상반기가 지나고 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좋은 캠페인을 하는 것은 언제나 광고인이 품고 있는 목표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건 빼고, 개인적으로는 다른 분야의 공부를 조금씩 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분야에서 한번 완전해져 보고 싶어요. 그것이 제가 취미로 하고 있는 파워 스톤 수집이든, 영어든 꾸준히 공부해서 저 스스로가 만족할만한 수준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CD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이건 처음 이야기하는 것인데, 열정과 욕심을 구별할 줄 아는 CD가 되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구분이긴 한데요, 모두를 위해 좋은 캠페인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순수한 마음은 ‘열정’이라고 생각하고, 개인의 성공만을 위해 일하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이 두 개를 잘 구별해서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일하는 CD가 되고 싶어요.
Q&A
조현정CD팀의 팀원들이 그녀에게 직접 묻다
1.
평소 돌을 모으시는 CD 님.
가장 이루고 싶은 소원은 무엇인가요?
일에 올인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일을 잘하고 싶다는 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이고, 요즘은 완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해요. 제가 저 자신을 봤을 때 만족할만한 사람이요.
2.
CD님은 어떤 사람에게 돌을 주시나요?
기준이 궁금합니다.
사람들에게도 에너지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한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이들에게 저는 보답으로 돌을 드리고 있어요. (웃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저 사람이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들면 돌을 드리기도 해요.
3.
지금까지 광고를 계속 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제 의식은 광고를 싫어하는 것 같은데 가장 친한 친구가 저보고 ‘너는 정말 광고를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제 무의식은 광고를 좋아하나봐요. (웃음) 광고를 안 좋아하면 이렇게 오랫동안 못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일이라 계속하는 것 같아요.
4.
CD님에게 명리학이란 무엇인가요?
제가 올해부터 취미로 명리학 공부를 하고 있거든요. 서울교대 쪽에 있는 평생교육원에 명리학 강의가 있었는데, 커리큘럼을 보니 21세기 글로벌 리더라면 명리학을 공부해야 한다며 대단하게 써 놓았더라고요. (웃음) 막상 가보니 명리학 공부하시는 분들이 소소하게 모여 공부하는 자리였어요. 광고와는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게 새로워서 즐겁게 배우고 있어요.
5.
CD님에게 ‘돌’이란?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상징물? 요즘에는 모으는 것보다 선물해주는 것이 더 좋아요. 선물을 하면 그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 왠지 더 특별하게 느껴지고요.
CD’S ESSAY
Writer. 조현정 크리에이티브 디렉터ㅣ조현정CD팀
生에 대하여
사람의 생 生과 자연의 흐름은 서로 닮아있습니다. 태어나는 봄, 무르익는 여름, 결실이 열리는 가을, 존재가 사라지는 겨울을 겪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봄이 좋다고 계속 봄이면 어떻게 될까요? 성장을 멈춘 상태, 즉 새싹인 채로 남아있게 됩니다. 여름을 건너뛰고 봄에서 가을이 된다면? 열매를 맺기는 하되, 익지 않은 열매를 보게 되겠지요.
‘사람은 위대하지 않다. 환경이 위대하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능력의 차이는 물론 있겠지만 다 거기서 거기,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저는 어떤 이에게 따스한 봄만 계속된다고 해서 부럽지 않습니다. 지금은 좋을 수 있지만 다른 계절들도 찾아올 거니까요. 그때 자신이 겪지 않은 환경에 당황하며 주저앉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 겨울만 있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봄이 왔을 때 오랜 기간 응축해놓았던 에너지로 더 큰 싹을 틔울 테니까요.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봄만 10년, 20년씩 계속되는 사람도 있다’ 당연히 그런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질량보존의 법칙을 어느 정도 믿습니다. ‘이것과 저것의 합은 사람마다 비슷하다’는 거지요. 예를 들면, 내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고 합시다. 그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운동을 가지 않았고, 애인과의 약속을 미뤘으며 취미 생활을 잠시 접었다면 법칙이 이해되시겠지요?
그러니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가 나보다 크리에이티브를 잘 하는 건, 혹은 회사에서 인정받는 건 희생한 것이 많아서다’라고. 내가 졌다는 마음이 조금은 없어지며 위안이 되니까요.
CD라는 위치를 망각한 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노션에는 일을 무엇보다 우선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생각되기에 저 자신을 토닥이는 방식 중 하나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 또한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기쁨 중 하나가 저희 팀에서 만든 광고에 좋은 피드백이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딸아이가 자주 하는 말이 “엄마 오랜만이야”니까 말 다 했지요.
제가 실린 ‘Life is ORANGE’는 여름에 발행된다 들었습니다. 40도가 넘을 이번 여름, 자신의 무언가를 희생하면서 만들어주실 빛나는 크리에이티브를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곁에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끄럽지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네가 문제야”라고 이야기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내가 문제일 거야”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은 사람을 철들게 한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