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The
World And People
세상과 사람을 향한 커다란 픽셀
작가 김현우(픽셀 김)는 픽셀 아티스트다. 그러나 여타 픽셀 아티스트와 달리 그래픽 소프트웨어가 아닌 시간과 손으로 픽셀을 그리고 채운다. 그는 손끝 작은 근육 하나하나, 작디작은 칸을 모으고 쌓는 것에 쓴다. 그에게 픽셀이 무어냐 물었다. 그는 추억을 쌓지 못했던 어릴 적 친구들, 그리고 내 삶에 감사한 사람들, 나아가 세상에 마음껏 나누고픈 자신의 이야기라 답했다. 픽셀 김의 작품 속 작은 데이터 기억 장치에는 이렇게 사람과 세상을 향한 그의 커다란 두드림이 있다.
Interview
Q. 만나서 반가워요. 독자분들에게 짧은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픽셀을 통해 소통하는 작가 김현우, 픽셀 김입니다.
Q. 픽셀Pixel이라면 무엇일까요?
픽셀은 작은 네모 칸을 이루는 화면의 최소 단위예요. 저는 이 픽셀을 통해 사람이 사는 세계와 우주를 조형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제게 픽셀은 단지 작은 네모 칸을 이루는 물리적인 단위가 아니에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종이 위에 바로 그리고 픽셀 칸칸마다 다채로운 색을 채워 넣어요. 거기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제 관심이 들어 있어요.
Q. 세상과 사람을 향한 관심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요?
학교에 입학했을 때 말을 못했어요. 그래서 친구들과의 소통도, 수업도 따라가기 힘들었죠. 그래서 종이 위에 작은 네모를 그려 학급을 1분단, 2분단으로 나누고, 친구들 이름과 번호를 새겨 넣었어요. 그게 친구들과 대화하고 함께 노는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차차 번호와 이름을 지우고 각기 다른 색과 이야기를 채웠어요.
Q. 주로 어떤 이야기들을 채우셨나요?
저를 위해 늘 애써주는 어머니와 가족, 그리고 저를 돌봐주는 의료진들, 가까이나 멀리서 저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요. 때때로 마주하는 여러 사람과 상황도 있죠.
Q. 작품을 찬찬히 살펴보면 픽셀 종류가 하나가 아니에요.
작은 칸칸, 수학 공식이나 오선 위 음표 등 다양한 픽셀로 작업해요. 또 회화 작업뿐 아니라 새로운 재료와 실험을 통해 입체적인 작업도 하고 있어요.
Q. 음계도 직접 구사한 건가요?
음악을 공부한 적은 없고, 머리에 떠오르는 걸 그려 넣은 거예요. 작품 속 멜로디를 사운드로 만들어 작품과 함께 선보이기도 해요.
“사람과 세상 사이에서 교감하는 것이 좋아요. 그게 제 작업의 원천이기도 하죠.”
Q. 실제로 작업할 때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인가요?
제 작업에서 음악은 아주 중요해요. 아버지가 오래전 쓰던 액정 깨진 휴대폰으로 늘 음악을 들어요. 그걸 그림으로도, 몸으로도 표현해요. 음악을 들으며 춤추듯이 그림을 그리는 거죠. 그래서 제 그림에는 때때로 아이들 소리, 바람 소리가 담겨 있어요. 저는 그걸 ‘소리 회화’라고 해요. 음악을 좋아하고 흥도 많아 〈제롬 벨 갈라쇼〉라는 퍼포먼스에도 참여했어요(웃음).
Q. 어쩌면 미술만큼 음악을 좋아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네요.
어릴 때부터 귓속의 진주종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반복적으로 치료를 하면서 소리와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즐거운 생활소리와 음악으로 극복했어요. 그래서인지 소리에 민감해요. 덕분에 소리를 조형화, 언어화하는 ‘소리 회화’ 작업도 할 수 있게 됐죠.
Q. 퍼포먼스, 회화, 설치 미술과 낭독, 텍스트와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앞서 말했듯 거기엔 세상에 대한 관심이 들어 있다고도 하셨죠. 작가님이 세상을 바라볼 때 가장 눈여겨보는 건 무엇인가요?
사람 사이, 세상과 사람 사이 같은 거요. 작품 〈4학년 1반 친구들〉, 〈강남복지관 친구들〉, 〈형제〉, 〈어머니〉에 제 마음이 들어 있어요. 사람과 세상 사이에서 교감하는 것이 좋아요. 그게 제 작업의 원천이기도 하죠.
Q. 최근 전시에 올린 작품 규모를 보면 작업량이 상당할 것 같다는 짐작이 들었어요. 작가님의 일과는 어떤가요?
항상 성실하게 보내려고 해요. 그래서 20분, 30분 간격으로 알람을 설정해 일상을 규칙적으로 보내요.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 작업실에 앉아 도구 뚜껑을 여는 것으로 하루를 맞이해요. 모두를 깨우는 거죠. 작업 시간은 물론이고 커피 마시기, 산책하기, 운동하기, 물 마시기, 기도하기, 식사하기, 샤워하기 등 촘촘하게 시간표를 나눠서 지내요. 알람 말을 잘 들어요.
Q. 하루도 픽셀처럼 촘촘하게 나눠 사용하시나 봐요. 피곤하지는 않으세요?
전혀요. 알람은 제 친구예요. 친구 말을 잘 들어야 하죠(웃음).
Q.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는 어떤가요?
작업하는 것도 즐겁기만 해요. 전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따금 쉬고 싶을 때는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 나 〈거침없이 하이킥〉을 봐요.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도 하고요. 그럼 다시 힘이 솟아나죠. 그런데 사실 저는 하루 24시간 그리고 꿈속에서도 그림을 그릴 정도로 작업하는 게 좋아요.
Q. 멋진 말이네요. 게다가 작업할 땐 하이킥 시리즈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작가님의 동무고요.
어릴 때부터 심장 수술과 의료사고로 오랫동안 병원에서 생활하느라 대부분 책으로만 언어를 접했어요. 그래서 누군가와 소통할 때도 문어체를 사용했죠. 그러다 〈지붕 뚫고 하이킥〉을 보기 시작했고, 그 프로그램으로 구어체를 배웠어요. 무엇보다 ‘하이킥’ 시리즈는 너무 재미있어서 지금도 유튜브로 수없이 다시 보고 있어요.
Q. 이외에도 작가님의 작품 〈농담하는 픽셀〉, 〈픽셀의 낭만주의〉 같은 색다른 제목이 인상 깊었어요. 작품 제목에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림을 그리고 난 후 그 그림에 대해 글 쓰는 것을 좋아해요. 잠실창작스튜디오의 입주 작가로 있으면서 다른 작가들과 교류하는 것도 즐거웠어요. 때때로 아는 작가님들의 전시회를 보러 다니기도 하고요. 한번은 르코르뷔지에를 좋아해서 코로나가 유행하기 직전인 2020년 1월에 르코르뷔지에 건축물인 롱샹 성당을 보러 프랑스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글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써요.
Q. 최근 전시에서는 미디어 아트로도 작품을 선보였어요.
초창기부터 제가 픽셀로 작업하니까 다른 작가님들이 미디어화 작업을 추천하셨어요. 그러나 미디어 아트 작업을 스스로 시도하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난 9월 SK텔레콤과 전시를 준비하면서 다행히 그 꿈을 이뤘죠. SK텔레콤 본사 사옥 외벽 전광판에 제 픽셀 작품이 화려하고 생동감 있게 상영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뭉클했고,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어요.
Q. 이를 시작으로 작가님이 그리는 내일의 작품도 궁금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큰 전광판에 제 작품이 걸리는 것도 그려봐요. 또 축적되는 쓰레기 위에 작업해 ‘함께 사는 쓰레기’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어요. 픽셀, 수학 기호 그리고 음악 기호 등 저만의 ‘조형 언어’와 ‘소리 회화’로 아름다운 작업을 하고 계속하고 싶어요.
Q. 훗날 대중에게 어떤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우선 현대 회화를 하는 픽셀 김, 그리고 소통하는 작가. 또 작품 자체로 기억되는 행복한 아티스트요.
Q. 작가님은 많은 역경을 딛고, 지금 이렇게 멋진 작품을 선보이고 있어요. 세상의 시름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쓴 시 〈살아간다 모두 다 함으로써〉로 답변을 대신하고 싶네요.
살아간다 모두 다 함으로써
Writer.픽셀 김
살아가보자, 흔들리지 말고 살아가보자.
나무와 집, 나와 같은 꽃을 피워보자.
나는 같은 바보가 아니다.
그러나 그런데 살구치는 힘을 모아보자.
힘내자. 살아가자.